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5년이면 한국 금융, 일본 따라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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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도 ‘일본화(Japanification)’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저성장·저금리에 고령화와 부동산 가격 하락이 장기화하면 일본처럼 금융산업이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감독원은 9일 국내 18개 은행을 대상으로 한 장기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내놓았다. 한국경제가 3% 성장을 이어가는 낙관적 시나리오와 1%대 저성장으로 떨어지는 비관적 시나리오로 나눠 분석했다. 결론은 각각 ‘흐림’과 ‘비’로 나왔다.

 낙관적 시나리오는 한국경제가 평균 3% 성장을 이어간다고 가정했다. 지난해 성장률(3.6%)과 올 전망치(2.4%)의 중간 수준이다. 기준금리는 현재 수준(2.75%)을 유지하고 부동산값은 오르지도, 떨어지지도 않는다고 봤다. 이럴 경우 은행권의 수익성과 순이익은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자산운용 수익에서 조달비용을 뺀 순이자마진(NIM)은 앞으로 10년간 2.1%에서 2%로 소폭 하락했다. 순이익은 올해 8조5000억원에서 2017년 9조8000억원, 2022년 13조2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와 비교한 수치는 경제성장률과 비슷하게 움직여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기준이 되는 올해 수치가 워낙 안 좋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시에 나빠지고 더디게 회복되는 나이키형 회복을 금융산업이 경험할 경우 ‘회복’보다는 ‘불황 지속’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비관적 시나리오는 훨씬 암울하다. 경제성장률이 1%로 떨어지고 금리를 현재(2.75%)보다 1%포인트 떨어뜨려야 하는 경우다. 부동산값은 해마다 1%씩 하락한다고 봤다. 이 경우 5년 뒤 은행권 순이익은 1조4000억원으로 5분의 1 토막이 났다. 10년 뒤에는 아예 5조2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올해 14.02%에서 2017년 13.59%, 2022년 11.62%로 낮아졌다. 금감원은 “인구증가율 하락과 고령화, 신성장동력 부재 등 구조적 요인과 글로벌 경기둔화까지 겹쳐 일본식 저성장·저금리 시대로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표 참조]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성장률이 추락하고 제로금리와 부동산 값 하락이 이어지며 금융권의 수익성이 급락했다. 한국의 저축은행과 신협에 해당하는 지역금융회사들이 대거 정리되고 은행도 미즈호 등 3대 은행으로 재편됐다. 그럼에도 세계화나 수익성 제고에 실패해 덩칫값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금융을 둘러싼 환경도 일본의 90년대와 비슷하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발목이 잡힌 저축은행들이 대거 정리됐다.

신협 등 상호금융 부실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정찬우 금융연구원 부원장은 “0%대로 떨어진 인구증가율과 고령화 속도, 저축률 하락과 가계부채 급증 등 거시 환경이 일본과 유사해지고 있다”며 “금융사들이 수익성을 만회하려고 고위험 투자를 늘리고 불건전 영업행위를 확대해 위험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장혁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경기보다 재정건전성을 우선시하는 정책 등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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