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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최악의 검찰 위기, 한상대만의 탓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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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상대 검찰총장이 물러났다. 그의 사퇴로 사상 최악의 검찰 분란도 수습 국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의 요구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검사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 총장은 어제 사퇴 기자회견에서 검사들의 뇌물 수수·성추문 사건에 대해 사죄했다. 국민 앞에서 “검찰의 총수로서 어떠한 비난과 질책도 달게 받겠다”고 밝힌 것이다. 비리·성추문에 내부 권력 다툼까지 터져 나오면서 한 총장의 사퇴는 외길 수순이었다. 당초 예정했던 자체 개혁안 발표를 취소한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 민간인 불법 사찰 재수사 등 일련의 사건에서 부실·편파 수사 시비를 일으킨 배경도 한 총장의 지휘 잘못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을 한 총장 한 사람에게만 물어야 할지는 의문이다. 권한을 오·남용한 검사들의 특권의식, 정치권력의 과도한 인사 개입에는 과연 책임이 없는가. 그런 점에서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성추문 검사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던 석 전 지검장은 그제 한 총장 용퇴와 함께 검사들의 반성을 촉구했다. 그는 검사들의 스캔들에 대해 “그간 검찰이 보여준 무소불위와 오만함, 구성원의 특권의식에 국민의 불신·반감이 폭탄 돌리기 식으로 이어져온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검사들에게 묻고 싶다. 검찰 지휘부가 수사를 굴절시키려 했다면 왜 그때 가만히 있었는가. 왜 자리를 걸고 지휘부를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가. 검찰 내부의 구태에는 침묵하면서 대검 중수부 폐지 같은 검찰권 제한에만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를 실현하고 피의자 인권을 지켜주는 곳이다. 이런 기대가 형사소송법 교과서 안에 머물러 있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검사들이 특권의식에서 벗어나 국민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한 검찰의 위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데는 이명박 정부의 책임도 크다. 현 정부 들어 ‘정치 검찰’ 비판이 거세진 것은 검찰 인사에 청와대 입김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과 출신 지역이 비슷하거나 같은 대학을 나온 검찰 인사들이 대거 요직에 등용됐다. 능력보다 인맥이 우선시되면서 검찰 수사력이 약화됐고 편파 수사 논란은 거듭됐다. 그 결과 검찰 기강은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졌다.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등 비리가 잇따른 것도 이런 기강 해이와 무관치 않다. 12월 대선에서 선출될 다음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검사들을 줄 세우지 않겠다는 다짐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지금 검찰은 갈림길에 서 있다. 중수부 폐지, 별도 사정 기구 설치, 기소배심제 도입 등 비대한 검찰권을 줄이는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이후 본격화될 개혁 과정에서 검찰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되 방향이 정해지면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검찰이 외부로부터의 개혁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는다면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아울러 후임 총장이 임명될 때까지 채동욱 총장 직무 대행 체제에서 조직 안정 노력과 함께 본연의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11명의 검찰총장이 임기(2년)를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불명예를 기록하게 됐다. ‘불행한 총장’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검사들의 철저한 자기 반성과 정치적 중립 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국민은 검사들보다 지혜롭고 현명하다”(석 전 지검장)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