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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회고록『신의를 지키며』(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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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등소평의 미국방문은 내 대통령시절의 즐거웠던 일들 중 하나였다. 내게는 모든 일이 잘 풀렸으며, 등 부주석도 나 못지 않게 만족한 것 같았다.
-등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자그맣고 강인하며, 솔직하고 용기 있고, 풍신 좋고 자신 넘치며 상냥하다. 그와 협상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일기·79년1월29일)
우리는 세 번의 실무회담을 가질 계획이었다. 첫모임에선 먼저 세계문제에 관한 두 나라의 자세부터 밝히기로 했다. 등은 내게 먼저 얘기하라고 했다.
간략하게 적은 메모를 참고하면서나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시작했다.
내가 특히 관심을 갖는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인도양 북부 동남아에서 아프리카에 이르는 지역의 불안정과 그것을 악용하려는 일부 외부세력의 경함이며, 다른 하나는 소련군사력의 빠른 팽창이다.
나는 또 미국의 대외관계를 이끄는 신념과 가치기준에 관해서도 말했다.

<솔직하고 상냥한 등>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강하고 유익한 영향력을 계속 갖고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내 의무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보다나은 생활과 보다 폭넓은 정치참여, 그리고 자기네 정부의 박해나 외국세력의 지배로부터의 해방 등에 대한 민중의 욕구가 점차 커가고 있는 현상을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는 또 중화인민공화국 같은 나라들의 영향력 신장을 긍정적인 사태발전으로 보며, 그런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가짐으로써 미래의 우리 안전을 지킬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등은 자그마한 몸집이 각의실의 커다란 의자 속에 거의 삼켜진 채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담배를 입에서 떼지 않고, 반짝이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그는 내 말이 통역될 때마다 웃거나 옆의 중국인들에게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등의 차례였다. 그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문제들을 얘기하면서 미국과 중공이 이젠 꽤 많은 공동이해를 갖게됐다고 지적했다.
모택동과 주은래는 일찌기 소련이나 미국이 일으킬 전쟁의 위험에 주목했으며 두 강국이 세력확장에 나서리라고 간파했다고 등은 말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중공은 그들에 대한 미국의 위협이 점점 줄어드는 반면 소련은 더 큰 골칫거리임을 깨닫게 됐다.
다른 모든 나라들은 패권에 맞서 뭉쳐야 한다. 등의 견해로는 미국은 소련 견제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어 지난 5년 동안 중동의 상황은 근본적으론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존재를 이유로 평화노력을 거부해 온 나라들은 오래 전부터 소련과 가까웠으며, 시리아나 알제리 등 미심쩍던 나라들도 소련에 접근하는 듯하다. 등은 더 나아가 중공은 이스라엘의 실체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중공은 전쟁 안 바라〃>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나중에 내가 중공이 이스라엘과 수교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아니오. 지금으로선 그럴 가능성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67년 당시의 국경으로 되돌아가고, 요르단과 웨스트뱅크 (요르단강 서안) 문제나 팔레스타인의 존재문제 등을 해결하면 1억의 아랍인을 설득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중동의 문제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나라들에까지 퍼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등소평은 베트남이 5천만 인구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동양의 쿠바」라고 했다. 그는 미국과 중공이 모두 베트남인들과는 오래고 불쾌한 관계를 가졌음을 지적했다. 베트남과 소련이 들고 나온 아시아집단안보 체제 안은 매우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SALTⅡ협정에 반대하지 않으며 이 협정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4차 협상도 앞서의 세 번과 마찬가지로 귀결될 것 같다고 했다. 즉 소련의 군비증강을 억제하지는 못하리라는 얘기다. 등은 중공이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대화를 완수하려면 오랫동안의 평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련은 결국 전쟁을 일으키고 말 터이지만 우리는 그것을22년쯤(20세기말까지)은 미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과 중공과 인도가 공식동맹관계를 맺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서로 행동을 맞출 필요는 있다고 등은 말했다.(일기·79년1월29일)
오찬을 마치고 회의가 속개됐을 때 나는 등에게 소련의 영향력 팽창에 대해선 나 역시 우려하고 있지만 소련이 이집트나 인도·인도네시아·유고슬라비아·폴란드·나이지리아·기니·북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소말리아·중동 등 여러 곳에서, 그리고 특히 중공에서 겪은 정치적 좌절들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남부에서도 자이레·잠비아·모잠비크 같은 나라들이 지금 소련 쪽으로 쏠려있다고 해서 포기해 버린다면 큰 잘못이라고 말했다.
앙골라조차도 요즘은 조심스럽게 서방 쪽으로 손을 뻗고 있지 않은가. 나는 미국이 나미비아에서 다수 민족에 의한 통치를 이룩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노력을 등에게 얘기하고 중공도 아프리카에서 이 같은 평화노력에 참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미국이 중동평화를 위해 해온 일들을 대충 설명하고 우리가 팔레스타인 인들에 대해서도 심려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 포괄적인 평화타결은 반드시 이뤄져야하며 전략적으로 봐도 사우디아라비아나 요르단·수단·이집트·이스라엘·알제리·모로코 등은 온건국가들이 이 목표달성을 돕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집트가 수에즈운하 동쪽에서 이스라엘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시리아·요르단·이라크 등 주변 나라들이 모두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는 동안에는 이 지역에서 소련의 세력확산을 막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등소평은 나의 이런 논리전개에 꽤 감명 받은 듯 했다.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더니 중동의 개별국가들에 관해 내게 묻기도 했다.

<중동에 관해 물어와>
나는 다른 문제지역들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이란에는 헌법에 따라 안정되고 평화로운 정부가 들어서기를 바라며, 침략자 베트남에 대한 가장 알맞은 대우는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켜버리는 것이리라고 말했다. 사실 그 얼마 전 유엔에서는 개발도상국들이 처음으로 베트남과 소련·쿠바를 비판하고 나섰다.
나는 또 중공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남북한 정부당국의 직접대화를 주선하라고 권했다. 이 권유가 제대로 먹혀들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등이 내 입장을 알게는 된 셈이었다.
우리는 두 나라가 소련에 맞서 연합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런 정책은 소련을 더욱 고립시킬 따름이다. 나는 소련이 건설적으로 나올 때는 그들과 협조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서로 겨루는 정책을 취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전쟁을 그저 22년 늦추는 것보다는 영원히 피하는 게 우리가 원하는 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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