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추락하는 여자농구 구조적 결함 탓

중앙일보

입력

1997, 99년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 2연패와 지난해 시드니 올림픽 4강에 빛나는 한국여자농구가 올해 ABC에서는 중국·대만·일본에 잇따라 패하며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

어느 정도 부진할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정은순(삼성생명)·전주원(현대)·정선민(신세계) 등 '대들보'들이 부상 등의 이유로 대표팀에서 빠졌고 여름리그를 치르느라 지친 선수들이 더운 태국에서 체력 부담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바로 볼 필요가 있다. 대들보급 선수들이 돌아온다 해도 그들로만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10년 이상 태극마크를 달아온 그들이 여자농구의 모든 것은 아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한국은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었다. 젊은 선수들이 선배들의 공백을 메우면서 체면치레 정도만 해주면 성공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노장 선수 몇몇의 불참으로 성적이 곤두박질친다면 여자농구의 구조에 결함이 있다고 봐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전 13개였던 여자팀이 5개로 줄어드는 동안 각 팀은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눈앞의 승부에 연연해야 했고 먼 곳을 내다보는 긴 호흡이 사라진 뒤 여자농구의 터전이 황폐해졌다.

선수 생명이 끝난 은퇴선수들까지 복귀시키는 게 다반사다보니 신인 선수들의 도태가 촉진됐다. 심지어 유망한 고졸 선수가 선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대만.일본에 귀화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선수가 약하면 지도자라도 강해야 버티는데 사정은 그럴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계약 기간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발탁되는 감독들의 계약기간은 1년이 기본이고 심지어 6개월짜리도 있다. 이런 처지에 어느 감독이 소신있게 선수를 키울 수 있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