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의 새 질서 속에서 한국은 선명하여야 한다|신영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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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쩌면 이 이야기는 해묵은 이야기요 이미 퇴색한 이야기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 중의원에서 한·일 협정 비준 안이 단 35초만에 전격적으로 통과된 오늘, 이제 우리 동막에 파고드는 인국 일본의 모습은 옛날의 그것이 아니다. 물론 결코 옛날의 그것일수도 없다.
지금 우리가 실감하고 있는 우리와 손잡을 일본은 미국이라는 후광을 업고 「아시아」에 있어서의 새로운 힘의 원천이 되고자 나선 설화 속의 그 일본인 것이다.
미국이 이른바 일본의 대국주의 신경을 달래가면서 「아시아」에 있어서의 일본의 역능에 알뜰한 기대를 걸어왔었다는 것은 이미 주지된 사실이다.
또한 일본의 전략적 입지 조건·경제력·정치적 안정성에 중량을 주는 한편에 소련의 그것과도 질을 달리하는 중공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공산권의 힘의 계열화가 구현됨에 이르러 미국의 소망이 부쩍 앙양되었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바다. 따라서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해묵은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 지금 우리 눈앞에 손을 흔들며 다가선 일본과 거기 따라 새롭게 형태 지워질 태평양의 질서는 우리에게 중대한 선택과 현명한 대응을 구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퇴색한 이야기들이라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의 내력을 다시금 더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적인 대 공산주의 포위망을 펴는 가운데 「나토」·「센토」·「시토」를 연결한 선이 북태평양 지역에서 절단되고 있음을 발견하였을 때, 더우기나 태평양에 있어서의 안보상 미국의 전통적 전략이 중공을 주요 표적으로 하는 잠재적 적대성 위에 선 포위망 강화에 있었음에 있어서 일본에 어떤 「원망」을 걸게 되었을 것이라 하는 것은 쉽게 상정된다.
또한 미국에 의한 그같은 「원망」은 미국이 일본 외교의 역사적 기초를 대대륙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온데 있어서 보다 과대해졌을 것이다.
그런 점, 미국이 공공연하게 미·일의 우호 관계는 「아시아」와 태평양의 평화의 기초가 될 것이며 양국은 서로가 기대어야할 현실적 필요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이해 못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도 미국이 대국시하고 그의 역능을 신임하며 한국·동남아 인 대륙의 경제 개발 등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개입의 태도를 보여주기를 바라는 일본은 이제 멀지 않아 우리와 입장과 「띠」를 같이하려는 나라인 점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로서의 지향을 시급히 설정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앞으로 우리 자신이 놓여질 처지가 얼핏 기이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공교롭게도 대양의 동에서 대륙의 서에서 각각 대국주의의 광신적 편린을 보는 것이다. 일본과 중공이라는….
원래가 대국주의에 있어선 자기 확충의 망집이 국가적 「에고이즘」과의 교호 관계에서 이상적으로 격앙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오늘은 피할 수 없이 「위탁된 역능」을 받아들였던 일본이라 하지만 언제 그것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게 될 것인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장래에 대한 미지의 가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차피 한번 생각해봐야 할 가정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1970년에 있을 미·일 안보 조약 개정 후의 일본의 행방과 신국면의 극동 체제 속에서 일본이 다할 역능에 대해 우리는 구상화된 전망을 세울 수 없음이 사실이다.
근자, 한·일 조약이 중의원에서 심의되던 중, 일본 정부측이 적어도 정치적 견해로는 극동의 평화가 위협을 받을 때 유쾌하게 대처함이 당연하다고 밝히고 나섰던 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던 가도 우리는 충분히 가려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예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충분한 도덕적 설득의 과정을 밟은 연후에 실현될 것이든 아니든 간에 일본은-미국 소망도-그렇겠지만 결국 「아시아」의 힘의 중심이 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태평양에 이룩될 새로운 질서 속에서 단 한번도 공전하려들진 않을 것이다.
이것은 엄준한 전망이며 한국을 향해 놀라운 민족적 총명의 분출을 자극하는 미래상이다. 물결은 일기 시작했다.
아니, 바로 오늘 우리는 그 태평양의 새 물결에 이미 몸을 던져놓고 있다. 태평양의 새로운 질서라는 파도를 우리가 주체적으로 타고 이기느냐 못 이기느냐 하는 것은 그것이 지금 막 형태를 나타낸 도전의 내용이면서도 전혀 우리 책임에 귀속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급하게 그 속에서 흐려지기 일쑤였던 한국의 좌표가 선명하게 부각되도록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은 도약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고 그 기대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심각한 시대적 전환기에 섰다. <본사 논설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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