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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그녀를 응원한다 ‘청담동 앨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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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정치의 계절, 어떤 의미에서 이 드라마의 메시지야말로 정치적이다. 심지어 이번 주 초 열린 대통령 후보자 2차 토론회에까지 등장하지 않았나. 토론회의 ‘거친 생각’을 담당하고 계신 이정희 후보가 언급했던 바로 그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말이다.

 SBS 주말극 ‘청담동 앨리스’의 주인공 세경(문근영) 가족은 후보들이 토론회에서 수차례 언급한 그 ‘민생 위기’를 온몸으로 겪어내는 중이다.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장만했지만, 상환 부담에 시달리는 ‘하우스 푸어’가 됐다. 30년간 동네 빵집을 운영해 온 아버지는 근처에 문을 연 대형마트 때문에 망하기 직전이다. 세경은 괜찮은 대학의 의상디자인과를 차석으로 졸업하고도 3년간 취업을 못 했다. 뒤늦게 대형 의류회사에 입사하지만, 꿈꾸던 디자이너가 아닌 대표 사모님의 쇼핑 심부름을 담당하는 임시 계약직일 뿐이다.

SBS 주말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사진 SBS]

 드라마에는 절망의 언어가 가득하다. ‘처지에서 비롯된 후진 취향’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세경은 말한다. “그 처지라는 거, 내가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그건 우리 부모님이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 어울려 다닌 친구들, 그런 걸 말하는 건데.” 생활고에 지친 남자친구는 이렇게 이별을 선언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도 안 달라져. 나아지긴커녕 절망만 더 커져.” 인터넷 게시판에는 “세경이 느끼는 굴욕과 슬픔이 마치 내 것 같다”는 20대들의 공감이 넘쳐난다.

 타고난 처지의 다름이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노력해도 그 격차를 메우기 힘든 사회. 그 실체를 깨달은 주인공의 선택은 이 드라마가 그간의 ‘캔디+신데렐라 스토리’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걸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겨준다. 계급사회의 단단한 벽을 깨뜨릴 마지막 수단으로 세경이 고른 것은 ‘청담동 며느리 되기’. 하지만 왕자님을 기다리진 않는다. 어떤 ‘노력’을 해야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지 알려달라며 재벌 사모님이 된 친구(소이현)를 찾아간다.

 30대 싱글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농담이 오간다. 이제 ‘청담동 며느리’는 힘들 것 같으니 ‘청담동 새엄마’를 노려야 할까 봐.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드라마 속 세경이 여정 끝에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대통령 후보들에게 기대하기에도 벅차 보이는 해법을 드라마에 요구하는 건 어리석지 않으냐고? 기대에 못 미쳐도 괜찮다. 그나마 드라마에는, TV 토론엔 없는 ‘장 띠에르 샤(박시후)’님이 있으니까. 흥분하면 충청도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이 엉뚱한 ‘된장남’ 캐릭터만으로 드라마를 볼 이유는 충분해 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