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워서 그린 그림 2300장 조화 … “센트럴시티 건물 넥타이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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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승강장 위 외벽에 길게 늘어선 ‘밀레니엄 타이’의 다채로운 모습. [나혜수 기자]

지방에서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으로 오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고속버스다.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는 이색적인 조형물이 여행객들을 맞고 있다. 센트럴시티와 고속버스터미널 승강장 외벽을 잇는 초대형 벽화가 바로 그것이다. 언뜻 아무 의미 없는 벽 장식에 불과할 것 같지만 사실 이 조형물은 국내 굴지의 예술가가 구워낸 훌륭한 예술품이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갈색의 느낌이 절묘하게 눌려 있는 이 작품은 지난 2000년 완공된 ‘밀레니엄 타이’다. 버스 승강장의 바로 위 외벽에 형형색색의 도예 작품들이 하나의 띠를 이루며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도예작품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밀레니엄 타이는 외벽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그만큼 강한 햇빛과 겨울의 영하 온도까지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특수 점토로 만든 45X45㎝ 규격의 도판을 2년 동안 무려 3000장을 만드는 수고가 들었다. 실제 작품에는 그 중 2300장이 설치됐다. 하지만 변수는 강남의 변화무쌍한 날씨였다. 춥고 더운데다 눈·비에 노출이 된다면 일반적인 접착으로는 도저히 지속적인 상태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했다. 결국 점토와 비슷한 특수한 접착 방식을 직접 고안해 사용했고, 1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단 한 번의 보수 없이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건축 도자’라는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신상호(65)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서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과 산업미술 대학원장을 역임,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영국 왕립미술대학원의 방문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2006년~2008년에는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 관장을 지내며 ‘국제 건축도자 학술회의’ 등도 개최했다. 현재는 대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 중이다. 실제 그가 만든 건축도자 작품은 광화문 금호 아시아나 메인 타워와 서초동 삼성 타운, 클레이아크 미술관에서도 볼 수 있다.

  “양복을 입을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은 넥타이다. 넥타이는 패션의 중심으로 사람의 성품이나 센스, 인격까지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타이 역시 센트럴시티 건물의 넥타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신 작가는 밀레니엄 타이를 넥타이에 빗댔다. 센트럴시티와 고속버스터미널 건물에 넥타이를 매는 것처럼 작품을 통해 건물의 성격·품격을 표현하려 했다. 센트럴시티 건물이 21세기를 시작하는 2000년에 완공됐기 때문에 작품의 제목도 밀레니엄 타이가 됐다.

  게다가 당시의 관례를 깨고 건물과 일심동체가 되는 작품을 설치한 것도 특징이다. 12년 전에는 대부분의 건물 실내에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신 작가는 그렇게 하지 않고 굳이 건물 외관에 작품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작품을 보다 쉽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려 한 하나의 시도였다”고 그는 말한다.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예술품을 만든 그답게, 평소 작품 철학은 개방적이다. 그는 “작품을 할 때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새로운 재료와 장르를 잘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밀레니엄 타이의 감상 포인트로 ‘특별함’과 ‘품격’을 꼽았다. “밀레니엄 타이는 일반적인 그림이 아니라 구워서 그린 그림(Fired Painting)이다. 그림의 색은 가마에서 오랜 시간 불을 견뎌 만들어진 것으로 더욱 특별하기 때문에 깊은 색과 품격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글=김록환 기자
사진=나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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