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국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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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망년회 같은 술자리에서 곧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노래의 감명을 받은 사람이 『노래를 못 부른다』고 변명을 하면 으례 사람들은『그러면 애국가라도 부르시오』라고 한다.
우리 나라의 국민이면 누구나 애국가는 부를 수 있다. 그러니까 『애국가라도 부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겠다. 그러나 사석에서 부를 노래가 없을 때 애국가를 「스페어·노래」정도로 삼고있다는 것은 결코 양식 있는 국민의 소행은 못된다. 대체로 우리 국민들은 애국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버릇이 있다.
영국에선 극장이 끝날 때 국가(고드·새브·더·킹)를 연주한다. 귀가에 바쁜 사람들이지만,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정숙하게 듣는다. 바늘이 떨어져도 그 소리가 들릴 만큼 엄숙하다. 영국뿐만 아니다. 어쩌다 라디오에서 국가가 흘러나오면 길을 걸어가던 시민들이 옷깃을 여미고 그 주악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구미의 불문율이다. 주석이든 어디든 변함이 없다. 우리 나라에선 애국가를 들을 때나, 「여자가 더 좋아」정도의 유행가를 들을 때나 그 태도에 하등 차이가 없다.
국회에서는 「국기 및 국축」에 관한 법률안을 내 놓았다고 전한다. 국가를 제정, 5년 후에 바꾸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시급한 것은 애국가를 바꾸는 법률안이 아니라, 지금 국가로 불리고 있는 애국가만이라도 경건히 들을 줄 아는 태도이다. 지금의 애국가가 시원찮아서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리히텐슈타인」같은 소국에서는 숫제 그 국가의 곡조가 영국국가를 본뜬 것이고, 화란 국가의 가사는 아직도 옛날 종주국이었던 「이스파니아 왕의 영광을 위해서」란 말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그 국가를 바꾸지도 않고 소중히 그 전통을 이어내려 오고있다.
국가 의식은 곧 국가 의식이다. 국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곧 우리의 국가 의식이 그만큼 빈곤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사를 법으로 해결하고 또 걸핏하면 무엇이든지 뜯어고칠 생각을 하는 그 버릇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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