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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한계-「민비연」사건 일심선고와 내란음모 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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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칭 「민족주의 비교연구회」 일부의 내란 음모 사건에 대해 지난 2일 내려진 서울형사지법의 판결은 3·24사태 이후 작년8월까지 줄기차게 소용돌이 쳤던 일련의 학생 「데모」성격에 대해 처음으로 법적 한계를 그어 놓은 셈이 되었다. 검찰이 「민비연」사건에 대해 내란음모 죄를 적용, 기소한 것은 한·일 협정 비준무효화를 부르짖는 학생 「데모」사태 가운데서는 최초의 일이었다. 3·24사태이후 6·3사태에 이르기까지는 아무리 학생 「데모」가 난동화해도 단순히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죄만을 적용해 왔으나 6·3사태이후부터는 학생 「데모」의 폭동화를 우려, 간혹 「반공법」을 적용하기도 했다.
검찰이 「민비연」 사건에 대해 「테스트·케이스」로 내란음모 죄를 적용한 것은 이 사건이 지금까지 있었던 한·일 협정비준반대 「데모」의 차원을 벗어나 ①국회해산을 요구하고 총선거를 실시하라는 구호를 내세운 것과 ②「구국학생 총 연맹」이라는 단체를 통해 중·고교생을 포함하는 대규모의 조직적인 학생 「데모」를 계획했다는 점 ③강력한 경찰저지 선을 뚫기 위해 폭발물을 사용하려했다는 특수상황에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성격의 학생 「데모」를 법정최고형이 3년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룰」 위반 죄로 적용한다면 학생 「데모」가 6·3사태에 이르게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표면화하지 않은 단 하나의 이유기도 했다.
당초 검찰에서 이 사건에 대해 내란 음모 죄를 적용할 때 법률적용에 확신을 가졌는지는 의심이 간다.
검찰은 이사전의 법률 적용 문제가 대법원의 최종확정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예견했었다.

<사건내용>
「민비연」사건은 당초 중앙정보부에서 수사에 착수, 검찰에 송치한 것이다. 서울지검 공안부 박종연 검사는 3O여 일의 수사 끝에 관련피의자 중 이대학생회장 진민자 양 등 주동인물들을 제외한 피의자에 대해서는 불기소(기소유예)처분을 내리고 김중태 등 6명만을 구속 기소했다.
관련피고인 6명 중 ⓛ 「내란 음모」죄가 적용된 피의자는 김중태 (25·서울문리대정치학과중퇴) 최혜성 (24·서울문리대 철학과4) 박재일 (27· 서울문리대지리학과4) 이수용 (25· 서울문리대정치학과4) 진치남 (23·서울법대4) 군 등 5명 ② 「내란 선동」죄는 김중태· 최환성·박재일 등 3명 ③「반공법」 위반 죄는 박재일 · 최혜성· 송철원 (25· 외국어대대학원1) 군 등 3명 ④ 「폭발물 사용 음모」죄는 김중태 피고 1명에 한정되었다.
▲내란 음모 죄=작년 7월24일 한국회관에서 「조국수호국민협의회」 가 주최하는 한·일협정 비준반대 간담회에 참석, 공동 투쟁키로 합의했다. 국회에서 비준동의 요청 안이 붕괴되자 8월24일 서울문리대 여학생휴게실에서 모여 현 국회를 강압으로 전복, 권능행사를 불능케 하기 위해 「구국학생 총 연맹」을 결성, 고교생을 모함하는 대규모의 조직적인 「데모」를 벌여 학생「데모」를 폭동으로 이끌게 하도록 모의했다.
▲내란 선동 죄=8월25일, 연세대 구내식당에서 연세대대학원l년 정준성 군 등 3명과 동국대대학원생 장장순군과 만나 국회해산을 부르짖는 학생 「데모」에 참가할 것을 선동했다.
▲폭발물 사용 음모 죄=7월30일 덕수궁에서 서울시내 9개 대학 연합체대표인 진민자 (이대학생회장)양과 만나 학생 「데모」의 구체적 방안을 논의할 때 경찰저지선을 뚫기 위해 폭발물을 사용할 것을 암시하고 「헝가리」의거 때 사용했던 「몰로토프·칵테일」은 위험하기 때문에 인명에는 피해가 없고 소리만 크게 나는 폭발물을 사용하기 위해 자금1만 원을 마련했다.
▲반공법 위반 죄=3·24 제2선언문을 작성할 때 「코민테른」선언 (국제공산당 선언)·강령·규약의 일부를 인용, 반 국가단체인 공산계열의 활동을 이롭게 했다.

<판시 내용>
1백20여일 동안 신중한 심리를 해온 재판부 (김용철 부장판사, 오병선· 김형진 판사)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으나 법률적용 문제에 있어 「폭발물 사용 음모」와 「반공법 위반부분만을 유죄로 인정했을 뿐 중요부분인 「내란 음모」와 「내란선동」죄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무죄판결 이유를 『관련피고인들이 현 국회가 스스로 해산하고 총선거에 이르기까지 「데모」를 계속하기 위해 「구국학생 총 연맹」을 결성하는데 필요한 기초공작을 해 온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민주주의 기본질서의 하나인 국회제도 자체를 전복시키려고 모의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재판부가 관련 피고인들에게 국회제도 자체를 전복시키려는 의사가 없었다고 내세운 이유로 ⓛ참가인원수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구국학생 총 연맹」이 기도하는 시위만으로는 강압에 의하여 국회를 해산시키거나 권능 행사를 불가능케 할 수 없다 ②이들의 「데모」에 일반시민과 다른 조직의 학생이 참가하여 국헌문란의 폭동사태가 될 것을 피고인들이 예견했다고 인정되지만 이들의 「데모」가 기연이 될 뿐 제3자의 힘이 첨가되어 국헌문란의 폭동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견했을 뿐이다 ③이들이 예견한 국헌문란의 폭동은 「구국학생 총 연맹」에서 벌인 「데모」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들고있다.
서울형사지법은 이 판결에서 내란죄의 구성요건이 되는 ▲국헌문란의 목적이란 「국가의 정치적 기본조직을 불법으로 파괴하려는 것」을 말하며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의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국가의 정치적 기본질서를 이루고 있는 제도조직 자체의 전복이거나 영구히 또는 일시적으로 그 제도 조직자체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케 하는 것」을 뜻한다고 형법87조(내란죄)에 규정된 「국헌문란」의 개념을 명백히 밝히고있다.

<법원판결에 대한 검찰의 견해>
1심 판결에 불복, 서울 고법에 항소를 재기한 박종연 검사는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내란」죄에서 말하는 「국헌문란」의 개념을 너무 좁게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지적, 재판부의 이와 같은 해석은 구 형법 때에나 맞는 고전적 판시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 검사는 가장 가까운 예를 일정 때의 3·1운동사건을 들고 당시 일본검찰이 3·1운동사건의 피고인에게 「내란」죄를 적용했으나 「내란」 죄 부분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박 검사는 또한 『피고인들이 6·3사태의 치안혼란으로 미루어보아 조직적인 대규모의 학생 「데모」가 일어나면 용이하게 폭동화 한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은 경험 법칙 상 명백하며 일반시민이나 다른 학생이 합세하면 같은 세력(공범) 이지 재판부에서 제시한 제3세력은 아니다』 라고 법원판결에 정면으로 맞섰다.
서울지검 공안부 박찬종 검사도 『「민비연」사건에 있어서는 「내란」죄의 구성요건자체는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을 「내란」 죄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현행형법아래서는 무력에 의한 정권 탈취를 인정해 주는 결과를 빚어내게 된다고 경고했다.

<변호인단주장>
무론 변론을 맡았던 신태악· 조기항, 김은호 변호인은 『내란 음모와 선동죄 부분에 무죄 판결이 내린 것은 의당 있어야할 판시 내용』 이라면서 「폭발물사용 음모」 죄와 「반공법」 위반 죄도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은호 변호인은 일반시민들이 무엇을 하면 반공법에 위반되는 것인지를 모르는 것이 바로 반공법이라고 설명했다. 반공법 4조1항에서 말하는 북괴활동의 「찬양」「고무」 「동조」 등의 용어가 막연하기 때문에 어떤 행위가 위반이 되는지를 모르며 재판 과정에서 알게되기 때문에 소급 법이 되어 준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김 변호인은 피고인들이 북괴활동을 이롭게 한다는 범죄의식이 없었으며 공산계열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썼다고 반공법에 저촉된다면 국군 파월과 한·일 협정을 반대하는 사람이 모두 반공법 위반 죄로 재판을 받아야할 것이라고 피고인들의 무죄를 주장했다. 공산계열에서는 국군 파월과 한·일 협정 반대를 상투용어로 쓰고있기 때문이라는 「아이러니컬」 한 비유.
「폭발물 사용 음모」죄도 형법l19조 (폭발물 사용)에는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을 해하거나 공안을 문란하는 자』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재판부의 감정결과 인명에 피해가 없고 소리만 크게 나는 폭발물을 사용하려한 것은 완구용 폭발물에 해당되어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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