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생활 건강] 심장에 기구 달고 사는 '제세동기 이식환자 모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8면

부정맥 질환이 있는 김주환(30.경기도 용인)씨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고교 2학년부터 심장 발작이 매년 4~5차례 발생하는 응급상황에서 운 좋게도(?) 매번 살아났기 때문.

그러나 그가 더욱 감사하는 것은 그의 심장에 자리잡고 있는 '제세동기(除細動器)'라는 메달 크기 만한 의료기구다. 심장을 24시간 감시하다 심장이 멈추는 응급상황이 되면 전기충격을 가해 정상으로 되돌려 놓아 주기 때문이다.

'심장 제세동기 이식환자 모임'.제세동기라는 이름이 생소한 것처럼 환자 모임도 다른 환우회에 비해 낯설다. 지난해 11월 첫 결성된데다 아직 이렇다할 활동이 없기 때문. 하지만 이들이 바라는 새해 소망과 활동계획은 절실하고 클 수밖에 없다.

회장을 맡고 있는 김주환씨는 "제세동기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질 않아 2천5백여만원이나 되는 비용을 환자들이 부담해야 한다"며 "돈 때문에 수술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특히 제세동기 수명이 5년밖에 안돼 주기적으로 재이식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

따라서 모임의 올 역점사업도 제세동기 이식비의 건보 적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내에 제세동기를 필요로 하는 환자는 매년 50~1백여명 정도. 모든 환자에게 보험을 적용하더라도 재정에 큰 주름살이 지지 않는다는 게 환자들의 주장이다.

부정맥은 분초를 다투는 응급질환. 이 사실이 세간에 부각된 것은 2000년 4월 부정맥으로 쓰러진 야구선수 임수혁씨 사건 이후다.

경기장에서 의식을 잃은 그는 간단한 심폐소생술조차 받지 못한 채 병원에 후송됐고, 무호흡에 의한 저산소증에 빠지면서 뇌기능을 상실, 지금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부정맥은 심장이 정상보다 빠르게 뛰는 빈맥과 천천히 뛰는 서맥으로 분류하는데 빈맥이 더 위험하다.

부정맥이 생기는 원인은 심실이 혈액을 펌프질하도록 규칙적으로 자극을 주는 회로에 이상이 있기 때문. 심장근육이 손상되었거나 관상동맥질환으로 심장에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할 때, 또 선천적으로 이상이 있을 때 등 원인이 다양하다.

환자 모임을 주선한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김유호 교수는 "심장 박동이 점차 빨라지다(빈맥) 경련을 일으키는 단계(세동)에 이르면 심장이 뛰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며 "이로 인해 뇌로 올라가는 혈액이 3분간 공급되지 않으면 의식을 잃고, 5분이 넘으면 뇌손상이 오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흔히 '과로에 의한 순직'이라고 하는 돌연사의 대부분이 심실세동 탓이라는 것이다.

1996년 이후 국내에서 시술받은 제세동기 이식환자는 1백60여명. 이중 80여명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김교수는 "시술한 환자의 제세동기에서 나온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명이 시술 이후 한 번 이상 심장이 멈췄던 것으로 나타났다"며 "제세동기가 생명의 은인인 셈"이라고 말했다.

고종관 의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