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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의혹 제기한 민주당, 되레 “국정원이 증거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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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 수서경찰서 소속 경찰이 13일 오후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 본체와 노트북을 담은 상자를 들고 나오고 있다. 이 직원은 국정원 대변인이 취재진과 기자회견을 하는 사이에 건물을 빠져나갔다. 민주당 소속 당원들은 이날 오전 철수했다. [신인섭 기자]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인터넷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받는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28)씨가 13일 노트북과 데스크톱 컴퓨터 하드디스크 2점을 경찰에 제출했다. 이번 사건을 규명할 핵심 증거물이 수사기관으로 넘어간 것이다. 민주당이 제기한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진위가 조만간 가려지게 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건은 하드디스크가 2개인 데다 사안이 민감한 만큼 분석이 완료될 때까지는 일주일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시간 단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원세훈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김씨의 신분과 역할 일부를 공개하며 민주당의 주장을 ‘선거공작’이라고 받아쳤다.

 원 원장은 정보위에서 “김씨는 국정원 3차장(북한 담당) 산하 심리전단 소속 직원”이라고 확인했다고 양당 정보위 간사인 새누리당 정문헌,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이 전했다. 원 원장은 이어 “김씨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으며 2008년 1월 전산요원으로 들어왔다”면서 “(심리전단 직원의 경우) 근무가 24시간 체제라서 상황에 따라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고 양당 간사들이 밝혔다.

 민주당은 김씨가 지난 3일간 하루 2~3시간밖에 내곡동 청사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집에서 문 후보에 대해 악성 댓글을 다는 활동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정문헌 의원은 “원 원장은 민주당이 제기한 것처럼 국정원이 여론조작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적 없다’고 말했고, 그렇다면 민주당이 선거 공작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정청래 의원은 “김씨가 밖에 안 나갔는데, 집에서 업무를 본 것 아니냐는 질문에 원 원장이 ‘사이버 영역 업무는 했을 수 있다’고 답했다”며 여전히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날도 김씨가 문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근거 자료는 제시하지 못한 채 국정원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문 후보 선대위 박광온 대변인은 “국정원은 김씨의 컴퓨터 IP 주소를 공개하고 스마트폰 등도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당이 받은 제보에 대해 당 핵심 관계자는 “국정원 내부자 제보를 받은 것으로 제보의 내용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 원장은 정보위에서 국정원 내부 인사가 민주당 측에 제보했는지 여부를 놓고 감찰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국정원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대응하기 위해 우리의 카드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며 “국정원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할 경우 반박할 근거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사건이 크게 확대됐는데도 아직 뚜렷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있다. 수도권 지역의 한 의원은 “확실한 것을 가지고 터뜨린 게 아닌 것 같아 불안하다”며 “너무 나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도 이번 사건과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당 회의에서 “아직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해 단정하기 어렵다”며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김씨는 이날 자신을 오피스텔에 가둔 혐의(주거침입, 감금)로 민주당 관계자들을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소했다. 김씨는 민주당이 자신의 신분과 주거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법 위반 사실이 있었는지도 수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경진·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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