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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술-14년만에 청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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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점 대통 가는 대로 떠돌던 한 장님 부부가 발길을 멈춘 곳이 문경새재 (조령) 가파른 골짜기를 끼고는 「어룡산」 돌 더미 위였다. 경북 문경군 마성면 하내리-어린 7남매에 이끌려 장님 부부 윤한수 (48) 권순이 (45)씨가 이 산골짜기 움막집에 찌든 여장을 푼 것은 1년 반 전의 일이다.
스무살 때 「트라코마」를 앓은 뒤부터 장님이 된 윤씨의 고향은 경북 안동 -눈이 먼 후 생계의 수단으로 배운 점치기에 몸을 담아 점 대통이 흔들리는 대로 지팡이에 의지하여 전전하기 15년째 되던 해 지금의 아내 권씨를 만났다.
권씨는 선천적인 장님. 윤씨의 점술이 빛을 잃자 점치는 것을 포기하고 이 산골로 온 후 아홉 식구의 생활 길은 벼랑에 갇히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어린것들을 앞세워 문전 걸식을 하며 견디어 오기 반년.
64년9월 초순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깡통을 메고 구걸하러 나갔던 장남 석진 (14)군이 헐레벌떡 되돌아 왔다. 돌산 기슭에서 어떤 사람이 밭을 일구고 있는 것을 눈여겨보고 돌아온 석진군은 아버지를 보고 졸라댔다.
『아빠, 우리도 밭 일궈 농사 짓고 살제이. 이젠 밥 얻으러 나가는 것 정말 죽기보다 싫데이…』 그 길로 아들 손에 이끌려 산으로 올라간 윤씨는 같은 마을에 사는 산주 김재연 (40)씨에게 돌산을 개간하겠다고 산 한모퉁이만 빌려 달라고 간청했다. 김씨는 대답 대신 콧방귀를 뀌었다. 성한 사람도 못할 일을 앞못보는 장님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냉담한 김씨의 거절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애걸하기 10여 차례에 윤씨는 마침내 뜻을 얻었다. 이때부터 윤씨 부부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돌산과 맞섰다. 아이들의 손에 끌려 산에 오르면 손끝으로 땅을 더듬어 돌을 주워내고 흙이 나타나는 한끝에서 이것을 파헤치고 진종일 비지땀으로 멱을 감으며 부부는 말없이 돌산 비탈을 한치 두치 일궈 나갔다. 손발이 가시에 찢기고 돌부리에 다쳐 피가 흘러도 굶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하면서. 이래서 지난 1년 동안에 3천평을 파헤쳤다.
지난여름 그 땅에서 밭벼며 고구마 옥수수의 파란 싹이 돋아났을 때 두 부부는 기쁨에 목메어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어린애처럼 어쩔 줄 몰랐다. 이해 가을 처음으로 거둬들인 소출은 밭벼 두 섬에 잡곡이 8가마 그러나 이것을 갖고는 아직 아홉 식구의 식량은 모자라 틈틈이 고사리·도라지·산나물 등을 캐다 팔고 있다.
『이제 우리 식구는 굶지 않아도 됩니다. 저 땅에서 올 가을에 더 굵은 고구마를 거둘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뻐근합니다.』 윤씨 부부는 헌 누더기 같은 옷소매로 얼굴에서 흥건히 흘러내리는 땀을 씻으며 환히 웃어 보였다. 【문경=본사 배건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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