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부도 바빠요” 썰렁한 서울대 총학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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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총학 선거요? 관심 없어요. 내 공부도 바쁜데….” 서울 강남구에 사는 서울대 자연대생 권모(21)씨는 올해 총학생회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권씨는 “대학에 들어온 뒤에도 취업 준비에 집중하느라 다른 데 관심을 돌릴 틈이 없다”며 “총학 선거가 어찌되든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했다. 권씨는 지난해에도 총학 투표를 하지 않았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위기에 빠졌다. 권씨처럼 총학 투표에 불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20일부터 치러진 제55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유권자 1만6098명 가운데 4474명(27.28%)만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생 10명 중 7명은 투표장에 가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결국 지난 27일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관리위원회는 총학 선거 무산을 선언했다. 선거 성사 기준인 투표율 50%를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서울대 총학 선거는 2003년 이후 10년 연속 투표율 미달로 선거 자체가 무산됐다. 특히 올해는 연장 투표가 가능한 기준 투표율(32%)에도 못 미쳐 개표함을 열지도 못한 채 선거가 끝나버렸다. 서울대 총학은 내년 3월 재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단과대 연석회의’가 총학을 대신하는 임시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이마저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최근 사회대와 인문대·농생대 학생회 선거도 저조한 투표율로 모두 무산됐기 때문이다. 특히 공대와 자유전공학부는 후보가 없어 아예 선거를 치르지도 못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1970~80년대 한국 학생운동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정치적 위상은 물론 학생대표기구로서의 영향력도 떨어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 서울대생들이 학내 선거에 무관심한 원인으론 이른바 ‘운동권 학생’들의 편향된 정치성에 대한 거부감이 꼽힌다.

이번 총학 선거에서도 출마한 세 곳의 선거본부 중 두 곳이 민족해방(NL) 계열과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실천위원회(사노위)’ 계열이었다.

자연대생 박모(24)씨는 “각종 정치적 이슈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던 총학생회가 정작 서울대 폐지론 및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공약에 대해선 뚜렷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며 “운동권이 주축인 총학생회가 학생들을 위한 조직인지에 대한 불신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서울대에 강남·특목고 학생들의 비율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5일 내놓은 ‘대학 진학 격차의 확대와 기회 형평성 제고방안’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특목고와 강남 3구를 합친 서울대 진학률은 2002년 56.2%에서 2011년 65.7%로 늘어났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강남3구나 특목고 출신 학생들은 부모들의 지원과 과도한 경쟁체제 속에서 커와 개인적 성향이 강하고 집단적 정치 이슈에 대한 관심은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박원호(정치학) 교수는 “학생을 대표하는 ‘공적 기구’가 무너진다면 결국 학생 이익을 대변하는 존재 역시 사라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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