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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제자 김은호>|<제52화>서화백년>(61)|이당 김은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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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청전 이상범>
청전 이상범은 1897년 음력9월21일 충남 공주군 정안면 석송리에서 이승원 공의 2남으로 태어났다. 난지 6개월만에 아버지가 작고하여 가세가 갑자기 기울었다. 빈곤 속에서 8년 동안 시골 생활을 하다가 논밭을 팔아 어머니·형과 더불어 서울로 올라왔다.
10세 때부터 동네 노인에게 한문을 배우다가 계산 소학교에 들어가 4년을 마치고 YMCA중학교에 입학했으나 돈이 없어 중도에 그만두었다.
1914년 청전은 17세의 나이로 내가 다니는 서화학교에 들어왔다. 내가 19l2년에 입학한 서화미술 회 2기생이니까 청전은 나보다 2년 후배인 셈이다.
나도 돈이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해 이왕직에서 경영하던「서화 미술 원」에 들어왔지만 청전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입학했을 때 60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는데 4년 후(3년 과정)졸업할 때는 불과 6명밖에 남지 않았었다.
「서화 미술원」의 l회 졸업생으로는 이용우·오일영 등 이 있고 2기생은 나뿐이다. 정재 최우석과, 심산 노수현·청전 이상범은 동기(3기)생이다.
청전은 서화학교 재학 때부터 소림·심전 선생의 지도를 받았지만 졸업 후에도 심전 선생 댁 사랑채인 경묵당에 다니면서 심전 선생이 돌아가시던 1919년까지 공부했다. 이 때 경묵당에는 위창 오세창, 석정 안종원 등 많은 묵객이 몰려들었다.
심전의 제1제자는 청전·심산보다 2년 선배인 관재였다. 그러나 청전은 경묵당에서 심전 선생의 대필을 많이 했다.
선생에게 그림 주문이 많거나 바쁠 때면 청전이 대신 그림을 그리고 화제만 심전 선생이 직접 썼다. 이만큼 심전 선생과 청전의 수법은 같았었다.
청전의 그림은 처음에는 청록산수 같은 북종화를 많이 그렸고 심전의 그림을 모방해서 남화산수도 연구했다 .어찌나 심산의 화법을 따랐었는지 심전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 그의 화채를 갚기 위해 선생의 솜씨를 따서 청전이 그림을 그리고 석정이 화제를 써서 낙관한 일도 있었다.「청전」이라는 아호도「청년 심전」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1920년 청전은 나와 함께 창덕궁 대조전의 벽화를 그렸다 .이 때 그는 도화서 계의 기술전통을 바탕으로 한 기법에서 벗어나 북종화 식의 진채 산수를 즐겨 했다.
청전은 1923년 3월에는 관재·심산과 함께「동연사」를 조직, 신구화도를 연구했다. 1929년 청전은 생활의 안정을 얻기 위해 동아일보에 입사, 미술기자가 되었다.
이 무렵 화가들은 작품을 팔아 사는 법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도화교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게 점잖은 일이었다.
그가 동아에 입사하던 29년 제8회「선전」에 출품한『만추』가 최고상인 창덕궁 상을 받아 그 상금을 바탕으로 그가 만년까지 살던 누상동 집을 샀다.
청전이 동아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 일어난 일장기 말살사건은 유명한 얘기다. 36년「베를린·올림픽」대회에 출전,「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워 이 사건으로 그는 감옥살이까지 했다.
1회「선전」에 입선한『추강귀어』, 2회「선전」에 입선한『모연』, 3회「선전」에 입선한 『한연』·『추산숙사』는 청전의 초기 작품이어서 독자성이나 개성이 뚜렷하지 앉았지만 4회「선전」의 특선 작『소슬』5회「선전」특선 작『첩장』, 6회「선전」의 특선 작『우슬』, 7회「선전」특선 작『산 지음』은 독창적인 세계로 발돋움하는 수작들이다.
청전은 l925년 4회「선전」부터 34년 14회「선전」까지 연속 10회 특선의 기록을 세웠다.
37년 16회「선전」에 내가 심사위원(심사참여)이 된 뒤 1년 후인 38년부터 청전도 심사위원(심사참여)이 되었다.
광복후인 46년 내가 이끌던「후소회」와 청전이 이끌던「청전화숙」이 합동으로「단구미술 원」을 세웠던 일은 지금까지 잊혀지질 않는다.
청전은 6·25 사변 후 대구에 피난 갔을 때 조그만 다방에서 단 한 번의 개인전을 가졌을 뿐이다.
청전 처럼 많은 작품을 남긴 사람도 드물 것이다. 72년 청전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 부쩍 그의 모작이 많이 나드는 것은 유 감된 일이지만, 그의 작품에서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서민성과 미학을 함께 지닌 고귀한 품격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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