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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휴대전화 벨 좀 꺼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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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로큰롤의 대부 신중현이 만들고 1970년대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 김추자가 불렀으며 신해철이 리바이벌하기도 했던 '커피 한잔'은 이렇게 시작한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8분이 지나고 9분이 오네. 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이 노래의 가사는 이제 머나먼 옛일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더 이상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런 감정적 호사를 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바로 휴대전화 때문이다.

*** 만남의 기쁨도 사라진 세상

누구나 휴대전화를 지니고 다니는 요즈음, 안타까운 기다림이란 있을 수 없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시간이 돼도 나타나지 않으면 즉시 전화해 어디쯤 오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곧 도착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기에 막상 나타나도 가슴 설레는 반가움이 생겨날 리 없다. 만났다 헤어질 때에는 다음에 언제 만나자는 약속을 굳이 하지도 않는다. 언제든 다시 통화할 수 있으므로.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고, 만남은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휴대전화는 언제 어디서나 상대방과 통화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주므로 늘 만나고 있는 상태를 지속해주는 셈이다. 이제 헤어짐이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만남의 기쁨도 사라졌다. 약속도 기다림도 없다. '바람맞히기'도 '바람 맞기'도 이제는 모두 불가능하다. 그런 말 자체가 우리 일상어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우리 삶의 중요한 리듬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휴대전화는 삶의 여러 모습들을 바꿔놓고 있다.

대학 초년생 수백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사용행태를 조사해보니 휴대전화는 젊은이들의 인간관계 형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매체인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관계와 연인관계의 시작과 발전단계에 있어서도 휴대전화는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휴대전화를 음성통화를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자메시지나 다양한 정보검색을 위해 더 많이 사용한다. 사랑을 속삭일 때는 음성통화를 선호하지만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용서를 구할 때에는 문자메시지를 더 선호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휴대전화의 다양한 기능과 많은 부가 서비스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세련된 사용자일수록 벨소리보다 진동모드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사실 휴대전화의 벨소리는 유선전화로부터 물려받은 불필요한 고정관념의 산물이다.

철저하게 개인적 매체인 휴대전화에 그런 요란한 벨소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휴대전화 소지자에게 전화가 왔음을 알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진동모드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가방 속에 든 전화기의 진동을 알아채기는 힘들다.

휴대전화기 생산자들은 전화 왔을 때 환한 빛이 반짝이는 팔찌나 반지 형태의 알라밍 시스템을 하루속히 개발해주기 바란다. 전화기가 가방 속에 있다 해도 무선으로 연결된 팔찌에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전화 왔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치는 분명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될 것이다.

*** 문화적 폭력 부끄러워해야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는 제발 지금부터라도 휴대전화 벨소리 좀 끄고 늘 진동 모드로 해두기를 부탁드린다. 자신의 휴대전화에 전화 왔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 모두에게 들리도록 하는 벨소리는 소음공해를 넘어 일종의 문화적 폭력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전화 못 받고 마는 편을 택하는 것이 휴대전화 시대를 문화인답게 살아가는 길이다.

金周煥(연세대교수·신문방송학)

◇약력=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보스턴대 교수 역임,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