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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의 기적…꿈은 계속 솟아난다

미주중앙

입력


1대 100의 악수. 활짝 웃는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내민다. 우리를 잊지 말라는 의미일까. 맞잡은 손이 아프도록 꽉 잡는다. 소망우물이 만든 건 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의 꿈이다.
1주일 동안 차드를 온몸으로 느끼고 배운 제2차 소망우물원정대와 굿네이버스 차드지부 현지 직원들의 모습. [사진= 김상동 남가주사진작가협회장 제공]

은자메나 도심에서 30분 달려 도착한 카루웨. 차드-카메룬을 잇는 무역통로답게 맵싸한 연기와 흥정하는 상인들이 길목을 막았다. 인도와 도로의 구분이 없고 강렬한 인상의 세관원들이 사람들을 세운다. 곧 소망우물 100호가 세워진 마을에 도착한다는 말에 유리창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길 10여 분. 눈 앞에 초록빛이 가득 들어왔다. 작지만 분명 논이었다. 모래바람을 이기고 뿌리를 내린 벼가 꿋꿋이 자라고 있다.

놀라운 표정을 감추질 못하자 앙트와 다수(29)가 "2년 만에 이렇게 변할 줄 아무도 몰랐어요. 우물이 없었다면 벼농사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며 이곳저곳으로 손을 잡아끈다. 우물을 중심으로 600명이 재학중인 학교와 주민의회 논과 3칸짜리 화장실이 한눈에 펼쳐진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교실 3칸에는 매일 4시간 동안 물을 길어 나르던 아이들이 덧셈 뺄셈을 배우고 있다. 선생님도 모두 이 마을 출신. 학교부지와 건축자재도 십시일반 모인 정성으로 이뤄졌다.

한참 마을의 변화상을 설명하던 모치아 다바(29)가 "믿어져요? 콜레라로 하루가 멀다고 사람 죽어나가던 곳에 학교라니…."라며 눈을 맞춘다. 처음 그가 학교를 세울 때만 해도 소망은 현실이 아니었다. "다음에 우리가 만날 땐 이곳에 세워진 병원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중간 보고는 페이스북으로 할까요? (웃음)"

꿈을 본 것 같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란 걸 새삼스레 알게 됐다. 파샤 아테레 가시 마사코리 등 우물이 생긴 곳곳마다 생기가 돌았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물 한 모금이 그 따뜻한 마음이 모두를 살리고 있다는 사실에 벅차올랐다.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곰바사라 마을 아이들 100여 명이 한꺼번에 달려와 안겼다. 한 순간에 포위(?)된 것도 놀라운데 잡힌 손을 뺄 수가 없다. 눈만 마주치면 손부터 내미는 아이들은 잡힌 손가락이 아프도록 꽉 잡는다. 손끝이 저릿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과 악수를 해 본 기억이 없다.

잿빛 평지에 솟아오른 단 하나의 놀이터. 소망우물 앞터에 세워진 학교는 이 마을의 최고층 건물이다. 서로에게 물을 튀기며 숨이 넘어갈 듯 웃는 아이들에게 학교가 왜 좋으냐는 질문은 무의미했다. 재잘재잘 꿈을 쏟아내는 입 모양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지 직원과 나누는 영어가 신기했는지 고개를 바짝 기울인 네옹 세비린(15)이 어디 가면 배울 수 있느냐고 수줍게 묻는다. 배운지 2년 된 불어를 통해서다. "영어도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에 모두가 감격에 겨웠다. 이번이 두 번째 차드 방문이라는 유분자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 역시 놀란 눈치. 2년 전과는 180도 다른 생동감에 가슴이 떨린다는 그는 "우물이 세워진 곳마다 이름처럼 소망이 피어나는 것 같다"라며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유치원 프로젝트를 입에 담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네 살배기들이 구석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다. 굿네이버스측도 프로젝트에 적극 동의하며 "유치원이 생기면 부모의 삶도 변하게 될 것"이라고 반색했다.

둥그렇게 모인 아이들이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손가락 맞부딪치며 딱딱 소리를 낸다. 서로 시켜달라고 난리다.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자랑하고 싶은 아이들.

"나는 대통령도 의사도 될 수 있어요. 군인도 선생님도 될 수 있어요."

"사바(불어로 안녕)?" 아이들이 손을 내민다. 구걸하는 손이 아니다. 잡아달란 손이다.

구혜영 기자

다음엔 책도…
도서관엔 책에 빠진 아이들
굿네이버스서 전자책 주선

책 넘기는 소리가 정겹다. 가로 세로 총 15걸음인 고레마을의 작은 도서관(사진). 뉘어 놓은 책장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책을 보고 있다. 한 뼘 간격으로 딱 붙은 아이들의 손끝에 우주선이 있고 아시아도 보인다. 까막눈인 친구들은 그림을 찾아 책을 넘긴다. 같은 문장도 곱씹어 읽는 바이쿰암 베실루(13)는 도서관이 생긴 이후 매일 이곳을 찾아오는 책벌레. 학교에 다니며 배우게 됐다는 불어는 이미 수준급이다.

"하루에 기본 두 번 정도 와서 책을 봐요. 재밌잖아요. 차드 말고 다른 나라가 있다는 게…."

내셔널 지오그래픽지를 넘기는 그의 손이 너무 빨라 이해하느냐고 묻자 "영어라서 못 읽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미 도서관 내 모든 책을 읽었다는 바이쿰암의 말이 이해됐다. 얼마 없는 책들 중 그가 읽을 수 있는 불어나 아랍어 책은 몇 권 없는 실정인 것. 그나마 빳빳한 책표지가 붙어있다는 게 다행일 정도다.

전체적으로 도서관은 비어 있다. 그동안 여러 기업과 단체가 책 기증을 주선해왔지만 내륙국가인 탓에 운송료 부담이 커 번번이 실패했다. 매일 똑같은 책만 읽는 아이들이 안타깝다는 굿네이버스 USA의 김재학 실장은 "얼마 전 빈민 아동들에게 전자책을 제공하는 월드 리더(World Reader)에 파트너십을 신청했다. 잘 되면 이곳 아이들이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으며 꿈을 키울 수 있다"고 활짝 웃었다.

책이 주는 건 종이 너머의 꿈이다. 수많은 바이쿰암이 바라는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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