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화에 독보적 존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참 오랫만에 김인승 (이대 미술 대학장) 화백이 작품전을 열었다. 당년 55세의 노 화백에 있어서 개인전은 이번이 네번째이지만 실은 23년만의 것이다. 출품은 유화35점으로 대부분 10호 내외의 근작들. 30대에 그린 「할머니」와 「루브르」박물관 소장의「코로」작품을 「카피」한 『「만돌린」을 가진 「집시」여자』를 제외하곤 모두 2,3년 내에 제작된 것이며 전시회를 갖기 위해 갓 손을 뗀 수 점의 작품도 포함되어있다. 『궁색해서 그리는 대로 내놔버리니까 언제 그림이 모아져야죠.』격조했던 그간의 경위를 이렇게 밝힌다.
한국 양화단의 원로인 그는 목우회의 주요「멤버」-곧 구상계열의 대표적인 한 사람으로서 꾸준한 제작 활동을 통하여 두드러진 정력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김 화백의 작품은 현대미술의 격류를 외면한 채 전통적인「아카데미즘」을 고수하고 있다고 할까.
자연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낸 「바르비종」파의 그것들처럼 섬세한 감각과 경쾌한 색채가 김 화백의 화면에는 계속 담겨져 있다. 전시장에 나와있는 「할머니」와 「호사한 여자」와는 20년이란 세월을 격해 제작된 것임에도 막상 두 작품에서 시간적인 간격을 느낄 수 없다. 다만 근작의「터치」가 보다 대범해진데서 그의 원숙한 필치가 드러나 보일 뿐이다.
그는 풍경화면에서 그다지 특징지을 수 없더라도 초상화 내지 인물화에 있어서는 한국 양화단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는 예술사조상의 「리얼리즘」을 취하지 않았지만 조용하고 귀족적인 저들의 표정을 통하여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아직도 그의 그림은 늙지 않았다 해도 좋으며 오히려 「모색의 비원」은 노 화백이 마음의 여유를 보여주는 쾌작이다. <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