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의한 강간을 소재로 한 영화 '제이디드'

중앙일보

입력

레즈비언 영화제가 열릴 정도로 여성 동성애를 다룬 영화는 넘쳐나고 있지만 여성에 의한 강간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확실히 파격적이다.

「제이디드(Jaded)」는 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일어난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강간범을 정의할 때 `남자'라는 표현 대신`사람'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어느날 아침 해변에서 만신창이가 된 벌거숭이 여인 멕이 발견된다. 병원에 옮겨진 뒤 여형사 헬렌이 가해자의 이름을 묻자 팻과 알렉스라고 간신히 대답한다. 뻔한 강간폭행 범죄라고 생각하고 탐문에 나선 헬렌은 금세 혼란에 빠진다. 가해자가 여자였기 때문이다.

리사 검사가 현행법상 여자는 1급 강간죄에 해당되지 않고 2급 강간죄나 변태적 성관계에 의한 비역죄로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자 멕은 절망에 빠진다. 더욱이 팻과 알렉스는 멕이 스스로 즐겼다고 진술하고, 그들의 변호사 캐럴은 멕의 불우한가정사를 추적해 그가 마조히즘적 성향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실제 이 사건이 강간범의 정의를 바꾸게 했다는 설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는 멕의 승리로 끝난다.

여성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성폭력에 앵글을 맞췄다는 점에서 TV 시리즈물PD 출신인 캐린 쿠르스 감독의 남다른 시선은 돋보인다. 충격적인 사건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자극적인 화면으로 관객의 눈길을 끌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고 담담한터치로 그려낸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제이디드」의 나머지 매력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법정 드라마치고는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지며 멕에게 불리하던 정황이 극적 반전을 이루는 대목은 밋밋하기만 하다. 올 여름 「스파이 키드」의 헤로인으로 떠오른 칼라 구기노와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도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평면적이다.

칼라 구기노의 인기가 치솟자 뒤늦게 그의 무명시절 영화를 들여와 `본격 레즈비언 섹스 스릴러'라고 선전하는 수입사의 상혼이 개운치 않게 느껴진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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