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평화의 책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0세기는 어떻게 보면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해 인류가 가장 높은 관심과 개입의 태도를 표시한 세기이다.
어느 순간에도 군축이라는 명제는 한결같이 외교의 목적이 되고 방편이 되었다.
비록 그것이 압도적으로 군림했던 냉전고양의 시대에 있어서 냉전외교의 한 주요한 수단으로 전락되긴 하였었지만 평화에 대한 인류의 비원은 끝내 꺼질 날이 없었다. 2차대 전후에 있어서도 인류는 한국동란을 「피크」로 했던 힘의 대결을 비롯한 몇 번의 시련으로 마침내 후반에서의 교훈을 전출하였지만 그때 그곳에서 얻어진 결론에 따라 세계는 평화공존이라는 문제를 착실하게 다루게 됨으로써 인류의 평화에의 비원은 숱한 기복을 거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끈덕지게 살아 남을 수 있었다.
특히 이것이 60년대, 그리고 핵 시대의 생존의 논리로 틀 잡히기 시작하고 과민했던 전쟁에의 촉각이 냉철한 평화에의 이성으로 대치되려는 묵직한 흐름으로 나타나게 되자 그것은 중립적 아·아 세력의 투쟁표적에까지 빛을 잃게 하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 세계는 보다 세분된 힘의 원천을 가지는 것이 되었고 미·소 권력정치의 의미는 적지 아니 달라져왔던 것이었다.
동서긴장은 내리막길에 섰고 화해의 분위기는 광범하게 발굴·조성되었다. 각기 다른 사회체제간의 격렬한 적의도 일단 침착을 회복했다. 60년대의 특징은 본질적으로 높은 인류의식을 동반시키는 대역사성 위에 있다는 것이 널리 지적되었다. 세계는 오랜만에 평화를 의심하지 않아도 좋은 듯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작금, 월남을 둘러싸고 미·소가 공동으로 취하기 시작한 군축 아닌 군확에의 자세는 그런 의미에서 상당한 우려를 불러일으킬 만 하다. 물론 최근의 몇 가지 사건들의 연결이 반드시 그런 깊은 우려로서만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도 있겠거니와, 지금현재로 미·소가 분명하게 공존의 행정 내지는 부분적 수정에 나선 것도 아니다.
또한 이러한 사태를 야기시킨 책임의 대부분은 「고든·워커」 전 영 외상이 말한 대로『남 「러시아」의 균형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세계 전반적인 균형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중공의 급진』에 있다.
그러나 원인이 어떻고 그 형상이 어떻든 간에 지금 미·소가 노정 시키고 있는 새로운 대결의 양상은 그것이 곧 세계의 근저적 평화문제와 직결되어 생각되는 것임에서 충분히 깊은 주시를 받을 만 한 것이다.
더우기 우리는 오늘 우리의 형제들을 긴장의 초점지역으로 떠나 보내고 있을 뿐더러 우리가 그 전쟁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지역의 문제발전에 비상한 관심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평화를 교란하려는 자들을 앞에 놓고 평화를 의논하며 열매를 거두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렇듯 이루기 힘든 평화의 결론이라 해서 종국적으로 새로운 세계적 긴장을 불러올지도 모를 사건들이 꼬리를 잇다 시피 하는 작금의 사욕에 즈음, 우리는 한층 높은 평화의 책임을 다짐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