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정치의 계절, 어떤 의미에서 이 드라마의 메시지야말로 정치적이다. 심지어 이번 주 초 열린 대통령 후보자 2차 토론회에까지 등장하지 않았나. 토론회의 ‘거친 생각’을 담당하고 계신 이정희 후보가 언급했던 바로 그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말이다.
SBS 주말극 ‘청담동 앨리스’의 주인공 세경(문근영) 가족은 후보들이 토론회에서 수차례 언급한 그 ‘민생 위기’를 온몸으로 겪어내는 중이다.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장만했지만, 상환 부담에 시달리는 ‘하우스 푸어’가 됐다. 30년간 동네 빵집을 운영해 온 아버지는 근처에 문을 연 대형마트 때문에 망하기 직전이다. 세경은 괜찮은 대학의 의상디자인과를 차석으로 졸업하고도 3년간 취업을 못 했다. 뒤늦게 대형 의류회사에 입사하지만, 꿈꾸던 디자이너가 아닌 대표 사모님의 쇼핑 심부름을 담당하는 임시 계약직일 뿐이다.
드라마에는 절망의 언어가 가득하다. ‘처지에서 비롯된 후진 취향’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세경은 말한다. “그 처지라는 거, 내가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그건 우리 부모님이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 어울려 다닌 친구들, 그런 걸 말하는 건데.” 생활고에 지친 남자친구는 이렇게 이별을 선언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도 안 달라져. 나아지긴커녕 절망만 더 커져.” 인터넷 게시판에는 “세경이 느끼는 굴욕과 슬픔이 마치 내 것 같다”는 20대들의 공감이 넘쳐난다.
타고난 처지의 다름이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노력해도 그 격차를 메우기 힘든 사회. 그 실체를 깨달은 주인공의 선택은 이 드라마가 그간의 ‘캔디+신데렐라 스토리’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걸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겨준다. 계급사회의 단단한 벽을 깨뜨릴 마지막 수단으로 세경이 고른 것은 ‘청담동 며느리 되기’. 하지만 왕자님을 기다리진 않는다. 어떤 ‘노력’을 해야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지 알려달라며 재벌 사모님이 된 친구(소이현)를 찾아간다.
30대 싱글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농담이 오간다. 이제 ‘청담동 며느리’는 힘들 것 같으니 ‘청담동 새엄마’를 노려야 할까 봐.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드라마 속 세경이 여정 끝에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대통령 후보들에게 기대하기에도 벅차 보이는 해법을 드라마에 요구하는 건 어리석지 않으냐고? 기대에 못 미쳐도 괜찮다. 그나마 드라마에는, TV 토론엔 없는 ‘장 띠에르 샤(박시후)’님이 있으니까. 흥분하면 충청도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이 엉뚱한 ‘된장남’ 캐릭터만으로 드라마를 볼 이유는 충분해 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