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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종 동서군축회담|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건가

    1월말부터 2월초에 걸쳐 성격을 달리하는 갖가지 동서간의 군축회담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지난달 27일 빈에서 동서상호균형감군(MBFR)이 재개된 뒤를 이어 제네바에서는 2일과

    중앙일보

    1983.02.08 00:00

  • (59) 「신의를 지키며」국내 독점 연재|(미소정상 대담) (하)

    나는 6월 17일 하오 회담석상에서 중동·아프리카·동남아 문제에 대해 나의 의견을 밝히고, 특히 세계곳곳에서의 쿠바의 군사동맹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그리고 그들의 최대 관심사인

    중앙일보

    1982.12.23 00:00

  • (58) 「신의를 지키며…」국내 독점 연재|(미 소 정상회담 ) (상)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77년 1월 26일 나는 처음으로「브레즈네프」에게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나는 양국이 핵무기 감축을 위해 노력

    중앙일보

    1982.12.22 00:00

  • (57)|아프간 공격 (하)

    나의 다음번 결정은 아이오와 주민들에게 더욱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었다. 그것은 소련에의 곡물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다. 다른 경제적 조치들도 어느

    중앙일보

    1982.12.21 00:00

  • 카터회고록 국내중점연재 「신의를 지키며」…캠프데이비드 그후②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협상대표단이 귀국한 뒤 나는 「사다트」와 「베긴」에게 친서를 보내 우리가 주장했던 평화조약을 받아들이도록 촉구했다. 그러나 「베긴」은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

    중앙일보

    1982.11.04 00:00

  • 카터회고록 국내중점연재 「신의를 지키며」…캠프데이비드 그후①

    -캠프데이비드에서 협상이 성공한 후 가장 감동적인 시간들이 찾아왔다. 이스라엘에서 교사들이 파업을 하다가 캠프데이비드 협상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파업을 끝냈다는 뉴스보도가 있었

    중앙일보

    1982.11.03 00:00

  • 카터 회고록『신의를 지키며』(8)

    -나는 수없이 많은 시간을 중동문제로 보냈다. (일기·1977년3월7일) -각료들과 말다툼을 벌여가면서까지 나는 우리가 중동에 좀더 공격적인 자세를 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일기·

    중앙일보

    1982.10.12 00:00

  • 카터 회고록『신의를 지키며』(6)

    단독요담을 마치고 등소평과 나는 각의실로 가 보좌관들과 자리를 같이했다. 여기서 등의 태도는 다시 한번 부드럽게 바뀌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일은 끝났기 때문일까. 이날 회담은 전

    중앙일보

    1982.10.09 00:00

  • 카터 회고록『신의를 지키며』(4)

    등소평의 미국방문은 내 대통령시절의 즐거웠던 일들 중 하나였다. 내게는 모든 일이 잘 풀렸으며, 등 부주석도 나 못지 않게 만족한 것 같았다. -등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중앙일보

    1982.10.07 00:00

  • 카터 회고록『신의를 지키며』(3)

    「밴스」와「브레진스키」와 나는 마무리 협상을 빠르게 추진하되 우리 쪽의 정상화조건은 일절 바꾸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등소평이 보낸 공동성명 초안을 거부하고, 우리가 앞서 제의한

    중앙일보

    1982.10.06 00:00

  • 카터 회고록『신의를 지키며』(2)

    내가 중공과의 교섭을 추진하는 동안에도 파나마운하 조약에 관한 찬반토론은 줄곧 계속됐다. 77년 이른 가을에는 마무리되어지려니 했던 이 문제는 78년도 의회 회기가 시작될 즈음에도

    중앙일보

    1982.10.05 00:00

  • 레이건, 84년 선거선 민주당 후보에 진다

    「지미·카터」전 미국대통령은 4일「레이건」대통령의 외교·경제·사회정책들이 모두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으며「레이건」의 지나친 소련고립정책은 자칫 소련의 가공할 군사적 도발을 유발

    중앙일보

    1982.10.05 00:00

  • 카터 회고록『신의를 지키며』

    「지미·카터」전 미국대통령의 회고록『신의를 지키며』가 오늘부터 본지에 독점연재 됩니다. 77년1월부터 81년1월까지 백악관의 주인이었던「카터」대통령의 재임4년간은 국제적으로 커다란

    중앙일보

    1982.10.04 00:00

  • 3년만에 대좌했지만 산너머 산

    미소 두 나라가 3년만에 전략 핵무기감축협상 테이블에 대좌했다.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지도 모를 핵무기는 두 초강대국이 긴 세월동안 이 문제에 대한 협상을 중단함으로써 경쟁적으로 개

    중앙일보

    1982.07.06 00:00

  • 미의 「핵무기 불사용 선언」논쟁

    요즘 워싱턴 정가엔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는 독트린」을 놓고 헤비급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과거 미국정부에서 고위관리를 지낸 4명의 거물들이 포린 어페어지 기고

    중앙일보

    1982.04.24 00:00

  • 『베일』벗겨진 소 세균무기|우랄산맥속등 전국12곳서 실험개속

    우랄산맥속의 한 소도시에서 2년8개월 전에 일어났던 조그만 폭발사고가 미·소군축회담의 장래에 암영을 던지고 있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폭발사고의 비밀을 캐기위해 가능한 모든 정보를

    중앙일보

    1981.12.07 00:00

  • 미. 소 군축회담 30일 재개

    【제네바 27일AP·AFP합】동서간의 핵무기 경쟁을 완화 내지 종식시키기 위한 역사적인 미소핵무기 감축협상이 오는30일 제네바에서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2년6

    중앙일보

    1981.11.28 00:00

  • 「자제」접근에 의미…앞날은 까마득

    미소양국이 군비축소를 위한 회담을 갖기로 극적으로 합의한 것은 확대일로를 걷기만하던 두 초강대국간의 군비경쟁이 잠시 숨을 돌리는 계기를 마련했음을 뜻한다. 사실「레이건」행정부등장이

    중앙일보

    1981.09.25 00:00

  • 미,소에 군사모험 포기촉구

    【로마5일AP·AFP=연합】「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외상회의는 5일소련과 「유럽」배치 중거리핵미사일 감축협상을 개시키로한 미국의 결정을 만장일치로 공식 지지함에따라 작년 11월

    중앙일보

    1981.05.06 00:00

  • 미국의 대소전약 체제

    미국이, 특히 「레이건」행정부가 소련과의 데탕트에 회의적인 자세로 대소강경책으로 기울어 왔음은 세상이 아는 일이다. 데탕트의 상징이어야할 전약무기제한협상(SALT)은 오히려 소련에

    중앙일보

    1981.04.21 00:00

  • 소세 팽창 견제 위한 레인건 전략 뒷받침|미국무·국방의 중동·구주 나들이

    「헤이그」미국무장관과 미국방장관의 중동「유럽」순방은 점증하는 소련세력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레이건」행정부의 새로운 세계전략수립의 목적을 띠고있다. 「레이건」대통령이 병상에 누워있

    중앙일보

    1981.04.10 00:00

  • 「브레즈네프」 제안의 진의

    「레이건」행정부는 소련에 두개의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하나는 소련과의 합의 문서는 그 종이값도 못할 정도로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하는 「레이건」의 얼굴이요, 다른 하나는 미국이 요구

    중앙일보

    1981.02.27 00:00

  • 동서위기 타결 8개항 제의|브레즈네프 공당대회 연설 다자간 정상회담도

    【모스크바23일UPI·로이터=연합】「브레즈네프」소련방최고회의의장겸 공산당서기장은 23일 동서신뢰촉진을 위한 다자문정상회담개최 등 8개항을 제시했다. 「브레즈네프」는 이날 5천여명의

    중앙일보

    1981.02.24 00:00

  • 「레이건」행정부의 출범|「카터」의 유산

    「레이건」공화당행정부가 20일 공식출범한다.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4년주기의 1월이면 늘 부산스럽기 마련이지만 올해만큼「변혁」이 예상된적도 드문듯하다. 「카터」민주당행정부-「레

    중앙일보

    1981.01.1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