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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보이’의 눈물,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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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박태희
경제부문 기자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일본 소니는 지금의 애플 이상이었다. 음악에 이동성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듣는 ‘워크맨’은 아직도 제품 혁신의 신화로 남아 있다. 그즈음 일본에서 자유롭고 개척정신을 가진 젊은이를 ‘소니 보이’라 부를 정도였다. 그런 소니는 당시 삼성에 경외의 대상이자 기술 스승이었다. 80년대 전후 삼성은 ‘주말 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주말에 일본 기술자들을 비행기에 태워 한국에 ‘모셔온 뒤’ 기술을 배우곤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삼성전자와 소니의 상황에선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삼성전자는 분기 영업이익이 8조원을 넘는 시대를 열었다. 반면에 소니는 지난해 역대 최악인 5200억 엔(6조8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4년 연속 적자다. 얼마 전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는 소니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투자부적격(투기)인 ‘BB-’로 한꺼번에 세 단계 낮추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런 상전벽해는 93년 “처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서 시작됐다. 이 회장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후쿠다 다미오(福田民郞) 교토공예섬유대 교수(당시 삼성전자 고문)의 보고서를 받고 밤샘 토론을 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한 건 그 사흘 뒤였다.

 신경영의 방향이 맞아떨어졌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 삼성과 소니의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 오죽하면 후쿠다 교수가 “삼성은 꼭 필요한 변화를 실천했고 일본 기업은 말만 했다”고 했을까.

 그렇게 앞을 내다봤던 이 회장이 한두 해 전부터 심각한 얘기를 던지고 있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것 등이다. 10년 뒤 삼성은 현재의 소니 신세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삼성뿐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다른 글로벌 기업도 마찬가지다. 소니의 추락을 보는 ‘소니 보이’들의 안타까운 심정이 그저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박태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