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사업 파국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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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지난 12일 오후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정창영 사장은 한국에 없었습니다. 파리에서 열린 국제철도연맹(UIC) 전체 총회에 참석했는데요. 러시아철도 블라디미르 이바노비치 야쿠닌 사장과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러시아철도는 북한 나진~러시아 하산 철도연결 프로젝트에 참여해 달라고 정 사장에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날 서울에서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주체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PFV·이하 드림허브)가 30개 출자사를 대상으로 2500억원 전환사채(CB) 청약을 받고 있었습니다. 30조원 규모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청약 마지막 날이었죠.

이날 출자사들은 코레일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정 사장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죠.

코레일이 드림허브 지분 25%를 소유한 1대 주주인데다 CB인수 예상 금액도 625억원으로 가장 많기 때문입니다. 2대 주주인 롯데관광개발도 자금을 마련해 놓고 코레일이 청약하면 CB 인수에 나설 태세였습니다.

사실 나머지 출자사들은 처음부터 CB 인수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삼성물산 등 삼성계열사 6곳(지분합계 14.5%)과 SH공사(4.9%)는 코레일이 나서지 않는 한 추가 자본을 투입하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재무적 투자자인 KB자산운용(10%), 프루덴셜(7.7%), 미래에셋 자산운용(4.9%)은 더 이상 자금을 받지 않는 폐쇄형 펀드(Closed Fund)여서 구조적으로 증자 참여가 불가능합니다.

전체 합쳐 20%에 해당하는 건설투자자는 많이 어렵습니다. 금호산업, 남광토건, 삼환기업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상태고 GS건설,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등은 위축된 건설경기로 추가 자본 투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증자에 한계가 있는 드림허브 출자사들

출자사들의 사정이 이러니 다들 코레일만 쳐다보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날 저도 코레일이 CB 인수를 결정할지 궁금해 아는 관계자들에게 모조리 전화를 돌렸는데요.

오후 2시 넘어서까지도 담당업무를 총괄하는 본부장조차 정 사장이 어떻게 결정할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청약 마감 시한인 4시가 다 돼서야 마침내 국제전화를 통해 정 사장은 CB발행 불참 의사를 전합니다.

코레일의 해명은 이렇습니다.

“CB 매입을 위한 준비를 했지만 다른 출자사들이 아무도 청약하지 않아 공기업인 코레일이 위험을 다 부담할 수 없어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다들 좀 황당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애초에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 삼성물산을 제외한 다른 출자사는 증자에 참여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롯데관광개발과 삼성물산 조차도 코레일의 태도에 따라 증자에 참여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어쨌든 이날 CB발행이 실패하면서 드림허브는 말 그대로 최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당장 수중엔 100억원의 돈도 없지만 매달 돌아오는 이자와 세금, 밀린 설계비는 그 이상입니다.

아무리 버텨도 2013년 3월이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수밖에 없고, 그 전에라도 수백억원의 설계비를 받지 못한 국내외 설계회사가 가압류를 걸면 바로 파산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금 마련 계획은커녕 이사회 일정도 못잡아

그렇게 CB 발행에 실패하고 어느새 열흘이 지났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올해도 이제 다 끝난 분위깁니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하루라도 빨리 이사회를 소집해 자금 마련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한시가 급박한 상황이죠. 하지만 드림허브 이사회는 아직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코레일이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을 포기할 경우에 발생할 피해 규모를 분석하고 자금조달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파산시 6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하다는 내부 검토가 있었고 각종 소송에 대비한 법률검토도 진행 중이라는 겁니다.

코레일측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내부 자료가 유출 된 것으로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드림허브 출자사와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불신은 커집니다.

드림허브 한 출자사 관계자는 “코레일이 CB 발행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애초에 사업을 포기하려는 의도였는지 의심스럽다”고 했습니다.

한 달 전 만해도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은 조만간 합의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란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습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실무를 맡고 있는 용산역세권개발(AMC)의 박해춘 회장과 2대 주주인 롯데관광개발의 김기병 회장은 조만간 코레일 정창영 사장을 만나 의견을 교환하기 위한 자료를 준비하고 있을 정도였죠.

CEO간 만남 성사될까?

하지만 이들은 끝내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불신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코레일은 하루속히 롯데관광개발이 AMC 경영권을 내놓고 모든 것을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하자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업기간을 당초 계획보다 3~4년 늘어난 2020년까지 연장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자금 마련에 동참할 뜻이 없다고 합니다.

롯데관광개발은 사업기간이 늘어날 경우 소요되는 수조원의 이자비용,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보상비 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고 따집니다. 여전히 평행선입니다.

지금 분위기라면 아무래도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은 파국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큰 듯합니다. 이젠 정말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키’를 들고 있는 쪽은 아무래도 코레일로 보입니다. AMC와 롯데관광개발 CEO는 공식 비공식적으로 코레일 정 사장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여러 번 전했습니다. 이제 정 사장이 응답했으면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드림허브 출자사간 전향적인 합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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