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358)|화맥인맥 월전 장우성(77)|낙선 작품 전

    내가 서울대 미술대학을 그만 둔지 얼마 되지 않아 홍익대에서 출강을 의뢰해왔다. 그때 홍대미술대학장은 나와 서울대미술대학에 함께 있었던 수화(김환기)가 맡고 있었다. 수화가 내게

    중앙일보

    1982.03.09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화맥인맥 월전 장우성(76)|충무공 영정싸고 잡음

    정읍군 직윈에게 이당(김은호)선생에게도 영정제작을 부탁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의 전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당 선생쪽에서 안 하겠다니까 내게 매달렸나 싶어 기분이 언

    중앙일보

    1982.03.08 00:00

  • (3306)제76화 화맥인맥(25)|월전 자우성|여성모델

    지금은 미술대학에서 모델이 필요하면 신문에 광고 한번만 내면 이내 해결할 수 있지만, 내가 선전에 작품을 낼 때만 해도 모델 구하기가 어려웠다 동양화는 누드모델이 아닌 옷을 입은

    중앙일보

    1982.01.07 00:00

  • (3284)제76화 화맥인맥(3)|위당댁 출입

    비록 1년의 시한부이긴 했지만 그림공부를 위한 나의 상경은 우리집안으로서는 파격적인 용단이 아닐 수 없었다. 아버지는 먼길을 떠나는 나에게 서찰2통을 들려 보냈다. 한통은 이당 (

    중앙일보

    1981.12.09 00:00

  • 월전 장우성 화백 고희 맞아 제자 합동전

    동양 화단의 원로 월전 장우성 화백의 고희를 맞아 기념 화집 발간 및 제자 합동전 등이 추진되고 있어 화제다. 월전은 고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사사, 해방 이후 심산 노수현 화백과

    중앙일보

    1981.03.09 00:00

  • "근대동양화의 흐름이 한눈에…"

    예년과 달리 아직 동면기를 벗어나지 못한 화랑가에 첫 기획전이 열려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서울예화랑에서 열리고있는(1∼7일) 「근대서화명품전」-이조말에 태어나 대부분의 생애를 근

    중앙일보

    1980.02.01 00:00

  • 과대평가받는 화가가 적지않다.|미술평론가 11명이 내린 「재평가」

    우리나라 동양화단의 거목이라 일컬어지는 이당 김은호와 또 천재화가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이중섭이 실제로는 지나치게 과대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 지적됐다. 이것은 『계간미술』(10

    중앙일보

    1979.08.04 00:00

  • 극세필·진채의 우아한 고풍 고수

    □…이당 김은호화백은 동양화단의 첫손꼽는 원로요 거봉. 그럼에도 환갑에 이르도록 「이발장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그가 그림을 배우기 전인 17세에 가세가 몰락해 고향인 인천을 떠나

    중앙일보

    1979.02.09 00:00

  • (1783)제52화 서화백년(89)|이당 김은호

    6·25사변이 터지자 나는 누님의 권으로 27일 저녁 식구들과 함께 마지막 통근차를 타고 부곡철도관사에서 살고 있는 누님 집으로 1차 피난을 했다. 여기도 안전치가 못해서 퇴계원

    중앙일보

    1976.11.18 00:00

  • (1782)|제52화 서화 백년 (88)|이당 김은호

    해강의 마지막 제자인 설해 민택기 (1907∼1941년)는 황해도 평산 사람이다. 21세까지 고향에서 한문을 배우고 글씨를 썼다. 눈오는 날 해강의 문하에 들어섰대서 해강이 「설

    중앙일보

    1976.11.17 00:00

  • (1781)|제52화 서화 백년 (87)|이당 김은호

    개성이 낳은 황종하·성하·경하·용하 4형제는 모두 이름 있는 서화가들이다. 이들은 벽암 황석일 공의 아들로 똑같이 네살 터울이다. 장남인 우석 (인왕산인) 황종하 (1887∼19

    중앙일보

    1976.11.16 00:00

  • (1782)|서화백년(68)|이당 김은호

    위당 정인진가 지어 준「후소회」란 이름은 제자들에게도 큰 환영을 받았다. 후소회의 제1회전은 이모임이 정식으로 발족한 1936년 가을에 이루어졌다. 10월30일부터 11월3일까지

    중앙일보

    1976.10.25 00:00

  • (1780)|서화백년(66)이당 김은호

    근대서예가로 양대 인맥을 이룬 사람은 해강 김규진(1868∼1933)과 성당 김돈희(1871∼1936)를 들 수 있다. 해강은 우리나라 서학계의 제도적인 질서를 확립하는데 앞장섰

    중앙일보

    1976.10.22 00:00

  • (1775)|서화백년>(61)|이당 김은호

    청전 이상범은 1897년 음력9월21일 충남 공주군 정안면 석송리에서 이승원 공의 2남으로 태어났다. 난지 6개월만에 아버지가 작고하여 가세가 갑자기 기울었다. 빈곤 속에서 8년

    중앙일보

    1976.10.16 00:00

  • (1772)|서화백년>(58)|이당 김은호

    만주 채목 공사 이사장 우국한은 마침 여행 중이어서 그의 집안 일을 맡아보는 집사에게 내가 묵고 있는 여관을 가르쳐 주고 우 씨가 돌아오는 대로 내가 찾아왔었다는 말을 전해 달라

    중앙일보

    1976.10.13 00:00

  • (1771)|서화백년>(57)|이당 김은호

    신의주에 머무르는 동안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묵고 있는「수신여관」여주인은 신의주 사회에서 이름이 나 있는 여걸이었다. 그는 얼굴도 예쁠 뿐 아니라 수단도 좋았다. 그는

    중앙일보

    1976.10.12 00:00

  • (1765)서화백년(51)|이당 김은호

    일본 궁내성에 찾아가「세끼야」차관을 만나 보니 그는 서화를 좋아할 뿐 아니라 아는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관옥은 조선에 있을 때 조소림·안심전·이관재와 친히 지냈다고 했다. 그의

    중앙일보

    1976.10.05 00:00

  • 서화백년(40)|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754)-제자·김은호

    정월 나혜석은 1896년 수원 남빙리에서 태어났다. 나기정씨의 5남매중 둘째딸인 정월은 1913년 17세때 동경에 건너가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정월은 여성으로는

    중앙일보

    1976.09.21 00:00

  • 제52화 서화백년(8)|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722)-제자·김은호

    나는 오원을 본 일은 없다. 다만 소림·심전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선생님들이 그림을 그릴때나 사랑방에서 오원 이야기를 많이 해서 나도 자연 관심

    중앙일보

    1976.08.13 00:00

  • 제52화 서화백년(7)|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721)-제자 김은호

    서화미술회 사랑방은 매양 손님들로 문전성시였다. 당시의 세도가·선비·미술애호가들이 모여서 시회도 열고 바둑도 두었다. 소림·심전선생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화평회도 했다. 3·1운

    중앙일보

    1976.08.12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719)|제 52화 서화백년(5)-제자·김은호

    덕수궁 전하는 나의 초본그림을 받아보고 만족한 뜻을 전해왔다. 전하는 윤덕영을 불렀다. 윤덕영은 윤비의 큰아버지였다. 그는 당시에 궁중의 모든 일을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윤대

    중앙일보

    1976.08.10 00:00

  • 서정주씨 회갑잔치

    18일로 회갑을 맞은 시단의 중진 미당 서정주씨의 회갑 축연이 19일 하루동안 신문회관에 서 열렸다. 한국문인협회 ·현대문학사·동국문학인회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시화전 개막(화

    중앙일보

    1975.05.21 00:00

  • (15)|-그 보존을 위한 시리즈

    벼루(연)는 지·필·묵과 더불어 『문방사우』 가운데 『일우』. 수명으로 마지면 제일 길어 서재주인과 합께 일생을 같이하기도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사흘동안 세수는 못해도 벼루를

    중앙일보

    1972.12.19 00:00

  • (249)-제자는 필자|제17화 양화초기(13)

    선전은 1944년까지 23회를 계속했다. 그동안 이에 맞서서 고군분투한 미술단체는 서화협회이다. 서화협회는 한국의 많은 서화가들이 일제아래서 결속하여 회보도 간행하고, 1921년

    중앙일보

    1971.09.0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