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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위탁생산으로 가는 대우차 부평공장

중앙일보

입력

"일찍 정신 차릴 걸 그랬어요. 일괄매각도 아니고 위탁생산한다는데. 어떻든 우리는 자동차 한 대 만드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어요. 일만 계속할 수 있다면 행복한 거 아닌가요. " (부평 조립1공장 유창호씨.40)

17일 오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대우자동차 채권단과 제너럴 모터스(GM)의 협상에서 위탁생산으로 가닥을 잡은 부평공장의 근로자들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불안한 표정과 함께 '일하고 싶다' 는 의욕을 강하게 나타냈다.

부평공장은 레간자.라노스.매그너스 승용차를 생산하는 데 이어 내년 초부터 수출할 매그너스에 탑재할 2천.2천5백㏄ 6기통 XK엔진 생산준비에 바쁘다.

근로자들은 부평공장의 위탁생산이라는 채권단 결정에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라노스를 생산하는 차체1부의 생산직 근로자를 관리하는 책임자 엄명섭씨는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최소 인원으로 근무하는 데 주인없는 위탁생산이라는 어정쩡한 상태가 돼 구조조정 얘기가 또 나올까봐 불안하다" 며 "생산만은 자신이 있는데 앞으로 판매가 따라줄지 걱정" 이라고 말했다.

정문은 부근 산곡성당에서 농성 중인 노조 집행부의 진입에 대비해 출입문 일부를 폐쇄했다. 뒤에는 전투경찰 중대가 경비를 하고 있지만 급박한 상황은 아니다.

노조측은 회사가 지난 2월 1천7백50명을 정리해고하자 농성에 들어갔다. 이후 3월부터 2교대 근무에서 1교대로 바뀌어 공장은 비교적 한산하다.

판매가 떨어지면서 공장마다 출입구에 '생사초월 권유판매' 라는 큼지막한 글씨와 근로자들의 판매 현황표가 붙어 있다. 별다른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데도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 는 애사심으로 적극 뛰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연구소의 김대호 과장은 "위탁생산은 일단 기회를 한번 더 준 것" 이라며 "GM이 걱정하던 노사관계는 안정을 찾을 것이고 기술연구소도 GM이 직접 차를 개발하는 것보다 인건비와 품질 면에서 앞서기 때문에 강화될 것" 이라고 말했다.

한익수(53)부평 공장장은 "구조조정이 끝난 3월부터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늘면서 7월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고 말했다.

여기에는 구조조정이 한몫했다. 대우차는 지난달 말까지 전체 인원의 30%를 넘는 7천4백10명을 감원했는데, 이 중 4천1백56명이 부평공장 근로자들이었다.

'무보수 한시간 더 일하기 운동' 도 곳곳에서 벌어진다. 수당이 없는 데도 작업 종료 이후 자발적으로 자기가 맡는 구역을 청소한다. 조립라인이 돌아갈 때 손을 보지 못했던 작업기계도 정비한다.

부평공장은 작은 일에서부터 달라졌다. 기름 장갑을 빨아 재활용할 뿐 아니라 ㎏당 5백50원에 구매하던 작업걸레 대신 근로자들이 집에서 버릴 옷을 가져와 쓴다.

청소부도 없다. 27만평 공장을 직원별로 책임구역을 나눠 환경을 관리한다. 공장 안에서 휴지는커녕 기름 방울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韓공장장은 "내수 부진으로 생산량은 줄었지만 7월 이후 생산성은 30% 향상됐다" 며 "반면 품질불량은 40%, 출고 후 불량은 30%씩 줄어 세계적인 수준의 공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고 말했다.

부평공장의 직원들은 내년 2월부터 양산할 라노스 후속모델인 T200이 GM-대우차 새 법인의 첫 차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필생〓대우차 우리가 살린다' 는 근로자들의 슬로건이 실현될지 관심이다.

부평=김태진 기자 tj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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