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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부전자전-「간디」 여 재상의 「프로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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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매혹적인 미모의 「인디라·간디」 여사는 요람에서부터 정치를 배웠다. 그래서 「인디라」는 48세라는 젊은 여성으로서 4억8천만 국민의 지도자가 될 만큼 정치적으로 조숙할 수 있었다.
「인디라」 여사는 고 「네루」의 딸이라는 것으로 더욱 유명한게 사실이지만 그 자신의 50생애도 화려한 경력으로 장식되고 있다.
수상이 된 「인디라」 여사는 자기가 여성이기 전에 하나의 인간임을 강조하여 남성 세계의 주제넘은 편견에 일침을 가했지만 이제부터 그는 「네루」의 딸로서가 아니라 수상으로서 스스로의 능력을 평가받게 된 것이다. 「알라하바드」의 「인디라」 집은 이 나라 독립운동의 본산이었다.
소녀의 몸으로서 「간디」의 「물레 돌리기 운동」의 아동부를 맡은 「인디라」는 12살에 「원숭이 군대」라는 청소년 단체를 만들어 독립 운동을 도왔다. 그때부터 본격화한 「인디라」의 애국 운동도 국민 계몽, 국산품 장려 등 종횡 무진으로 번졌다. 국회의원이 된 것은 불과 21살 때의 일. 독립 운동을 하다가 붙들려 복역한 13달 동안의 형무소 생활은 미인정치가 「인디라」의 무형의 훈장이 되었다.
「네루」의 집권 시절에 부인 없는 노 수상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보살펴 사실상의「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한 「인디라」는 효녀로서도 국민들의 평판이 좋다. 그러나 가정적으로는 결코 행복하지 못하여 같은 국회의원이던 남편은 일찍 사망했다.
정치 이외는 특별한 취미가 없는 「인디라」는 두 아들을 데리고 비교적 고독하게 살면서 10개 이상의 국제 기구의 간부로서 정열을 쏟아왔다.
「인디라 가 처음으로 한국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국 동란 때였다. 「타고르」 대학 출신인 이 정력적인 활동가는 인도 군대가 한국에 도착하자 그 군대와 그들의 가족들을 돕는 모금 운동을 벌여 스스로 금팔찌와 귀걸이를 풀었다.
이와 같이 모금한 기금은 아직도 비상금으로서 세계 각 분쟁 지구에 파견된 인도 군대의 가족들을 돕는데 사용되고 있다. 「인디라」의 서재에는 최근 한국의 어느 여류 화가가 기증한 한국 그림 한 폭이 걸려 있다.
인도의 국제적인 지위의 만회, 「캐슈미르」 분쟁, 식량 위기, 언어 분쟁 같은 거대한 난제들을 안고 인도의 여왕이 된 「인디라」의 정치 생명의 장단은 「캐슈미르」에 있어서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곳에서는 보고 있다. 【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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