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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욱 근대화에의 지름길(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한용운-
근대화, 근대화하고 무당이 귀신의 이름을 되뇌듯 한다고 근대사회와 문화가 이뤄지지는 않는다. 근대는 합리의 시대를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과 상황이 얼마나 합리적인가를 생각하면 곧 우리문화의 근대성의 정도가 드러날 것이다.
동양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하였다는 나라를 B나라라고 하자. 그 나라에서는 거의 팔 구 십 년 전에 의무교육의 굳건한 터전이 마련되었다. 우리는 20세기의 후반기에 살면서도 아직 의무교육의「알맹이」를 이룩하지 못하였다. 교원들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박대한 나머지 국민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의 교육은「실질적으로는」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대학졸업생들이 가장 많이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국민하교 아동들의 과외지도를 맡아보는 일. 이 노릇을 몇 년 만하면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로 유학할 수 있는 밑천이 생긴다고 한다.) 그런데 의무교육도 제대로 안된 이 나라의 대학은 유럽 전체에 있는 것보다 그 수효가 더욱 많다고 한다. 대학다운 대학이 이 나라에 아직 하나도 없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와 같이 교육면에서도 부분과 전체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한 한국의 교육 전체에 관한 아무런 의식도 없이 이와 같은 미친 제도를 마련한 교육범죄자들이 아직도 버젓이 문화와 교육의 상술로서 행세하게 내버려두는 우리 사회의 교육관과 문화관도 한심스럽다.
일류중학교(결코 교육의 내용이 일류는 아니다. 교육 자체가 없는데 일류, 삼류라는 말조차 우스꽝스럽다)의 입학시험 때마다 정답이 잘못되었다고 학교에 가서 야료를 부리는 학부형들의 머리 위에 마땅히 최루탄의 세례를 퍼부어야 교육은 비로소 자율적으로 될 것이다. 도대체 그렇게 믿지 못할 학교에 아들을 들여보내려고 왜 극성이냔 뜻으로
이야기는 중학교에서 학술원으로 옮아간다. 국민들은 누가 학술원회원인지도 아주 깨끗이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여간 이름만은 아직 살아있는 이 학술원에서 내는 논문집에 투고한 어느 교사는 한 장에 오십원의 원고료를 두 번에 나누어 받은 쓰라린 경험을 필자에게 호소하였다…
문교부에서 교수자격논문의 심사를 위촉받는 경우, 심사원이 받는 보수가 일금3백원정 인데 그나마 심사원이 도장을 가지고 가서 찾아와야 한다.
학문이 금전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되풀이하거니와 근대화정치·사회·경제 등의 구조가 합리적으로 된 시대를 뜻한다. 이러한 모든 구조가 비친 거울이 바로 문화이다. 문화의 힘만으로 정치와 경제의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가 정치적 사회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정치와 경제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기모습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거나 혹은 유아독존의 과대망상에 빠지기 쉽다. 「존슨」대통령의 초대를 거절한 미국의 어느 시인이 있거니와 이것은 거의 다른 유성에서 일어난 일인 셈치고.
국민학교 전과 참고서라는 교육적 마약은 마땅히 법률로써 금지 되어야한다. 깡패문화와 양공주문화는 그 원인을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의 야릇한 구조에서 찾아야할지도 모른다.
한국문화의 이러한 참상은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 이 나라의 근대사에는 아직 근대국가로서의 한국(전체)에 대한 최소한의 설계도를 머리 속에 지닌 정치가가 한 분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화근은 이 사실에서도 비롯한다. 근대사회라는 매우 복잡하고 치밀한 기계가 충동적 찰나주의정책으로 이룩된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불신과 부정의 시대를 빚어낸 것은 바로 해방 후 역대정부의 책임일 것이다.
팔만대장경과 민족문화「센터」에 앞서 우선 의무교육의 알맹이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만이라도 좋으니, 대학다운 대학을. 백만 안정농가와 아울러 단 5명쯤이라도 좋으니, 「안정학자] 가 연구할 수 있는 기관을 세종대왕시대에도 집현전이 있지 않았는가? 찬란한 민족문화는 결코 청자만이 아니라 현존 인물일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주체의식이기 도하다. <서울대 문리대영문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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