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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계대열… 그 속에 우리작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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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해마다 미국의 권위있는 음악 「콩쿠르」에서 한국의 젊은 음악인들이 보여준 탁월한 재능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 대부분은 아직 20대전후의 청소년 소녀들. 좀 억지를 부리자면 음악의 「제4세대」들인 것이다. 우리의 음악세대는 다른 어느 예술분야보다도 그 만큼 앞서있다.
그러나 자부심을 갖는데 성급할 필요는 없다. 이 같은 천재교육의 뒤안길에는 우리 악단의 치명적인 허점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악단의 전 근대성을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균형을 잃고 있다는 점입니다. 연주부문은 기형적으로 발달돼 있지만 창작부문은 황무지 바로 그것이거든요.』
젊은 작곡가 백병동(31· 서울대음대강사) 씨는 이를 가리켜 『너무나 한국적인 사치풍조의 여파』라 지적한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에게 화려한 무대 위의 연주가는 있어도 20대의 작곡가나 지휘자는 없다.
『20세 이전의 천재 음악가들이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단언한 「헝가리」작곡가 「코다이」의 말처럼 위대한 음악이란 기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에 감추어진 「음악성」을 발현하는데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천재들」은 대부분 국적도 모국어도 없는 무대에서 「오로라」의 찬란한 빛에 도취되어 있는 것이다. 누구의 책임일까? 백씨는 말한다. 『국산품은 한낱 상품명으로 그치는 게 아닙니다. 예술세계에서의 국적은 보다 고도의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수한 연주가라도 한 작품을 연주할 때 작곡자와 같은 나라의 연주가를 당하기가 힘듭니다. 그 예로서 유명한 「반· 크라이번· 콩쿠르」같은 데서는 꼭 자기네 작품을 연주하도록 합니다. 』 세계적인 대열에 서자면 우리의 작품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제 책임의 소재는 명백하게 되었다. 우리에겐 작곡가가 없는 것이다.
젊은, 그리고 패기만만한 작곡가 백병동씨는 말을 잇는다. 『연주가가 무대에 서려면 우선 작곡가를 찾아가 작품을 의뢰합니다. 물론 막대한 작곡료를 물게 됩니다. 연주가에겐 한 작품의 초연이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작곡자는 그 연주자가 시원찮으면 작곡을 거절합니다. 이것은 우화가 아닌 외국의 실례입니다. 』 그러나 역설적인 우화가 있다. -작곡가가 열심히 작품을 써서 연주가에게 넘긴다. 몇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딴 연주가를 찾아간다. 역시 마찬가지다. 겨우 무대에 올려질 때는 연수료를 지불해야한다. -이것은 우리의 실정이다.
음악명론가 A씨는 『악단에 「예술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서양음악을 일인들에게서 배운 「원로」들은 저마다 성곽을 지키기에 급급하고, 그 밑에서 배운 후 외국을 다녀온 「중견」들은 「레슨」이란 이름으로 학부형들의 허영심을 자극, 월수 20, 30만원의 「치부」에 급급하고…』가시 돋힌 혹평이다. 『음악을 위한 음악만의 풍토가 아쉽다』는 얘기다.
그 다음세대- 이른바 「제3세대」의 존재는 아직 「미지수」. 그것이 자랑일수도 불행일 수도 없는 존재들이지만, 한가지 악단의 「비전」을 밝힐 등대 수들인 것만은 틀림없다. 61년 서울대 음대작곡과를 졸업, 「교향적 3장」 및 실내악 등으로 62년도 제1회 공보부 「신인 예술 상」 음악부문 수석을 차지한 백병동씨는 하나의 신념이 있다.『최소한의 먹을 것만 있으면 나머지는 모두 음악에 바쳐야 한다』는…. 그리고선 몇 가지 주장을 내세웠다. 『첫째는 종래의 획일적인 교육을 지양하고 개성교육을 시켜야합니다. 그리고 세계 무대에서의 낙후를 탈피하는 지름길은 창작부문에 있어요. 따라서 연주가들은 미흡한대로 우리 작품에 보다 눈을 돌려야 해요.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선배들이 현대음악- 특히 12음기 법에 대해서 따뜻한 이해를 해주었으면 해요… 그것은 이미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엄숙한 문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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