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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와인으로언 몸 녹이며산타 준비 해볼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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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호 12면

11, 12 아헨 대성당의 내·외부 풍경. 13 장갑 모양 컵에 담긴 글뤼바인. 14 크리스마스 마켓에 설치된 놀이기구. 15 글뤼바인 가게는 마켓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다. 16 아헨 크리스마스 마켓 입구 풍경.

11월 말부터 12월 23일까지 독일 전역에선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Weihnachtsmarkt)이 열린다. 광장 가득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노점이 들어서 꼬마 전구로 밤을 밝히고 아기자기한 용품들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든다. 독일 서쪽의 국경 도시 아헨도 그중 하나다. 대도시 것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늑해서 마음은 더 훈훈해진다. 시장이 열리는 광장은 1000년 고도(古都)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 환상적인 조명을 받은 웅장한 석조건물 사이로 촘촘하게 자리 잡은 아헨 크리스마스 마켓의 밤은 그야말로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독일 천년 古都, 아헨의 크리스마스 마켓

‘유럽의 아버지’ 샤를마뉴의 도시
중세시대까지 아헨은 ‘아퀴아 그라니(Aquae Granni, 그라누스의 샘)’라고 불렸다. ‘그라니’는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치료의 신. 온천과 목욕을 통해 치유를 관장한 ‘그라니’의 로마식 이름이 ‘그라누스’다. 도시 전체가 숲으로 둘러싸인 데다 70도가 넘는 온천이 솟는 아헨은 2000년 전부터 휴양지로 이름을 날렸다.

‘유럽의 아버지’라 불리는 초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샤를마뉴(742~814) 역시 아헨의 온천에서 정복의 피로를 풀었다. 그는 가장 아끼는 정착지 아헨을 자신이 두 배로 넓힌 프랑크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아헨은 서쪽은 피레네 산맥, 동쪽은 엘베강, 북쪽은 흑해 연안, 남쪽은 이탈리아 중부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의 중심이 됐다.

샤를마뉴는 거대한 왕국의 수도에 어울리는 웅장한 궁정과 궁정 예배당을 지었다. 구시가지에 남은 시청사와 아헨 대성당이다. 특히 1978년 독일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헨 대성당은 샤를마뉴가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다. 양옆으로 두 개의 탑을 가진 고풍스러운 건물은 아헨 시청사다. 폐허가 된 샤를마뉴의 궁을 14세기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개축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됐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 크리스마스 마켓
독일어권 지역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의 역사는 약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17세기부터 선물을 사고 주고받는 행위는 크리스마스의 주요 이벤트였다. 시장은 주로 교회 앞 광장에서 열리곤 했다. 교인들을 손님으로 자연스럽게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시장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주객이 바뀌어 버리기도 했다.

1434년 열린 드레스덴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데, 그보다 앞선 14세기 독일 동부의 바우첸(Bautzen)에서 최초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는 기록도 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아헨의 크리스마스 마켓엔 고풍스럽고도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다. 시청 앞 광장 카치호프(Katschhof)부터 펼쳐지는 시장 입구엔 커다란 생강과자 인형이 서 있다. 떠밀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만큼 인파가 시장을 꽉 채웠다. 정교하게 수공예로 만든 크리스마스 장식품이며, 은은한 향이 퍼지는 양초며, 크리스마스와는 별 관계없어 보이는 가죽제품까지 다양하다.

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단연 먹거리. 시청사를 포위하듯 둘러싼 빨간 지붕의 작은 노점상들은 네집 걸러 한 집에서 먹거리를 판다. 초콜릿이든, 쿠키든, 크레페든, 핫도그든 손에서 간식을 놓을 틈이 없다.

가장 붐비는 곳은 글뤼바인을 파는 가게다. 너나할 것 없이 귀여운 장화 모양 컵을 들고 이 뜨겁게 데운 와인을 홀짝인다. 축제에 술이 빠질 수도 없지만, 으슬으슬한 유럽 추위 속에 시장 구경을 나왔으니 몸을 데워주는 술을 모르는 척 지나칠 도리가 없다.

독일식 핫도그인 ‘부라트부르스트(bratwurst)’ 도 인기다. 석쇠에 구운 소시지를 빵 사이에 끼워준다. 특히 아헨의 소시지는 족히 30cm는 될 듯 길쭉하다.케첩과 머스터드 소스를 뿌려 먹을 뿐인데 입에 물면 베어져 나오는 육즙의 맛과 향이 일품이다.

오후 5시 반밖에 안 됐는데 이미 새까만 밤이다. 어둠이 내린 뒤 크리스마스 마켓은 어른들이 동심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큰 소리로 캐럴을 부르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의 카메라 앞에서 신나게 포즈를 잡기도 한다. 더 이상 산타 할아버지를 믿지 않는 어른들에게 이 마켓은 유일하게 남은 크리스마스의 낭만일 터다. 1년을 기다린 축제의 또 하루가 끝난 시간, 천 년동안 광장을 지키고 선 중세의 유산만이 아헨의 겨울밤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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