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로 다들 움츠러들 때 더 활개 펴는 ‘지하철 떴다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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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 1·2호선 환승 구간에서 한 ‘떴다방’ 상인이 장갑을 팔고 있다. 불법 상행위 금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지만 유동인구가 많아 떴다방들이 선호하는 장소다.

“경찰 부르기 전에 얼른 자리 빼세요.”

  지난 6일 오후 4시 서울 지하철 교대역 3호선 승강장. 공익근무요원이 장갑을 파는 노점상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알았어, 지금 갈게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 노점상 2명이 황급히 물건을 상자에 담았다. 이어 매대를 지탱하던 ‘자바라 다리(접이식 다리)’를 순식간에 접더니 ‘끌카(짐수레)’를 끌고 10여 초 만에 자리를 떴다. 장사를 접을 듯하던 이들은 환승통로를 지나 2호선 승강장에서 멈췄다. “오케이.” 좌우를 살피던 한 명이 신호를 주자 다른 한 명은 익숙한 듯 다시 매대를 펴고 장사를 재개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공익요원이 모습을 보이자 이들은 다시 매대를 황급히 정리해야 했다. 기자가 말을 붙이자 “날씨가 따뜻할 땐 장터 같은데 자리 얻어서 장사하는데 요샌 너무 추워서…”라며 말을 흐렸다.

  최근 서울시내 지하철역에 게릴라식 노점상인 ‘떴다방’이 늘고 있다. ‘떴다방’이란 간편하게 접었다 펼 수 있는 매대를 간이수레에 싣고 다니며 장사하는 이들이다. 단속이 뜨면 서둘러 매대를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전동차 내에서 장사하는 이른바 ‘기야바이’나 과일·떡 등을 파는 좌판 상인들과는 다른 형태다.

  강추위가 닥치자 지하철 역사 내에 떴다방이 늘고 있다. 주로 지하철역 인근 노점상들이 날씨가 추워지면서 역사 내부로 들어온 경우가 많다. 겨울철은 떴다방 업자들의 대목이다. 이들은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승강장 바로 앞에 매대를 펴고 장갑·목도리·모자 등 겨울용품을 주로 판다. 업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떴다방이 서울 지하철역에만 2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떴다방 업자 백모(61)씨는 “업자들 사이에선 12월부터 1월 중순까지를 ‘45일 대목 장사’라 부른다”며 “최근엔 하루에 장갑만 240세트(약 240만원 상당) 팔았다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떴다방은 명백한 불법이다. 경찰이 경범죄처벌법을 적용해 범칙금 3만원을 부과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지하철역에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떴다방과 단속반원 사이에 추격전이 벌어진다. 이날 하루 교대역에서만 떴다방 8팀이 목격됐다. 역내 방송에선 “물건 빨리 치우라”는 경고가 거듭 흘러나왔다. 장갑을 파는 한 업자는 교대역에서만 일곱 차례나 자리를 옮겼다. 2호선 신도림역에서 만난 업자 박모(42)씨는 “단속을 피해 최소 하루 10개 역 정도는 옮겨 다닌다”고 말했다.

  떴다방에 대한 시민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대학생 정모(25)씨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므로 겨울만이라도 너무 지나치게 단속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장기 불황에 따른 실직 등으로 떴다방을 시작한 이들도 적잖았다. 유모(42)씨는 8년 전 백화점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하다 도산한 뒤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유씨는 “밑천이 없는 저소득층은 이런 일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하루 수십만원씩 버는 떴다방이 과연 생계형인지 의문”이라며 단속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교대역에서 장갑을 파는 한 떴다방 업자를 관찰한 결과, 30분간 20세트(약 20만원)를 팔았다. 단속요원 이모(60)씨는 “세금 안 내고 쉽게 돈을 벌려고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며 “범칙금 3만원 정도에 그치는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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