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접근에 의미…앞날은 까마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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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설>미소양국이 군비축소를 위한 회담을 갖기로 극적으로 합의한 것은 확대일로를 걷기만하던 두 초강대국간의 군비경쟁이 잠시 숨을 돌리는 계기를 마련했음을 뜻한다.
사실「레이건」행정부등장이후의 미소관계는 전례없이 냉각돼왔다.
그러나 미국측 입장에서 본다면「레이건」행정부가 아무리 국방력강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국방비부담엔 엄연한 한계가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국내경제회복에 최우선을 두고있는「레이건」에겐 소련과의 군비경쟁이 가져오는 압박감을 언제까지나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이 군축을 촉진하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배경에는 유럽동맹국들의 강력한 압력이 도사리고 있다.
유럽이 미소간의 핵무기경쟁장으로 되는 것을 원치 않는 서독·영국·이탈리아 등은 미소양국이 조속히 군축회담을 재개하도록 끈질긴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들은 군축회담이 진전되지 않으면 미국의 새로운 핵무기의 유럽배치계획 자체가 위협을 받을 정도로 그들 국내의 여론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점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미국에 못지않게 소련의 입장도 자못 심각하다. 아프가니스탄침공이후 소련은 사실상 전세계적인 규탄을 받아오고 있으며 쿠바군을 통한 대리전에서도 막대한 출혈을 하고 있다.
소련의 경제도 여전히 어떤 돌파구를 찾기는커녕 계속되는 흉작 때문에 주기적으로 미국의 농산물을 구입하기 위한 모욕적인 협상을 감수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번에 미소가 합의한 군축회담을 원래 작년 10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11월의 미국대통령선거에서 「레이건」이 등장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물론 이에 앞서 소련은 79년에『앞으로 미소간의 유럽에 대한 일체의 미사일배치를 동결하자』는 제의를 내놓은 적이 있다. 말하자면 미국은 NATO각국에, 소련은 바르샤바조약각국에 대한 미사일의 추가배치를 금지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당시「카터」미행정부는 이미 유럽에서 소련의 우위가 확고해진 상황을 감안, 이를 소련의 우위현상을 고정시키려는 계략으로 간주하고 그 제안을 거부한바 있다.
앞으로 재개될 미소군축회담에서 제1차적으로 다루어질 문제는 유럽에 배치된 전투지역핵무기(TNW)의 감축문제가 될 것이다.
「헤이그」장관은 소련이 이미 동부유럽에 2백70개의 전투지역 핵무기SS-20미사일을 배치했는데, 이 미사일은 모두 서부유럽 각국의 대도시와 군사기지를 향해 조준돼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소련은 오는 83년말부터 나토에 5백72개의 퍼싱II와 크루즈미사일을 배치한다는 미국의 계획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84년까지 영국·서독·이탈리아 등지에 이 무기가 배치되면 나토는 사상 처음으로 소련영토까지 닿는 전술핵능력을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바로 이 미국의 계획이 나토 각국안에서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미소군축회담의 조속 개최에 큰 압력요소로 작용해왔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재개된 미소군축회담의 앞길은 길고도 험난할 것이 뻔하다.
미국의 퍼싱과 성능이 비슷한 소련의 SS-20미사일은 대부분이 소련과 유럽국경지대에 배치, 서구 각국을 겨냥하고 있어 퍼싱과 SS-20의 논쟁이 쉽게 결말이 나오기는 극히 어려운 문제다.
또 소련은 전통적으로 나토 각 군의 공군기지에 배치된 핵무기운반능력을 가진 전투기와 영국해역에 배치된 미사일잠수함도 군축회담의 의제로 돼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 같다.
그러나 성과가 당장은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소양국이 군축경쟁을『자제』하자는데 합의했다는 사실만 해도 적지 않은 진전이다.
여기서 얻은 진전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곧 미소간의 새로운 전략무기 군축협정(SALT)타결을 위한 분위기조성에 결정적인 촉매작용을 할 수도 있다. <워싱턴=김건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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