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 공간, 소통형으로 재배치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청와대를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는 그제 청와대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 중앙청사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청와대는 비서실조차 대통령과 멀리 떨어져서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만나려 해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권위적인 곳”이라며 “그 넓은 청와대 거의 대부분은 대통령을 위한 공간이고 극히 좁은 일부를 수백 명 비서실 직원의 업무공간으로 사용하는 이상한 곳”이라고 했다.

 수석·비서실장으로 4년여 청와대 생활을 한 문 후보의 진단은 옳다. 1991년 청와대 본관이 완공된 이래 입주한 김영삼 대통령 이래 대통령들이 느낀 어려움이었다. 청와대가 ‘구중궁궐(九重宮闕)’이기 때문이다. 국민과 먼 것은 물론 대통령의 수족이랄 수 있는 비서들과도 멀리 떨어져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만나려면 부속실에 연락해 일정을 잡아야 한다. 걸어서 10분인 거리를 차를 타고 이동하고 본관의 경호 검색도 거쳐야 한다.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프로토콜이다. 비서실장이 이 정도니 비서관이나 행정관은 어떻겠는가. 오죽하면 많은 이가 “청와대에서 일하면 대통령을 자주 본다고 여기겠지만 전혀 아니다”라고 하겠는가. 참모와 멀면 그만큼 민심과도 멀어진다는 건 불문가지다.

 미국 백악관 등 민주주의 선진국에선 대통령이든 총리든 집무 건물에 들어서면 모두 함께 섞여 일하는 구조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집무실을 나와 몇 걸음만 옮기면 비서실장과 수석들을 두루 만나 소통할 수 있다. 한 청와대 인사가 “한·미 정상회담차 백악관에 갔다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참모 방에서 불쑥 나오는 버락 오마바 대통령과 만났다”고 전할 정도다.

 공간이 무의식을 지배한다고 한다. 지금의 청와대 같은 공간에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권위주의적이 된다. 비서동에 집무실을 만들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말로 갈수록 비서동에 들르는 발걸음이 줄었다. 마지막엔 거의 본관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임기 말 대통령마다 민심과 멀어진 채 역사와의 대화에 골몰하는 건 이 때문인지 모른다.

 다음 정권부터는 대통령을 ‘고립’으로부터 구조해 참모들과 섞일 수 있도록 청와대 공간을 재배치해야 한다. 그러려면 본관을 개조하거나, 아니면 백악관의 웨스트윙 같은 업무시설을 신축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후자를 검토했는데 ‘청와대가 예산만 쓴다’는 비판을 우려해 추진하지 못했다고 한다.

 차기 대통령은 정부 내외 전문가들로 ‘청와대 개조 연구위원회’를 구성해 작업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이 위원회가 대통령이 가장 효율적으로 소통을 달성할 수 있는 청와대 공간을 만들어내면 국회도 예산 사용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간 재배치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대통령을 국민의 공간으로 끌어내는 이익이 훨씬 크다.

 다만 문 후보가 제안한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공약했고, 실제 이전을 검토했다가 포기한 안이다. 경호를 위해 넓은 구역을 강하게 통제해야 하고 외국 정상을 위한 의전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