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구도자의 기도와 같은…-「청동시대」의 박희진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청동시대」의 원고를 차곡차곡 다 묶어 두고도 박희진씨는 몇 해를 긍긍했다. 2백54페이지를 마무리 할 그 장시 한편이 도무지 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그는 화진포를 찾아가 며칠을 뒹굴고 돌아왔다. 진통에 의한 편력-. 어느 새벽 그는 『생전 처음으로』동해의 해돋이를 보았다. 『휴전선 바로 아래 이승만과 김일성의 별장이 마주선 바닷가 언덕에서…』그것은 시인의 가슴으론 충격적인 체험이었다. 「무량광명」이 있는 시어들을 그는 바닷가에서 주워왔다. 장시「혼돈과 창조」는 장엄한 교향악처럼 그에게서 시작되었다.
박희진씨는 제 2의 시집「청동시대」를 기어이 상재하게 된 것이다. 여기 묶어진 69편의 시는 진지한 구도자의 기도와 같은 숙연한 읊조림이 있다. 시인은 말한다.
『구도자의 경지… 그렇지요, 저의 성향이기도 합니다.』
그는 「생명의 외경」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정신의 극점에서『부들부들 떠는 외경』에 부닥치며. 그러나 양극을 그득하게 채워보고 싶은 풍요한 언어의 잔치. 이것이 그 자신이 말하는 자작시의 변이다. 때대로 이변도 한다.
『「실험적」이라는 말을 비평가들은 잘씁니다. 시는 뭡니까?「최선의 질서가 부여된 최선의 언어」. 누가 한 말이긴 하지만 바로 그것입니다. 실험적이라니요? 아닙니다. 실험정신과 작품정신이 교차한 그 점, 그것이지요.』
그는 60년간「실내악」이후 줄곧「일관한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창작 정신은 철저히 엄숙하고 순수하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순화시키는 의도로 시를 쓴다』고 한마디로 집약하는 것이다.
의식적인 언어의「퍼즐」(수수께끼?)도, 난해를 위한 의장도 없다. 있는 그대로, 생명의 진폭을 발현한다. 진폭의 다양성을 그는 이렇게 풀이한다.
『영혼과 육체, 고뇌와 황홀, 암흑과 광명, 공포와 기쁨, 영원과 현실…』삶을 그는 부정하지 않는다. 침체 속에서 고요한 중심을 유지하며 생명을 긍정하는 노래를 그는 부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 3시집의 제목도「미소하는 침묵」이란다.
-끝으로 한마디만 더…현대의 시인은 소외인인가?『사회에선 우리를 생활 무능력자로 취급한다. 시인의 호주머니에 돈이 드나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서점에 일년 내내 시집을 꽂아둬 봐야 20권이 팔릴까? 그 정도다.
하긴 시가 밥도, 쌀도 아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외롭다. 그러나 시를 쓴다는 무상행위는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순수한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순화시키는…』
오는28일 그는「프레스·살롱」에서 자작시 독회를 연다. 독자와 시인이 마주 앉아 보고 싶어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