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소통, 전통문화 탐구로 브랜드를 빛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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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소통’을 키워드로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디자이너 이상봉(가운데)과 아들 이청청(오른쪽) 그리고 조카 리사 킴.

‘한글’과 ‘단청’ 모티프를 통해 가장 한국적이면서 글로벌한 패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 이상봉.

그의 곁에는 브랜드 이상봉을 더욱 이상봉답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차세대 디자이너로 성장한 아들 이청청과 국내 대표 주얼리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한 조카 리사 킴이 그들이다.

패션계의 중심에서 트렌드를 만들고 있는 이들이 강조하는 키워드는 ‘문화’와 ‘소통’이다.

글=하현정 기자 , 사진=김진원 기자

지난 5일 국내 대표 디자이너 브랜드 ‘이상봉’의 올해 마지막 패션쇼가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18일에는 이상봉을 비롯한 국내 정상 패션 디자이너 8명이 크리스털을 이용한 콜레보레이션 작품을 소개하는 ‘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 전시회가 열렸다. 오늘 20일부터 한달 간 신사동 갤러리 ‘아웃랩’에서는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발간되는 아트북 『THE TRUTH OF LIE』의 발간을 기념한 전시회 ‘이상봉&LIE SANG BONG’이 열린다.

대한민국 대표 디자이너 이상봉 씨의 12월은 그렇게 쉴새 없이 지나간다. 한 달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만 서 너개가 넘는다. 24시간·365일이 부족한 그의 곁을 지키는 이가 있다. 장남 이청청(35)씨다. 브랜드 ‘이상봉’의 제너럴 매니저로 활약하던 이 팀장의 올해는 특히 더 의미가 깊은 한 해였다. 지난 여름 시즌 파리와 뉴욕 등 해외 시장에서 먼저 론칭한 이상봉의 컨템포러리 브랜드 ‘라이’의 디렉팅을 맡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패션 MD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 이나나(33)씨와 함께 운영하게 됐다.

평범 원했던 아들도 이젠 트렌드의 중심으로

20대 후반~30대 후반을 타깃으로 하는 이 브랜드는 이 팀장의 디자인 색채를 본격적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는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 칼리지에서 아트&디자인과 남성 패션을 전공한 디자이너로, 영국 디자이너 브랜드 ‘오즈왈드 보탱’에서 활약하기도 했으며 ‘이상봉 파리’에서 말단 직원부터 메인 디자이너, 디렉터에 어시스턴트 역할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했다. 늘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아버지 덕에 그의 하루도, 일년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바쁘게 지나간다.

아버지와 함께 길을 다니면 모든 사람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그런 아버지가 부담스러워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오늘 만은 평범한 양복을 입고 와 달라” 부탁했고, 늘 ‘남과 다르게 살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말씀이 싫어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원’이 되겠다 마음 먹었다. 그랬던 그는 어느새 아버지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한 번도 디자이너가 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어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장난감 대신 마네킹과 재단 가위, 천 조각들을 갖고 놀다 보니 패션은 일상이 됐죠. 시즌 마다 패션쇼를 보러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옷에도 관심이 많아졌죠. 쇼가 끝나고 아버지가 무대에서 인사할 때는 전율을 느끼기도 했어요.”

 이렇듯 브랜드 ‘이상봉’은 가족의 인생을 모두 패션으로 모여들게 했다. 아내는 브랜드의 운영을 도왔고 아들도 디자이너의 길을 가게 됐으며 딸 역시 패션 경영을 전공해 패션 MD로 활약하고 있다. 그의 조카 리사 킴(44) 역시 미국에서 주얼리를 전공한 후 2005년 한국에 들어와 ‘리사코’라는 디자이너 주얼리 브랜드를 론칭했다. 그의 주얼리는 김남주, 김혜수, 손담비 등 톱스타들의 귀와 목에서 빛을 발하며 주얼리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디자인은 오감 다 써야 최상의 패션 완성”

회사에서는 ‘아들’과 ‘아버지’가 없다. ‘조카’ ‘외삼촌’도 없다. 아들과 딸, 아내와 조카가 이 씨를 부르는 호칭은 모두 ‘선생님’이다.

 공과 사를 분명하게 구분하며 일하는 이들이지만 만나기만 하면 어쩔 수 없이 패션쇼와 전시, 해외 브랜드 얘기로 이어진다. 가족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업무의 연장인 듯, 사적인 대화도 시너지를 일으켜 트렌드 분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디자인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여행’이다. 김 대표는 “외삼촌과 청청, 나나와는 해외 컬렉션을 보고 시장조사도 할 겸 함께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에 외삼촌과 외숙모, 그리고 나나와 뉴욕에 시장 조사를 간 적이 있어요. 한참 돌아다니던 중 나나가 의자에 잠시 앉았는데, 외삼촌이 버럭 화를 내며 ‘어떻게 자리에 앉냐’고 나무라시더군요. ‘하나라도 더 봐라’ ‘만져봐야 알 수 있다’고 호통을 치셨죠.”

 이 씨는 “조금 더 다른 디자인을 하려면 섬세해야 한다”며 “디자인에 있어서 오감을 다 써야지만 최상의 패션을 완성할 수 있다”고 늘 강조한다.

브랜드 성장의 원천은 가장 우리다운 것 찾기

이상봉 디자인의 가장 큰 맥은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그의 패션쇼는 여느 무대와 같지 않다.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인물이 무대에 서고 특별한 아트 퍼포먼스가 더해진다. 예능 프로그램과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고 다양한 업계와의 교류도 의미만 있다면 얼마든지 시도한다. 끊임없는 소통은 그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준다.

 브랜드 ‘이상봉’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원천은 ‘문화’다. 한글과 단청은 그에 의해 재발견됐고 그를 대표하는 모티프가 됐다. 한글로 쓰여진 편지는 셔츠 위에, 재킷 위에 그림처럼 아로새겨져 이야기가 있는 의상으로 완성됐다. 이 씨는 “우리 만의 색깔을 나타내는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우리 전통 모티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팀장 역시 “파리에는 파리지엔의 스타일이 있듯 서울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장 우리다운 것이 글로벌 트렌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리사킴의 디자인 철학 역시 자연과 인생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지난 여름 열린 전시 ‘로터스 가든’에서는 진흙탕 연못 속에서도 새하얗게 꽃을 피우는 연꽃을 ‘인생에 대한 희망’으로 상징화해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김 대표는 “주얼리는 단지 외모를 빛나 보이게 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랑과 기쁨을 담고 자신감을 표현하는 나만의 스토리를 담았을 때 가장 빛나는 주얼리가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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