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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천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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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활란 여사는 불쑥 이런 질문을 받았다. 『결혼은 어째서 안 하셨어요? 독신주의철학을 가지셨던가요?』 어언 고희를 바라보는 「만년독신」 김박은 이렇게 그 질문에 답했다. 『…그대로 살아와 보니 결혼을 안했던 것뿐이예요. 역시 하느님의 뜻이겠지요』 「질문」자는 그래도 궁금해서 진일보했다. 『들리는 말로는 고 설산 장덕수 선생과의 연애에 실연을 당하신 때문이라던데요…』 우월(김박)은 담담한 어조로 기어이 그 「인사이드」를 해명하기 시작했다. 40여 년 전 미국 「보스턴」 한국학생회에서 석사학위논문을 발표할 때 설산을 처음 만났었다. 그때의 우월은 『존경하는 동포』로 그를 대했었다.
언젠가는 우월이 「뉴욕」서 「워싱턴」으로 기차여행을 떠나는데 설산이 까닭 없이 동행을 자청하더란다. 김 여사는 그를 설득시켜 중도인 「볼티모어」에서 하차하게 했다. 그 후 우월은 귀국했고 설산은 미국에 처져 「열렬한」 구애의 편지를 보내왔으나 우월은 그때마다 거절의 편지를 써보냈고 마침내는 지쳐 회신을 끊어버려, 설산도 붓을 놓았다. 『오죽해서 나중에 들려오는 말로는 설산 선생께서 절더러 빙산이라고 말하더라는 거예요. 빙괴라고…』 김 여사는 그래서 『낭만적일 뻔했던 「에피소드」』는 하나 가져보았지만, 그런 일은 『…뻔』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누구(고인)는 이런 「매정스러움」을 보고 「무정 천재] 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신동아·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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