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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찰수 윤석열의 다짐 "왼손엔 칼, 오른손에는 공정을 들리라" [이정재의 대권무림 3부⑤]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3부 제5편〉초출지존(初出之尊):무림 초짜가 지존좌를 차지하다   "이 지긋지긋한 곳도 이제는 끝이군."   명박대제의 얼굴에 흐릿한 희색이 돌았다. 무림옥에 갇힌 지 3년, 어느새 머리는 백발이 성성해졌다.   "당신을 가둔 나찰수 윤석열이 당신의 구세주가 될 줄이야…."   그의 아내 윤옥선자 역시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당연한 결과요. 나와 그네공주를 무림옥에 쳐넣은 재인군의 후계자 재명공자 따위가 어찌 무림지존이 될 수 있겠소. 더 크게 못 이긴 게 아쉬울 따름이지." "그렇지요. 잘 모르는 백성들이 당신을 손가락질하지만 천만의 말씀. 당신은 무림 경제를 누구보다 잘 꾸려냈고 재여무림 불패신화도 지켜냈어요. 재인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요. 빈말이지만 재인군은 참 안 됐네요. 퇴임 후 잊히고 싶다고 했는데 잊히기는커녕, 늘그막에 고생 좀 하게 생겼으니. 하지만 어쩌겠어요, 세상만사 사필귀정이니."   명박대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무림지존된 자의 숙명인가 보오""나찰수 윤석열은 어떨까요?"   "그는 최초의 무림감찰 출신이니, 역대 지존과는 다른 운명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자기 손으로 역대 지존을 감옥으로 보낸 자니 검찰의 칼이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알 것 아니겠소…." "그렇다고 과연 나찰수가 성공한 지존이 될 수 있을까요?"   "쉽지 않겠지만 확률은 반반이라고 생각하오. 그러려면 첫 번째 단추를 잘 꿰어야 하오. 우선 민주련이 크게 요동칠 거요. 구심점이 될 인재를 몽땅 잃었으니 이합집산과 세력갈등이 본격화하겠지. 곧 무림에 대분열이 생길 거요. 이걸 어떻게 잘, 얼마나 빨리 요리하느냐가 첫번째 과제가 될 거요. 무엇보다 반으로 갈린 강호 민심을 어찌 달래느냐가 관건이요. 자칫 정쟁에 시간을 질질 끌거나 전리품처럼 자리를 나눠 갖거나 대화합무림을 만드는 데 실패한다면 끝이요. 부끄럽지만 내 꼴이 날 수도 있소. 지존좌에 등극한 지 석 달 만에 좌파무림의 '미친소광풍'초식에 당해 권력의 대부분을 잃지 않았소."   윤옥선자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게 보면 천하의 나찰수라해도 재인군을 당장 어찌하기는 어렵겠군요. 그의 세력이 여전히 천하의 반을 쥐고 있음을 이번 비무로 확인했으니. 자칫 당신의 출옥도 덩달아 늦어질까 걱정이예요."  "그건 걱정 마시오. 늦어도 5월이면 나는 이곳에서 나가게 될 것이요. 석가탄신일이 오월 초여드레. 마침 재인군의 임기 하루 전이니, 악연의 사슬을 끊기에 이보다 좋은 날이 없소. 게다가 재인군은 자신의 측근 중 측근인 전경남도백 김경수를 꼭 사면해줘야 할 처지. 나의 사면은 오는 권력과 가는 권력의 화합선언으로 안성맞춤이요. 또 나를 풀어줌으로써 '윤핵관'들에게 자신을 잡아넣지 말라는 암시를 주는 효과도 있소."   나찰수 윤석열을 지존좌에 앉힌 주역 '윤핵관'이야말로 나 명박대제의 측근이었던 자들, 이른바 '이핵관'이 아닌가. 자신의 안위라면 무엇보다 끔찍이 챙기는 재인군이 이런 사정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쪽으론 워낙 영악한 재인군이 아닌가.   "흥. 아무리 그래도 재인군은 자신의 숙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에요. 재인군에 대한 백성의 원성이 이미 하늘에 닿았어요. 무림 정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려면 재인군은 당신보다 최소한 두 배는 더 고생해야 마땅해요. 딴 건 몰라도 백성에게 죄지은 무림지존은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신화는 꼭 이어져야 해요."   명박대제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졌다.   같은 시각 청와궐. 재인군은 벌써 몇 차례나 같은 자리를 맴도는 중이었다. 재명공자가 결국 패했다. 그렇다고 최악은 아니다. 그야말로 박빙의 승부. 나를 지지하는 백성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준 승부였다. 최선은 아니나 차선은 된다. 나를 위해선 최선의 결과일 수도 있다. 아무리 나찰수 윤석열이라 한들 절반의 무림을 무시할 수는 없을 터, 억지로 나를 무림옥에 가둘 수는 없을 것이다.  벌써 만반의 준비는 마쳤다. 명박대제는 그네공주가 지존좌에 오르자마자 청와궐 대신회의를 소집했다지. 그래놓고 "문제없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감옥행을 피하지 못했다. 그네공주는 감추느라고 감췄지만 청와궐 책장에서 한 뭉치의 밀지(密旨)가 발견돼 무림옥에 갇혔다.    나는 다를 것이다. 어떤 죄목으로도 나를 엮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게 불리한 모든 자료는 이미 폐기했다. 내겐 최고의 집사신공을 익힌 청와궐 총무비서가 있다. 그는 이미 바보공자 무현의 모든 밀지를 폐기한 적이 있다. 수첩 하나 글자 한 줄 놓치지 않았다. 내가 그를 5년 내내 집사로 데리고 있는 이유가 뭐겠나.  게다가 민주련의 180석은 내 든든한 바람막이가 돼줄 것이다. 이미 구심점을 잃은 민주련은 당분간 나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유월의 지방무림비무와 2년 뒤 무림의원 비무. 여기서 이겨야 한다. 민주련과 나 재인군의 운명이 이 두 개의 승부에 달렸다. 절대 질 수 없다. 반드시 권토중래(捲土重來),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중원을 차지하리라.      #군림천하   나찰수 윤석열은 화분 하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축 무림지존 등극' 화분은 현 무림지존 재인군이 보낸 것이었다. 나찰수는 재인군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거뒀다. 따지고 보면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선 것도 다 재인군 때문이 아니던가.   무림은 이제 달라질 것이다. 땅에 떨어졌던 정의와 공정이 빠르게 되살아날 것이다. 검찰공의 일인자인 나 나찰수 윤석열이 드디어 지존좌에 올랐으므로. 나를 선택한 백성들에게 다시는 실망과 배신감을 맛보게 하지 않으리라. 혹자는 내가 지존좌에 오르면 복수와 보복의 칼부림에 날을 지새울 것이라 하나 언감생심, 어림도 없는 소리. 5년 재인군 치하에 종지부를 찍게 한 백성의 눈이 시퍼렇게 지켜보고 있는데 어찌 구원(舊怨)을 푸는 허튼일 따위에 시간을 낭비하랴.    저 화분에라도 대고 맹세하리라. 역대 무림지존이 모두 감옥에 갇히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나 나 나찰수 윤석열은 그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전임 지존을 감옥에 보내는 일도 내 손에서 끊으리라. 무림사 최초로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워 주는 무림지존이 되리라. 자리 나눠먹기, 패거리 챙기기 따위는 나의 치세에 아예 없을 것이요, 구중궁궐 청와궐에 갇혀 나홀로 지존노릇하는 일도 끝내리라. 재인군도 못한 일, 광화문 지존 시대를 기필코 열리라.   "무림의 대화합을 이루리라. 오직 백성의 마음을 살피고 따르는 무림지존이 되리라" 어제 전무림언론이 모인 자리에서 나찰수 윤석열은 지존좌 등극 일성을 이렇게 열었다. 그런 그에게 누구보다 열렬한 환호를 보낸 것은 철수의사 안철수였다. 나찰수가 철수의사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한 것은 물론이었다.    "고맙소. 철수의사. 이 모든 게 철수의사 덕분이요. 26만 표 차라니. 3푼(80만 표)만 철수의사가 가져갔어도 비무의 향방은 바뀌었을 거요. 철수의사가 결단을 내려주시지 않았다면 지금 웃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재명공자였을 것이요."  "천만의 말씀. 우리는 어차피 공동운명체, 나찰수의 영광이 곧 나의 영광, 나는 내 소신껏 할 일을 했을 뿐이요." "그나저나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우리가 무림사에 남을 위대한 발자취를 함께 남기는 일은. 말이 나온 김에 철수의사께 한 말씀 드리리다. 귀공의 무림총리 등극은 시간을 갖고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소? 나는 솔직히 호남무림 출신의 무림총리를 생각하고 있소이다. 괜히 180석 거대 야당무림에 빌미를 줘선 안 되겠기에 하는 말씀이요. 물론 귀공의 양해와 허락이 있어야겠지만…."    나찰수가 말끝을 흐리며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철수의사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나찰수 윤석열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결코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달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오. 그렇게 하는 게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통합과 화해의 무림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듯해 하는 말이오. 나는 일구이언하지 않는 사내, 나를 믿고 큰 아량을 베풀어주시기 바라오." 나찰수가 대답을 채근하자 철수의사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 문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봅시다. " 철수의사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벌써 이런 식이라니. 나찰수가 비무에서 이기자마자 벌써 측근에게 귀를 잡혔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윤핵관' 중 최고 입안의 혀로 불리는 구중지설(口中之舌) 장제원은 새벽부터 그의 집을 지키고 있다가 넙죽 절하고는 도승지 자리를 따냈다고 한다. 실패한 무림지존으로 가는 첫걸음이 바로 측근에 휘둘린 인사이건만, 쯔쯔쯔 이를 어쩌면 좋을까.   5년 만의 재인군 천하 교체. 무림사 최초 검찰출신 무림지존의 탄생. 그 앞날이 마냥 탄탄대로로 이어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철수의사의 뇌리를 스친 건 바로 그때였다.    같은 시각 분당골. 재명공자는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갇힌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패배는 예정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민주련의 후보가 될 때부터, 재인군과 척을 지고 문파(文波)들의 미움을 살 때부터 그리고 나찰수 윤석열과 철수의사 안철수의 합일이 이뤄진 때부터.  하지만 돌이켜보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다. 한양무림에서 부동산감세 초식을 조금만 더 과감하게 휘둘렀어도, 심불리(心不利) 심상정을 무슨 수를 쓰든 주저앉히기만 했어도, 아니 최소한 철수의사의 막판 합일만 막았어도…. 갖은 상념이 미련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재명공자는 거세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와 그깟 생각들이 무슨 소용이랴. 이미 날은 저물고 물은 엎질러 진 것을. 내 아내를 원망하지 않는다. 무림초짜에게 패했다고 창피해할 이유도 없다. 어차피 칼날 위에서 춤추는 게 무림인의 삶, 져도 재미있다. 재명공자는 이제 선택해야 했다. 재기를 노릴 것인가, 이것으로 무림인생의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주인 잃은 민주련은 곧 이합집산의 길을 걸을 것이다. 국힘방은 국힘방대로 이전투구를 벌일 것이다. 그 격동의 현장에 나의 공간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지금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다 부질없는 일이다. 이것으로 됐다. 사력을 다해 싸웠고, 아쉬웠지만 즐거웠다. 그래, 이것으로 됐다. 애써 위안거리를 찾자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자 갑자기 젖은 솜처럼 온 몸이 무거워졌다. 재명공자는 곧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大尾〉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2.03.11 05:00

  • 안철수와 나찰수의 합일신공 "앞으로 다섯 밤, 무림의 역사를 새로 쓰리라" [이정재의 대권무림 3부④]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3부 제4편〉음양합일(陰陽合一) vs 형제야합(兄弟野合): 러브스토리냐 브로맨스냐   마지막 TV토론비무도 이렇게 끝나나 싶던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나찰수 윤석열이 '대장동범인은바로너' 초식을 재명공자에게 펼친 것이다.누가봐도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다." 황금 1000억냥은 재명공자 것, 대장동 도원결의"까지 그간의 모든 변화를 한 초식에 집어넣었다. 거칠고 강한 내공이 그대로 재명공자를 향해 쏟아졌다. 나찰수는 이 한 초식으로 승부를 결정지을 기세였다.   일순 허를 찔린 재명공자는 '대통령돼도특검' 초식으로 맞섰다. 윤나찰 저자가 이렇게 직격탄을 날릴지는 몰랐다. 어찌나 살기가 강한지 일도양단, 한칼에 몸이 둘로 베이는 듯했다. 그렇다고 겁먹은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더 거칠고 더 강하게 받아쳐야한다. 일명 '적반하장'초식으로 불리는 특검 초식이야말로 재명공자에겐 유일한 방어책이었다. 특검 초식은 윤나찰의 공격을 받아 그대로 돌려주는 반탄(反彈)의 기술이자 잘못되면 본인이 더 큰 치명상을 입는 양날의 칼. 웬만한 고수는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재명공자는 달랐다. 여반장(如反掌), 손바닥 뒤집듯 자연스레 펼쳤다. 나름 믿는 구석도 있었다. 그의 뒤엔 180석 거대 여권 무림의원이 있다. 그들은 재명공자에 대한 어떤 특검이든 막아내 줄 것이었다.    마침내 토론비무가 끝났다. 철수의사와 나찰수 윤석열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재명공자는 피식 웃으며  비무장을 빠져나갔다. 더 이상 반전은 없다. 철수의사는 내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 무림법 개정과 차차기 지존좌 약속, 다당제를 통한 군웅할거 시대 개막, 절대 안 물 수 없는 미끼였다. 남은 시간도 없다. 철수의사가 윤나찰과 합일신공을 펼치기엔 너무 늦었다. 그런데 뭐지. 이렇게 뒤통수가 걸리는 이유는? 오늘 철수의사의 공격이 좀 무디지 않았던가? 왠지 윤나찰을 봐주는 느낌이랄까. 그래, 기분 탓이리라.기분. 그 찜찜한 기분이 현실로 드러난 것은 불과 몇시진 뒤였다.    "주공, 큰일입니다. 철수의사와 나찰수 윤석열이 합일신공에 합의했습니다."    측근 중 측근으로 불리는 경기검(劍) 김용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통기(手通器)를 통해 들려왔다. 재명공자는 억지로 눈을 떴다. 축시(丑時),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평소대로 진시(辰時), 오전 8시에야 잠에서 깼다. 상황은 벌써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와 있었다. 가뜩이나 불리한 판세, 민주련에서조차 승리를 말하는 자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간신히 추격의 불씨를 살려놓았건만, 그자 철수의사가 기필코 본색을 드러낼 줄이야.    "최악이지만, 예상 범위 안에 있는 일. 너무 호들갑 떨 것 없네"   재명공자의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철수의사의 세력은 걱정할 게 없다. 이미 나찰수에게 갈 세력은 다 갔다. 둘이 합일신공을 펼쳤다 하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철수의사의 일할도 안 되는 세력은 나와 나찰수에게로 반씩 갈릴 것이다. 최악의 경우 6대 4 정도일까. 문제는 관망하던 중도무림이다. 철수의사의 합류로 나찰수에게 급격히 중도무림이 기울 수 있다. 어차피 중도무림의 백성들이란 게 대세를 쫓는 자들이니. 이건 막아야 한다. 기필코.   "이리되면 주공이 말씀하신 나찰수가 이기기 위한 세 가지 조건, 그게 모두 갖춰지는 게 아닙니까. 심려가 큽니다."   그랬다. 일찍이 나는 나찰수가 차기 지존좌를 차지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봤다. 최소한 세 가지 관문을 넘어야 비로소 가능할 일이었다. 첫째 심술(心術)도사 홍준표의 마음. 둘째 안철수와의 합일, 셋째 그네공주의 침묵. 그 중 어느 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 봤다. 그런데 나찰수가 마침내 그 셋을 모두 손에 쥘 줄이야.  조짐이 심상치 않다. 이미 시장에선 재명주가 급락하고 석열주가 급등하고 있다. 하룻밤이 더 지나면 본격 투표가 시작된다. 오늘 하루 모든 것을 돌려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필패다.     "나찰수와 철수의사, 너희 두 사람의 형제야합(兄弟野合=브로맨스)을 나는 절대로 묵과하지 않겠다."   으드득, 재명공자의 눈에선 시퍼런 불이 이글거리는 듯했다. 불굴의 싸움꾼, 왜 내 이름 앞에 이런 수식어가 붙는지 강호는 똑똑히 알게 되리라.       # 절벽에서 한 발 내딛기    삼월의 바람엔 여전히 비릿한 냉기가 묻어난다. 춘래불사춘. 오늘 이 땅의 백성들이 봄을 느끼지 못하는 건 꼭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병은 날이 갈수록 기승이고 민초들의 삶은 망가진 지 오래건만, 엉터리 무림지존 재인군과 그의 후안무치한 관리들은 "태평천하, 국태민안"만 되뇌고 있지 않은가. 저자들을 권좌에서 쫓아내지 않고 어찌 태평 무림이 있겠는가.나찰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9부 능선을 넘었다. 고개만 들지 않으면 이긴다."   참으로 쉽지 않은 길이었다. 국힘방 내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철수의사와의 합일신공은 이미 시효가 지났다고 했다. 표 계산만 따진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합일신공의 위력은 다른 곳에서 나타날 것이다.  우선 적의 기를 꺾어놓을 수 있다. 재명공자는 내가 세 가지를 얻어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나는 셋을 다 손에 쥐었다. 이제 그는 뭐라 할 것인가.   둘째, 적의 암수(暗手)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 재명공자와 나의 군세(群勢=지지율) 차이는 불과 2푼(2%포인트)까지 좁혀졌었다. 승부는 60만~70만 차이에서 갈릴 것이었다. 내가 철수의사와 합일하지 않았다면 저들은 조작과 부정, 특유의 암수를 쓸 수 있었다.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철수공자의 세력이 내게 합류하면 차이는 크게 벌어질 것이다. 암수가 끼어들 공간이 없어진다.  셋째, 더 중요한 건 믿음 효과다. 철수의사는 늘 이기는 자의 편에 선다. 멀리는 원순씨, 가깝게는 한성시장 오세훈까지. 그를 가져옴으로 내가 이기는 자임을 증명하는 효과가 있다. 철수의사야말로 잃을 것이 많은 상가(商家) 출신. 늘 안전한 곳을 쫓는 본능이 있다. 그런 그가 나를 선택했다는 것은 그 길이 안전하다고 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나찰수 윤석열의 지존좌 등극'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 머뭇거리던 중도무림 모두 내게 오리라. 철수의사의 성명절기인 백신프로그램처럼 안심(安心)과 함께 오리라.    돌이켜보면 고비가 많았다. 무림에 출사표를 던진 것부터 많은 고수가 무리수라고 했다. 그래도 했다. 귀제갈 김종인은 국힘방 입방(入幇)을 말렸다. 그래도 했다. 윤핵관들은 국민동자를 포용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했다. 국민동자는 귀제갈을 내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했다. 8개월짜리 무림 초출의 결단이 고비 때마다 힘을 발휘했다. 그게 어디 나 나찰수가 잘나서 그랬겠나. 재인군에 대한 백성의 분노가 하늘에 닿았기 때문이 아니겠나. 이제 마지막 고비를 넘었다. 더 이상 변수는 없다. 20대 지존좌는 내 것이다. 남은 6일간 고개만 들지 않으면 된다. 다음 무림은 지금과는 아주 다른 무림이 될 것이다. 나찰수의 눈은 이미 재명공자나 재인군을 넘어 그다음을 보고 있었다.    # 철수의사의 계산법   내 계산법은 분명하다. 이기는 쪽에 서는 것이다. 나는 상가 출신이다. 상인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다. 지켜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무릇 대국에 임한 자는 반집이라도 악착같이 챙겨야 한다. 반상 대국으로 치면 마지막 TV토론비무는 내가 꼭 챙겨야 할 반집이었다. 토론비무야말로 내 무공 실력을 강호 백성에게 자랑할 최고의 기회다. 그것도 아주 싼 값에. 나는 이미 "마지막 토론비무 때까지는 기필코 완주한다"고 말을 흘려놓았다. 나찰수 윤석열은 내 말의 숨은 뜻을 알았다. 그는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나를 일러 철수전문이라 비난하는 자들은 "역시"라고 하겠지만, 이번엔 다르다. 과거의 철수전문 초식은 그냥 사퇴였다.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이번엔 공동 무림을 만들 되, 내 독문(獨門) 무공인 '과학기술강국' 초식을 대표 무공으로 내세우기로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내게 이번 지존비무는 꽃놀이패였다. 재명공자 쪽은 쉽고 편한 길이었다. 완주만 하면 됐다. 얻는 것도 많았다. 다당제와 결선비무제, 차차기 지존좌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재명공자가 지면 민주련을 통째로 접수하고 재명공자가 이기면 호남무림의 맹주 노릇을 하면 될 것이었다. 호남무림을 대표했던 낙연거사와 세균공은 흘러간 물이 됐다. 나는 호남의 사위요, 부산무림 출신이니 민주련엔 나만 한 적임자가 없다. 호남 무림은 어쨌든 내 손에 들어올 것이었다. 그러나 나찰수의 손을 잡는 순간, 꽃놀이패는 사라진다. 국힘방에선 다음 지존좌를 놓고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국민동자 이준석, 제주의 아들 희룡공자, 한성시장 오세훈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어찌 무공을 익힌 자로서 일신의 영달을 위해 강호 대의를 저버릴 것인가. 재인천하를 끝내고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는 길이라면 어찌 가시밭길이라고 마다할 것인가. 미련도 후회도 없다. 철수의사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그런 그를 아내 무림의녀 김미경이 살포시 껴안았다. 국힘방에선 그간 호남무림 출신인 내 아내가 나찰수와의 합일신공을 결사반대한다고 음해해왔다.    "당신은 세력도 조직도 없이 필마단기로 백성의 마음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왔어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두 사람은 손을 꼭 쥐었다. 그렇게 삼월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오늘 밤엔 깊은 잠에 들 수 있을 듯했다.    외전(外傳):청와궐의 밤 청와궐의 재인군은 그 시각 좀체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산길에 왜 이리 걸리는 것이 많은지. 아내의 만의신공까지 문제가 됐다. 만의신공이야말로 만가지 옷을 갈아입듯 변신하는 무공. 청와궐의 안주인이 익혀서는 안 되는 금기의 마공 중 하나였다. 재인군은 "만의신공을 익힌 적 없다. 익힌 적 있다 해도 얼마나 익혔는지 알려줄 수 없다"고 버텼다. 두 달만 버티면 된다. 5월이 되면 무림지존수장고에 모든 기록이 묻힌다. 30년간 누구도 꺼내보지 못한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다. 누군가 아내의 만의신공 비급을 복제해서 우연히 청와궐 금고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그네공주를 무림옥에 가둘 때 그랬듯이. 밤이 길면 꿈도 길다더니, 재인군의 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2.03.04 05:00

  • 법카초식 혜경궁김씨, 못 말리는 건희씨 "지존좌는 내 손안에 있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3부③]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3부 제3편〉내자지전(內者之戰) 승어부(勝於夫); 남편보다 아내 싸움이 지독하다   예로부터 끊기 어려운 것이 미인의 정(情)이라.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이 그 앞에 무너졌던가.   月出斷岸口 달이 물가 절벽 어귀에서 나와  影照別舸背 떠나가는 배의 뒤꼬리를 비추네  且獨與婦飲 홀로 아내와 술 한 잔 나누니  頗勝政客對 정치꾼들 만나기보다 훨씬 좋다네    (*송(宋)나라 매요신(梅堯臣)의 舟中夜與家人飮을 일부 개작)    반푼(半分) 재명공자의 한 수 읊조림이 끝났다.   "천 년 전 송나라 시인이 마치 지금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구려."   혜경궁김씨가 살포시 그의 손을 잡았다. 재명공자에게 혜경궁김씨는 원군이자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의 인생에서 오로지 아내만이 전적으로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겐 믿을 친구도 의지할 가족도 없다. 비정(非情) 강호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10년 측근이든 20년 수하든 불리한 일이 터지면 '안면몰수모르쇠' 신공으로 내쳤다. 식구라고 다르랴. 지존 행보에 걸림돌이 되면 사정없이 버렸다.  이용할 땐 철저히 이용했다.    5년 전(무림력 2017년 1월 23일) 19대 무림지존 출사표를 던지던 날을 그는 잊지 못한다. 영하 13도~15도의 강력 한파가 며칠째 몰아치던 엄동설한. 소년공 시절 일했던 동양시계점 정문에서 출사표를 읽어내렸다. 가족 모두를 병풍처럼 뒤에 두른 채였다. 팔순 노모는 거동이 어려워 모포 한장을 둘러 휠체어에 앉혔다. 그럴만했다. 가족 간 욕설 녹취록으로 집안이 망하느냐 흥하느냐의 절체절명의 순간. 가족 모두가, 특히 어머니가 내 편이란 사실을 남들에게 알려야만 했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절절히 아셨을 것이다. 내 어머니는 묵묵히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한파를 한 시간 넘게 온몸으로 받아내셨다. 기꺼이 아들의 지존좌를 위한 도구가 되어주신 것이다. 그런 어머니 생각에 유세차에 오를 때마다 눈물이 난다.   그러나 혜경궁김씨는 다르다.    내 아내는 도구가 아니다. 아내는 나의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바로잡아주는 치료사다. 지난해 민주련 경선 비무 때도 나는 아내의 치유무공 덕을 톡톡히 봤다. 서로 멀리 떨어진 다른 지방에서 거친 싸움을 하고 난 뒤에도 아내는 밤이면 내 거처로 왔다. 칭찬해주고 토닥토닥 해주고 안아줬다. 아내의 치유무공은 백발백중, 나는 다시 힘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아내가 있어야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인가. 법카초식이 모든 걸 망쳤다. 법카초식에 기운을 빨린 혜경궁김씨는 치유무공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본래 법카초식은 마공 중 마공. 한번 맛을 들이면 집카초식이나 내카드초식을 다시는 쓸 수 없다. 남에게 들키는 날엔 즉시 무림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다.   "법카초식이 당신을 너무 힘들게 하는구려.  내가 달리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미안하고 괴롭구려."   혜경궁김씨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괜찮아요. 당신이 문제지요.  1차 TV토론비무 때 너무 힘들어하더군요. 얼마나 지쳤으면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을까. 지켜보면서 너무 안타까웠어요. 당신 혼자 다 하려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2차 TV토론비무 때는 일정을 싹 비우고 집중했는데, 그래도 아주 힘들었소.  나찰수 윤석열의 기세가 오를 대로 올랐소. 그에게 패하는 날엔 모든 걸 잃게 될까 두렵소."    재명공자는 크게 풀이 죽은듯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혜경궁김씨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무림은 절대 녹록하지 않아요. 아무나 지존좌에 앉히지 않아요. 당금 무림의 문제를 뚫어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지존좌로 끌어올려요. 15대 대중검자, 16대 바보공자 노무현이 다 그랬어요. 무공만 강하다고 지존좌를 차지할 수는 없어요.  나찰수처럼 강한 무공만 믿고 뽐내다 속절없이 사라져간 절대고수들이 얼마나 많았나요. 자신의 힘을 믿으세요. 당신의 무공을 믿으세요. 당신이야말로 무림 백성의 꿈과 가치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부자것뺏어나누기, 나라곳간헐어퍼주기 초식이야말로 시대 정신이에요. 강호 백성 누가 나누고 퍼주기를 반대하겠어요?   그 초식을 당신 말고 또 누가 제대로 펼치겠어요. 자신을 믿어요, 흔들리지 말아요. 열흘만 버티면, 열흘이면 천하가 우리 것이에요."   흐릿하던 재명공자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나는 결코 질 수 없다. 지면 죽는다. 꼭 이겨야한다.  그래, 나를 위해, 내 아내를 위해.  기다려라 강호여, 기다려라 무림아. 모란이 피는 춘삼월,  내가 왜 불굴의 재명공자로 불리는지 알게 되리라.      # 공작새와 악어   칠주야(七晝夜=일주일)전 무림언론 기자들은 일제히 옥수날심 김건희의 전갈을 받았다. 꼭 참조하라며 비전의 기사 한 꼭지를 첨부했다.  무림신복(神卜) 백재권의 관상평이 실린 기사였다. 무림신복은 나찰수 윤석열을 악어상, 그의 아내 김건희를 공작새상이라고 했다.  재명공자는 살쾡이, 그의 아내 혜경궁김씨는 퓨마라고 했다. 악어는 썩은 것들을 모두 먹어치운다. 악어에게 살쾡이는 한 입 거리일 뿐이다. 게다가 퓨마에 비하면 공작새는 기품이 몇 단계 위다.  김건희가 이런 관상평을 무림 언론에 널리 뿌린 속내는 안 봐도 알 듯했다.   '봐라, 무림신복이 누구를 차기 지존부부라고 하는지.'   그 김건희가 지금 눈을 부릅뜬 채 나찰수 윤석열을 닦달하고 있었다.    "가가(哥哥:오빠)가 직접 해요. 철수의사를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지으세요. 철수의사의 무공은 똑바로앞뒤막힘, 이런 자에겐 어떤 변초(變招)를 써도 안 먹혀요. 대놓고 면전에서 나찰수로 대결하세요. 재인군이며 민주련, 적폐수사초식으로 혼낼 사람이 누구냐고, 무림총리든 차기 지존좌든, 달라는대로 다 준다고 해요."   나찰수는 묵묵부답,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나이 오십이 넘어 만난 아내 김건희는 그에겐 그야말로 장중보옥, 손안의 구슬과 같았다. 불면 꺼질라, 쥐면 깨질라. 그런 그녀가 저리 기세등등 얘기할 땐 가만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다. 게다가 나찰수 윤석열이야말로 강호의 거친 사내들과 마찬가지, 예쁜 여자 앞에선 얼굴 빨개지고 말 못하는 순둥이가 아니던가.     '내가 알아서 하리다.'   나찰수는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간신히 삼켰다. 사실 내가 반푼 재명공자 따위에게 이리 고전하는 이유가 뭐겠나. 재명공자와 민주련은 내아내흠집내기 초식을 집중 연마했다. 초기 싸움엔 화력의 8할을 내 아내 공격에 썼을 정도다. 혜경궁김씨의 법카초식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진작 승부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아내 옥수날심은 무림인이 아니다.  화상(畵商)이다. 그림을 볼 줄 아는 무인이 진정한 무인이라고 믿는다.  어떤 무인이든 처음 만날 때면 서사국(瑞士國)의 조각가 자코메티를 아느냐고 묻는다. 알면 합격, 모르면 불합격, 잘 알면 최고의 무인이다.  내 아내가 익힌 무공이라고는 상가의 호신술이 전부다. 아무나친한척 초식이 장기다. 그러니 좌파 무림언론과 그리 격의 없이 어울리다 사달이 난 것이다.   사실 아내는 내겐 최고의 책사이기도 하다. 내가 귀제갈 김종인을 모셔오려고 애를 쓰던 시절,   아내 김건희는 귀제갈의 아내 만뇌파파 김미경에게 매일 수통기(手通器)로 연락했다. 만뇌파파 김미경이 누군가. 만 사람의 계략을 한 몸에 지녀 귀제갈마저 절절맨다는 바로 그녀다.  한길공과 국민교수 김병준까지 3김을 영입하려다 귀제갈의 자존심을 건드려 일이 꼬였던 때, 내 아내가 나섰다. "한길공이며 국민교수 김병준이 어찌 귀제갈 김종인과 비교되겠나.귀제갈께서 오시면 결국 자리를 내주고 물러갈 사람들 아니겠냐."며 만뇌파파를 설득했다.  만뇌파파 김미경은 "보통이 아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때 귀제갈의 합류로 결정적 고비를 넘겼다. 아내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파국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다.   민주련과 재명공자가 다시 아내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수위도 높다. 이름바꾸고경력부풀리기 초식이 안 먹히자 주가조작10억꿀꺽 초식을 들고 나왔다. 저들의 공세는 나와 내 아내가 쓰러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면 죽는다. 이겨야 산다. 이겨야 나도 살고 아내도 산다. 나찰수는 두 주먹을 힘껏 움켜쥐고 허공을 향해 어퍼컷을 날렸다. 건희가 키운 나찰수, 건희의 힘으로 지존좌에 오르리라.    # 여걸 둘, 사내 둘   겨울밤은 춥고 바람은 사납다. 그 좋던 군세(群勢=지지율)를 까먹고 칼 한자루에 몸을 맡긴 사내, 철수의사 안철수에겐 긴 불면의 밤이다.   "더는 없다. 끝까지 간다."     그의 다짐엔 힘이 실렸다. 아내 무림의녀(武林醫女) 김미경의 응원이 힘이 됐다. 혹자는 내가 아내의 말만 듣는다고 한다. 나찰수 윤석열과의 합력(合力)도 아내의 훈수를 듣고 거부했다고 한다. 천만의 말씀. 나는 무림의 일을 결코 아내와 상의하지 않는다. 서로 무공의 무자도 꺼내지 않는다. 아내를 무림의 일에 끌어들인 것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듯하다. 내 아내는 갸날픈 손에 독한 마음이라는 옥수날심 김건희나 공노비를 마음대로 부리는 혜경궁김씨와는 격이 다르다. 법카초식 따위는 익혀본 적도 없고 경력부풀리고주가조작 무공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내끼리의 겨룸이었다면 진작 승부가 났을 것이다. 물론 내 아내의 승리다.  무릇 무공을 익힌 사내라면 아내를 전장의 한복판에 밀어 넣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그런데도 아내는 나를 돕겠다고 나섰다가 역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런 아내를 두 번 울릴 수는 없다. 싸움엔 져도 승부엔 질 수 없다. 국민동자 이준석과 나찰수 윤석열는 나를 모욕했다. 합력을 말하는 내게 굴복을 요구했다. 아내는 모욕을 참지 말라고 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철수는 없다. 삼월의 초아흐레, 꽃잎처럼 산화하리라.    같은 시각, 청와궐에도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나찰수 윤석열에게 '분노한다사과하라' 초식을 쓴 게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퇴위길 재인군의 심사는 만감이 교차했다. 아내가 워낙 격분한 탓에 밀어붙이기는 했으나, 좋은 수는 아니었다. 내 아내는 전 법무장관 조국을 끔찍이 아꼈다. 그를 법무장관에 앉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도 아내였다. 내가 머뭇거리자 비행기에서 먼저 내려 휙 지나가는 바람에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아내인 만큼 조국의 배신자, 나찰수 윤석열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내의 불안도 점점 커지고 있다. 내 아내 둔파(臀婆) 김정숙은 애초 육중무공을 익혔다. 청와궐의 안주인이 돼서는 만의신공에 탐닉했다. 만 가지 옷을 입듯 화려하게 변신하는 것이었으나, 외피만 변화하는 수준에 그쳤다. 피부와 뼈를 바꾸는 탈태환골의 수준엔 이르지 못했다. 얼마 전 강호 잡배들이 내 아내가 만의신공에 사용한 황금 내역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판관들이 그것을 허락했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제 본격 하산길이 시작됐다는 뜻이리라.  아내는 청와궐의 밤을 무척 싫어한다. 요즘은 아예 무서워한다. 청와궐은 원래 사기(邪氣)와 선기(仙氣)가 강한 곳, 땅의 기운과 맞는 사람은 흥하되 맞지 않으면 비명횡사의 액을 맞는다는 요설이 난무했다. 그 사악한 기운을 느껴서일까. 아내가 청와궐 밖에서 잠을 청하는 날이 많아졌다. 재명공자든 나찰수든 누구 하나 믿을 수 없다. 아내와 나는 과연 무사히 청와궐에서 하산할 수 있을까.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2.02.25 05:00

  • 나찰수 윤석열의 장담 "시간은 기다리는 자의 것, 안철수는 온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3부②]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3부 제2화〉지존대노(至尊大怒)-무림 지존이 크게 노하다   20대 지존비무대회가 한 달도 채 안 남은 시각. 무림지존 재인군의 분노는 천하를 혼돈에 빠뜨렸다. 재인군은 거칠게 나찰수 윤석열을 공격했다. 직접 그를 겨눠 '분노한다사과하라'초식을 날렸다. 강호 민심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차기 지존을 뽑는 비무대회를 맞는 현 지존의 최대 책무는 공명정대. 무림법은 어느 한쪽을 공격하거나 비호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찰수 윤석열을 그리 거칠게 공격하다니. 재인군이 무림의 금규(禁規)를 깬 이유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혹자는 재명공자를 위해,  혹자는 나찰수 윤석열의 배신에 분노해서라며 저마다 그럴듯한 이유를 붙였다.  그렇찮아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지존비무의 승패가 더 깊은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묘하군, 묘해. 재인군은 왜 직접 나섰을까.   도대체 도와주는 거야, 방해하는 거야? 적이야 아군이야?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재명공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실 이상했다. 나찰수 윤석열의 노림수는 분명했다. 그는 차기 지존좌를 거머쥐면 현 지존 재인군의 세력을 청산하겠다고 공언했다. 그것도 무림 최고의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그네공주의 남은 세력을 끌어모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의 군세(群勢=지지율)는 상자에 갇혀있다. 간신히 4할 언저리를 맴돌 뿐이다. 권력교체를 바라는 5할 넘는 민심보다 크게 모자랐다. 한 푼이 아쉬운 지금, 그네공주의 세력은 큰 힘이 돼줄 터였다. 그런 공격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굳이 재인군이 직접 나서 '강력분노사과요구' 초식을 쓸 이유가 없었다. 선의로 해석하면 나 재명공자를 돕겠다는 뜻일 수 있다. 나의 군세 역시 상자에 갇혀있다. 재인군을 지지하는 4할 넘는 민심보다 크게 모자란다. 재인군을 추종하는 문파(文派)가 이탈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찰수 윤석열에 대한 재인군의 공격은 '역시 퇴임 후 재인군을 지켜줄 이는 재명공자뿐' 이라는 신호를 줄 수 있다. 나도 안다.   그런 의도라면 낙연노야를 시켜서 해도 충분했다. 낙연노야야말로 재인군의 복심. 낙연노야가 "분노하니사과하라"초식을 써도 충분했다. 문파는 능히 그 뜻을 짐작하고 내게 뭉칠 것이었다. 그런데 굳이 재인군이 직접 손을 쓰다니. 이는 실로 하지하(下之下)책이었다. 나찰수 윤석열이 누군가 그는 '맞을수록 큰다'는 반탄공(反彈功)을 익힌 자, 그가 국힘방의 지존 후보자가 된 것도 무법장관 추미애가 '묻지마공격' 초식을 마구 휘둘러댔기 때문이다. 재인군은 제2의 추미애가 되고 싶단 말인가. 4할 문파의 결집이 이뤄지면 뭐하나, 5할 넘는 반문(反文)이 결집하면 그게 더 큰 일 아닌가. 재명공자는 분노가 치밀었다.   둘 중 하나다. 지금 청와궐엔 이런 걸 계산할 머리가 아예 없거나, 재인군 수하엔 "아니 되옵니다"라고 말할 용감한 충신이 없는 것이다. 다 재인군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그나저나 재인군이 평소와 달리 나찰수에게 불같이 화를 낸 진짜 까닭이 뭘까. 세간의 짐작대로 뒤를 봐주기로 밀약한 나찰수가 공개 배신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저간의 의혹들이 모두 풀릴 터였다. 내가 이리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데도 재인군이 나 몰라라 뒷짐만 진 채 내 요구를 번번이 묵살한 것 말이다. 으드득~ 이를 악문 재명공자의 눈에선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분노가 터져 나왔다.   # 철수전쟁의 끝   功蓋三分勢 철수의 공적은 세 세력을 뒤덮고 名成新政治 높은 명성 새 정치로 이루었네 歲流石不轉 세월이 흘러도 돌은 변치 않는 법 遺恨失單一 단일화 못한 것이 한으로 남으리라 (※두보(杜甫)의 시(詩) 팔진도(八陣圖)를 일부 개작)   철수의사 안철수는 바로 밀지(密旨)를 찢어버렸다. 밀지의 뜻은 분명했다. 나찰수 윤석열에게 양보하라, 그러지 않으면 천하의 죄인이 되리라. 벌써 몇 번째인가. 나찰수 윤석열측의 공세는 집요했다. 견디다 못해 묘수를 낸 게 일주야 전.   '강호민심조사로 결판내자. 방식은 한성시장비무 때와 같다. 누가 차기 지존좌에 적합한가, 누구의 무공이 강한가를 따지자.'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공을 나찰수 윤석열에게 떠넘겼다. 받든 안 받든, 이제 단일화의 책임은 윤나찰에게 있다.   사실 이번 묘수야말로 밑져야 본전, 아니 무조건 남는 장사다. 내로라하는 민심조사 전문가들에게 이미 자문을 구했다. 누가 차기지존좌에 적합한가 50, 누구의 무공이 강한가 50. 이렇게 민심을 조사하면 무조건 내가 이기게 돼 있다. 문항을 만들어 비교해보면 분명해진다.    1. 재명공자와 싸워서 이기는 데 적합한 자는 안철수냐 윤석열이냐 2. 재명공자와 싸워 이길 강한 무공을 가진 자가 안철수냐 윤석열이냐   민심의 분포는 재명공자 40, 안철수 7, 나찰수 윤석열 45다. (나머지는 정의맹 심불리 3, 이 꼴 저 꼴 다 싫다 5) 역선택, 그러니까 재명공자 지지자들의 전략적 선택을 허용해   100명에게 물으면 최소 47(안철수+재명공자) 대 45로 안철수가 이긴다. 정의맹 심불리 3에 이꼴저꼴 다 싫다 5까지 합하면 최대 55대 45로 안철수가 이긴다. 어떻게 묻든 상관없다. 민심조사만 하면 내가 이기게 돼 있다.   국민동자 이준석은 이런 계산에 밝다. 그가 죽어도 강호민심조사를 반대하는 이유다. 물론 국힘방에도 찬성하는 이가 있다. 국민교수 김병준은 "무림은 감동"이라며 "받자"고 한다. 그러나 국힘방이나 나찰수가 응할 가능성은 없다.  그들은 다른 꼼수를 동원할 것이다. '역선택 허용과 불허, 두 가지를 다 하자. 그런 뒤 합산하자.' 계산은 뻔하다. 역선택을 불허하면 70대 30으로 윤나찰이 이긴다.  내가 역선택에서 최대치 55를 얻더라도 합산하면 윤나찰을 이길 수 없다. 뻔히 보이는 이런 수에 내가 말려들 것 같나. 물론 내 측근 중엔 "이런 제안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이가 있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3등에 그칠 것, 명분과 실리를 다 챙길 수 있는 '철수를 위한 출구전략'이라며.   나도 안다. 그러나 어찌 그런 얘기를 내놓고 하랴. 더 괘씸한 건 나찰수 윤석열이다. "좋은 제안이지만 아쉽다"는 말만 남긴 채 가타부타 응수가 없다. 내가 속이 탄다. 그러다 덜컥 조급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급기야 "나찰수 윤석열은 왜 응답하지 않나"며 다그쳤다. 윤나찰에게 속내를 보인 건 아닐까. 내리는 눈발에 가슴이 시려 왔다.    # 나찰수가 시간의 숙성법을 익히다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존재이며 마음을 정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한다. 법국(法國)의 철학가 지라드의 말일세"   굳은 표정으로 나찰수 윤석열이 그렇게 말했을 때, 국민동자 이준석은 흠칫했다.   "달리 말하면 내가 무엇을 강력하게 원하면, 다른 사람도 그것을 원하게 된다는 뜻이네"   그러면서 나찰수는 힘주어 말했다.   "철수의사 안철수 문제는 내게 맡기게.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네, 대신 내가 무엇을 강력히 원하는지는 잘 아네. 그러니 그도 그것을 원하게 될 것일세. 더 이상은 철수의사 건에 간여하지 말 것이며 그에 대한 비방도 삼가도록 하게."   그날 이후 나 국민동자는 철수의사에 대한 공격을 접었다. "야합 없는 단일화는 할 수 있다"며 물러섰다. 그런데 철수의사가 저리 뒤통수를 칠 줄이야. 그의 노림수는 뻔하다. 안철수식 강호민심조사는 나찰수 윤석열에겐 백전필패, 결코 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걱정할 건 없다. 결국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 안철수가 될 것이다. 나찰수 윤석열의 내공은 일취월장이다. 그는 마침내 '시간의 숙성' 법을 익혔다. 무릇 무공 초식이란 시간 배합의 예술. 상대가 단단히 준비하고 있을 땐, 아무리 강한 초식을 사용한들 효과를 보기 어렵다. 기다리고 늦추고 흘러가게 해야 한다. 상대의 찔러오는 칼을 흘리고 빈 공간에 내 칼을 집어넣는 것.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시간의 숙성'법이다.   재인군과 철수의사를 상대할 때 그가 보여준 게 바로 그것이다. 재인군이 '정치보복이냐'라고 물으며 칼을 던졌을 때 사실 응수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도 죽을 것이요, "아니다"라고 해도 죽을 것이었다. 나찰수는 재인군의 칼질을 슬쩍 흘려내며 "당신과 같은 생각이다"고 했다. 그야말로 절묘한 '시간의 숙성' 초식이 아닌가. 시간을 통해 세상이, 강호가 저절로 알아듣게 하는 절대 무공. 무릇 무림의 절대고수가 되려면 꼭 익혀야 하는 무공. 그러나 아무나 익힐 수 없는 무공. 무림동자는 그날 이후 나찰수를 달리 보게 됐다.   아니나다를까. 안철수가 강호민심조사 초식으로 공격했을 때도 나찰수는 시간의 숙성법으로 대응했다. 그는 "좋은 제안인데, 아쉽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찰수는 세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놨다. 안철수의 제안을 받거나, 거절하거나, 조건을 넣어 받거나. 그야말로 무림의 절대종사로 불리던 대중검자나 종필노사에 견줄만한 수법 아닌가. 시간의 숙성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던 13대 무림지존 보통인마(普通人魔) 노태우가 말한 "시간의 위대함을 알 때, 무공의 위대함이 나온다"라던 구결(口訣:입으로 전하는 비결) 그대로다.   이미 철수의사는 기가 꺾였다. '시간의 숙성' 초식에 당한 그에겐 혼자 가거나 나찰수의 품으로 뛰어들거나 두 가지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다. 역선택 허용과 불허, 두 개의 강호민심조사를 제안할 것도 없다. 나찰수 윤석열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아는 무인(武人), 철수의사 안철수도 그것을 원하게 될 것이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2.02.18 05:00

  • 길 잃은 안철수의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 "하늘이 무너져도 연횡(連衡)은 없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3부①]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3부 제1화〉 이인삼각: 누구와 다리를 묶을 것인가    무력(武曆) 2022년 두 번째 달. 천하 무림의 눈과 귀는 철수의사(義士) 안철수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려 있었다.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지켜보는 구경꾼의 심정으로. 불과 스물일곱날을 남긴 지존비무 판세는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 열쇠는 철수의사가 쥐고 있었다.     #민주적 절차로 임금 뽑는 나라   무림신사 정성호는 여전히 분을 참지 못했다. 재명공자의 책사이자 오른팔로 불리는 그다.   "이게 말이 됩니까.  재인군은 주공의 승리를 바라지 않는 게 틀림없어요. 검찰을 움직여달라는 것도 거절, 국고를 털어 자영업자에게 황금을 뿌려달라는 것도 거절, 코로나 역병 관리를 느슨하게 해달라는 것도 거절, 벌써 일곱번 째 거절입니다. 도대체 무슨 수로 이기라는 겁니까."   재명공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재인군은 누가 이기든 별 관심이 없는 듯하오. 오로지 권좌에서 내려온 후 자신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오. 그 점에서 그는 나보다 나찰수 윤석열을 더 믿는 것 아니오?"    재명공자가 그런 말을 할만했다.  당금 강호의 재인군 지지세력인 문파(文派) 사이에선 공공연히 이런 얘기가 나돌았다.    '재명공자가 차기 지존이 되면 재인군은 무림옥에 갇힐 것이다. 재명공자는 사리사욕에 따라 행동하는 자,  게다가 재인군에게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자,   재인군을 잡아넣는 게 유리하다고 여기면 능히 그리할 위인이다. 반면 나찰수 윤석열이나 그의 아내 옥수날심 김건희는 다르다. 재인군과는 애증 관계,  원한도 복수심도 없다.  억지로 재인군을 잡아넣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나찰수를 차기 지존에 앉히자.'   "어차피 재인군에게 더 기대할 것은 없소이다. 우리 힘으로 해냅시다. 무척 어렵다고 하나, 아직 시간이 꽤 남았소. 재여무림 불패신화가 괜히 생겼겠소. 아무리 위기에 몰려도 재여무림엔 판을 뒤집을 수가 여럿 있는 법이지요. 그나저나 철수의사 안철수와의 합력(合力)은 완전히 물 건너간 겁니까?"   "바른검 김관영, 무림묘뇌(武林妙腦) 이광재, 두 분이 계속 물밑 접촉 중입니다. 무림총리 5년 보장, 무림장관 5명 임명권 보장,  원하면 재명공자와 일대일 경선비무까지, 우리가 쓸 수 있는 패는 다 내놨지만 가타부타 답이 없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밀어붙여야 합니다. 우리는 질 수 없습니다. 지면 죽는 전쟁입니다. 철수의사와의 단일화는 꼭 해야 합니다. 지존좌 빼고 원하는 건 뭐든지 준다고 하세요. 그럴 능력이 있는 곳은 나와 민주련입니다. 나찰수 윤석열은 지존좌에 오른들 안철수에게 무림총리를 줄 수도,  공동 정부를 꾸릴 수도 없어요. 180석의 무림의원을 보유한  우리 민주련만 가능한 일이란 걸  잘 알아듣게 하세요."    무림신사 정성호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재명공자는 그런 그를 보며 상념에 잠겼다.  철수공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더라도 그가 윤나찰에게 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안철수와 합력을 해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안철수가 윤나찰과 합력하도록 놔뒀다간 불문가지, 필패다.   어차피 한칼에 전세를 뒤집을 묘수는 없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최후의 절초를 꺼내야 한다. 지존임기단축3년 초식과 지존권력힘빼기개헌 초식. 현 무림의 모든 폐해는 절대 권력을 용인하는 무림지존제 때문. 오죽하면 "민주적 절차로 임금을 뽑는 제도"란 말이 나오겠나.  무림지존을 신의 권좌에서 인간의 자리로 돌려놓는 게 무림의 승자독식, 진영 전쟁을 끝낼 유일한 방책이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하지 않은 일,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서라도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귀제갈 김종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양대 문파가 무림 권력을 독점하는 양당제를 끝내고 다당제 무림을 만들겠다고 천명하라. 그것이 최후의 구명절초가 될 것이다."   그래. 무엇인들 못 하랴. 어차피 지면 죽는 전쟁. 이기기 위해서라면 독약인들 못 들이키랴. 으드득~ 재명공자는 으스러지라 이를 악물었다.   #나찰수의 봄날      나찰수 윤석열에겐 요즘의 나날들이 꿈만 같았다. 두 달째 이어진 암흑의 시간은 마침내 끝났다. 무림언론들은 이제 나 나찰수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점치고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나찰수는 새삼 감회가 밀려왔다. 물론 오늘의 성과는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었다.   TV논검(論劍)비무에서 크게 밀리지 않은 것이 덕을 봤다. 더 큰 건 민주련의 내아내녹취록공개 초식이 더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 옥수날심 김건희가 잘해서가 아니다. 이독치독(以毒治毒), 독은 독으로 이겨내는 법,  혜경궁김씨의 마각이 드러난 게 반전이었다. 혜경궁김씨는 10여년 간 횡령한우초식과 법카멋대로쓰기 초식을 몰래 사용했다. 그러다 측근의 배신으로 그 사실이 탄로 났다.  두 초식이야말로 무림인에겐 금기 중 금기인 마공,  쓰는 자는 당장 무공을 폐지당하고 무림에서 쫓겨났다. 그야말로 천우신조,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밖에.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다.  우리 백성은 쉽게 잊고 용서한다. 우리 백성은 또 쉽게 미워하고 비난한다.  언제 혜경궁김씨를 용서하고   내 아내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지 모른다.   이제 남은 변수는 하나. 철수의사뿐이다. 사실 진작 내가 나섰어야 했다.  그러나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다. 국힘방 내에 반대 세력이 많았다.  국민동자 이준석은 공공연히 4자 필승, 자강론(自强論)을 외쳤다.  섣불리 안철수와의 합력을 말하는 순간, 극심한 분란과 반발로 군세(群勢=지지율)를 잃을 수 있다. 그 바람에 심술(心術)도사 홍준표마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내 고민을 읽고 제주의 바람 희룡공자가 총대를 멨다. 희룡공자야말로 원전활탈(圓轉滑脫:일을 처리하는 데 원만하고 거침이 없음)의 절대고수. 더 늦었다간 민주련의 유혹에 철수의사가 넘어갈 수도 있었다.   희룡공자는 내게 세 가지를 주문했다.  철수의사와의 합력에 성공하려면 첫째, 너무 세세한 것까지 따지면 안 된다. 권력을 나눠먹는다고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둘째, 너무 화끈해서도 안 된다. 벌써 오만해졌다고 강호 민심이 돌아설 수 있다.   셋째, 나 나찰수와 철수의사 둘이 담판을 지어야 한다. 옛 대중검자와 종필노사처럼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는 형식이 바람직하다.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철수의사와 나의 무공과 기질은 합(合)이 맞는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철수의사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그렇다고 끝은 아니다.  재명공자에겐 비장의 절초가 남아 있다. 임기단축3년 초식과 지존권력힘빼기개헌 초식. 일찍이 귀제갈 김종인옹이 내게 익히도록 권유했던 무공이다.  당시엔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 무공은 사실 재명공자에게 더 맞는다. 원래 이 무공을 쓰려면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첫째, 이대로 가면 불 보듯 패할 후보여야 한다.   이길 가능성이 큰 사람은 쓸 수 없다.  둘째, 무림의회의 다수 의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개헌초식을 성공적으로 펼칠 수 있다.  셋째, 지면 죽는 지존 후보라야 한다.  그래야 주변 세력의 반대를 물리칠 수 있다.   지금의 재명공자에게야말로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이걸 안 하면 그는 죽는다.  그런 판에 독약인들 못 들이킬 리 없다.  그라면 능히 '백성의 6할이 비호감인 상황에서 누가 지존좌에 오른들 무림이 제대로 굴러가겠나'라며 '나는 2년만 지존좌에 앉겠다'고 할 수 있다.  그래놓고 이긴 뒤 손바닥 뒤집듯 뒤집을지언정. 대비책은 하나뿐. 나도 같은 무공을 펼치는 것이다.  그런데 꼭 그래야 하나.  이런 독약을 들이켜지 않고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아니야, 해야 해, 해야 해, 해야 해. 나찰수는 격하게 도리질을 했다.    # 철수의사의 선택, 李냐 尹이냐   紛紛世事無窮盡 어지러운 세상일 끝이 없더니  天數茫茫不可逃 하늘의 뜻은 피할 길 없어라 鼎足三分已成夢 삼분 천하는 이미 꿈이 됐건만 哲秀憑勝空牢騷 철수는 이기겠다며 흰소리하네    철수의사 안철수는 밀지(密旨)를 구겨 휴지통에 던졌다. 밀지에 적힌 시구의 뜻은 분명했다. '3자 대결 구도는 이미 꺾였다. 그러니 지존 비무를 포기하라.' 쉽지 않은 싸움인 줄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하지만 뒤집어보라. 지금 여의주를 쥔 자가 누구인가.  재명공자와 나찰수 윤석열이 왜  지금 내게 이리 매달리고 애걸하겠나. 자신들의 힘만으론 지존좌를 거머쥘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혹자는 나를 일러 철수전문초식의 대가라 부르나 천만의 말씀. 더이상 철수는 없다. 이번에야말로 내 진짜 무공 '새정치'초식의 위력을 보여주리라. 눈이 있는 자 보라. 당금 무림의 실상이 어떠한가. 나라의 존망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3년째 계속되는 역병으로 백성은 온통 절망과 암흑에 빠졌다. 그런데도 나찰수와 재명공자는 케케묵은 흑색무공으로 이전투구만 벌인다. 눈만 뜨면 나라 살림을 뭉텅뭉텅 거덜 내는 퍼주기 초식이요, 입만 열면 '네마누라가더못났다' 초식으로 암수(暗手)를 쓰기 일쑤니 이런 자들을 어찌 믿고 나라를 맡기랴. 백성들에게 차선(次善)이 아니라 차악(次惡)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게 어찌 무공을 익힌 자의 도리라 할 수 있겠나.     이번처럼 비참한 지존비무는 없었다. 나 철수의사 안철수만이 그런 백성의 아픔과 좌절을 달래줄 수 있다. 내 측근 호남문파 출신의 무림의원들은 은근히 재명공자와의 합력을 부추기고 또 다른 이들은 나찰수와의 합력을 말하나  나는 둘 중 하나와 합할 뜻이 조금도 없다.   나야말로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민주련의 재인군에게 속아봤고 국힘방의 국민동자 이준석과 귀제갈 김종인에게 당해봤다. 거대 방파와의 합력이란 게 사실은 일방적 양보와 희생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이번엔 철수도, 합력도 없다.  이번엔 기필코 끝을 볼 것이다.   밀지를 보낸 자는 내게 이렇게 으름장을 놨다. "귀공의 잘못된 선택으로 정권교체에 실패하면 자유대한무림이 멸망할 것"이라고. 물론 내가 재명공자와 손잡는 일 따위는 하늘이 무너져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웬만해서는 나찰수를 돕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무림 권력 교체에 실패한 들 어쩌랴. 진실을 말하자면,  세상이 멸망하는 일 따위는 없다. 단지 세상을 짊어지는 자가 바뀌는 것일 뿐.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2.02.11 05:00

  • 안철수·재명공자·윤석열의 동상이몽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로 내가 이긴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⑩]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10화〉원후취월(猿猴取月)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자 누구인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철수의사(義士) 안철수는 '피식' 웃었다.  딸 아이가 부르던 동요 한 소절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나와야지. 내가 나와야 좋은 거지. 남들만 나오는 TV가 무슨 재미인가.   혹여 반푼 재명공자와 나찰수 윤석열만의 TV논무(論武)가 이뤄졌으면 어쩔뻔했나.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꼼짝없이 '양호지쟁(兩虎之爭)'이란 세뇌술(프레임)에 갇혔을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정족지세(鼎足之勢), 세 솥발이 서로 팽팽히 맞서는 형세.   세 솥 발을 발판으로 중원을 노려야 한다. 이름하여 제갈량의 천하 삼분지계.  그러려면 꼭 필요한 게 TV 논검(論劍)비무다.    哲秀當日嘆孤窮 철수는 그때 외롭고 궁핍해 탄식했는데   何幸判官有電視 판관이 TV토론을 잡아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欲識他日分鼎策 훗날 천하가 셋으로 나뉠 방법 알고 싶었던바, 都人笑指畵面中 모든 이들이 웃으며 TV화면을 가리키더라    TV 논검비무는 마지막 남은 승부처다.  실제 칼은 안 들었지만, 칼보다 날카로운 혀를 상대해야 한다.    잘해서 내 세력을 불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적을 낭떠러지에 밀어 넣을 수는 있다.   물론 다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반대로 내가 당할 수도 있다.     아픈 기억도 있다.   지난 19대 지존 비무 TV논검 비무는 내겐 악몽이었다.   다 잡은 싸움을 TV논무로 졌다.   민주련의 세뇌술에 쉽게 넘어간 내 잘못이었다.   18대 지존 비무 땐 또 어땠나.  통진방주 정희가 그네공주를 공개 저격했다.  그는 "나는 당신을 쓰러뜨리려고 지존비무에 출전했다"며   TV논무 내내 그네공주에게만 공격을 퍼부었다.  그네공주를 쩔쩔매게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뿔싸 되레 강호의 민심이 역류했다.   동정표가 몰리면서 그네공주의 세력이 더 커졌다.      내겐 충분한 실전 경험이 있다.   이번 TV논검에선 결코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승산은 내게 있다. 강호 민심은 두 갈래다.   '나찰수는 무조건 싫다'와 '재명공자는 죽어도 싫다'.   이런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거려 줄 이, 나 말고 누가 있으랴.   게다가 저들의 무공과 초식을 보라.   하나같이 판박이. 퍼주기 아니면 베끼기다.   이런 독창성 없는 무공으로 어찌 강호의 새 미래를 열어갈 수 있겠나.   과학 무림지존, 이게 나의 비전이요 대한 무림의 미래다.   나의 비무는 운명이다. 대한무림의 미래를 열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철수의사에겐 그 준엄한 명령이 뚜렷이 들리는 듯했다.     '철수여, 우리들은 미래를 보는 눈빛으로 당신을 본다. 그것은 기대와 갈앙(渴仰),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애증으로 가득 차 있다.'     # 모든 전투에서 이기는 전쟁은 없다    무림신사 정성호가 굳이 요청해 시작한 바둑 한 판. 바둑판엔 5곳에서 어지러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재명공자는 어느 한 곳 물러나는 법이 없었다.  강수, 또 강수.    "주군, 모든 전투에 이겨야만 전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오."    무림신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주군의 장점이자 강점이 바로 토론 비무를 너무 잘한다는 것이요. 그러니 하나도 지지 않으려 하오. 어떤 주제든 다 이기려고 한다는 말씀이오. 주군은 반상의 모든 싸움에서 이기고 승부도 이기고 싶어하오.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오. 반상의 전투란 본래 내가 강한 곳이 반이면, 적이 강한 곳도 반.   다 이기려다간 필시 화를 부르게 마련이오. 적이 강한 곳은 피하고 내가 강한 곳에서 싸워야 하오.  모든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선 질 수 있소. 지금의 이 바둑처럼."   그랬다. 재명공자는 5곳의 싸움에서 모두 이겼지만, 결과는 정성호의 반집 승이었다.     "차라리 심술(心術)도사 홍준표에게 배우시오.  모르는 척, 물러서고 져주시오. 웃고 칭찬하고 넘겨주시오.  재명스러움 대신 무림지존 다움을 보여주시오. 남은 기회는 하나. TV논검비무 뿐이요.  다 이기려면 필히 질 것이요,  물러설 줄 알면 비로소 승리의 길이 열리리다. 내 이런 이치를 말하고자  굳이 주군께 바둑 한판을 청했소이다."   "명심, 또 명심하리다."   재명공자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무림신사 정성호의 말이 아니라도 잘 안다. 3할 5푼에 갇힌 내 세력은 준동의 기색이 전혀 없다.  이대로는 안 된다.  더 끌려가면 무조건 패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자신 있었다.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었다. 청와궐과 감찰, 포졸과 거대 여권무림까지 다 내 것이다.  이 압도적 화력으로 못 해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나로 말하면 만사무불통지(萬事無不通知), 천하에 모르는 것이 없다.  십팔반 무예를 모두 익혔다.   다만 내가 놓친 것은 하나 있다. 인성(人性) 그러나 도대체 그게 뭐냔 말이다.  무림의 철칙은 강자존(强者存), 강한 것이 살아남는 법 아니던가.  가족과 인성쯤이야 강해지기 위해 얼마든지 희생이 가능한 것 아니었더냐.  그런데 이게 뭔가.  그 잘 듣던 암수와 암계가 무용지물이 됐다.  옥수날심 김건희를 때리면 혜경궁김씨가 소환되고 고발사주엔 대장동이 거울에 비친다. 녹취록을 틀면 형수 욕설 소리가 더 커진다. 이래서야 백약이 무효다.       그렇다고 절망은 이르다.  우리 백성들은 쉽게 잊고 용서한다. 한 달여 뒤, 비무 당일에는 모두 잊을 것이다.   호남과 열성 지지 백성이 뭉칠 것이다.     반전의 시작은 TV논검비무부터다.  내 세력을 키울 수는 없지만 나찰수 윤석열을 나락으로 떨굴 수는 있다.     아직 비장의 절초가 두 개 남아 있다. 하나는 철수의사 안철수와의 협력이다.  민주련주 송영길은 자신의 임무를 다해낼 것이다. 내가 이겨야만 그의 차차기 지존좌도 든든해질 것이므로.   안철수의 세력은 내 쪽으로 합해져야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나와 합하면 그의 세력 중 8할이 내게 올 것이다.  그러나 나찰수는 안철수의 세력 중 절반도 얻지 못할 것이다. 안철수는 "재인군을 같이 치자면 좋다"며 비아냥댔지만, 그것도 좋다. 왜 안 되겠나.  이길 수만 있다면, 철수의사의 무슨 조건이든 들어줄 수 있다.  연합무림, 공동통치인들 약속 못 하랴.  내가 지존좌를 쥔 후에 "진짜인 줄 알더라"며 뒤집으면 그만이다.   안철수와의 합일은 그것이 성사되든 안 되든, 내게는 이득이다. 적어도 나찰수와 안철수의 합일을 막아줄 테니. 그런데 TV논검비무도 안철수의 정족지세도 안 통하면, 그땐? 결국 마지막 절초, 내각무림과 임기단축공을 꺼내 들 수밖에 없나. 그래, 뭐든 못하랴. 이길 수만 있다면. 어차피 무림은 강자존.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무기력하게 죽어갈 수는 없다.     # 끊어야 할 때 끊지 못하면 되레 당한다   "하나. 범인 취조하듯 하면 안 됩니다.  재명공자는 여권 무림의 지존후보. 격에 맞는 대접을 해줘야 하오.  재명공자를 공격하는 것은 오로지 백성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고 믿게 해야 하오. 둘. 모르는 걸 안다고 하는 순간 바보가 되는 것, 모르면 모른다고 하시오.  심술도사 홍준표에게 배우시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유머를 잊지 말아야 하오. 셋, 일신우일신을 명심하시오.  두 달 전 경선 때보다 나아졌다. 환골탈태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이젠 웬만한 초식은 다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백성들이 믿게 하시오.   비결은 하나, "학습속도가 빠르다"는 말을 되뇌는 것이오."    백발자 한길공의 열변에 나찰수 윤석열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난 국힘방 경선 비무는 손발을 묶고 싸웠습니다.  같은 편을 반신불수 만들 수는 없잖습니까.  제 성명절기 나찰수는 아예 접어두고 수비초식만 잔뜩 펼쳤지요. 이번엔 다를 겁니다. 이번에야말로 누구 하나 죽어도 상관없는 진검 승부. 재명공자에게 아예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힐 것입니다. "   한길공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논검비무는 기세, 기세에 눌리면 심마(心魔)가 찾아오지요.  심마에 빠지면 자신감을 잃고 어떤 무공도, 어떤 초식도 휘두를 수 없게 됩니다.  재명공자를 심마에 빠뜨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철수의사 안철수는 어찌 상대해야 좋을까요. 이참에 기를 꺾어 감히 정족지세는 꿈도 꾸지 못하게 해야겠지요?"   한길공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실실이라, 있는 듯 없는 듯하시오. 반푼 재명공자와 그의 측근들은 정족지세가 필승이라며 좋아하지만, 천만의 말씀. 철수의사가 버텨주는 게 오히려 귀공에게 유리합니다.  재야무림의 반문(反文) 세력은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 곳으로 뭉칩니다.  양자 대결이 되면 위기감이 떨어져 비무에 참가하지 않거나 뿔뿔이 흩어질 가능성이 있소이다.  그리되면 역으로 귀공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소.  철수의사가 최후까지 버텨야 반문 세력이 모두 귀공에게 올 것이오.  막상 비무 당일엔 재야무림의 모든 힘은 재인군을 이길 수 있는 사람에게 집중되게 마련,  당연히 철수의사의 세력은 모의전투 때와는 크게 떨어져 일할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오."   "과연 공의 말씀을 들으니 귀가 번쩍 뜨이는구려. 명심, 또 명심하리다."   이주야(二晝夜)만에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재명공자는 벽에 갇혔다. 그 벽은 완강하다. 결코 그는 벽을 깨지 못할 것이다.  남은 40일 실수만 하지 않으면 지존좌는 내 것이다.   지금 치솟는 내 세력은 다시는 거꾸러지지 않을 정도로 기세가 강하다. 남은 변수는 TV논검비무와 철수의사 뿐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방심은 금물. 철수의사와는 일찍이 뜻을 함께한 사이. 그는 나를 "천진난만한 호걸"이라 불렀다. 그가 재명공자 편에 설 리는 결코 없을 것이나, 만사 불여튼튼.   그에게 모든 것을 줄 것처럼, 서로 합일할 것처럼 해야 한다.  그래야 그를 잡아놓을 수 있다.  그는 재인군과 손을 잡았던 인물.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 실수를 반복했던 자,  마지막 순간이 오면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무도, 심지어 그 자신도 알 수 없다. 차기 지존좌를 그의 선택에 맡겨서는 절대 안 된다.  안철수를 끝까지 천하 삼분지계 속에 가둬놓는 것,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에게 붙여진 이름 철수의사(義士)란 별명처럼 대의를 위해 장렬히 철수하도록 하는 것.  그게 지존좌로 가는 마지막 걸음이 될 것이다.      비정 강호에 의미 따위는 없다.    그곳에 사는 우리에게도 의미 따위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한다.    그것에 의미가 없다는 사실마저 의미 따위는 없음에도.  무림의 의미는 오직 하나,   강자존.    (『블리치』에서 패러디)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2.01.28 05:00

  • 귀제갈 김종인 "안철수로는 필패, 재명공자가 원하는 바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⑨]

     ━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9화〉 목란사(木蘭辭) 중국엔 목란, 한국엔 건희와 혜경, 여걸천하다     남산골 다루(茶樓)에 올라서는 귀제갈 김종인의 발걸음엔 힘이 넘쳤다.  얼굴엔 광채가 번쩍였다.  내공이 깊어지면 나이를 먹을수록 젊어진다더니,  반로환동(返老還童) 설마 그 경지에 이른 것일까.  나찰수 윤석열과 결별한 지 이주야(二晝夜). 귀제갈에 대한 무림의 관심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금세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귀제갈 어르신, 도대체 당금 무림이 어찌 돌아가는 겁니까." "차기 지존좌는 누가 차지할까요." "철수의사와 나찰수는 연합할까요?" "나찰수의 아내 김건희는 진짜 여걸입니까?"    민초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귀제갈은 싫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천천히, 한 사람씩 차근차근히 합시다. 내 이제 야인으로 돌아온 몸, 정보도 없고 아는 것도 없지만  성심껏 답해보리다. 다만 이는 모두 내 개인 생각일 뿐이니,  그리 알고 들어주면 좋겠소"    귀제갈은 한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일주야 전, 이 자리에서 내가 한 말이 있소.  설날 전까지 전세가 시시각각 변할 것인바, 세불리를 크게 느낀 후보가 판을 바꿀 비장의 절초(絶招)를 들고 나올 것이다. 바로 무림 지존의 임기 단축, 무림 헌법의 개정이 될 것이라 했소, 그게 반푼 재명공자든, 나찰수 윤석열이 됐든.  당시 여러분들은 둘 중 누가 '무림지존임기단축'공을 쓴다면 그는 바로 나찰수일 것이라 했소만,  나는 재명공자일 것이라 했소.  일주야가 지나 오늘 보니, 과연 어떻소?"   그랬다. 재명공자는 이날 '무림지존임기1년단축' 초식을 공개했다. 전세가 웬만큼 불리하지 않았다면 절대 꺼내지 않을 초식이었다. 당금 강호 무림의 문제는 지존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집중된다는 것, 그러니 무림 헌법을 바꿔 권력을 나눠야 한다는 게 이 초식의 뜻. 비록 '무림지존임기3년단축' 초식이나 '내각무공'에 비하면 그 위력이 미미하다 하나 무림 헌법을 바꾸겠다는 말을 여권무림의 차기 지존 후보가 꺼냈다는 것만으로도 강호에 일대 풍파를 몰고 올 것이었다.   "과연 귀제갈의 신산(神算)이 대단하오. 하면 재명공자가 무림지존제를 포기하고 내각무림까지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소이까?"   내각무림이야말로 귀제갈 김종인 필생의 숙원.  재명공자가 내각무림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곧 귀제갈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비록 재명공자가 지금은 무림지존제를 고수하겠다고 하나, 세가 더 몰리면 내각무림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소. 나는 나찰수보다는 재명공자가 내각무림에 뜻이 있다고 보고 있소."   귀제갈이 이리 단언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진작 나찰수 윤석열에게 내각무림을 권했었다.  그러나 나찰수는 한칼로 잘랐다.  "그런 건 제가 무림지존좌에 오른 뒤에나 생각해 보리다." 귀제갈은 그 후로 내각무림 무공을 나찰수에게 전수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그 후 한때 나찰수의 군세(群勢=지지율)가 급락하자  잠시 나찰수가 임기단축 초식과 내각무림공 수련을 검토하기는 했다지만, 그뿐이었다.     재명공자든 나찰수든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크게 저울추가 기울면 그땐 판을 흔들 대마공이 필요하다. 내각무림공은 그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하면 단일화는 어찌 되겠소이까?"   잠시 상념에 빠졌던 귀제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철수의사 안철수와 나찰수 윤석열의 합력(合力)은 결코 없을 것이요.  혹여 이루어진들 안철수 쪽으로 합쳐서는 결코 재명공자를 당해낼 수 없소. 제18대 대선을 생각해보시오. 그네공주는 겨우 3푼 차이로 재인군에게 이겼소.  영남 무림이 9할의 지지를 그네공주에게 보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소. 안철수가 야권무림의 단일 후보가 되면 영남무림은 그에게 몰표를 주지 않을 것이요. 국힘방의 세력이 철수의사를 위해 뛰지 않을 것이니,  영남무림 출신인 재명공자와 표를 반반 나눠 갖게 될 것이요. 반면 호남무림에선 재명공자에게 9할 이상 몰표를 줄 것이요.  영남무림에서 1백만표 넘게 차이를 벌릴 수 없다면 싸움은 하나 마나요.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나 세대포위공만으로 무림지존좌를 차지할 수는 없소. 지긋지긋한 지역주의공은 이번에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요.  지금은 비록 호남무림에서 선전하는 것 같지만 나찰수 윤석열이든 안철수든  막상 진짜 지존비무 날에는 호남무림에서 1할의 지지도 얻기 힘들 것이요."    듣고 있던 장삼이 무릎을 쳤다. "옳거니. 과연 그렇소이다." 옆에 있던 이사가 급히 물었다. "요즘 세간의 관심은 단연 나찰수의 아내 옥수날심 김건희. 어떻습니까. 그는 지존부인이 될만합니까?"   귀제갈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딱 한 번 만났소이다. 일각(一刻)이나 됐을까.  그리 짧게 보고 어찌 평을 할까마는,  강호의 온갖 잡술을 다 익힌 듯한 품세에   할 말 못할 말 다할듯한 호상(虎相)이었소."     #운세는 사람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옥수날심(玉手辣心-백옥같이 흰 손에 독한 마음) 이라.   김건희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강호의 눈과 귀가 그야말로 무서웠다.  누가 붙인 별호인지 모르나, 정곡을 찔렀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나는 강호에서 닳고 닳았다. 내가 주로 어울렸던 건 좌파무림인들이다. 강호에 처음 나와 생업을 꾸릴 때가 20여년 전,  그때 무림은 좌파세상이었다.  비정 강호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연줄,  나는 온갖 모임과 단체에 발을 디밀었다. 덕분에 내로라하는 청와궐 당시 실장과 정기 회합도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랴. 내 사랑하는 가가(哥哥)가 하필 우파무림의 지존 후보가 될 줄이야. 일이 꼬인 건 그때부터였다. 재인군의 심기를 거슬렀고, 여권무림 전체를 적으로 돌렸다. 가만있어도 죽고, 싸우다 져도 죽을 신세가 됐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잖은가. 필사즉생.  배운 재주와 인맥을 총동원했다. 사람을 모으고 돈을 썼다.  나의 가가는 돈이 없다. 주변머리도 없다. 익힌 무공이라곤 나찰수, 악귀와 마졸을 잡아넣는 데는 특급이지만, 사람을 모으고 군세(群勢)를 일으키는 데는 부족하다.   그러니 내가 안간힘을 쓸밖에. 그러다 탈이 났다.  아는 게 좌파 인맥이요, 좌파로 행세하다 보니 좌파 언론만 상대했다. 한양의소리 기자라는 놈이 그리 뒤통수를 칠 줄이야.  나와 나눈 대화를 모두 녹취해 세상에 흘렸다.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나의 가가가 그 한 수에 무너져내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둥근 것. 삼국지의 사마의가 그랬다던가.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 )이라.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로구나! 과연 그랬다. 가담과 항어가 일거에 사라졌다. 음설(淫說)과 괴담도 자취를 감췄다.  되레 나 옥수날심을 추종하는 무리가 급증했다.   사실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 못 한 바는 아니다. 내가 익힌 술법 중 최고는 신복술(神卜術). 나는 하늘의 뜻을 짚을 수 있다.     내 점괘에 따르면  차기 청와궐의 주인은 나다. 나와 가가가 청와궐에 들어가게 돼 있다.  이제 사실상 승패는 가려졌다. 가가의 최대 약점은 나였다.     가가는 "천하를 버리더라도 아내를 지키겠다"는 우직한 사내다.  그런 그에게 "천하를 쥐어야만 나를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아내를 지키려면 먼저 아내를 버려야 한다고도 했다.  가가는 이제야 겨우 말귀를 알아들은 듯하다.    재명공자는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눈치 빠른 자니 이대로 가면 필패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가 쓸 수 있는 수는 세 가지.    하나, 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  지금처럼 그냥 직진하는 것이다.  계속 우기면 하늘도 속는다.  강호를 속이고 사회주의 마공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둘, 금선탈각(金蟬脫殼)-매미가 허물을 벗듯 벗어던지고 위기만 모면한다.  요즘 말로 ‘쇼’를 하는 것이다. 빌고 울고 바꾸고 엎드리는 것이다.   셋, 환골탈태(換骨奪胎)-진짜로 껍질을 벗고 뼈를 바꾸는 것이다.   첫째, 둘째수는 무섭지 않다. 그가 세 번째 수를 택한다면 판세가 크게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세 번째는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달리 그가 반푼(半分)이라 불리겠나. 하도 이랬다저랬다, 남의 것으로 가득 채워 제 모습을 잊은 지 오래거늘.     #원조 여걸은 나다   혜경궁김씨의 입이 하늘만큼 삐져나왔다. 내가 누군가. 천하의 재명공자를 쥐락펴락하는 게 나다.  그를 이 자리까지 밀어 올리느라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던가. 지혁군(指革軍=손가락혁명군)을 만들고 지휘한 것도 나다.  손가락이 부러져라 자판을 두드렸었다. 재인군을 공격하다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했다.  구사일생, 아홉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와 내 낭군 재명공자는 비로소 이 자리에 섰다. 여권무림의 차기 지존 후보.   승리는 떼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옥수날심 김건희 정도는 한주먹 거리였다. 내 손으로 직접 요리하겠다고 했다. '닭살부부금슬내조공'으로 김건희를 압박해 강호에 얼굴을 들지 못하게 했다. 덕분에 내 낭군 재명공자의 지지가 크게 회복됐다.     요즘은 일부러 재명공자와 떨어져 다닌다. 우리의 알콩달콩 초식에 닭살 돋는다는 반응이 많다나 뭐라나. 나는 주로 지방을, 재명공자는 한양을 공략 중이다. 둘이 따로 움직이니 두 배 효율적이다. 얼굴을 본 지도 꽤 됐다. 집에는 서로 거의 못 간다. 주로 객잔에서 잔다.  이런 고행 끝에 간신히 전세를 역전시켜놨는데, 이게 웬일인가.   옥수날심을 노린 독수가 되레 나를 향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애초 이런 만신창이 싸움을 피했어야 했다.  나의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건만,  이거야말로 나의 약점으로 적의 강점을 두드린 꼴이 됐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   이럴 때일수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아들은 직장도 휴직하고 집에만 있도록 했다. 수통기(手通器)도 빼앗았다. 어떤 게시판에도 글을 올리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걱정이다. "제 멋대로 사는 재인군의 아들 준용이 부럽다"는 아들을 어쩌랴.   그러나 실망은 이르다.  내가 누군가. 천하의 여걸 원조 혜경궁김씨가 아닌가. 재명공자와 내가 합심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  내 남편 재명공자는 판을 뒤집을 수만 있다면 어떤 초식이든, 누구의 무공이든 가져다 쓰리라. 그것이 개헌공이든 내각공이든. 그리하여 끝내 이기리라.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2.01.21 05:00

  • 여의주 쥔 안철수 "재명공자도 나찰수도 물렀거라, 내 손으로 천하를 쥐리라" [대권무림 2부⑧]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8화〉 새옹지마(塞翁之馬) 천하의 판세는 새옹의 말과 같다      "됐어, 이거야. 정말 잘된 일이야. 이제 승부가 끝났군."   일주야전 나찰수 윤석열과 국민동자 이준석의 포용 장면을 보며 민주련주 송영길은 쾌재를 불렀었다. 당시 의아해하는 방도(幇徒)들을 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첫째, 귀제갈 김종인이 이로써 국힘방에 돌아갈 수 없게 됐네. 우리에겐 큰 위협이 하나 사라진 셈이야. 둘째, 나찰수는 국민동자 이준석에게 질질 끌려다니게 됐네. 우리에겐 '국민동자의 꼭두각시 나찰수'라고 공격할 구실이 하나 더 생긴 거지. 사실 첫째, 둘째는 사소한 것이지. 진짜는 바로 이걸세."   잔뜩 궁금증을 키워놓은 송영길은 수하들이 "뭔데요?"라고 묻기도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셋째, 국힘방의 선수 교체는 없다. 즉 나찰수가 끝까지 후보로 뛸 것이란 얘기지. 혹여 둘의 내분이 계속돼 선수가 교체됐다고 쳐보세. 상상하기 싫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야. 우리에겐 이런 다행히 없네.  넷째, 철수의사 안철수와의 단일화는 없다. 국민동자는 안철수와는 상극, 결코 나찰수 윤석열과 힘을 합치도록 놔두지 않을 걸세. 우리에겐 이보다 더 다행인 일이 없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하기야 동병상련이라, 같은 병을 앓는 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법. 당금 무림에 국민동자 이준석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자는 바로 민주련주 송영길일 것이였다. 둘이야말로 차차기 지존좌를 노리는 여야 무림의 차기 쌍두(雙頭)가 아니던가. 안철수의 급상승은 차기 지존비무의 구도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위력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잘 짜인 구도라로 한 번 흔들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단일화'   이것이야말로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민주련주 송영길은 지난해부터 안철수의 수통기(手通器)로 문자를 보내 "재명공자와 힘을 합치자"고 말해왔다. 안철수가 "재인군 정권을 같이 심판하자는 말이냐"고 비아냥댔지만, 참았다. 대신 "재명공자도 재인군에게 핍박받았다"며 다시 안철수의 합류를 권유했다. 아무리 친분이 좀 있다 한들 이만한 혀 놀림에 철수의사가 넘어오지 않을 거란 걸 송영길이라고 왜 모르겠나. 그래도 그가 이리 안철수를 채근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만사불여튼튼. 자고로 무림 지존 비무대회는두 달을 남겨놓고 가장 크게 요동쳤다. 역대 지존 비무의 승부가 두 달 새 뒤바뀌기 일쑤였다. 제 20대지존비무의 최대 승부처는 단일화. 철수공자의 발만 묶어놓으면 재명공자의 승리는 따놓은 당상일 터였다. 나 민주련주의 계속되는 구애가 일푼의 마음이라도 안철수의 발을 주춤거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엇인들 무슨 얘기인들 못 하랴. 그것이 민주련의 방식, 나 민주련주 송영길의 방식인 것을.     #철수 없다   바람이 차다. 대지는 꽁꽁 얼어붙었다. 시간마저 추위에 갇힌 시간, 철수의사 안철수는 중랑천을 뛰었다. 아내 소소의사(小素醫師) 김미경과 함께였다. 그의 성명절기 '새정치'는 발로 뛰어야 단련이 가능한 무공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무(無)정치철수전문' 무공이라지만, 천만의 말씀. 처음엔 위력이 없어 보이지만 내공이 쌓일수록 강해지는 게 새정치의 특징이다.   10년 익힌 새정치공은 이제야말로 본 궤도에 접어들고 있었다.     "당신의 무공이 높아지니 강호 언론이 어디를 가나 쫓아다니네요" 그의 뒤를 쫓는 무림언론인들을 보며 소소의사가 말했다.   "고마운 일이지요. 그만큼 차기 지존좌에 내가 한발 다가갔다는 뜻이니." "아마 저자들은 당신 입에서 '단일화하겠다' '양보하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쫓아다닐 것 같아요." "어림없는 소리요. 이번엔 갑니다. 끝까지 갑니다. 이번에야말로 철수 전문의란 오명을 씻어낼 것이요, 기필코."   그래, 아내인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그의 다짐엔 이유가 있다. 그는 결코 나찰수 윤석열이나 반푼 재명공자에게 대한무림을 맡길 수 없다. 나찰수는 무공 초보다. 무림의 미래를 이끌어 갈 자질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재명공자가 지존좌에 오르는 것만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 그는 재인군의 촛불공을 극대화, 무림 전체를 태워버릴 것이다. 그를 막지 못하면 무림은 재인군 치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재앙을 맞을 것이다. 어찌 무공을 익힌 사내로서 무림의 파탄을 눈 뜨고 지켜보고만 있으랴. 혹자는 그러니 마음 약한 내 사내 안철수가 막판엔 양보, 나찰수 윤석열과 힘을 합칠 것이라고 믿는다. 한 번 피한 사람은 또 피하게 마련이라며. 내 남편을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소리, 이번엔 다르다. 이유? 하나, 내 남편의 무공이 절정에 올랐다. 둘, 그는 치욕을 잊지 않는다.    #과거를 잊지 마세요   나는 살면서 세 번 양보했다. 2011년 한성시장 양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강호에선 '아름다운 양보'라고 했다. 헛소리였다. 비정(悲情) 강호에서 양보는 곧 패배였다. 돌이켜보면 가장 잘못한 건 2012년 지존비무 때 재인군에게 한 양보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재인군은 오늘 합의하면, 내일 뒤집었다. 그런 그와 천하대사를 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통 크게 양보했다.혹여 패배의 책임을 내가 뒤집어쓰는 게 무서웠다. 내가 무림의 앞날을 막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해 비무에서 재인군은 패했다. 하지만 비난은 내게 쏠렸다. 재인군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내 몸의 터럭 하나라도 뽑아주지 않겠노라 맹세했다. 지난해 한성시장 양보는 또 어땠나. 역시 치욕이었다. 국힘당은 나를 철저히 짓밟고 배신했다.  현 한성시장이 어떻게 비무에서 이겼나. 내가 대권을 위해 소권(小權)을 희생, 양보하고 승복한 결과다.  그런데 국힘방의 국민동자 이준석과 귀제갈 김종인은 그런 나를 능멸했다. 약속했던 합방(合幇)은 국민동자가 중단했다.  귀제갈은 "정신 나간 자"라며 촌철의 살인 기예를 나에게 폭풍처럼 퍼부었다. 나는 한성시장 오세훈보다 더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배신당했다. 세 차례의 양보, 그리고 세 차례의 배신. 내가 흘린 피눈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강호인은 짐작도 못 하리라. 그런 내게,      "단일화라니!!!"   물론 나찰수 윤석열과는 나쁘지 않다.  지난해 7월 나찰수와 처음 만난 날,그때 그는 순진한 시골 청년 같았다. 우리는 그날 함께 합의문을 썼다. 물론 내가 직접 미리 써놨던 합의문이다.     "우리는 함께 정권 교체를 향해 나갈 것이고, 선의의 경쟁자며 협력자다."     그때 그 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주역은 내가 맡는다. 드디어 기회는 왔다. 내 군세(群勢=지지율)는 이제 일할 오푼을 넘어 이할을 넘보고 있다. 이길 수 있다. 내 힘으로, 오로지 내 힘으로.   #심술(心術)도사를 잡아라     한 시진 넘게 설득했지만, 심술도사 홍준표는 꿈쩍도 안 했다.     "나찰수 윤석열로 단일화를 한들 합체 효과가 거의 없습니다. 저희의 계산으론 안철수의 세력 중 4할만 나찰수에게 옮겨 갑니다. 나머지 3할은 포기, 다른 3할은 재명공자에게 가고요. 그러니 나찰수로의 단일화는 필패입니다. 국힘방이 안철수에게 합쳐야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그걸 할 수 있는 분은 심술도사, 당신뿐입니다. "   흑선자 권은희는 국민당의 3대 실력자였다. 하지만 역시 심술도사의 한 갑자 내공을 당해내기엔 무리였다.     "가서 철수의사에게 전하세요. 내가 귀공을 돕는 일은 없을 테니, 단념하시라고." 안철수와 심술도사의 합력은 판을 흔들 절호의 수였다. '나찰수의 방심을 노려 심술도사를 끌어안는다' 안철수의 이런 복안은 그러나 심술도사의 노회한 수에 막혀 좀체 진척이 없었다. 흑선자가 물러간 뒤에도 심술도사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고작 무림의원 3명으로 100명이 넘는 국힘방을 노려. 내게 무림총리를 준다한들 가능할 리도 없지만, 어디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게다가 단일화가 된들 안철수로는 결코 재명공자를 이길 수 없지. 물론 단일화 비무 규칙부터 국힘방이 안철수에게 유리하게 순순히 합의해 줄 리도 없고. 그나저나 안철수 이 자가 기어코 끝을 볼 심산인가 본데, 어쩐다. 지난 19대 지존 비무 때도 끝까지 싸워 재인군의 승리에 일등공신 노릇을 하지 않았던가. 당시 내가 "힘을 합쳐야 이긴다"고 그렇게 외쳤건만, 들은 체도 하지 않은 게 누군가. 지금 무림정보원장인 독안(獨眼) 박지원의 수작에 놀아나 아예 협상 테이블에도 앉지 않은 게 바로 안철수 아니던가. 그러니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할밖에.   "철수공자는 쓸데없는 몽니로 5년 전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  말은 세게 했지만, 머릿속은 계산으로 바쁘다. 무림에 어디 영원한 적이 있고, 영원한 친구가 있단 말인가. 가만있자. 여기에 내 몫이 있으렷다.     "단일화라~"     #심술도사를 잡아라 2   같은 시각, 나찰수 윤석열도 들끓는 심사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잃었던 세력이 잠깐 회복되고는 있으나 안심하기는 일렀다. 최후의 순간, 누가 더 집중력을 유지하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다. 결국 마지막 승부처는 철수의사 안철수. 그와의 담판으로 천하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결과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나와 그에게는 동지애적 교감이 있다. 우리는 함께 싸운 전우요, 동지다. 그와 나는 재인군의 폭정으로 야권무림이 지리멸렬했던 시절, 그 험난 강호 1년 반을 단기필마로 재인군과 싸웠다. 우리 두 사람이 당시 야권무림의 전부였다. 겉으로는 "단일화 절대 불가"를 외치지만 나도 알고 그도 안다. 때가 되면 서로 손을 맞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답은 과거 종필노사와 대중검자의 대중종필연합에 있다. 공동 무림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나와 안철수는 이미 기호지세, 어느 한 쪽이 양보할 수는 없다. 대신 합심, 협력이 해법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세 가지를 약속할 것이다. 1. 무림 총리를 준다. 2. 무림 내각의 반을 준다. 3. 차기 대권을 준다.     이때 꼭 필요한 게 있다. 사람이다. 무림력(曆) 1997년 10월에 성사된 대중종필연합은 일 년 전부터 비밀 협상을 시작했다. 대중검자의 복심 철두(鐵頭) 한광옥과 종필노사의 머리 와룡(臥龍) 김용환, 불세출의 두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철수의사 안철수와 나찰수 윤석열의 오작교를 이어줄 인물, 누가 있을까. 나찰수 윤석열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이름이 번뜩 떠올랐다.   '심술도사 홍준표'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2.01.14 05:00

  • 나찰수 윤석열의 절규 "나는 버티기의 달인, 어떤 무공도 나를 흔들 수 없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⑦]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7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잘되는 집은 이유가 한가지지만 안되는 집은 만가지다   "싸움은 끝났네. 이겼네.  이제 남은 건 하나, 향후 천하무림을 어찌 다스릴까, 저자들을 어찌 요리할까 궁리하는 일뿐일세."    반푼(半分) 재명공자가 파안대소했다. 경기검 김용은 다소 의외였다.   수족 중 수족인 그가 알기로 재명공자는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위인이었다.   아내와 자식이 눈앞에서 쓰러진 들 득실을 따진 뒤에야 움직일 사람, 그게 알려진 재명공자의 모습이었다.   이주야(二晝夜) 가까이 민주련의 세력이 독보천하 했지만 그는 수하들에게 말조심, 입조심, 몸조심을 말해왔다.     '방심은 이르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천하인 모두가 재명공자의 승리를 말할 때도 재명공자 자신만은 '아직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 그가, 승리를 말했다. 그것도 파안대소와 함께.      "감축드립니다, 주군. 주군의 그 말씀은 이제는 그 어떤 것도 주군의 지존좌 등극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실로 그러하네. 나찰수 윤석열은 두 가지 큰 실수를 했지.   그것이 그를 회생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을 것이고, 내 지존행을 완벽히 도와줄 것일세. 하나는 그가 백성의 마음을 몰랐다는 것일세.   무림지존은 곧 무림의 곳간 지기. 백성들은 곰 같은 집사보다 여우 같은 집사를 원하네.   그런 민심을 못 읽고 호통과 삿대질, 미련한 곰수(熊手)만 남발하다 되레 화를 자초한 거지."    "과연 옳으신 말씀, 두번째는 무엇입니까?"   재명공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의와 공정' 초식으로  스스로의 발에 족쇄를 채웠다는 점일세. 나찰수는 악귀와 마졸을 잡아넣는 독한 초식이라, 결코 제 가족에게는 쓸 수 없는 무공. 그래놓고 '정의와 공정' 초식을 휘두르니 어찌 위력이 있겠나.   성명절기가 안 먹히는데 달리 무슨 수가 있겠나."    경기검 김용이 무릎을 쳤다.      "옳거니. 이제 나찰수는 손발을 묶고 기다릴 수밖에 없겠군요. 목을 길게 늘이고 주군의 칼을 받는 것 외에 다른 수가 없겠군요."    "최후의 발악이야 어찌 없겠나.   그래 봐야 고작 대장동을 물고 늘어지고 내 아들을 문제 삼는 정도가 고작일 것이야.   바둑으로 치면 던질 곳을 찾는다고 할까. "    "혹여 이러다가 나찰수 윤석열이 낙마라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되면 큰일인데…."   "그것도 염려할 것 없네.   나찰수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누구도 그를 강제로 쫓아낼 수는 없네. 하지만 그는 결코 물러날 위인이 아니지.   유일하게 걸리는 게 있다면, 그가 철수의사(醫師) 안철수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네. 그러나 그 권력욕 강한 나찰수가 그런 결단을 내릴 일은 전혀 없네. 어떤 경우라도 우린 승리하게 돼 있네."    재명공자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이제 다 끝났다. 집토끼만 확실히 챙겨도 승부는 명약관화다. '국토보유세' 초식을 이름만 바꿔 '토지배당금' 초식으로 펼치는 것으로 충분하다. "부자 것 뺏어 나눠주겠다"는데 누가 싫어하겠나. 뺏기는 부자는 10명이요, 받는 내 표는 90명인데. 요즘 느낀 건데 맞춤형 퍼주기 초식도 효과가 크다. 나라 곳간을 털어 대머리 백성을 치료해준다고 하니 열광하는 민심을 보라. 한 걸음 더 나가 전신 성형, 주름살 제거에도 나랏돈을 쓴다고 해볼까? 그래, 통치술이 별건가. 뭐를 '마이 멕이면 되는 것' 아닌가. 기본소득공과 '전국민재난지원금' 초식도 다시 마구 쓰리라. 나라 곳간을 축내면 어쩌냐고? 어차피 내 돈도 아닌 것을. 뭐가 문제인가. 미래 세대는 어쩌냐고? 내 자식이 어찌 되든 뭐가 문제인가. 어차피 남인데.    #필사즉생(必死則生)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재명공자가 파안대소를 터뜨리는 그 시각, 나찰수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견디다 못한 그는 서초벌의 뜨락으로 나섰다.   엄동의 밤바람이 가슴의 열기를 조금 식혀주는 듯했다.   그는 장탄식을 내뱉었다.      丈夫六十 去檢入政 (장부 나이 육십에 검찰 떠나 정치 입문) 出師武林 以立天下 (무림에 뛰어들어 천하를 세우려 했네) 步步刀山, 處處劍林 (걸음걸음이 칼산이요, 곳곳이 검숲이라)   民心一去不復返  (한번 떠난 민심은 영 돌아오지 않네) 百謨天慮爲無爲 (백 가지 생각, 천 가지 궁리가 소용없으니)   氣盡力絶無出路 (기운 다 하고 힘 빠져 나갈 길 보이지 않네)   何處求藥治亂世 (어디서 영약을 구해 난세를 치료할까)    교만과 방심이 화를 불렀다. 민주련은 'MB 아바타' 초식을 변형해 나를 공격했다. 무식남, 무뢰한의 굴레를 씌웠다. 애초 별거 아니라고 무시했지만, 오산이었다.   나는 거미줄에 친친 감긴 벌레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이걸 벗어나지 못하면 끝장이다.   그렇다고 "나는 무식남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건 악수 중 악수다. 점점 더 말려 들어갈 뿐이다.   철수의사 안철수 꼴이 날 것이다.   내가 가진 최고의 무공을 펼쳐 강호 무식남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거미줄을 단숨에 끊어낼 초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뾰족한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애초 외통수였다. 삼고초려 끝에 모셔왔지만, 귀제갈 김종인은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총기는 사라지고 무공은 진부했으며 체력마저 달렸다. 전권을 줬지만,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아침 회의가 끝나면 귀가하기 바빴다. 국민동자 이준석을 제어하긴커녕 제 한 몸 추스르기도 힘겨워했다. 오죽하면 내게 초식을 펼치지 말고 '시늉만 내라'고 했겠나. 믿었던 귀제갈마저 떠나보내고 나니 그야말로 사면초가라.      이젠 수가 없다. 필사즉생이라.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져도 죽고 물러서도 죽는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는 그럴 각오가 돼 있다.  뼈와 살을 다 바꾸리라. 말은 단문으로, 초식은 간결하게, 맵시는 세련되게.   삿대질 초식과 쩍벌남 초식은 영원히 거두리라.   대장동 초식으로 논검비무에서 재명공자를 몰아붙이리라. 거칠고 무식하게가 아니라 부드럽고 간결하게.   나찰수는 으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때였다.   수통기(手通器)가 울렸다.   그의 호법 백발자 한길공이었다. 귀제갈 김종인마저 없는 지금, 한길공이야말로 그가 믿고 의지할 몇 안 되는 방수(幇手) 였다. 그에게 판을 바꿀 묘수를 부탁한 터였다.     "고약하게 됐소. 묘수는 없소.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소.  바둑에선 묘수 세 번이면 진다고 했소. 두텁고 넉넉한 정수(正手)가 최선이요.  시급한 건 셋이요. 귀공도 익히 아는 것들이요. 첫째, 탈태환골. 모든 것을 바꿔야 하오.  뼈와 살을 다 바꾸는 건 말이 쉽지, 현실적으로 불가능, 시간도 없소. 설령 성공해서 안을 통째로 바꾼들 백성들이 알아주지도, 알아볼 수도 없어요. 보이는 것, 보여지는 것부터 바꿔야 하오. 말투와 몸짓부터 시작해야 하오. 당장 그 꼰대 머리 모양부터 바꾸면 좋을 것이요."   나찰수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두 번째가 궁금하군요. 필시 더 어려운 주문 일터."   "사대천왕의 결집이오. 심술도사 홍준표, 새침서생 유승민, 제주의 아들 원희룡과 귀공, 이른바 국힘방 사대천왕이 대오 단결하는 장면을 만들어야 하오. 심술(心術) 도사에겐 원하는 걸 다 준다고 하세요.   그는 욕심이 태산같은 사람, 결코 뿌리치지 않으리라.  차기 방주며 지방비무대회 공천권부터 공동 정부까지, 달라는 대로 줘도 되오.   새침서생 유승민에겐 큰절을 하시오.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성품이니 마음을 열 것이요.  제주의 아들 원희룡은 귀공과 이미 마음을 튼 사이,  그럴수록 더 큰 진정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나찰수의 표정이 묘해졌다. 나찰수의 침묵이 길어지자 수통기 너머 한길공이 재촉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은 귀공 본인밖엔 없소.  누가 대신해주지 못하는 일이오. 싫어도 해야 하고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하오."   "그리하리다."   나찰수는 무겁게 고개를 끄떡였다.    "세번째, 묘서동처(猫鼠同處)라. 작금 무림지존 비무는 도둑과 포졸이 함께 겨루는 형국이오. 사기꾼 재명공자의 정체를 낱낱이 밝히고, 귀공은 충직한 돌쇠가 돼야 하오. 무림지존은 곧 곳간지기. 사기꾼 집사가 곳간지기가 되면 이는 곧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 금세 곳간이 거덜 날 것이요. 사기꾼 집사는 주인인 백성을 온갖 감언이설로 속일 것이요.   결국 백성은 돈 잃고 속아서 바보 되고,  사기꾼 집사를 찍은 제 손가락 탓만 할 것이요. 반면 돌쇠 집사는 어떨까.  아예 곳간을 빼먹을 생각조차 안 하지요. 우직하니까.  그러니 곳간이 거덜 날 일도, 백성이 제 손가락 자를 일도 없을 것이요.   무림 백성들에게 이런 이치를 깨우쳐줘야 하오. 내 집곳간 열쇠를 누구한테 맡길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적의 강점을 약점으로, 나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이치요."    나찰수는 무릎을 쳤다. 이런 간단한 이치를 왜 몰랐을까.     "명심, 또 명심하리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귀공의 또 하나 골칫거리. 국민동자에겐 못 이기는 척 돌아올 명분을 주는 게 상책이오. 수통기나 만나서 담판 짓는 방식은 위험하오.   국민동자의 주특기 '수틀리면녹음해터뜨리기' 초식에 당할 수 있소.   그러니 국민동자에게 비단 주머니열 개를 달라고 하시오. 판세를 뒤집을 절초(絶招) 열개. 그중 가장 귀공에게 안 맞는 초식,  국민동자가 보기에 절대 귀공이 안 익힐 것 같은 초식, 그걸 익혀서 펼쳐 보이시요. 시늉만 내도 충분하리다."   과연 한길공의 말 그대로다. 그가 던진 "전철역에서아침인사' 초식을 받아들자 국민동자의 몽니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국민동자는 "내가 윤핵관이 되고 싶어요"라며 제발로 걸어들어왔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나찰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도 한숨은 멈추지 않았다. 원래는 다 이긴 싸움이었다. 오죽하면 강호의 평자들이 '100일 동안 하루 한 개씩 100개를 까먹지 않는 한 질 수 없는 싸움'이라고 했을까.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니. 물론 아직 기회는 있다. 최후의 절초도 준비돼있다. 실낱같은 희망이 살아있는 한 절망은 없다. 어차피 운명의 결과는 신의 손에 달린 것. 끝을 보리라. 불이 아니면 불쏘시개라도 되리라. 그리고 장렬히 산화하리라. 나찰수의 다짐은 아무 기댈 곳 없는 자의 간절한 기도를 닮아갔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2.01.07 05:00

  • 이명박을 좇는 재명공자, 회창객 닮아가는 나찰수 윤석열 [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⑥]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6화〉 유부유죄 유자유죄(有婦有罪 有子有罪) 아내든 자식이든 있으면 죄인이다    "드디어 4할이요. 됐습니다. 큰 고비는 넘었소이다. 이대로 죽 밀어붙이면 필승이요."    수통기(手通器) 넘어 민주련주(民主聯主) 송영길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척 들떠있군. 제가 뭐 대단히 크게 도와주기라도 한 듯이 말이야.' 그래도 공치사를 해줘야겠지. 지금이 어디 찬물 더운물 가릴 때인가. 마른 수건이라도 짜야 할 판, 반푼공자 이재명은 목청을 한껏 키웠다. 하지만 연일 강행군에 지친 목에선 신소리가새어 나왔다.     "다 련주의 공입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이리 분신쇄골, 소제(小弟) 일에 뛰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내 처음엔 공자의 전술을 믿지 못했소. 좌충우돌, 본련의 무공을 나쁜 초식이라고 욕하고, 심지어 무림지존 재인군의 '집값두배로올리기' 초식까지 쓰레기 취급이라니.. 그러다 역풍을 맞을까 걱정했더니, 급기야 역전의 기회를 만들어내셨구려. 귀공의 귀계(鬼計)와 신산(神算)은 역시 명불허전이요. 그게 뭐라고 했지요. 이번 전략 이름이? 물을 흐리게 해놓고 물고기를 잡는다?"    손자병법 제20계 혼수막어(混水摸魚). 적을 혼란과 내분에 빠뜨려 적아 구분을 못 하게 해놓고 승기를 잡는다. 한 달 전 이 계략을 설명했을 때 민주련주 송영길은 그 큰 머리를 마구 흔들어대며 갸우뚱했다. 그러나 보라.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국민방주 국민동자와 나찰수 윤석열을 완전히 분리했다. 둘은 이제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모를 지경이다. 태공망이 자신의 병법서 육도(六韜)에 이른 대로다. 저자들은 지는 군대의 특징(兵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전군이 몇 번이나 호된 꼴을 당하고 군대의 마음은 뒤죽박죽이다. 적을 과대평가하여 공포에 떨며 의기가 떨어져 있다. 뜬소문이 난무하고 거짓말을 믿어 버린다. 군령(軍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장수를 존중하지 않는다. 이 모두가 겁약(怯弱)의 징후이다.'    이럴 때 나는 상대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낙연노야를 삼고초려 끝에 모셔온 것도 그래서다. 물론 큰 대가를 치렀다. 내가 지존좌에 오르면 무림을 나눠 가지기로 밀약했다. 지존의 권좌를 하나 더 마련해주기로 한 것이다. 재여무림의 원로 고수가 중재를 섰다. 지금에야 무슨 약속인들 못 하랴. 낙연노야는 순진하다. 아무리 중재자가 있다 한들 내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나도 내 말을 못 믿을 지경인데. 가만있자, 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그리 보면 나는 참으로 많은 말빚을 졌다. "재명공자는 합니다"는 "백성이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로 바꿨다. 독두광마 전두환을 "학살자"라고 불렀다가 "경제 성과를 올린 것은 맞다"고 했다가 다시 "잘못 말한 것"이라고 되 물렸다. 이른바 '조국의 강'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쉽게 건넜다. 찬성했던 탈원전은 반대로 돌아섰다. '다주택자에 철퇴'는 '세금 깎아 주자'로, 전 백성 지원금은 자영상인 손실 보상으로 뒤집었다. 어제 약속과 오늘 말이 다르니, 내일은 어떻게 변할지 나도 모른다.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은 "믿을 수 없다" "표변한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 이 모든 말 바꾸기와 표변이야말로 혼수막어, 물을 흐려 물고기를 잡는 고도의 전략일 뿐이다. 일찍이 유비(劉備)가 형주(荊州)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계략 덕분이다.      끊임없이 초식을 바꾸고 떠들어댄 결과, 전투의 흐름은 완연히 달라졌다. 무공은 역시 재명공자가 뛰어나구나. 범죄자면 어때, 무림에선 역시 무공 실력이 최고야란 말이 힘을 갖게 됐다. 명박대제가 이길 때 강호 백성은 그의 도덕을 따지지 않았다. 재명공자야말로 명박대제의 '일잘하면죄도묻지않는다'초식을 그대로 써먹어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남은 시간은 딱 한 달. 이대로 한 달만 밀어붙이면, 신년 설날까지 이 기세를 끌고 가면, 강호인 모두가 절로 믿게 될 것이다. 범죄자 명박대제가 천하 범생 동영군을 물리치고 17대 지존좌를 거머쥐었듯이, 범죄자 재명공자가 검찰포두 윤석열을 물리치고 19대 지존좌를 거머쥐게 될 것임을.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바람은 싸늘히 불고 역수는 차갑다. (風蕭蕭兮易水寒)     한 자루 어장검(魚腸劍)을 벗 삼아 역수(易水)를 건너던 자객 형가(荊軻)의 심경이 바로 이랬을까. 그 비장한 심사가 2천여년 시공을 넘어 나찰수 자신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휴~"    형가의 유일한 무기가 어장검이었다면나찰수 윤석열에겐 '반문(反文)'이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재명공자는 안돼'와 '재인군 정권 교체'가 그의 군세(群勢=지지율)를 받쳐왔다. 그 힘이 너무나 강렬해서 단숨에 강호를 삼킬 듯했다. 그런데 한 달여만에 이 꼴이 뭔가.      급전직하(急轉直下). 한 달 새 곤두박질한 그의 신세를 나타내는데 이보다 적합한 말은 없을 터였다. 천하무림의 4할을 아우르던 세력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반문'으로 버티는 것이지, 나찰수가 좋아서, 나찰수의 무공에 반해서 그를 따르겠다는 무리는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 됐다.     방은 분란에 빠졌고 명령은 수행되지 않았으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단 한 사람, 천하와 바꿔서라도 지켜주겠노라 맹세했던 아내마저 고통을 겪게 했다. 혹자는 그런 나찰수를 민주련에 두 번 패한 회창객에 빗대기도 했다. 두 자식이 군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거짓 공격한 민주련에 속절없이 패해 지존좌를 내줬던 회창객이라니.   온갖 심마(心魔)가 그를 괴롭혔다. 왜 무림인이 됐을까. 자괴심이 들기도 했다.      人人有長短,豈敢問蒼天。(사람마다 장·단점이 있기에 하늘에게 왜 아내를 이렇게 낳으셨냐고 감히 따지지 않겠다) 見盡人間婦,無如美且貴。(내가 본 이 세상 모든 부인 중에서 내 아내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사람은 없었다) 譬令愚者安,何不假其賢。(어리석은 이가 편안하게 산다더니, 하늘은 왜 내 아내에게 현명함을 더 허락하지 않았는가) 忍此連城寶,沉藏向九重。 (끝내는 내 아내 같은 귀한 보물을 집안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참고 견뎌야 한다니.)    "그러나-. 이제 천하 대업을 다시 이루리라. 물이 새면 둑을 쌓고 적이 몰려오면 군사로 막는 게 세상의 이치. 방의 대소사를 직접 챙기고 분란을 내 손으로 막으리라. 내가 직접 국민동자를 다독이고 심술도사 홍준표를 끌어올 것이며, 재명공자의 일대일 싸움에 모든 것을 걸리라. "    따지고 보면 너무 안일했다. 본래 강호 민심이란 멀리하면 원망하고 가까이하면 무시하는 법. 내 아내가 문서를 부풀린 것을 두고두고 원망하는 데는 나 나찰수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더 커졌기 때문이다.   재명공자의 아내도 거짓과 욕설을 일삼았거늘 이를 탓하는 백성이 적음은 왜인가? 재명공자의 아들은 도박에 빠져 세상을 희롱했고, 재명공자 본인은 갖은 욕설과 패륜에 4번의 범죄를 저지른 순 악질이거늘 강호 백성 누구도 이를 탓하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 재명공자보다 내가 강했고 재명공자보다 내가 교만했기 때문이다. 내 무공은 공정과 정의를 바탕으로 '악귀와 마졸을 잡아내는 손(羅刹手)'이 아니던가. 나찰수 윤석열은 한껏 내공을 끌어올려 나찰수를 허공에 펼쳤다.   국민대통합공, 전두환경제성과초식, 삼프로tv출연 등 상황이 어렵다고 남들 무공을 닥치는 대로 익히려고 했던 게 또 다른 화근이었다. 맞지 않는 무공을 마구 익히다 보니 자신의 성명절기인 나찰수마저 손상을 입고 만 것이다. 공정과 정의는커녕 내로남불의 주화입마(走火入魔:기가 뒤틀려 화를 입음)에 빠질 판이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의 10자결(十字訣)을 '백성에 충성한다'는 7자결(七字訣)로 압축·발전시켜 정의와 공정의 나찰수로만 싸우리라. 싸우다 패해 장렬히 산화할지라도 남의 무공을 탐하지 않으리라. '    나찰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모처럼 전신에 힘이 차는 느낌이다.   정신없이 당하기만 했던 재명공자의 무공약점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대장동을 몰아치리라, 전과 4범의 후안무치를 내 손으로 직접 단죄하리라. 그를 나찰수 앞에 쥐로 만드리라.   그때였다. 나찰수의 수통기(手通器)가 울렸다. 무림언론인이자 강호의 훈수꾼으로 불리는 그의 비밀방수(幇手) 환(幻)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소. 자칫 회창객꼴이 날 수도 있소.   회창객은 두 아들 때문에 진 게 아니오. 민주련의 암수(暗數)는 도화선일 뿐, 그를 무너뜨린 건 교만과 방심이요.   귀공이 한 발 먼저 움직이고, 한 번 더 포용하고, 한 번 더 직접 챙겨야 하오.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오. 가장 미운 사람일지라도.   싫은 소리도 해야 하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결코 가져보지 못한 것을 가지려면 결코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한다고 했던가. 나찰수는 이를 악물었다. 제2의 회창객이라니. 그럴 리야 결코 없겠지만, 뒷골이 일순 서늘해졌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12.31 05:00

  • 저승의 전두환·노태우 "암수(暗手)도 실력, 당하는 자가 바보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⑤]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5화〉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 임금을 잘못 골라 천하를 망치는 건 백성이다    "그러니까 자네 생각에는 재인군이 틀림없이 수를 부릴 거란 말이지?"   독두광마(禿頭光魔) 전두환이 다짐받듯 물었다.     "아무렴. 재인군의 위인 됨을 보니 편협한 데다 옹골차기 짝이 없네. 지존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자신이 만든 왕국의 주인이고 싶어하지. 재명공자를 적극 돕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 자신의 위엄을 희생하면서 도와주기엔 그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거야. 자네나 나와는 달라. 과거 자네는 내게, 나는 내 후임 공삼거사에게 필요하면 '나를 베고 가라'고까지 했잖은가."     보통인마(普通人魔) 수태우가 길게 말을 받았다.      "우리 땐 전임을 베고 가야 이기는 줄 알았지. 그래서 다 짜고 친 것 아닌가. 그때 나온 유명한 비결이 '전임자의 강을 건너라' 아니던가. 그런데 그 후엔 좀 달라진 듯하네. 대중검자를 밟고 가지 않았지만 바보공자 노무현은 이겼고, 반대로 공삼거사를 내쳤지만 회창객은 패하지 않았나. 재인군이 저리 아집이 강하니 짜고 치는 밟고 가기는 없을 테고…. 재명공자가 답답해할 만 하군."    "그래서 재명공자가 저리 좌충우돌 날뛰는 것 아니겠나. 재인군의 성명절기인 편갈라부동산세금매기기 초식이며 닥치고탈원전 초식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무공이라며, 자신이 기필코 바로잡겠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말이야. 형편이 급박한 줄은 알겠으나, 별로 효과는 없을 듯하네."    수태우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말을 끊었다. 짐짓 호기심을 부채질하려는 듯이. 그러자 독두광마가 못 참고 재촉한다.    "아, 뜸 들이지 말고 얘기 못 해?"    이크, 저 심술통이 또 발동했네. 귀신이 됐으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머뭇거리다간 언제 두환철권이 날아올지 모르지. 수태우는 빠르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재명공자가 뭐라 하든 재인군은 가만히 있어야 하네. 그래야 후계자인 재명공자가 주목을 받지. 그런데 재인군은 일일이 반박을 하고 있네. 게다가 임기 마지막까지 '종전선언'이다 '탄소중립'이다 자기 치적 알리기에 혈안이 돼 있네. 최근엔 재벌총수 청와궐 집합령까지 발동하지 않았나. 그러니 후계자에게 가야할 조명이 거꾸로 현 지존한테 쏠리네. 이래서야 어찌 재명공자가 옴치고 뛸 수 있겠나. 가뜩이나 재인군보다 군세(群勢=지지율)가 낮아 고전하고 있지 않은가."    독두광마의 얼굴이 계속 푸르락붉으락 하더니 마침내 폭발했다.    "아니,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인 줄 알아. 고작 남들 다 아는 얘기를 늘어놓으려고 그렇게 뜸을 들였단 말이야?"    "아니, 아닐세. 본론은 지금부터일세. 겉으론 삐거덕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일세. 장막 뒤에선 되레 재인군이 재명공자의 무공 초식에 일일이 훈수를 두고 있네. 금지된 술법으로 얻은 정보를 이용해서. 왜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집중집단심문(FGI=Focus Group Interview)술법 말일세."    집중집단심문술은 강호 민심을 재는 유력한 술법이다. 4~6명 정도의 백성을 불러 한 사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묻는 여론조사술. 일반 강호의 여론조사보다 훨씬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대신 돈이 많이 든다. 직전 무림지존 그네공주는 무림정보부의 자금을 동원해 이 술법을 펼쳤다가 무림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후임 지존인 재인군은 이 술법을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쓰도록 했고, 청와궐 밖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 그 술법을 재명공자에게 썼단 말인가?"    "아무렴. 재명공자가 자신의 성명절기인 '전국민재난지원금'초식이나 '국토보유세'신공을 갑자기 포기한 이유가 그것일세. 청와궐이 집중집단심문술을 펼쳐 확인한 결과, 이 두 가지 초식에 대한 백성들의 반대가 6할~7할에 달했다고 하네. 그걸 재명공자에게 전해서 포기하게 한 거지."    "허허….이럴 수가. 현 무림지존의 비무 개입은 엄격히 금지돼있거늘…. 게다가 스스로 금지한 금술(禁術)까지 사용하다니…. 참으로 고약한 자로다. 하기야 내 장례에 문상은커녕 나를 무덤조차 없이 떠도는 귀신으로 만들 때부터 내 익히 알아봤거늘…."    수태우가 길길이 화를 내는 독두광마를 다독였다.    "우리는 이미 죽어 귀신이 된 몸, 무얼 그리 화를 내시는가. 이젠 좀 느긋해지시게."    독두광마는 여전히 분을 못 참고 씩씩댔다.    "애초 우리가 왜 이승의 얘기를 나누게 됐는가. 재명공자며 나찰수 윤석열이며 차기 지존 후보란 자들이 제멋대로 내 이름을 부르고 짓밟고 놀리는 통에 시끄러워 깬 것 아닌가. 나찰수란 자는 '정치는 잘했다'더니 내 문상도 오질 않고, 재명공자란 자는 '경제는 잘했다'며 내 이름을 밟고 지나가며 '나찰수 윤석열은 못 할 것' 이러지 않았는가. 고얀 놈들. 죽은 뒤 호랑이 가죽이야말로 하룻강아지의 담요 감밖에 안 된다더니."    "쯧쯧. 그만 노여워하시게. 그게 다 자네 이름이 여전히 위진천하(威振天下) 하고 있다는 말 아닌가."    "위진천하는커녕 나를 놓고 대리전을 펼치는 거지. 나 독두광마야말로 무림 경제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사람 아닌가. 나 아니었으면 대한무림은 다시 후진무림, 철혈의 대제 박정희가 모아 놓은 것 다 까먹고 제2의 비율빈(比律賓)이 돼 있었을 것일세. 저자들이 그런 내 공을 가져가려는 것. 공만 가져가고 과는 남기려다 보니 저리된 것 아닌가."    수태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빛만 있고 그늘이 없는 세상이 어디 있겠나. 무공도 마찬가지. 공만 있고 과는 없는 초식이 어디 있겠나. 어제는 마공이었던 퍼주기마공이 오늘은 퍼주기신공으로 불리지 않는가. 그게 강호의 이치지. 그래서 지존좌가 어려운 것 아니겠나. 어떤 무공이 당금 무림에 맞는 무공인가, 그 선택의 짐을 온전히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게."      독두광마가 눈쌀을 찌푸렸다.      "갑자기 무슨 철학교수라도 된 건가? 귀신 되더니 뒤늦게 철 들기라도 한 거야? 고리타분한 얘기는 접고, 그나저나 차기 지존좌는 누구 것일 것 같나. "    "그걸 누가 알겠나. 귀신이 된 자네도 모르는데. 다만 몇 가지 짐작해볼 일들은 있네. 우선 무공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네. 재명공자는 온갖 무공을 다 익혔네. 그야말로 천변만화, 어떤 무공이든 쓸 수 있지. 윤석열은 나찰수 외에 별로 내세울 무공이 없네. 그러나 승패는 무공의 넓이가 아니라 깊이로 결정되는 법. 하나를 익혀도 누가 제대로 익혔나에 달렸지.  "    "꼭 그런 것만도 아닐세. 과거 회창객의 판관필은 아주 매서웠네. 그러나 대중검자의 바람검을 이기지 못했지. "    "그거야 어디 회창객의 무공이 약해서인가. 강호 초출인 데다 익힌 무공마저 법가의 것이라 융통성이 없어 민주련의 암수에 당한 거지. 아들살빼고뼈깎아면제받기 초식에 그렇게 쉽게 당할 줄 누가 알았겠나."    "암수(暗手)도 실력일세. 암수야말로 무림사를 바꾼 결정적 한 수가 아니던가. 보아하니 차기 지존좌도 암수로 결판이 날 듯하네만."    "나찰수의 아내 옥수날심(玉手辣心) 김건희 말인가?"    독두광마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보기에 나찰수는 화를 자초하고 있네. 옥수날심 문제는 아주 간단하네. 상책은 옥수날심을 소록도에 보내 봉사하게 하는 걸세. 무림언론의 눈도 피할 수 있고 주목을 받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중책은 과거 여느 지존후보처럼 하는 것일세. 김장나눔이나 코로나의료봉사초식 같은 걸 쓰는 것이야. 위험은 있지만 입만 조심하면 큰 화는 없을 것일세. 하책은 자신의 전공인 미술전시초식만 쓰되 다른 곳엔 일체 등장하지 않는 걸세.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입만 열고 있네. 그것도 적아(敵我) 구분도 못 하고, 친민주련 무림언론과만 소통을 하고 있으니 원. 민주련 무림의원에게 고스란히 녹취록이 전달된 건 다 그 때문 아닌가. 그야말로 하지하책, 아니 무책(無策)이라고 해야 할 것이야."   수태우가 그런 독두광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저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저승에 와서도 이승의 권력 싸움에 저리 관심이 많다니. 하기야 그 큰 영광과 좌절을 겪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러나 이제는 다 부질없는 일 아니던가. 건너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는 것, 그게 세월의 강(江)이지.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것, 그게 지존무상이고. 그러니 대한무림의 어느 무림지존 한 사람 오욕의 굴레를 벗지 못한 것 아닌가. 후계자도 전임 지존을 절대 봐주지 않는 비정 강호. 현 지존 재인군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무림의 평자들이 "(재인군은) 재명공자가 지존이 되면 감옥에 갈 것이고 나찰수가 되면 안 갈 것"이라고 하겠나. 살아생전 왜 그리 바둥댔나. 저승에 와 보니 다 일장춘몽. 남는 건 이름 하나, 그마저도 똥칠 된 이름 하나뿐 아니던가. 수태우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이제 그만 하세. 귀신이 돼서도 이러는 줄 남들이 알면 얼마나 놀리겠나. "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12.17 05:00

  • 허본좌의 일갈 "이재명과 윤석열은 내 수제자, 서로 후계 경쟁 중" [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④]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 4화〉농가성진(弄假成眞) 장난도 자주하면 진짜가 된다    중원의 경기성 양평엔 국가혁명교의 총단이 있다. 100만평의 위용을 자랑하는 총단의 중심에 하늘궁이 자리한다. 하늘궁의 주인은 그 유명한 공중도사 허본좌. 그는 국가혁명교의 교주다. 오늘도 그의 궁에 몰려든 신도들은 그의 한 말씀을 목놓아 기다리고 있다.   "내가 뭐랬나. 30년 전부터 나는 강호 백성이 바라는 정책을 일관되게 내놨어. 처음엔 다들 비웃었지. 하지만 보라고. 지금은 다 따라하고 있잖은가. 허경영 공약 표절이 요새 유행이야 유행. 그러니 허본좌 가라사대, 나를 믿는자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것이요, 천국을 보리라."   신도들이 그의 말을 따라 주문을 읊조린다.   "내 눈을 바라봐, 너는 건강해지고. 허경영을 불러봐, 너는 성공할거야. 내 눈을 바라봐. 좋은 세상이 올거야~"   그를 따르는 교인들은 이 주문만 외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믿는다. 주문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강당이 떠나갈듯 울려 퍼졌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쳐다보던 허본좌가 환호성을 뒤로 하고 퇴청했다. 그를 따르던 국가혁명교의 호법이 입을 열었다.    "교주님, 20대 무림지존 비무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꼭 지존좌를 차지하셔야 할텐데…"    허본좌가 그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야지. 이제 과거의 무림 종사들은 모두 칼을 꺾고 사라졌네. 나를 우습게 보던 그네공주며 명박대제는 감옥에 갇힌 몸이 됐고. 새로 등장한 재명공자며 나찰수란 자들은 나를 따라하는 애송이에 불과하네. 그러니 내가 지존좌를 차지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이치에 맞는 일이지. 아무 걱정 말게. 이번엔 틀림없을 것이야."   "속하, 믿사옵니다. 그러나 나찰수 윤석열이란 자는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악귀와 마졸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검찰공 중에도 가장 악랄하다는 나찰수-나찰의 손을 십이성 익힌 자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자는 나찰의 손으로 17대, 18대 무림지존을 한꺼번에 잡아넣었습니다."    허본좌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17대, 18대 무림지존과는 참 질긴 인연이지. 특히 18대 그네공주와는 염문이 돌던 사이가 아니던가. 2007년 대권 비무 때는 "그네공주는 나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했다가 무림 검찰에 불려가 호되게 당했다. 그 후 10년 간 강호 비무 출전권도 박탈당했다. 뭐, 일방적인 주장이긴 했지. 그렇다고 내가 그네공주와 아무 사이도 아닌 건 아니잖나. 오죽하면 내가 지난 19대 지존 비무 때 이런 초식들을 창안했겠어. '명박 구속 (사랑의 열매 1조원 기부 시 면책), 그네공주 부정선거 수사(결혼 승락시 면책).' 그 때 남들은 다 비웃었지. 하지만 결국 어찌됐나. 17,18대 무림지존을 다 구속시킨 자가 20대 지존 후보가 되지 않았는가.그의 상념을 뚫고 수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주요공약_기본 시리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여권 무림의 후보 재명공자는 기본공의 창시자로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요즘엔 흡입마공과 좌충우돌심법을 마구 휘둘러대는 데 여기에 당하지 않는 무림 호걸이 없다고 합니다. 한 번 걸린 자는 바로 재명공자의 충복이 된다고 합니다."    "흥! 기본공? 그것이 누구의 무공이더냐? 훔쳐 배운 무공으로 뭐 어째? 감히 지존좌를 노려?"   벼락처럼 호통을 치는 허본좌의 목소리에 수하는 몸을 떨면서 고개를 더욱 조아린다.          “기본공이야말로 이 몸이 수십 년 전부터 각종 비무 때마다 시전했던 것 아니더냐. 당시 소위 거대문파라던 한나라파며 민주련이란 자들이 뭐라했던가. 사술에 불과할 뿐 무공도 아니라고 비웃지 않았던가. 강호를 거덜내는 무공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놓고 이제 와선 내 무공을 훔쳐 배워?”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주먹을 힘껏 쥐었다.    ━  허경영의 주요 대선 공약   15대 대선(1996년)▸정치혁명: 국회의원제 폐지. 여성50%, 남성50% 직능의원 실시. 검/경/중앙선관위 독립▸조세혁명: 직접세폐지(국민에게 고지서가 나오는 모든 세금제도를 없애고 국민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물건값에 포함되는 간접세로 변경)▸교육혁명: 대학명칭폐지, 대입지망자 전원대학입학, 사병, 전경급료 공무원대우, 제대시 사회진출자금 2,000만원지급▸정신혁명: 대통령사면권과 단일제폐지. 대통령명칭을 국민대표로 변경, 훈포상 제도 개혁▸국방혁명: 핵주권과 미사일 주권을 미국으로부터 회복하여 중국과 일본수준의 핵주권을 되찾아 자주국방 체제로 전환▸도덕혁명: 조선왕조 부활로 민족의 구심점회복. 사법, 행정고시 합격자 9급~5급으로 1년 수습 근무제를 도입하여 국민 인권 존중▸환경혁명: 담배생산판매금지. 도심관통 경량고가도로 대량 건설, 직장, 학교 토요 휴무제 실시. 농작물 국가보상제 실시▸행정혁명: 경기도를 서울특별시로 합병, 세계 제1의 수도로, 제주도를 세계경제 특구지정, 고소득 관광국가 돌입▸경제혁명: 중소기업 위주 경제개혁과 중소기업 무담보 장기저리융자 실시, 1차원 독점경제폐지 5차원 자연경제 실시, 경제기적 실현▸복지혁명: 실업자취직 국가책임제 및 장기실직자 실업구상지급과 취업창구 국가통폐합 관리, 국가유공자 및 노인복지개혁17대 대선(2007년)▸정치: 국회의원을 100명으로줄이고 출마자격고시 실시로 자질을 높임.▸복지: 65세이상 매월 50만원씩 노인수당, 출산시 3,000만원, 결혼시 각 5천만원 지원▸부채: 400만 신불자 무이자 장기융자로 완전해결, 어음보험제도 신설로 부도해결▸취업 : 중소기업 취업자 매월 100만원 쿠폰지원으로 청년실업해소와 중소기업육성▸도덕: 은행융자에 대한 이자를 1년이상 납부한 서민들에게 만기시에 원금의 일부 공제▸사법: 이혼전과 기록 호적기재폐지, 가정생활용품 압류금지하여 국민사생활 보호▸교육: 고교부터 전공 한과목 시험으로 과외해발, 대입본고사 부활, 수능폐지▸조세: 전기, 전화, 핸드폰, 수도요금 각 5만원까지 국가부담, 자동차세, 양도세 폐지▸경제: 산삼뉴딜정책으로 1천여개 산삼단지에 100만 실업자 고용하여 실업문제 완전해결▸국방: 6.25, 월남참전용사 3억원 및 매월 30만원 지급, 국민연금 폐지19대 대선(2017년)▸이명박구속 (사랑의 열매 1조 기부 시 면책)▸박근혜 부정선거 수사 (결혼 승락시 면책)▸새누리당 해체 및 지도부 구속 (소록도 봉사 5년시 집행유예)▸UN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건국수당 매월 70만원씩 지급(어버이연합 제외)▸결혼수당 남녀 각 5,000만원씩 지급 (재혼시 1/2지급, 삼혼시 1/3)▸출산수당 출산 시마다 3,000만원씩 지급▸국회의원 출마자격 고시제 실시 - 국회의원 1/3로 감원▸정당정치 해산하고 국회의원들이 무보수 명예직으로▸몽골과 국가 연합▸바이칼 호수 서울시 공급▸만주땅 국고 환수▸독도 간척사업으로 일본 근해 500미터 앞까지 영토 확장   “내 일찍이 관심법으로 그들이 나의 무공을 따르게 될 것을 읽고 있었느니라.”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재명공자의 기본공은 기본소득공, 기본주택공, 기본금융공의 3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갈수록 교주님의 기본공과 무상초식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내가 일찍이 창안했던 신혼부부1억원지원공만 해도 그렇네. 과거엔 강호 백성들이 잘 몰라서 황당하다했지만, 저출산고령화의 재앙을 직접 겪고 나더니 달라지지 않았는가. 결국 내 무공의 진가를 강호 백성들부터 알아보기 시작한 거지. 그러니 재명공자며 나찰수 따위가 내 무공을 흉내내려고 저리 안달인 게 아닌가."    영 아닌 말도 아니다. 그가 무림 비무에 첫 출전한 건 무력 1991년. 한양성 은평관 의원 비무때였다. 그 후 이번까지 여덟 차례 비무대회에 출전했다. 그런 그가 정작 무림에 이름을 알린 건 무력 1997년 15대 무림지존 비무대회다. 그는 기본공, 무상권법, 국가배당검법 등 다양한 무공을 창시했다. 강호의 선남선녀에게 각 5천만냥씩 혼례수당을 지급한다, 출산할 때마다 3천만냥씩 출산 수당을 준다, 연애 수당도 매달 20만냥씩 준다며 터무니없이퍼주기초식을 펼쳤다. 공중부양술과 축지법에 달통했고 외계인 절정고수와도 통한다며 믿거나말거나공을 퍼뜨리기도 했다.    정통 무림인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그의 공약을 사술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강호엔 그를 추종하는 무인들이 대거 늘어났다. 급기야 무림의 양대 거대 문파 더불어당과 국민의방 마저 그의 무공을 흉내내고 있다.    허본좌의 퍼주기무공은 시간이 갈수록 위력이 강해지고 있다. 지존 비무에 첫 출전한 무력 97년 그의 군세(群勢=지지율)는 3만9055표(0.15%)에 그쳤다. 10년 뒤인 2007년엔 9만6756표(0.45%)로 늘었다. 10년의 출전 금지가 풀린 뒤 다시 출사표를 던진 이번 20대 지존 비무. 그의 약진은 더 놀랍다. 몇몇 무림 민심 조사에선 나찰수 윤석열과 재명공자에 이어 4.7%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는 요즘 사자후를 터뜨리고 있다.    "보라. 강호 백성들이여. 내 군세가 비행기처럼 수직 상승하고 있다. 재명공자와 나찰수가 지존좌를 노린다면 먼저 내 칼에 물어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허본좌의 심기는 요즘 불편하다. 지존 비무에서 그는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그를 지존 비무 후보에 정식으로 넣어주는 곳이 거의 없다. 군세가 1%도 안 되는 호호선생 김동연은 각종 무림 민심 조사에 넣어주지만 그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그는 이런 불공평이 곧 고쳐질 것이라고 믿는다. 당장 그의 목표는 곧 열리는 전시(電視=TV) 토론비무에 참석하는 것이다. TV 토론비무는 사실상 지존좌를 결정짓는 최대 승부처다. 무림법상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이 5% 이상이어야 참석이 가능하다.    "만일 나를 빼고 TV토론비무를 펼친다면 이번엔 강호 백성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   결국 나는 이번 TV 토론비무에 기필코 참석할 것이다. 아무렴. 그 때가 되면 강호 백성들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천하의 모든 퍼주기무공의 원류가 누구인지. 원조 퍼주기초식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당장 준비된 초식만 33가지. 나는 이를 '혁명공약'초식이라 부른다. 18세 이상 백성에게 코로나역병 생계지원금 1억원 지급, 국민배당금 매달 150만냥 지급, 전업 주부 수당 1억냥, 노인 수당 매달 70만냥 지급은 기본 중 기본이다. 무림의원을 100명으로 줄이고 양대 정당 문파를 폐지하며, 수능과 징병제도 없앨 것이다. 지금도 나의 이런 초식을 비웃는 자들이 있다. "퍼주기초식으로 무림을 희화화한다"며. 웃기는 소리다. 30년 전에도 나를 그렇게 비웃던 자들이 있었다. 지금은 어찌 됐나. 그런 자들이 앞장 서 "허본좌 무공을 베끼자"며 호들갑을 떨고 있지 않은가.     뭐 최악의 경우 내가 TV 토론 비무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차기 지존좌도 물 건너 갈 수 있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역병 지원금 50조냥 퍼주기초식을 펼치는 나찰수 윤석열이나 기본소득·대출·주택 초식을 자신의 성명절기라며 뽐내는 재명공자, 모두 내 퍼주기무공을 베끼고 흉내낸 자들이다. 그러니 누가 이긴들 어떠랴. 훗날 강호의 역사는 20대 무림지존 비무를 내 수제자들끼리의 경쟁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말하자면 나 허본좌의 후계 경쟁이랄까. 껄껄껄…. 그리 보면 나야말로 명실상부한 지존 중 지존인 셈이지. 허본좌의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12.10 05:00

  • 나찰수와 국민동자의 힘겨루기 "절박한 쪽이 이긴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③]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3화〉 국민지난(國民之亂) 곪은 상처는 시간이 문제일 뿐, 반드시 터진다.      술시말(밤 9시경) 여의섬에 자리한 국민의방 총단은 적막에 잠겨있다. 불빛이 흘러나오는 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석 달밖에 안 남은 천하대전을 준비하는 재야무림의 본산다운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글렀어.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람. 방주가 가출하고 집안일을 돌보지 않다니…. 이런 콩가루 집안이 뭐가 되겠어"   염소수염의 사내가 투덜거렸다. 그는 국민의방의 말단 무사다.     "그러게 말이야. 이래서야 어디 싸움 한 번 제대로 해보겠어? 저쪽의 재명공자는 날아다니고 있는데 말이야. 급기야 엊그제는 군세(群勢=지지율)가 뒤집어지기까지 했다는군. 자칫 잘못하면 재명공자에게 지존좌를 헌납하는 꼴을 눈 뜨고 지켜보게 생겼네, 그려."   동료 무사가 말을 받았다.      "다 그놈의 나찰수인지 나찰발인지 때문이야.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더니 원, 주객이 바뀌어도 유분수지. 엉뚱한 작자가 후보가 되는 바람에 이렇게 된거 아니야. 무림의 무자도 모르는 백면서생이 지휘봉을 잡았으니 방이 잘 굴러갈 턱이 있나."    그때 문을 발칵 열어젖히며 구중설자(口中舌子=입속의 혀) 장제원이 들어섰다. 그는 다짜고짜 수하들의 입을 때렸다. 고꾸라지는 수하들을 보며 구중설자는 씩씩거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뭐가 어째. 대전을 앞두고 싸워 이길 궁리는 않고 불평만 털어놓다니. 바로 너희 같은 자들 때문에 우리 방이 지금 이 꼴이 된 거야."    구중설자는 가슴이 타는 듯했다. 벌건 숯덩이를 통째로 삼킨 느낌이 이럴까. 위기다. 자칫하면 재명공자에게 대세를 빼앗기고 만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린가. 자유한국방, 미래통합방 시절의 패배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자며 다시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아온(捲土重來) 여의섬 총단 아니던가. 그 총단의 수하들마저 이 꼴이라니. 재인군 치하 영욕의 5년, 다 죽어가던 방을 기사회생시킨 게 누군가. 나찰수 아니던가. 천신만고 끝에 승기를 잡았건만 그걸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할수록 국민공자 이준석이 괘씸했다.      #사람마다 곡절이 있다 아니나다를까. 당금 국민의방엔 안달 난 사내투성이다. 그중 처음은 구중설자 장제원이다. 구중설자란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나는 진심이다. 나의 주군 나찰수 윤석열은 "내겐 형님 같고, 아버지 같으신 분"이다. 나를 일러 나찰수의 '문고리 3인방' 중 하나라 하나 참으로 억울한 얘기다. 나머지 두 사람을 나와 함께 묶는 건 나에 대한 모욕이다.   사람의 진심을 알려면 입이 아니라 발을 봐야 한다. 나의 발은 언제나 나찰수를 향한다. 오죽하면 귀제갈 김종인이나 국민동자 이준석이 내 탓을 했을 때, 나찰수에게 말도 없이 직을 던졌겠나. 백의종군 아니라 흑의종군, 마의종군이라도 좋다. 나는 주군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다.  나는 나찰수의 아내 옥수날심 김건희에게도 진심이다. 그녀가 원하는 노래를 듣고 그녀가 원하는 그림을 보며 그녀가 원하는 말을 한다. 왜 그러겠나. 남들은 모르나 나는 안다. 나의 주모 옥수날심은 강호 최고의 여걸, 세상은 그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 주모가 한 번 일어나 떨치면 천하가 뒤집어 지리라.     나만큼 주군과 주모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도와 달라. 힘을 합쳐야 산다. 미친 듯이 뛰어보지만 되레 역효과만 날 뿐이다. 방내에는 우군보다 적들이 더 많은 듯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단 말인가. 아예 노골적으로 타도 나찰수를 외치는 무리들까지 등장하는 판이다. 설마 문고리 3인방에 대한 미움이 정권 교체, 차기 지존좌에 대한 열망보다 크단 말인가.    아무리 일심, 단편으로 소문나 구중설자라 불리는 나 장제원도 기운이 빠진다. 나의 주군 나찰수는 "나는 결코 구중설자를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나마 그게 큰 위안이다. 하지만 국민동자까지 저렇게 나오면 위험하다. 이 한 몸 바쳐 주군을 구할 길이 없단 말인가. 하늘이여, 주군을 버리나이까. 국민의방을 버리나이까.      안달 난 사내 둘은 국민동자 이준석이다. 국민의방 방주인 그는 지금 고행길을 걷고 있다.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 애초 나찰수를 끌어오는 게 아니었다. 조기 입방을 몰아붙이느라 무리수를 둔 게 화근이었다. 나찰수와의 힘겨루기는 버겁고 불편하다. 그의 나찰수는 애초 무림의 무공이 아니다. 관(官)의 무공이다. 본래 관과 무림의 관계는 우물과 바닷물과 같다.짠물과 민물은 서로 섞이지 않는 게 가장 좋다. 그걸 억지로 섞어 놓으니 매사에 삐걱거릴밖에. 오죽하면 내가 방내 비무 땐 심술(心術)도사 홍준표가 이기길 바랐으랴. 그랬다면 만사여의, 지금처럼 내가 방내 입지를 놓고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하기야 어디 나찰수뿐이랴. 그의 아내 옥수날심과의 첫 단추도 잘못 끼워졌다. 첫 만남에서 "자유분방한 강호의 여걸보다는 요조숙녀를 좋아한다"는 말을 왜 했단 말인가. 말이 입 밖에 나간 뒤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를 쳐다보는 옥수날심의 눈매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때 그날 그 자리, 서초골 공공가(公共家=아파트)의 악몽은 되물릴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되 물리고 싶은 심경이다. 그 바람에 아내의 말이라면 껌벅 넘어간다는 나찰수와의 관계가 더 껄끄러워지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풀 죽을 내가 아니다. 내 이름이 괜히 국민동자인가. 국민이 들어간 싸움에서는 결코 지지 않는다. 게다가 방내 싸움이라면 전매 특허다. 자신있다. 나는 온갖 험난한 내부 싸움에서 이기고 살아남았다. 내 좌충우돌관종공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절대 고수일수록 더 상대하기 쉽다. 어차피 나는 잃을 것 없는 청년 무사, 이기면 대박 져도 본전 아닌가. 방내 싸움에서 질 리가 없다. 오죽하면 전 방파였던 바른미래맹의 맹주 손학규가 "국민동자 이준석이라면 치가 떨린다"고 했을까.    지금이 기회다. 내 몸값은 지금이 상한가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강호의 2030 선남선녀들을 끌어올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이미 방의 재정을 장악했다. 공보총괄호법은 400억냥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리다. 방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의 팔할이다. 아무리 무공 실력이 말하는 강호 무림이라 하나 황금공을 당해낼 무공은 없다. 차기 지존좌가 눈앞에 있는 지금, 내 몫을 확실히 약속받아놔야 한다. 최소한 내년에도, 국민의방 방주 자리는 내 몫이어야 한다.    승부수는 던져졌다. 나찰수 일당은 내 구명 초식을 취중작난(作亂)으로 몰아가려 하나 천만의 말씀, 이 한 수야말로 구중설자와 옥수날심을 한 묶음으로 처리하는 비장의 절초가 되리라. 나찰수는 나를 잃으면 모든 걸 잃지만, 나는 아니다.      안달난 사내 셋은 국민교수 김병준이다. 애초 국민동자 이준석에게 빌미를 주는 게 아니었다. 지난번 내방 때 귀제갈 김종인이 뭐랬던가. 그는 국민동자를 "저 꼬마는 깜량이 안 돼"라며 일축했다. 그때 귀제갈은 멀리 보고 있었다. 지존좌는 떼놓은 당상, 그 후가 중요하다고 했다.    "내년에 나찰수가 지존좌에 앉으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여권 무림의회 180석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집권하면 180석은 무너지게 돼 있다. 그걸 잘 처리해야 한다. 이리저리 갈라놓되 30석 정도는 국민의방으로 끌고 와야 한다. 그 일을 누가 맡을 것인가. 내가 아니면 그 큰 판을 주도할 사람이 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귀제갈이 나찰수와 갈라진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귀제갈은 "지금 나찰수는 그 역할을 백발자 김한길에게 맡기겠다는 것 아닌가? 나는 그걸 용납할 수 없네"라며 단호히 끊었다. 내가 아니었다. 귀제갈의 심기를 상하게 한 건 백발자 김한길이었다. 귀제갈은 "세간에서 뭐라 하든 나 귀제갈은 김병준, 당신한테는 유감이 없다"라고도 했다.    그날 말미에 귀제갈은 국민동자의 몽니를 예견했다. "저 꼬마가 내년에 그런 큰 판이 펼쳐질 때 방주 자리를 놓칠까 봐 저리 안달이야. 애 좀 먹을 것이네."  나찰수는 국민동자의 힘을 빼고 싶어한다. 내게 방법을 묻기도 했다. 귀제갈 대신 나를 택한 나찰수다. 뭐라도 힘이 돼줘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국민동자는 늘 예상을 뛰어넘는다. 무림언론의 생리도 꿰고 있다. 언제 어떤 초식을 들고 나올지 모른다. 이번에도 취중작난초식을 들고나올 줄 누가 알았으랴. 잘되면 좋고 아니면 취중 실수로 넘어갈 요량이다.    어려울수록 정도로 가야 한다. 국민동자를 품고 가야 한다. 당장 묘수가 없다면 외곽에서 포위하는 게 방법이다. 심술도사 홍준표, 직도(直刀)선생 유승민부터 끌어와야 한다. 무림엔 사석이 없다. 심술도사나 직도선생은 사석이 아니다. 귀제갈 김종인, 무림동자 이준석만 있는 무림을 만들면 안 된다. 손짓 하나, 전통(電通) 한 번이면 된다. 직도선생을 찾아가고 심술도사를 무릎 꿇고 청해야 한다. 절박함을 보여줘야 한다. 그 절박감으로 운동장을 넓게 써야 한다. 그 운동장에 홍준표의 청년 공감, 유승민의 경제 재건, 원희룡의 국민 통합이 함께 뛰놀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귀제갈, 국민동자가 작아진다. 작아진 그들이 스스로 운동장을 찾게 해야 한다.    그런데 어쩌나. 나찰수는 관의 무공을 익힌 자. 좀체 무림의 생리에 적응하지 못한다. 절박감은커녕 자만감을 키우고 있다. 위기다. 이래선 곤란하다. 관의 무공을 벗고 강호의 무공으로 거듭나야 한다. 강할수록 굽히는 게 강호의 법칙이다. 이런 이치를 나찰수에게 어떻게 전하랴. 아무리 내 전공이라 하나 압축 강의에도 한계가 있다. 국민교수의 시름이 깊어졌다.    # 재명공자는 양산박을 꿈꾼다 국민의방이 자중지란에 빠진 그 시각, 재명공자는 재인군에게 밀통(密通)을 넣고 있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하나만 간청드리리다. 통진교주 이석기, 그를 풀어주십시오. 이번 성탄 특사로."    통진교주 이석기가 누군가. 북무림의 지존 마동(魔童) 정은의 호법을 자처하다 그네공주의 철퇴를 맞고 무림옥에 갇힌 자가 아닌가. 재명공자의 계산은 분명했다. 이석기를 풀어내면 첫째, 북무림이 움직일 것이다. 내가 보내는 굴신의 신호를 마동 정은은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정의당의 세력이 내게 올 것이다. 차기 지존좌 쟁투는 이미 패싸움으로 변질된 지 오래, 어설픈 남의 패를 끌어오기보다 내 패를 강화하는 게 첩경이라. 셋째, 민주련을 내 손아귀에 확실히 넣게 된다. 민주련의 재명공자가 아닌, 재명공자의 민주련. 명실상부, 재명공자의 양산박을 완성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12.03 05:25

  • 나찰수와 재명공자 "호랑이 초패왕보다 늑대의 왕 유방을 배우리라"[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②]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 2화〉 파부침주(破釜沈舟) 지면 죽는다, 돌아갈 배는 없다.      호랑이와 사자의 시대는 갔다. 대중검자와 공삼거사, 종필노사가 호령하던 강호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지금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개와 늑대가 우르르 패거리 지어 호랑이와 사자의 시체를 갈가리 뜯어먹는 세상이다. 패거리들은 살점 한 점 남기지 않는다. 다른 무리의 몫은 없다. 옳음과 정의와 공정이 남김없이 도륙되는 비정 강호다.    "이런 세상을 다시 호랑이와 사자의 시간으로 되돌리고 싶습니다."    백발자(白髮子) 한길공은 지난봄 나찰수와의 첫 만남을 그렇게 기억한다. 무림 초출의 백면서생 입에서 나온 말치곤 담대했다. 그때 내가 뭐랬던가.      "나는 검찰포두(捕頭)가 바로 무림지존이 되는 세상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오. 다만 망군(亡君)의 세상은 끝내야 한다고 믿소. 당금 무림지존의 패거리들이 다시 차기 지존좌를 차지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뜻. 귀공이 아니면 누구도 그 일을 해낼 수 없다면, 그때는 내 귀공을 도와 천하 패업을 이루리라."    그 후 육 개월여. 다시 몇 차례의 만남이 있었고 마침내 나찰수 윤석열은 내 말빚의 청구서를 내밀었다.     "노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권을 드릴 테니 전력을 주십시오."   깊은 고민 끝 대답은 "락(落)"이었다.      "세상 무인엔 두 종류가 있소. 협객(俠客)과 낭객(浪客)이요. 협객은 갓난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오. 귀공이 검찰에서만 26여개 성상을 지낸 것은 무림지존좌에는 단점이나, 협객으로선 장점이오. 낭객은 세상을 두루 익혀야 하오. 경험이 깊을수록 초식이 풍부해지고 변화무쌍해지는 법이니. 그 점에서 재명공자는 낭객의 으뜸이라 할 만하오. 하나 협객은 세상 무공을 다 배울 필요가 없소. 되레 경험이 얕을수록 그 무공이 더욱 진실하고 깊어지는 법이요."    나찰수 윤석열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그런 그의 눈빛을 마주 보며 한길공은 힘주어 말했다.    "서양의 철인 니체는 '모든 무공 중에서 나는 피로 익힌 것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나찰수야말로 진실로 피로 익힌 무공이 아니겠소."     나찰수는 귀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내 귀공에게 한마디 서툰 조언을 하리라. 초패왕은 호랑이였지만 늑대 떼의 우두머리 유방에게 패했소. 초 패왕 항우 말고 그를 물리친 유방이 되시오. "    유방은 어떻게 항우를 물리쳤나. 항우처럼 정통 절정 무공을 익히지 못한 유방은 대신 두 가지 기공에 집중했다. 흡입마공과 흡인공. 흡입마공이 세상의 모든 무공을 빨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마공이라면 흡인공은 세상의 모든 무인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마공이었다. 그는 이 둘을 자유자재, 적시적재에 사용해 마침내 천하제일 무력 항우를 꺾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당금 무림에 흡입마공의 일인자는 재명공자요. 이를 상대할 내공은 하나뿐이요. 바로 흡인공. 귀공은 부디 흡인공을 절정으로 익혀 재명공자의 흡입마공을 상대하기 바라오."    유방은 흡인공을 쓸 때 자신의 감정까지 억제했다. 기원전 203년, 한신은 제나라의 70여개 성을 공격해 손에 넣었다. 세력을 얻게 된 한신은 유방과 맞설 마음이 생겼다. 한신은 "(내가) 제나라 왕이 되지 않으면 형세를 안정시키기 어렵다"는 서신을 유방에게 보냈다. 당시 유방은 항우의 군대에 겹겹으로 포위돼 절체절명의 상황을 맞고 있었다. 아내마저 항우에게 잡혀 분통이 터지던 때다. 당장 구하러 오지는 않고 거래를 하려 한다며 유방은 갖은 욕설로 한신을 비난했다. 하지만 그의 수하 장량과 진평이 "지금은 한신이 필요할 때"라고 조언하자 금세 화를 거두고 말을 바꿨다. "못난 양반. 대장부가 큰 공을 세우고 제후를 평정했으면 떳떳하게 왕이 되면 그만이지. 뭣 때문에 왕으로 허락해달라고 난리인가"라며. 그렇게 한신을 거둔 유방은 결국 한신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게 된다.      "유방이 아니라 항우였다면 어땠을까? 당장 말을 타고 달려가 한신의 목을 쳤을 것이오. 아니면 최소한 평생 한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요. "    "귀제갈 김종인, 삼고초려가 아니라 십고초려라도 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게 시늉이든 진심이든. "    한길공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흡인공의 요체는 인(忍), 참고 또 참는 것이요. 인이란 마음(心)에 칼날(刃)이 올려져 있는 모양. 무릇 칼로 자신의 마음을 찌르는 것과 같소."    "명심, 또 명심하리다. 부디 천하의 내로라하는 좌파·중도 무인을 모두 내게 불러주십시오. 인(忍)의 요결로 흡인공을 펼쳐 그들과 함께 천하를 도모하겠소. 내 비록 호랑이로 태어났으나 늑대 떼에 쓰러진 항우가 아니라 유방이 되리다."    # 역발산 기개세도 사면초가에 꺾였다    무림지존이었다. 이번이 벌써 세번째던가. 첫 전통(電通)은 이달초 더불어당의 지존비무대책위원회 출범 직후였다. '이 양반도 무척 급해졌군'   "어이쿠 지존께서 어찌 또 연락을 주셨는지. 며칠 전 강호 백성들과의 대화는 감동적이었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귀공의 승리에 도움이 돼야 할 텐데 변죽만 울리다 만 것 아닌지 걱정입니다."    "강호인들이 충심으로 지존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 젊은 친구가 '지존님, 얼마 안 남았지만,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라고 할 때는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람을 골라 부른들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지요."    재인군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지, 임기 6개월 남은 역대 지존 중 나만큼 강호인들의 지지를 받은 지존이 또 어디 있으랴. 무려 사할. 무림의 사할이 지금껏 나를 추종하고 있지 않은가.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당신이 지금 내게 설탕을 바른 듯 입을 놀리는 것도 그래서겠지.   "내 서툰 조언을 한마디 할까 하는 데 괜찮겠습니까. "     "하명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하명이랄 것까지야. 하나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나를 밟고 가도 좋다는 겁니다. 특히 부동산 문제라면. 그러나 너무 심하게는 말았으면 합니다. 그랬다간 귀공에게도 득보다 실이 클 것이요. 둘은 초 패왕 말고 그를 물리친 유방이 되시라는 겁니다."    오호라. 내가 흡입마공을 익힌 줄 누구보다 잘 아는 재인군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뭔가. 유방은 욕심이 태산 같았지만, 더 큰 욕심을 위해 작은 사욕(私慾)을 참을 줄 아는 사내였다. 설마? 대장동 때문에? 나를 의심한단 말인가.      유방은 원대한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인내했다. 사욕도 억제했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입성했을 때다. 유방은 궁 안의 금은보화와 미녀들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번쾌가 출궁을 권했지만 차마 자리를 떠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장량의 충언에 따라 눈앞의 재물을 그대로 둔 채 단호히 궁을 빠져나왔다. 진나라 백성들이 술과 고기를 바쳐도 받지 않았고, 동전 한 푼 함부로 거둬들이지 않았다. 이때 나온 말이 엄한 군기로 민간의 것은 추호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추호무범(秋毫無犯)이다.      나야말로 유방처럼 살았다. 사욕을 철저히 눌렀다. 대장동 개발 때 수천억~수조 원이 굴러들어왔다. 내가 취하려면 얼마든지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호히 물리쳤다. 삼가고 또 삼갔다. 화천대유며 천화동인이 금은보화를 바쳐도 받지 않았고, 백성들에게 동전 한 푼 함부로 거둬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재인군의 이 느끼한 조언은?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모든 것을 바꾸겠습니다. 납작엎드려큰절하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자신만만 재명공자는합니다는 잠시 접어놓겠습니다. 더불어당의 지존비무대책위원회부터 싹 갈아엎겠습니다. 어떤 무공이든 겸손과감성초식으로 바꿔 펼치겠습니다. 기필코 항우를 해하(垓下)에서 꺾은 유방이 되겠습니다."   나는 변방의 무공으로 정통 무공을 꺾고 여기까지 왔다. 정통 무공은 배운 적도 익힌 적도 없다. 기회도 없었다. 기본소득공이며 무차별현금살포공, 국토보유세공까지 내 성명절기는 모두 변방의 무공이라며 천대받던 것들이다. 그것으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나찰수와의 승부는 다르다. 변방 무공들이 잘 먹히지 않는다. 시간도 내 편이 아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안 통하는 초식은 안 쓰면 된다. 다른 무공으로 승부하면 된다. 세인들은 잘 모르나 나의 최고 절기는 흡입신공. 흡입신공은 세상의 모든 무공을 빨아들여 내 것으로 만드는 절대 신공. 능소능대하며 능약능강이라. 어떤 초식인들 펼치지 못할 것이 없다.     단호한 재명공자의 목소리. 재인군은 일면 안심했고 일면 섬뜩했다. 재명공자는 천재다. 흡입신공을 익혔다고 누구나 남의 무공을 쉽게 자기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는 다르다.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남의 무공을 훔칠 수 있다. 원 소유자보다 더 잘 펼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태산보다 큰 권력욕을 가졌다. 지존좌를 쥐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내다. 내가 대장동 건을 슬쩍 흘리자 당장 납작 엎드리는 것을 보라. 아무나 못 하는 일이다. 이런 자는 강호에 다시 없다. 그는 반드시 차기 지존좌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열망. 천하를 쥐려면 천하만큼 큰 열망이 있어야 한다. 유방이 그랬으며 재명공자가 그런 자다. 그런데 그 열망으로 천하를 쥔 유방이 한신을 어떻게 처리했더라. 무림지존 재인군의 미간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11.26 05:00

  • 나찰수 윤석열의 포효 "승부는 이미 끝났다. 올해가 가기 전 천하를 쥐리라" [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①]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1화〉 양웅쟁패(兩雄爭覇) 둘이 싸워 이기는 자가 패자(覇者)다    一手飛翔一公落 일수가 날아오르니 일공이 추락하네.     一公力探反轉諾 일공은 전력을 다해 반전의 기회 엿보고 있네.   天不知, 地不明, 人不測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며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네.   誰獲民心得天下 누가 백성의 마음을 잡아 천하를 얻을 것인가.     신강호웅풍가 (新江湖雄風歌)가 불리기 시작한 것은 무력 2021년 11월이었다. 무릇 강호의 민심은 느린 듯 빠르며 무지한 듯 지혜로운 법. 노래는 차기 무림지존좌가 양웅쟁패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양웅(兩雄)은 일수 나찰수 윤석열, 일공 재명공자를 일컬었다. 천하의 판세는 이즈음 크게 뒤틀리고 있었다. 일수 나찰수가 날아오르며 일공 재명공자 이재명은 정체에 빠졌다. 이대로라면 승부는 명약관화,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일공이 어떤 위인인가. 쉽게 주저앉을 리 없다. 재명공자는 어떻게 반전의 기회를 만들 것인가. 과연 만들 수는 있을 것인가. 강호의 눈과 귀는 온통 여기에 쏠렸다.      # 나찰수 잠시 기뻐해라,     고양이를 닮은 눈-묘안(猫眼)엔 모든 것이 담긴듯하되 또한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듯하다. 응시하듯 응시하지 않듯 형형한 재명공자의 눈빛은 보는 이를 단숨에 압도할듯했다. 그와 더불어 무인의 길에 들어선 지 수십 년, 산전수전 다 겪은 무림선비 정성호로서도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 그의 주군 재명공자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나찰수가 무림지존이 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요. 그의 무공이란 게 재야무림에서나 통하는 편협함 투성이, 험난 강호에선 결코 뜻을 이루지 못할거요. 나찰수 윤석열의 실전 경험은 터무니없이 부족하오. 무릇 천하를 가름하는 싸움엔 넘어야 할 고비가 많은 법. 나찰수는 틀림없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될 거요. 나의 비주류편가르기공은 그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오."    "물론 주군의 말에 따라 방내 모든 제자들이 나찰수를 때리는 무공-타수공(打手功)을 죽어라고 익히고 있기는 하오, 하지만 정말 타수공만으로 나찰수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지 모두가 불안해하는 것도 사실이오."      "내게 다 복안이 있습니다. 아무 말 말고 지금은 나찰수처가 때리고 흠집내기공만 열심히 펼치라고 이르세요."    하기야 일신의 무공만으로 따진다면 재명공자를 일대일로 이길 무림인은 당금 천하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경제·사회의 정통 무공은 물론 기본소득·국토보유세공 처럼 변방의 무공까지 통달했다. 무림선비 정성호의 걱정은 그러나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나찰수 윤석열의 확장성과 폭발성을 걱정하고 있는 중이다. 국힘당 경선 비무 승리 후 나찰수의 행보는 위험천만이다. 그는 천하의 재사와 고수들을 다 아우르려 한다. 군세(群勢=지지율)가 오할을 넘어섰다는 보고도 있었다. 그를 원하는 무림 중도파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증거다. 다급해진 여권 무림이 더불어당 당주 송영길을 비롯해 일제히 타수공으로 나찰수의 가족 때리기에 나섰지만, 무림선비 정성호는 영 탐탁지 않았다. 나찰수 윤석열의 처가집 약점은 재명공자의 대장동 약점과 견줘 강호인들이 보기엔 거기서 거기가 아니던가.   게다가 대장동 국감 때 재명공자가 정면돌파 초식을 펼친 것이 역효과를 냈다. 전투엔 이겼지만 전쟁엔 졌다. 민간업자가 떼돈을 벌어서 강호 백성 모두가 배가 아픈데 "내가 설계 잘한 거다"라고 하니 어떤 백성이 납득하겠나. 강호인들은 급기야 "재명공자는 합니다"에 공포감을 갖기 시작했다. 더불어당과 원팀을 만든 건 좋았지만 그 바람에 여권 무림의 틀에 갇혔다. 그건 중도 무림으로 지지세를 확장해 나찰수를 중원에서 무너뜨리겠다는 재명공자의 계산이 빗나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런데도 더 강수 일변도니 원, 저 속엔 뭐가 들어있는지 몰라. 도대체 들여다볼 수가 없으니.      재명공자는 무림선비 정성호의 불안을 꿰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참새가 대붕의 뜻을 알리오. 전투와 전쟁은 다르다.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나는 마흔여섯에 성남 무림의 패자가 된 후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누구도 익히지 못했던 좌파 신무공까지 완벽히 터득했다. 무차별현금살포공, 기본소득공, 국토보유세공이 그것이다. 이들 무공이 일제히 펼쳐지면 강호는 일 대 구로 갈라질 것이다. 열에 아홉은 내 무공 앞에 스러질 것이다. 이들 무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게 특징. 당장은 저항할 수 있어도 반복되면 누구도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려면 나찰수에게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타수공으로 정신없이 나찰수를 몰아치리라. 나찰수는 분노하리라. 생전 누구에게 이런 꼴을 당해본 적이 없으니 펄펄 뛰는 심장을 추스르지 못하리라. 분노는 실수를 낳고 실수는 곧 패배로 이어지리라. 반전은 십이월 제야. 무림감찰과 공수처가 열일을 하리라. 해를 넘기면 나찰수를 잡을 수 없다. 해가 가기 전에 반전의 깃발이 높이 드리워지리라. 그때가 되면 나찰수의 군세는 오뉴월의 얼음 녹듯이 사그러들 것이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는 날, 강호는 알게 되리라. 재명공자의 천하가 시작됐음을.    # 삼인을 삼고초려하다     나찰수 윤석열이 삼고초려한 첫 사람, 백발자 (白髮子) 한길공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이미 금분세수(金盆洗手=강호를 은퇴함) 한 몸, 지금처럼 그저 귀공의 초식이 길을 잃었을 때 간혹 도우면 족하리다."    "보보(步步)마다 첩첩산중(疊疊山中)이요 도산검림(刀山劍林)이라, 걸음마다 칼산과 검숲처럼 어려우니 노사의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습니다. 부디 곁에서 길을 일러 주십시오."    경선 비무 때부터 벌써 세번째 방문, 나찰수 윤석열은 집요했다. 그는 한길공이 가진 무공과 세력을 탐냈다. 한길공은 대중검자의 바람검을 이은 자, 나찰수가 중도 무림의 군세를 가져오려면 그만한 적임자를 찾기 어려웠다. 한길공의 도움을 얻는다면 천하를 반쯤 손에 쥔 것과 다름없을 터였다.      "몇 번을 말하지만 이번 싸움은 재명공자와 나찰수의 싸움이 아니오. 무림 기득권에 대한 폭 넓은 분노와 심판이오. 그러니 재명공자를 이기는 데는 막대기 하나만 세워놔도 충분할 것이요. 내게 매달리지 않아도 되오. 게다가 나를 불러들였다가 귀제갈 김종인의 몽니를 어찌 감당하려 하시오."   "저는 확실한 승리를 원합니다. 귀제갈 김종인엔 전권을, 노사껜 실권을 드리겠습니다. "    한길공의 마음이 슬쩍 움직였다. 재인군 천하는 더 계속돼선 안 된다. 더는 무림이 황폐해지는 꼴을 볼 수 없다. 재명공자의 차기지존좌 등극은 막아야 한다. 내 비록 검을 꺾은 지 오래요, 주화입마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몸이나 천하를 다시 바로 세우는 일에 어찌 주저하랴. 한길공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두번째 사람, 국민교수 김병준. 바보공자 노무현의 책사로 이름을 날린 바로 그 사람이다. 나찰수는 그와 세 번의 통음을 했다. 저녁부터 한밤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는 영화, 야구, 소설까지 온갖 세상 얘기로 이어졌다.   그는 나찰수에게 한 가지 무공을 전수했다. 모든 사람을 끌어들이고 좋다는 모든 초식을 익히는 무공, 흡입공이다. '지존 후보는 지존과 다르다. 후보는 이를테면 환자다. 몸에 좋다는 약은 다 먹어야 한다. 이기는 데 도움이 되는 초식, 이기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은 모두 끌어들여야 한다.' 김병준의 흡입공에 나찰수는 흠뻑 빠져들었다. 나찰수는 흡입공으로 인의 장벽을 쌓으려 한다. '있는 사람 누구도 내보내지 않는다.  오는 사람 누구도 내치지 않는다. 좋은 사람은 누구든 모셔온다.' 흡입공의 3대 구결을 그는 외우고 또 외웠다.      "지금 국힘당과 귀제갈, 지존비무대책위원회 간의 갈등은 무시해도 좋소. 기존의 힘과 새 힘이 서로 부딪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되, 지금은 갈등 축에도 안 드는 일이요. 바보공자 노무현 때는 어땠는지 아시오? 바보공자가 사무실에도 못 들어가고 복도에 서 있었던 적도 있소. 당은 모두 대중검자의 사람들이 장악한 상태였소. 그래도 사람을 끌어들이고 승리를 거머쥔 건 결국 바보공자였소. 순리대로 덧셈의 무공을 펼치시오. 절대 뺄셈은 생각지 마시오."    그는 나찰수에게 세가지를 주문했다. 첫째, 귀제갈 김종인을 꼭 모셔오되 자문만 구할 뿐, 실제 싸움은 지존 후보 본인이 하라. 둘째, 흡입공은 꼭 일 대 일로 펼치되 진심을 다하라. 셋째, 누구에게도 결코 다른 이들의 무공과 초식이 어떻더니 말을 옮기지 말라. 나찰수는 비로소 종자기를 만난 백아의 마음을 알 듯했다. 강호인들이 입을 모아 술수는 귀제갈 김종인, 실력은 국민교수 김병준이라더니, 과연 그 말이 헛되지 않더라.      세 번째 사람, 귀제갈 김종인. 그의 무공은 결코 절대고수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무공을 가르치거나 상대 무공의 파훼법을 알아내는 데는 가히 천재다. 강호 초출이요 막 본격 무공 수련에 나선 나찰수로선 귀제갈의 도움 없이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 혹자는 흘러간 물, 영원한 배후세력이라며 폄훼하지만 천만의 말씀. 사람을 다루고 조직을 꾸리는 데는 귀제갈을 당할 자가 없다. 강호 무림에 그렇게 고수가 없나, 반론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쉽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두고 왜 먼 길을 돌아가야 하나.     나찰수로선 진작 귀제갈의 환심을 사두지 않았던 게 못내 후회스러울 뿐이었다. 처음부터 도움을 청했다면, 그랬다면 지금처럼 귀제갈이 심한 몽니를 부리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시간은 나찰수의 편. 귀제갈은 결국 나찰수의 책사가 돼 줄 것이다. 삼고초려 끝에 모신 삼인. 그들은  재명공자와의 싸움에서 천군만마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미 대세는 내 쪽으로 기울었다. 남은 시간은 한 달여, 승부는 올해 안에 끝날 것이다. 제야까지 내 군세(群勢=지지율)를 늘려가면 된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그 뒤에는 재명공자에겐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는 날, 강호는 알게 되리라. 나찰수 윤석열의 천하가 시작됐음을.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11.19 05:00

  • 나찰수 윤석열 "안철수 마음 얻어 재명공자를 꺾고 천하를 쥐리라"[이정재의 대권무림⑧]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제8화〉 일산양호(一山兩虎) :한 산에 두 마리 호랑이, 지존좌는 하나뿐       國力壇上羅刹登(국력단상나찰등)     국힘당 단상 위로 나찰수 윤석열이 올라가니     一陣狂風天下騰(일진광풍천하등)     강호에 일진 광풍 몰아치며 천하가 요동치네     不是在明施鬼計(불시재명시귀계)     재명공자가 귀계를 펼치지 않았다면     羅刹安得國力黨(나찰안득국력당)   나찰수가 어찌 국힘당을 얻었겠나         # 수고했다 나찰수, 거기까지다   무림력 11월 초닷새. 야권 무림 상대가 확정됐다. 나찰수 윤석열. 재명공자의 가는 눈이 더 가늘어졌다.    "아쉽게 됐군. 쉽게 갈 수 있었는데, 바보 같은심술(心術) 도사 같으니, 멍석을 다 깔아줘도 그깟 나찰수 하나를 못 당한단 말인가. "     그는 손에 든 밀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대(對) 심술도사 홍준표'  밀지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심술도사 홍준표는 내게는 모든 것에서 하위호환,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각자의 대표 초식 3개만 비교해 봐도 불문가지다. 밀지에 적힌 내용도 그랬다.      1. 욕설대마왕 홍준표의 누구에게나욕하기초식은 재명공자의 형수에게쌍욕초식을 당할 수 없다. 2. '홍준표는합니다'는 '이재명은합니다'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 그의 사법고시나 학력고사 부활 따위는 재명공자의 부자것뺏어나눠주기와 비교도 할 수 없다. 3.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익힌다는 말바꾸기초식이야말로 준표도사보다는 재명공자가 다섯수쯤 위다. 준표도사는 미안한 감이라도 있고 "세상이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지는 법"이라며 변명이라도 하지만, 재명공자는 아예 입씻고 시침 뚝 떼고 만다.     준표도사가 내 상대였어야 했는데. 생각할수록 아쉽지만 할 수 없다. 이젠 나찰수에 집중해야 한다. 윤석열의 성명절기 나찰수는 악귀나 마졸을 때려잡는 데 특화된 무공, 아무래도 껄끄럽다. 그렇다고 주눅들 내가 아니다. 나찰수의 뿌리는 검찰공. 윤석열만 검찰공에 밝은 게 아니다. 이미 내 주변엔 검찰공을 익힌 자들이 줄을 서 있다. 현 즙포사신(=검찰총장)도 내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나찰수가 아무리 강한 무공이라 하나 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나찰수의 노림수는 오직 하나, 대장동이다. 대비는 다 돼 있다. 나찰수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즙포사신은 결코 대장동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모를 일이니 만의 하나에도 대비한다. 최후의 순간, 대장동은 고발사주로 막는다. 대장동의 '그분'이 이재명이면 고발사주의 '그분'은 윤석열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법가의 법리라고 한다. 검찰공은 '법리(法理)'의 흐름을 거역하지 못하는 무공. 이거면 충분하다.      "그나저나 나찰수는 어떻게 요리한다?"    재명공자는 다른 밀지 한 장을집어들었다. 파란색 밀지엔 '대(對) 나찰수 윤석열'이라고 적혀 있다.     1. 이십대 2. 충청무림 3. 안철수   승부처는 세 곳. 셋 중 하나라도 놓치면 필패다. 이쪽의 준비는 다 끝났다. 생각보다 오래 버텼지만 낙연거사도 결국 무릎을 꿇었다. 여권무림은 하나로 뭉쳤다. 청와궐도 이젠 내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패도란 이런 것이다. 힘으로 쓸고 나가는 것. 모든 싸움의 귀결점은 힘이다. 강력한 힘 앞엔 어떤 잔기술도 통하지 않는다. 싸움은 지금부터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원래는 지금쯤 내 군세(群勢=지지율)가 육할은 됐어야 했다. 그런데 삼할대라니. 승부처 세 곳을 다 잡아야 한다.       이십대는 반반 전략이다. 이대남은 포기, 이대녀로 간다. 나찰수는 결코 이대녀를 잡아낼 수 없다. 이대녀는 명분·대의·공정 이런 거 별관심 없다. 하지만 쩍벌남을 싫어하고 인터뷰 중 사타구니를 만지는 사내는 질색한다. 나찰수와는 극성이다.     충청무림은 최고 변수가 될 것이다. 왜 하필 나찰수가 충청무림 출신이냔 말이다. 무엇보다 연고를 중시하는 게 무림인의 특징, 세종시에 버금갈 대형 호재를 충청 무림에 던져야 한다. 나찰수란 이름을 싹 지울 만큼 큰 것이어야 한다. 그나저나 충청용 호재무공 개발을 지시한 지가 언젠데 수하들이 이리 굼뜨단 말인가.       마지막 철수의사(醫師) 안철수. 그의 군세가 오푼(5%)을 밑돌지 않게 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일할을 넘도록 도와야 한다. 철수 전문의란 오명을 얻었지만 군세가 일할만 넘으면 그는 철수의사를 접을 것이다. 끝까지 갈 것이다. 어떤 방해 공작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련은 철수의사에 대한 공격을 절대 금지해야 한다.     승부처 세 곳의 싸움과 별도로 나찰수를 거꾸러뜨릴 비기(秘技)도 준비해야 한다. 최고의 공격은 적의 약점을 집중 공략하는 것. 나찰수의 역린은 가냘픈 손의 독한 마음이라는 옥수날심 김건희다. 그녀를 볼모삼아 공격하면 그는 이성을 잃고 허점을 드러낼 것이다. 게다가 옥수날심이야말로 만기친람, 나찰수의 장자방이 아니던가.       # 기다려라 반푼공자, 이제 시작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무림에 입문하는 것, 무림인이 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미리 알았다면 아마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심술도사 홍준표가 그리 강한 무인인 줄도 처음 알았다. 생사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었는지 모른다. 독두광마 전두환에 이은 개사과는 치명적이었다. 자칫 낙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다 끝났다. 검찰공의 내공을 무림의 무공으로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서툴렀던 초식 구사도 익숙해졌다. 언제 찌르고 던지고 때리는지, 언제 멈추고 기다리고 침묵해야 할 지 알게 됐다. 이제 남은 상대는 하나, 반푼공자 이재명.    그를 상대할 제일 무공은 역시 나찰수다. 다른 무공으로 재명공자를 잡을 수는 없다. 내가 무슨 욕설공에 능한 것도 아니요, 말바꾸기초식은 더욱더 내 내공과 맞지 않는다. 아무말대잔치며 무상연애초식도 내가 익히기엔 불가능하다. 결국 나찰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 즙포사신과 검찰이 검찰공으로 철벽 방어 중이라 재명공자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승부처는 셋이다.      1. 이십대 2. 충청무림 3. 안철수   이십대는 반반이다. 이대녀는 포기, 이대남으로 간다. 재명공자는 결코 이대남을 잡을 수 없다. 이대남은 기본소득, 아무말대잔치, 문재인무림정부 계승 이런 거에 관심 없다. 준표도사에게 물어서라도 이대남을 잡을 것이다.   충청무림은 최고 변수가 될 것이다. 나는 범 충청무림 출신. 얼마든지 민주련이 장악한 충청무림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세종시에 버금갈 대형 호재를 충청 무림에 던져야 한다. 민주련이란 이름을 싹 지울 만큼 큰 것이어야 한다. 그나저나 충청용호재무공 개발을 지시한 지가 언젠데 이리 굼뜨단 말인가.     마지막 승부처는 철수의사 안철수. 나는 이미 그의 뜻을 짐작할 만하다. 우리는 첫 만남에서 마음이 통했다. 철수의사는 나를 "순박한 시골 청년 같다"고 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입으로는 "단일화 절대 불가"라고 하지만 철수의사라고 어디 생각이 없겠나. 그는 경세가의 순리를 따르는 사람. 원칙을 지키고 이유와 명분이 있으면 어떤 결단이든 해줄 것이다. 과거 대중검자와 종필노사의 대중종필연합에 해법이 있다. 나는 그에게 세가지를 약속할 것이다. 1. 무림 총리를 준다. 2. 무림 내각의 반을 준다. 3. 차기 지존좌를 준다. 이 정도면 어찌 철수의사의 마음이 동하지 않겠나.     그러려면 그의 군세(=지지율)가 오푼(5%)을 밑돌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야권 무림의 메기가 될 수 있다. 그래야 내가 그와 벼리면서 단단해질 수 있다. 심술도사 홍준표가 그랬듯이. 그와의 연합은 너무 늦어도 너무 일러도 안 된다. 적정 시점은 내년 구정 이후다. 그래야 연합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대신 철수의사의 군세가 일할이 넘어서는 건 곤란하다. 일할이 넘어서면 그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내 이름은 안철수, 내 사전에 철수는 없다   차기 지존좌의 출전자가 모두 결정된 십일월 초닷새. 철수의사는 긴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간다. 끝까지 간다. 이번에야말로 철수 전문의란 오명을 씻어내리라"    그의 다짐엔 이유가 있다. 나찰수도 재명공자도 아니다. 그 둘에게 대한무림을 맡길 수는 없다. 무엇보다 재명공자가 지존좌에 오르는 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그는 재인군의 촛불공을 극대화, 무림 전체를 태워버릴 것이다. 그를 막지 않으면 무림은 재인군 치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재앙을 맞을 것이다. 무릇 무공을 익힌 사내로서 어찌 무림의 파탄을 눈뜨고 지켜보고만 있으랴. 나찰수가 있지 않느냐고? 천만의 말씀. 나는 첫 만남에서 딱 알아봤다. 그는 적임자가 아니다. 그에겐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이 없다. 나찰수로는 불안하다. 그는 결코 재명공자를 이길 수 없다. 강호인들은 나찰수에게 실망한 지 오래다.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여권 무림엔 호호선생 김동연이 있다. 그는 재명공자의 낙마에 대비한 여권 무림의 노림수다. 야권 무림엔 뭐가 있나. 나찰수의 낙마엔 누가 대비하고 있나. 나찰수는 위태위태하다. 고발사주는 둘째 문제다. 나찰수의 손바닥에 쓴 왕자장풍공, 나는 안다. 그에게 왕자장풍공을 가르친 이가 누구인지. 옥수날심 김건희, 나찰수의 장자방으로 불리는 그녀야말로 나찰수에겐 최고 위험이다. 그녀의 만기친람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나찰수의 순정이다. 곧 여권무림의 십자포화가 김건희에게 집중될 것이다. 이성을 잃은 나찰수가 섣부른 무공으로 대응하는 순간, 야권 무림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때가 되면 과연 누가 있어 천하를 구할 것인가. 철수의사는 끓어오르는 비분(悲憤)을 이기지 못하고 으드득 이를 악물었다.     "일할, 일할이 승부수다. 나를 지지하는 강호인이 일할만 되면 그땐 천지개벽의 새무림이 열릴 것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11.05 16:26

  • 궁지에 몰린 나찰수 윤석열이 귀제갈 김종인을 삼고초려하다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대권무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제7화〉 비오불서 비인불조(非梧不棲 非人不助)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인물이 아니면 돕지 않는다     #털보가 재명공자를 돕다 늦가을 청와궐엔 어둠이 빠르다. 유시(酉時=오후 5~7시)의 석양이 북악(北岳)을 비출 무렵, 시커먼 전동마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궐문을 지키던 수호병은 두말없이 문을 열어준다. 익숙한 동작이다. 대체 뉘길래 천하의 무림지존 거처를 한차례 검문도 없이 통과한단 말인가. 마차 문이 열리자 내리는 사내 하나. 궐내의 깔끔한 계단석에 어울리지 않는 봉두난발이다. 사내는 익숙한 듯 걸음을 옮긴다. 시종장이 웃으며 맞는다.   "어서 오시게, 지존께서 진작 기다리고 계시네."   "어이쿠. 오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껄껄껄."   쇳소리가 섞인 기괴한 웃음. 강호 잡사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만사무불참견, 봉두난염(蓬頭亂髥) 털보 김어준이 아닌가.     "오늘은 또 어떤 맛 난 요리가 나올까, 은근 기대되는 거 있죠. ㅋㅋㅋ"   귀를 거슬리는 예의 쇳소리 같은 웃음이 청와궐 석양의 틈새를 뚫고 퍼졌다.   "어서 오시게. 그래 오늘의 얘기부터 들어보세."     무림지존 재인군이 자리를 청하며 털보를 재촉했다. 벌써 몇 달째인가. 혼술이 늘어가던 재인군이 털보 김어준을 저녁 자리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재인군에게 털보와의 저녁 식사는 정례 행사가 됐다. 이제는 혼술·혼밥보다 털보와 대작하는 날이 더 많을 정도였다.    "반푼 재명공자를 청와궐로 부르신 것은, 시와 때와 장소가 다 좋았습니다. 역시 천하의 지낭(智囊). 재인군 다우십니다." "자네는 늘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군." 싫지 않은 미소로 재인군이 화답했다.   "원래 금빛이 번쩍번쩍하시는 용안(龍顔)에 제가 따로 금칠을 왜 하겠습니까. 저는 사실만 말씀드릴 뿐입니다." "금칠 솜씨도 나날이 발전하네 그려. 그나저나 지난번엔 좀 과하지 않았나 싶네." 재인군이 돌연 정색하며 말했다.   "재명공자를 지지하라고 공개 방송한 것 말씀이신가요?" "그렇네. 아무리 재명공자에게 여권 무림의 미래가 있다고 자네에게 언질을 줬지만, 그리 과해서야 되레 역효과가 날까 걱정일세."   털보 김어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니 이게 무슨 호랑이 풀 뜯어 먹는 소리람. 지난 저녁 자리에서 '재명공자가 화천대유 괘에 걸려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심히 걱정이라. 이러다 차기 지존좌를 뺏길 수도 있네. 자네가 도와줄 수 없겠나' 이러면서 내 손을 꼭 쥐었던 건 뭐고. 그 간절한 눈길에 내가 홀딱 넘어가 방송인의 본분을 잊고 "재명공자 지지"를 외쳤건만, 그 바람에 야권무림과 한성시장에게 거친 공격을 받고 있건만, 잘했다고 칭찬은 못 해줄 망정 질타를 해?   "ㅋㅋㅋ.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누굽니까. 천하의 털보 김어준입니다. 제 무공 타인조종초식의 위력을 잘 아시잖습니까. 제 초식에 당한 이들은 제가 하는 말을 무조건 믿고 따릅니다. 콩을 팥이라 해도,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습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지존의 명을 받들어 재명공자를 차기 지존좌에 앉혀 놓겠습니다. 걱정은 붙들어 매십시오."   "내 자네의 무공 실력과 무림을 보는 눈매를 어찌 안 믿겠나. 그러나 만사불여튼튼, 만분의 일의 사태에도 대비가 필요하다는 뜻일세."   아하~. 그 뜻이었군. 지존의 계략이 본래 꼬리 아홉 달리 여우 뺨친다더니, 명불허전이군.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재명공자의 낙마에 대비한 플랜B도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니 지나치게 재명공자에 올인하지 말라?"   재인군은 가타부타 대답 없이 딴청부리듯 말했다.   "무슨 일이든 플랜B는 필요한 법 아니겠나. 이런 중대한 일에 플랜B가 없어서야 되겠나. 혹여 때가 되면 이를 테니 잘 준비하시게. 자네도 익히 알고 짐작하는 인물, 그 사람일세. 내 이미 적당한 사람을 골라 말을 전해둔 터일세. 그나저나~"   재인군이 털보의 대답도 듣지 않고 혼잣말처럼 화제를 돌렸다.     "나찰수 윤석열이 심술(心術)도사 홍준표를 이겨낼 수 있을까"   유 시종장이 그런 재인군을 이상하다는 듯 힐끗 쳐다봤다. 기이한 일이야. 어째서 평소 낯가리기로 유명한 재인군이 유독 저 털보 앞에선 저리 수다스러운 사내가 되는가. 쯧쯧쯧.       #귀제갈이 나찰수를 돕다     "귀공은 이런 말 들어보셨는가.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선비는 인물이 아니면 돕지 않는다(鳳翶翔于千仞兮 非梧不棲. 士伏處于一方兮 非人不助.)"    귀제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제갈량도 울고 간다고 해서 귀신같은 제갈, 귀제갈로 불리는 이름 김종인. 스승 앞 학생처럼 거구의 덩치를 잔뜩 웅크리며 듣고 있던 나찰수가 황급히 대답했다.   "예, 압니다. 거 뭐…. 유비가 삼고초려했을 때 제갈량의 동생 제갈근이 부른 노래 아닙니까. 봉황은 하늘 높이 날 되 오로지 오동나무에만 앉고, 선비는 숨어서 지내되 천하의 영웅이 아니면 돕지 않는다는."   귀제갈의 눈빛이 반짝했다. 호~. 제법일세. 문자 속을 다 알고.   "더 말할 것 없소. 딱 세 가지, 세 가지면 되오."   "경청하겠습니다."   "내가 이 나이 먹고 귀공이 부탁한다고 달랑 귀공 진영에 들어가는 건 안 되겠소. 경선 비무가 끝날 때까지 좀 지켜보십시다, 그게 첫째요. 둘째, 귀공 주변의 날 파리 떼를 몽땅 치워주시게. 그자들과는 같이 일할 수 없소. 셋째, 앞으론 모든 의사결정을 나와 협의 후에 한다고 다짐하시게. 이 세 가지만 들어주면 내 귀공을 위해 미력한 힘이나마 전력을 다해 도우리다."   "이를 말씀입니까. 그리하겠습니다. 우선 이번 경선 비무부터 이겨야 합니다. 부디 비공(秘功)을 전해주십시오."   나찰수 윤석열은 속으로 으드득 이를 갈았다. 귀제갈의 뜻은 분명했다. 예비 후보로는 안 된다. 경선 비무에서 내가 이긴 다음에야 제대로 도와주겠다, 이 말이렸다. 언제부터 이 자가 저리 오만해졌나.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내겐 이 자의 지모가 절실하다. 지금의 난국을 헤쳐갈 입과 머리를 가진 자는 귀제갈, 이 자뿐이다. 진작 이 자를 영입하지 못한 것은 큰 실수였다. 지금 내겐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귀제갈은 내심 흐뭇했다. 불과 석 달 전 저자, 나찰수 윤석열은 얼마나 기고만장했던가. 내게 도움을 청하기는커녕, 인사도 오지 않았다. 듣자니 주변의 날파리떼들이 "귀제갈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된다, 아예 상왕 노릇을 하려 할 거다"라며 말렸다지. 그 뒤 마지못해 찾아왔을 때도 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국힘당에 합류하지 말고 먼저 독자 세력을 키우라고 조언했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 결과가 뭔가. 심술도사와의 승부도 승리를 자신하지 못하게 된 것 아닌가. 이제야 위급함을 깨닫고 내 앞에 조아렸으니, 이럴 때 확실히 쐐기를 박아놔야 할 것이야. 그가 돌연 시구 하나를 읊조렸다.       ■  「 羅刹豪氣蓋天下(나찰호기개천하)   나찰수의 호탕한 기백은 천하를 덮었지만      競選相持枉歎嗟(경선상지왕탄차)   경선 비무에서 오래 대치하다 헛되니 기가 막히네     若使諸葛謀見用(약사제갈모견용)   만약 귀제갈의 계책을 채택했더라면     山河豈得屬洪家(산하기득속홍가)   중원 산하가 어찌 홍가의 것이 되었겠는가 」    시구의 뜻은 분명했다. 나찰수 윤석열이 귀제갈 김종인의 조언을 거부하다가 심술도사 홍준표에게도 패하게 됐다. 그러니 이제라도 내게 매달려라. 나찰수의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이 자, 귀제갈이 유일한 탈출구다.      "이를 말씀이겠습니까. 내 노사의 가르침을 기필코 따르리라."   귀제갈이 그제야 빙긋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상을 좀 볼 줄 압니다. 귀공의 상을 보건데 7척 장신에 허리는 보통 사람의 두배, 사악(四卾=이마, 턱, 양 관골)은 높고 미목(眉目=눈썹과 눈)이 분명한데다 귀는 희고 늘어졌으며 걸을 때는 호랑이 같고 목소리는 우렁차고 맑으니 타고난 백호의 상이라, 고양이상의 심술도사는 물론 살쾡이상의 재명공자를 능히 물리치고 대업을 이룰 것이요."   그제서야 나찰수의 표정이 환해졌다.     "자, 그럼 이만 돌아가시오. 보는 눈이 많으니 조심하시오. 내 귀공의 뜻과 정성을 충분히 알았으니, 이젠 그리 자주 오실 필요 없소."   그제서야 자리를 뜨는 나찰수. 나찰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귀제갈은 아내를 돌아봤다. 만뇌파파 김미경. 만 사람의 계략을 한 몸에 지녀 귀제갈마저 절절맨다는 바로 그녀다.     "야권무림의 최종 비무는 아무래도 나찰수가 유리한 것 같소. 심술도사는 당심을 못 얻었소. 많은 국힘당 고수들이 당주(黨主)시절 심술도사의 횡포를 잊지 못하고 있고, 심술도사는 그들의 마음을 풀어줄 능력이 없소. 나찰수가 최근 강호인의 신망을 크게 잃어 위태위태하나, 결국은 그가 이길 것으로 보오. 나는 그를 앞세워 내 뜻을 이루려 하오."   만뇌파파가 고개를 끄떡끄떡했다. 아내의 승락이 떨어졌다. 이젠 거칠 게 없다.     "이번엔 기필코 이루리라. 무림 내각제. 절대유일권력의 지존좌를 없애고, 무림의원들이 연합 통치하는 새 무림을 만드리라. 나찰수를 도구 삼아 내 필생의 대업을 이루리라."     늙은 호랑이 귀제갈의 포효가 강호를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10.29 05:00

  • 어떤 창도 재명공자의 철면공(鐵面功)을 뚫을 수 없다[이정재의 대권무림⑥]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대권무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제6화 양패구상(兩敗俱傷)=사생결단 싸우면 둘 중 하나도 살아남지 못한다      # 비웃음 초식으로 국감장을 제압하다    오전 5시30분. 재명공자는 정확히 제시간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이 또 무림 국감이 열리는 날이던가. 불나방 같은 작자들. 뻔히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머릿수만 믿고 덤벼들기는. 그는 가볍게 하품을 했다. 그제 국감과 다를 게 없다. 그가 아는 11명 야권 무림의원들의 무공실력으로는 자신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었다. 재명공자는 수통기(手通器)를 다시 들여다봤다.   '건투를 빕니다. 무림지존 재인군.'   달랑 한 줄. 처음엔 헷갈렸다. 격려인가 경고인가. 이틀을 곰곰 생각했다. 재인군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겐 결코 "부(否)-아니오"라고 말하지 않는 위인. 입을 다물면 다물었지 "당신이 틀렸다" 또는 "아니다"라고 남의 면전에서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런 재인군의 "건투를 빈다"는 문자는 말 그대로 응원일 것이다. 잘못되면 '당신을 갈아치우겠소'라는 경고는 결코 아닐 것이었다. 재명공자는 뜻 모를 미소와 함께 두어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면 무림 국감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는 호신무공인 철면공(鐵面功)을 얼굴 가득 끌어올렸다.     "똑바로 좀 찔러봐. 그걸 공격이라고 하는 건가. 최고수급이라는 무림의원의 무공이 그래서야 되겠어. 도대체 무공의 무(武)자나 제대로 아는 거야.”    재명공자는 국힘당 무림의원 은혜선자의 공격을 받아내며 큰소리를 쳤다. 하루 내내 11명 야권 무림의원들이 18반 무예를 다 쏟아내며 공격을 해댔지만, 그의 철면공에는 모기에 물린 것만큼도 충격을 주지 못했다. 하물며 18명의 여권 의원들이 공동 수비진을 쳤으니, 그 철벽 방어를 어찌 뚫으랴.   "ㅎㅎㅎ. ㅋㅋㅋ"     그제 국감 때는 '조폭황금받아먹고탈날걸'초식을 펼친 용판거사를 비웃음 초식 하나로 가볍게 물리쳤던 재명공자다. 윽박지르고 호통치고 유리한 것만 얘기하고 비웃고 논점이탈까지 그의 초식 운용은 거침이 없었다.   재명공자의 철면공은 고금 최고 수준이다. 강호 전체를 통 틀어도 그만큼 절정으로 익힌 무인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철면공은 가족과 연인,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후흑(厚黑)공과 같이 쓰면 수비무공으론 천하제일이다. 물론 정직검(劍)이나 청렴도(刀)같은 무공을 만나면 그 즉시 박살이 나고 말겠지만 현 무림에는 이 무공을 익힌 자가 전무했다. 정직검과 청렴도는 익히는데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단 한 번 사악한 무공의 유혹에 빠지기만 해도 평생 쌓아 올린 내공을 한순간에 잃고 마는 극기의 무공이기 때문이다. 황금만 좇는 현 무림 세태에선 청렴도나 정직검을 익힌 자가 나올 리 만무했다. 재명공자가 자신의 철면공에 자신만만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야권 무림위원들은 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심지어 재명공자가 뒷짐을 진 채 호신기(護身氣:신체를 지키기 위해 내공으로 만든 방어막)만 펼치는 데도 못 당하고 제풀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선택은 탁월했다. 애초 참모들은 잠시 물러서자 했지만, 천만의 말씀. 국감을 피하는 건 하지하책이다. 정면 돌파, 뚫고 나가야 한다. 강호의 제일법칙은 강자존(强者存), 차기 지존좌는 결국 패도 무공의 겨룸으로 결판날 것이다. 섣불리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되레 화를 부를 수 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무림국감은 재명공자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번엔 내 차례다. 받은 공격의 열배, 백배 돌려줄 것이다. 기다려라, 나찰수, 긴장해라, 야권 무림. 후흑철면공이 어째서 천하제일의 무공인지 똑똑히 보여주리라."      #내가 나섰다면 너는 한주먹 감이야   만인전시기(萬人電視器)속 그는 자유자재였다. 상대하는 야권 무림의원들이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반푼공자 이재명. 나머지 반은 남의 것으로 채운다고 반푼이라더니, 딱 맞는 별호 아닌가. 지켜보던 나찰수 윤석열은 분통이 터질 판이었다.     "고얀 자. 내 기필코 가만두지 않으리라. 감히 나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진짜 감옥에 갈 이가 누구인지 보자. 으드득..."   그가 두 주먹을 힘껏 쥐었다. 지켜보던 그의 아내 옥수날심(玉手辣心) 김건희가 살포시 그의 손을 잡았다. 섬섬옥수에 독한 마음이란 별호처럼 가늘고 흰 손이다.     "꼭 그렇게 될 거예요."   "나 같으면 당장 저자를 잡아넣을 죄가 최소한 셋은 되오." "어떤 건가요?" "우선 자신의 임무를 배신한 죄. 초과이익환수 초식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김만배 일당에게 돈을 퍼줬소. 그는 자기가 초식 사용을 금지한 게 아니라 부하 직원의 사용 건의를 안 받아들였다고 했는데, 웃기는 소리. 강호인들을 우습게 보는 말장난일 뿐이요. 대중검자가 일찍이 '나는 약속을 못 지켰을 뿐이지 거짓말은 한 적이 없다' 했는데, 딱 그와 같소. 말장난으로 있는 범죄를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소."   "조폭을 동원해서 원주민 땅을 뺏었다면서요? 그것도 큰 죄가 되겠지요?" "물론이요. 게다가 조폭을 변호하고 수행원으로 8년씩 데리고 다니기까지 했다면, 그자가 바로 조폭이 아니면 뭐겠소. 변호사 비용을 남이 대신 내주게 한 것도 옴짝달싹 못 할 죄요. 내가 현직 무림 감찰의 수좌 포두(捕頭)였다면 벌써 감옥에 보냈을 거요."   옥수날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자는 당신이 지금 감찰 총수가 아닌 것에 무척 감사해야겠군요" "그렇소. 어쨌든 재명공자는 무사하지 못할 거요. 그가 버틸수록 더 많은 화살과 첩보가 쏟아질 것이요. 그는 결국 자기 운명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그리되면…" "그리되면…. 당신이 지존좌에 오르는 건 여반장(如反掌),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 되겠군요."    부창부수. 아내의 대거리에 슬쩍 웃음이 나왔지만, 나찰수의 미간엔 금세 굵은 주름이 깊게 패였다. 마냥 즐거워만 할 수는 없었다. 현 상황은 결코 그에게 녹록하지 않다. 여권 무림은 총공세에 나섰다. 어떤 암격(暗擊)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저들의 고발사주 초식은 갈수록 위력이 세지고 있다. 처음엔 이런 말도 안 되는 초식을 쓰다니, 우습게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 세 사람이 말하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 야권 무림의 경쟁자들까지 고발사주 초식을 휘두른다. 한술 더 떠 심술(心術)도사 홍준표는 "재명공자와나찰수, 둘 다 감옥에 가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판이다. 분통이 터질 일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게다가 아내와 장모에 대한 적들의 공격은 더 집요하고 거칠어 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경선 비무 직전 최강의 '윤석열죽이기' 초식을 쏟아낼 것이다. 어떤 초식일지 대강 짐작은 간다. 그러나 마땅한 방어수단이 없다. 무조건 버텨야 한다. 열흘이다, 열흘. 열흘만 버티면 된다. 야권의 경선 비무가 끝나면, 지존 후보만 되면, 한숨 돌릴 수 있다. 적어도 내부 칼질은 멈출 것이다. 재명공자와의 건곤일척, 한판 싸움만 준비하면 된다.      사실을 말하자면 적의 공격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나찰수 윤석열 자신이었다. 그의 성명절기(成名絶技=이름을 떨친 무공) 나찰수는 아직 미완성이었다. 나찰수는 악귀와 마졸을 잡는데는 어떤 무공보다 뛰어나지만, 천하를 경륜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순간순간 초식의 흐름이 끊어지는가 하면 전혀 위력 없는 엉뚱한 초식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대로는 재명공자는커녕 야권 무림 경선 비무의 승리도 자신할 수 없다. 국방·외교·안보공을 더 익혀야 한다. 경제공은 또 어떤가. 그런데 시간이 없다. 아무리 속성 연마를 한들 이런 정통 무공들이 어디 하루아침에 익혀지겠나. 그래서 생각한 게 독두광마(禿頭狂魔) 전두환이다. 그의 '믿고다맡기기초식'이야말로 내겐 안성맞춤이다.'     이른바 권력 통째 위임. 경제는 유승민에게, 무림총리는 희룡공자에게, 심술도사 홍준표는 야권무림의 총수…. 나는 악귀·마졸을뿌리 뽑아 정의와 공정이 흘러넘치는 무림을 만드는 데만 주력한다. 이런 구상을 밝히려고 했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다. 어쩌면 이렇게 초식 구사가 서투르단 말인가. "독두광마가 다 잘못했는데 이거 하나, 믿고다맡기기초식만은 배울만 하다."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 "5·18 빼고는 다 잘했다"라고 하다니. 초식의 순서를 바꾸면 전혀 다른 무공이 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요, 점 하나만 찍으면 님이 남이 되는 이치다. 게다가 하필 왜 독두광마를 소환했느냔 말이다. '대머리에 미친 악마'란 별호처럼 온 강호인의 미움을 사는 그 독두광마를. 그렇다고 대구·경북 무림의 민심을 잡기 위해 소환했다고 털어놓을 수도 없잖은가. 참모들은 당장 사과하라 하지만 천만의 말씀. 일이 터질때마다 사과하는 건 하지하책이다. 정면 돌파, 뚫고 나가야 한다. 강호의 제일법칙은 강자존(强者存), 차기 지존좌는 결국 패도 무공의 겨룸으로 결판날 것이다. 섣불리 정도 무공을 쓰다간 되레 화를 부를 수 있다.      ■ 〈미니 인터뷰〉 제주의 아들 희룡공자 「 야권 무림 4등이 여권의 지존 후보를 이긴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정말 가능할까. 희룡공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당장 열흘 앞으로 다가온 야권 경선 비무부터 이겨야 한다.    "드디어 공간이 열렸다. 보수 무림의 적자가 나다. 감찰 출신에 행정가요, 무림 의원까지 해봤다. 이런 내공을 갖춘 후보는 나밖에 없다. 드디어 강호제현들이 나 희룡공자의 진가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판세를 뒤집기엔 시간이 부족한 것 아닌가.  "이번 주가 고비다. 군세(群勢=지지율)가 두 자릿수로 올라서면 기필코 역전의 기회가 열릴 것이다."   그러기엔 패왕색(覇王色=임금의 기운), 영어로는 프레지던셜 룩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패왕색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만들어지기도 한다. 더 중요한 건 상대적이라는 거다. 내 무공은 재명공자와 상극이다. 대장동 1타 강사로 이미 증명했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1타 강사를 넘어 패왕색을 갖춘 절대 고수로 거듭나는 중이다."      야권 경선 비무가 과열됐다. 정통 무예는 실종됐고 비방과 흑색공이 난무한다.    "지지율이 잘 나오자 여기서 이기면 본선에서도 이긴다며 흥분한 상태다. 정통 무공 실력은 없고 당장 상대를 이기기는 해야겠고. 그런 후보들이 비방과 흑색무공을 쓴다. 한심한 일이다. 지금은 곤경에 처한 듯하지만, 재명공자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재인군을 필두로 한 여권 무림은 여전히 강성하다. 허름한 후보를 대표선수로 내세웠다가는 자칫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      나찰수 윤석열과 동맹을 맺었다는 얘기가 있다.  "동맹은 무슨, 나찰수가 낙마하면 '당신이 내 대신 하라"고 우리끼리 얘기한 적은 있다. 심술도사 홍준표도 '내가 아니면 희룡공자'라고 했다. 그런 정도 덕담이야 아무나 나누는 것 아닌가."    강호 동도들은 희룡공자가 '물건은 좋은데, 지금이 아니라 다음이다"라고 말한다.  "다음은 없다. 다음이 아니라 지금이다. 이번에 지면 야권 무림에 미래는 없다. 다른 후보로는 재명공자의 간계와 사공을 당해낼 수 없다. 나만이 재명공자의 약점을 제대로 찌를 수 있다. 야권 무림의 선택지는 오직 하나, 나 희룡공자뿐이다." 」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10.22 05:00

  • 재명공자 "나는 만독불침, 어떤 독공도 나를 쓰러뜨릴 수 없다"[이정재의 대권무림⑤]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대권무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제5화 막약이명(莫若以明) "여권무림엔 재명공자 만한 이가 없더라"       在明奸雄世所誇  재명공자가 간웅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曾將大庄取全金  일찍이 대장동에서 몽땅 꿀꺽했기 때문이지 誰知天意無私曲  하늘의 뜻 이리 공정한 줄 그 누가 알았으랴     比武方勝已滅亡  비무에서 이기자마자 망조가 같이 찾아왔네    (※삼국지 모종강본 제9회와 10회에서 빌어옴)       #사내 셋, 꿈 셋     62대 28. 이해할 수 없는 숫자 두 개가 강호 무림을 뒤흔들고 있다. 한양에서 치러진 여권 무림의 최종 비무 결과다.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고, 이길 것이라던 재명공자가 여권 무림의 본산에서 두 배 넘게 차이로 대패했다. 그 전에 벌어놓은 것이 없었다면, 또 그것이 마지막 비무가 아니었다면 승부는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숫자의 비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첫 번째 사내 낙연거사. 그는 사흘 만에 "승복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숨을 고르고 있다.    "아직 진짜 승부는 나지 않았다. 마지막 비무의 숫자가 말해준다. 재명공자는 반드시 추락한다. 그의 추락이 시작되면 여권 무림은 내게 기댈 수밖에 없다. 비무가 정당했다면 나는 결코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번의 기회가 내게 꼭 더 주어질 것이다. 음~기다리리라.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리라, 기필코." 낙연거사는 질끈 눈을 감은 채 긴 숨을 들이켰다.     숨을 고르는 두 번째 사내. 호호선생(好好先生) 김동연의 얼굴에도 모처럼 미소가 돌았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어느 인물, 어떤 무공에든 맞춰준다 해서 붙은 별호 호호선생. 재명공자가 낙마한다면 그에게도 틀림없이 기회가 있을 것이었다. 그는 재인군 밑에서 경제부총통을 지냈지만 그의 소득주도성장 초식에 반대하다 쫓겨났다. 차기 지존에 도전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지 오래지만 그의 이름을 부르는 강호인은 거의 없었다.   "실망하지 않는다. 틀림없이 기회가 올 것이다. 재명공자가 크게 내상(內傷)을 입었다. 그가 낙마하면 여권 무림에 대안은 없다. 낙연거사로는 필패다. 나찰수 윤석열을 당할 수 없다. 승리는 인내하는 자의 것이다. 지금껏 내가 여야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버틴 것도 그 때문 아닌가. 내가 달리 저울질의 달인이라 불리겠나."   무림은 그를 잊었지만, 그는 무림을 잊지 않았다.     누구보다 머리가 복잡한 사내, 촉새선생 유시민. 16대 무림지존 바보공자 노무현의 복심으로 불리는 그는 진작 재명공자와 뜻을 같이하기로 한 터다. 그는 재명공자의 낙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막판에 이게 뭔가. 그깟 낙연거사에게 빈틈을 허락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계산을 다시 해봐야겠다. 대장동이 재명공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내가 재명공자에게 목을 맬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나는 이기는 쪽에 설 뿐이다. 여권 무림에 이길 자가 아무도 없다면, 내가 나서지 않을 이유는 또 뭔가."    사실을 말하자면 그가 재명공자 쪽에 선 것은 해골도사 이해찬 탓이 컸다. 해골도사는 언제나 이기는 쪽에 서는 사람이다. 그의 촉수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그는 재명공자의 승리를 점쳤다. 이번 재명공자의 승리에는 해골도사의 도움이 컸다. 그는 여권 무림 경선 비무에 "친노·친문이 나설 때가 아니다"라며 사실상 재명공자의 손을 들어줬다. 재명공자야말로 비노·비문의 '변방 무사' 출신 아니던가. 해골도사는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여전히 재명공자에 올인하고 있다. 문득 의심이 든다. 해골도사가 과연 오로지 여권 무림을 위해서 재명공자 편에 선 것일까. 두 사람 사이에 다른 깊은 연결고리가 있는 건 아닐까.      # 하산길엔 돌부리를 조심해야 한다 "승부는 났다. 되돌릴 수 없다. 재명공자와 한 배를 탈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는 재명공자를 상수로 놓고 계산해야 한다. "   청와궐의 밤이 재인군에게 불면의 시간이 된 지 오래다. 그는 잠시 전 청와궐 대신들과의 회의를 다시 떠올렸다. 정무사신은 "걱정할 게 없다"고 큰 소리를 쳤다.  "아무것도 걸릴 게 없습니다. 소득주도성장 초식은 마공이 아닙니다. 그걸로 주군을 감옥에 보낼 수는 없습니다. 북무림 정은황제와의 3차례 회동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기승전탈원전은 시끄럽기는 하겠지만, 역시 주군을 엮어 넣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백번 만번 따져봐도 주군은 권좌에서 내려가신 뒤에도 안전합니다." 재인군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회의를 마쳤지만 뒤끝이 영 개운치 않았다.     퇴임전 지존의 안위를 따져보고 문제 소지를 없애는 일은 청와궐의 오랜 관례다. 대개 내 편 후계자를 둔 지존은 안전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명박대제다. 그는 퇴임 전 온갖 변수를 따져본 뒤 문제가 없을 것으로 확신했다. 측근들과 여러 차례 점검 회의도 했다. 내 편을 후계자로 앉히는 데도 성공했다. 그런데 그에게 "걱정 없다"고 자신했던 바로 그 최측근, 총무사신의 배신 때문에 결국 감옥에 갔다. 물론 후임 그네공주가 순실이란 복병에 걸려 권좌를 잃은 것이 더 큰 이유이기는 했다. 자신의 손으로 명박대제를 감옥에 보낸 재인군으로선 무엇보다 퇴임 후 안전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산길이 안전하려면 재명공자를 차기 지존좌에 앉히는 게 첫째다. 쉬운 일이 아니다. 62대 28. 이 숫자의 비밀부터 풀어야 한다. 야권 무림의 주장대로 대장동이 군세(群勢=지지율)를 바꾼 것이라면 재명공자로는 필패다. 하지만 대장동이 원인이라기엔 설명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그렇다고 대장동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재명공자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무공의 소유자다. 차기 지존좌는 이른바 '정통성' 싸움이다. 정의와 통합, 성장의 내공을 갖춘 자가 이긴다. '정통성' 내공으로는 여권 무림의 누구도 재명공자를 당할 자가 없다. 지존좌의 법칙 "시대의 흐름에 맞는 무공을 익힌 자가 이긴다"는 말은 틀린 적이 없다.    재명공자가 차기 지존이 된다한들 십분 안심할 수는 없다. 재명공자는 믿을만한 자가 아니다. 그는 수가 틀리면 언제든 칼끝을 내게 돌릴 위인이다. 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그는 '반(反)문'을 외칠 것이다. 나 재인군을 아예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 손 놓고 당할 수는 없다.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대장동이 열쇠다. 대장동이 또 다른 순실이가 될 수도 있다. 그리되면 내 측근 중에서도 배신자가 나올 것이다."  며칠 전 즙포사신 김오수를 불러들인 것도 그래서다. 그는 "자리를 걸고 대장동을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다. 종이로 불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대장동을 모조리 덮을 수는 없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로 재명공자의 약점을 쥐되, 그가 낙마하지 않게 해야 한다. 재명공자에게 청와궐이 한 편이라고 굳게 믿게 해야 한다. 성남시나 경기도청은 건드리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고도의 내공이 필요한 일이다. 아무리 충성심을 타고났다지만 오수가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 내 사전에 '우회'는 없다   "정면 돌파한다. 경기도백 사퇴는 없다."   재명공자는 단호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측근들마저 놀랄 정도였다. 이미 더불어당의 총사(總師) 넙적얼굴(四角面) 송영길과도 협의를 끝낸 사안이었다. 재명공자가 여권 무림의 차기 지존 후보가 되면 경기도백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약조를 한 게 불과 며칠 전 아닌가. 송영길 총사가 "경기도백 자리는 사퇴하는 게 좋겠다"고 운을 뗀 것도 약조에 따른 것 아니었나. 일단 장고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줬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단번에 부인하다니.   "재인군이 허투루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를 말했을 리 없다. 자네들도 알겠지만 재인군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안위뿐이야. 더불어당과도 다 조율했을 것이야. 우물쭈물 하다간 누구 칼에 맞을지 모를 일. 여기서 물러서선 절대 안 돼. 걱정들 말게. 무림의회의 국정감사 쯤은 식은 죽 먹기지. 암 그렇고말고. 내가 누군가, 진격의 이재명 아닌가. 나는 이미 만독불침을 이룬 지 오래, 어떤 독공도 나를 해칠 수 없네."  학습효과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고비 때마다 재명공자는 늘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거짓말쟁이, 사기꾼, 욕쟁이, 파렴치한 소리는 들었지만 그의 군세(群勢=지지율)는 꺾이지 않았다. 공격을 받을수록, 강하게 받아쳤고 그럴수록 군세는 커졌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물론 더 큰 이유도 있다. 숫자다. 62대 28. 이해할 수 없는 숫자요, 예상하지 못했던 숫자다. 큰 내상(內傷)을 입었다. 아무리 만독불침의 몸이라도 이런 큰 공세는 견딜 수 없다. 심상치 않다. 뭔지 모를 혼돈의 힘이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고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다. 차기 지존좌는 내 것이다. 절대 양보할 수 없다. 누구도, 그 어떤 힘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정면 돌파밖에 없다. 이번 무림의회 국감이 마지막 고비다. 목숨 걸고 막아야 할 서류와 자료, 대장동 마공의 비밀이 거기에 있다. 흑을 백으로, 백을 흑으로 바꿔야 한다. 나 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으드득…. 관자놀이에 굵은 힘줄이 불끈 솟았다.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6회부터는 중앙일보 사이트 로그인을 하셔야 보실 수 있습니다. 로그인 하러 가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10.15 05:00

  • 괴물을 공격하면서 스스로 괴물이 된 재명공자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대권무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4화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하늘의 그물에 걸리면 빠져나가지 못한다    심마(心魔)는 마음에 마귀가 드는 병이다. 꼭 큰일을 앞두고 생긴다. 마치 지금의 반푼공자 이재명처럼. '반걸음만 더 디디면 되는데...'  그가 입술을 질끈 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대장동 특혜 의혹에 대해) 엄중하게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다...라니. 도대체 청와궐의 속셈이 뭘까?"  "이미 청와궐의 뜻대로 합동수사는 받겠다고 했습니다. 특검은 가지 않는 것으로 정리됐고…. 지난 주 밀지를 들고 찾아온 정무사신에게도 말했지만 더는 청와궐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하산길 재인군의 면피용 발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금용(金用)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재명군 전략담당 총부부장 금용. 그는 재명공자가 인정하는 자타공인 '측근'이다. 측근이 어디 보통 자리인가. 당금 강호에서 재명공자에게 측근 소리를 들으려면 조상 3대와 구족이 충복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판이다.   "그렇겠지. 이제 고작 이틀이야, 이틀. 이틀만 지나면 여권무림의 경선 비무가 끝난다. 내가 차기 지존 후보가 된다. 두 밤만 더 지나면 더 이상 어떤 변수도 없을 것이야."  "아무럼요. 재인군은 물론 여권무림 전체가 지존 앞에 엎드릴 것입니다. 지존의 뜻이 곧 법이요, 길이 될 것입니다. 미리 경하드립니다."  재명공자의 입가에 미소가 하나 걸린다. 혹자는 비릿한 미소, 혹자는 승리의 미소로 부르는 그 미소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이럴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네. 절대 방심하지 말 것. 철저히 입단속을 할 것. 전략은 그대로, 역공과 물귀신 작전. 이제부터는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할 것이야."  "존명!"   '측근'이 물러간 밤. 혼자 남은 재명공자에게도 시간은 버거운 상대다. 다시 심마가 꿈틀댄다. 이제는 나와의 싸움이다. 어차피 차기 지존좌는 내 것이다. 야권무림의 누가 나와도 내 상대는 아니다. 나찰수 윤석열은 계(計)가 없고, 심술(心述)도사 홍준표는 군세(群勢=지지율)가 없다. 반면 10년을 갉고 닦은 내 흡입마공은 이미 절정에 달했다. 지지자를 모으고 내 편을 만드는 데는 흡입마공을 당할 무공이 없다. 싸움은 해보나 마나다. 그런데 이 불길한 마음은 뭔가.  물끄러미 거울을 본다. 자신만만한 미소 뒤,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흐릿하지만 분명하다. 10년 전 내 모습이다. 그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10년 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 10년 전 나는 성남시장 저격수였다    무림력 2002년 5월 '오나의신문'엔 당시 성남시민모임의 이재명 변호사 면담기가 실렸다. 당시 그는 3년째 'SK공원전망(파크뷰) 특혜분양 의혹'을 파헤치고 있었다. SK특혜분양 사건은 당시 지존이던 대중검자의 '측근' 김옥두 무림의원까지 연루된 초대형 비리 사건이었다.   재명공자는 '분당 백궁역 일대 부당용도변경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이던 2001년 11월,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과 성남시 간부들을 '업무상 배임', '공무상비밀누설', '직권남용', '업무상 배임증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무림 초출이던 그는 그때까지 몇 차례 작은 비무대회에 나섰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SK 의혹을 파헤치면서 강호의 주목을 받게 되고 성남시장 비무에서 승리, 이후 대권 도전의 길을 열게 된다. 재명공자는 '오나의신문'에 그날 이렇게 말했다.    "현재 검찰 수사에 큰 기대를 안 한다. SK파크뷰 특혜 분양은 전체 사건의 지엽말단일 뿐이다. 고래 잡는다면서 강물에 그물을 친 격이다. 나한테 수사를 하라면 이렇게 안 한다. H1 개발에 특혜가 주어진 배경을 밝히겠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토지공사는 용도변경이 끝난 땅을 왜 수의계약했나. 이걸 밝히면 비리의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  「  〈당시 재명공자가 밝힌 SK공원전망(파크뷰) 특혜 의혹 전말〉   1. 포스코가 갖고 있던 분당 정자동 땅을 당시 H1이란 회사가 산다. H1은 이 땅을 사기 위해 급조된 회사였다. 당시 군인공제회도 입찰에 참여했지만 땅은 듣보잡 H1에게 팔린다. 이 땅은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상업용지지만 용도 변경이 추진 중이었다.   2. H1이 땅을 산 뒤 H 산업, N사, P사 등도 주변 땅을 샀는데, 모두 한 건물로 주소지가 같았다. 이들이 땅을 산 뒤 토지공사와 성남시가 용도변경을 해줘서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됐다.   3. 여당 실세와 고위층 친인척, 퇴직한 지역주재기자, 청와대 파견 검사, 성남시장 측근이 용도 변경에 개입했다.   4. 토지공사는 용도변경 뒤에도 토지의 상당 부분을 H1에 수의계약으로 매각했다.   5. 땅값이 몇 배로 뛰면서 H1과 일당들은 용도변경으로 2000억냥, 아파트 분양으로 8000억냥의 차익을 남겼다.   6. 여권 실세들이 아파트를 몇 채씩 받았다.   7. 유난히 검찰관련 인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당시 수원지검 부장검사였던 청와궐저격수 곽상도가 등장한 것도 이때다. (당시 곽상도가 살살 다뤄주는 통에 재명공자는 무공폐지라는 엄벌은 면할 수 있었다.) 」     H1 대신 화천대유를 넣어보라.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10년 전 일을 떠올리자 재명공자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천라지망(天羅地網)-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모든 것을 가둔다더니, 과연 그런가.    #.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면 달려야 한다    대장동 특혜 의혹을 놓고 누군가는 특검을 받으라 하고, 누군가는 진솔한 사과를 하라고 한다. 허튼소리. 호랑이 등에 탔는데 내리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내리면 어찌 될까.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나라고 왜 잘못된 걸 모르겠나. 내가 대장동을 설계했다. 10년 전 검사로 신분을 위장해가면서 낱낱이 SK 특혜 분양 의혹을 파헤쳤다. 대장동은 SK와 이란성 쌍둥이다. 나보다 전문가는 없다. 시장을 공격해 쫓아내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 일이 어찌 진행될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오죽하면 내가 "부하 직원 잘못은 유감이다. 도의적 책임은 진다"고 말을 바꿨겠나. 이만큼 물러선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더는 물러설 수 없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강호를 위해서다. 특히 나와 생태계를 같이하는 좌파 무림 동도를 위해서다. 좌파 무림은 지금 위기다. 기댈 곳이 없다. 야권무림엔 포학한 절대 고수, 나찰수 윤석열이 있다. 그를 상대할 자가 여권 무림엔 없다. 그가 차기 지존좌에 오르면 좌파 무림의 기득권 생태계는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다. 내가 유일하다. 그런 사태를 막을 좌파의 절대 고수는 나뿐이다. 내가 반성하고 사과하면 좌파 무림은 나를 지지할 명분을 잃게 된다. 결과는 명약관화. 좌파 무림의 몰락이다. 내 손으로 좌파 무림의 숨통을 끊을 수는 없잖은가.  좌파 동도들도 잘 안다. 나 재명공자가 낙마하면 자신들의 생태계도 무너진다는 것을. 나찰수 윤석열을 이기려면 영남을 갈라치고 충청을 품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호남의 절대자 낙연거사로는 필패. 그를 앞세워 윤석열을 상대했다간 부산도 잃고 충청도 잃을 것이란 사실을. 그러니 강호 동도들이 어쩔 수 없이 "내가 이재명이다"라고 지금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눈물 어린 충정을 어찌 외면하겠나. 누가 감히 그들 앞에 "다 내 잘못이니, 사퇴하겠소"라고 할 수 있겠나.   # 방귀 뀐 놈이 성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찰수 윤석열이 석 달 전 출사표를 던진 후 이렇게 말했다지. "나는 지존 비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안 나서도 죽고, 져도 죽는다. 필사즉생, 꼭 이길 것이다." 나도 그렇다. 물러서도 죽고 져도 죽는다. 살길은 버티고 버텨 이기는 것뿐이다. 방법은 단순 무식 과격이다. 복잡한 초식, 정직한 투로(鬪路)로는 필패다.  역공과 물귀신 작전이 최선이다. 무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초식 중 적반하장이란 게 있다. 말도 안 되는 사기꾼 초식이지만 강호 오천년 무공 역사에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적반하장 초식이 왜 나왔겠나. 방귀 뀌었다고 가만있으면 놀림감이 될 뿐이다. 상대가 방귀를 뀌었다고 뒤집어씌워야 화를 면할 수 있다. "국민의짐 게이트다" " 나찰수가 판 집은 화천대유 김만배 누나 돈이다" "나찰수 장모도 화천대유처럼 특혜받고 먹튀했다" 이 정도로 화끈하게 화를 내야 내가 뀐 방귀 냄새를 지울 수 있다.  내가 누군가. 나 재명공자, 그간 수없이 위기를 겪어봤다. 모두 적반하장 초식으로 극복했다. 강호인들은 다 안다. 적반하장이야말로 내가 가장 즐겨 쓰는 초식이자, 강호에서 나보다 이 초식을 잘 쓰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물론 적반하장 초식에도 상극이 있다. '경제적 이익 공동체' 초식이다. 화천대유의 돈이 내게 흘러들어 온 사실이 밝혀지면 끝이다. 적반하장 초식으론 상대할 수 없다. 화천대유의 사라진 돈 83억냥이 내 변호 비용으로 쓰였다며 야권무림이 추적 중인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어디 해보라. 이미 천하는 내 손에 있다. 순사든 즙포사신(검찰)이든 공수처든, 누가 감히 내게 맞서려 들겠나. 호호탕탕, 크게 웃어제끼는 데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움찔한다. 어이쿠~. 심마(心魔)는 꼭 좋은 일, 큰일을 앞두고 생기는 법이라지.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6회부터는 중앙일보 사이트 로그인을 하셔야 보실 수 있습니다. 로그인 하러 가기  

    2021.10.08 05:00

  • 화천대유 천화동인! 크게 해먹으려면, 온갖 놈들 다 모으라[이정재의 대권무림③]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3화 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마저 속여야 대박을 칠 수 있다    장삼이 불끈했다. "어떤 놈은 100원 내고 천배, 만 배 벌어간다는데, 나는 뭐야."   이사가 피식 웃는다. "이름이 별로라서 그래. 만 배로 바꿔." 듣고 있던 이 씨, 오씨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옳거니. 이만 배, 오만 배라. 대박 나겠네~"  정작 속 쓰린 건 백씨, 천 씨다.   "진작 이름 바꿨으면 백만 배, 천만 배 터질 건데…."   무림력 재인천하 시월 초하루. 강호는 온통 화천대유 얘기뿐이다. 벌써 한 달째. 하기야 돈 얘기, 권세 얘기야말로 인지상정, 누구나 쫑긋 귀를 세울 일이다. 하물며 천배 만 배 돈 번 얘기요, 유력 차기 지존 후보까지 절세의 권세가가 모두 등장했으니 온갖 항설(巷說)이 돌지 않으면 그게 이상할 터였다.     #청와궐의 밤은 그냥 저물지 않는다    재인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역시 범계야. 범상치 않은 귀계. 이름값을 단단히 하는군. 내가 왜 진작 그를 법무판서에 앉히지 않았던가."   손에 들린 밀지(密旨) 한장, 모처럼 재인군의 미소를 끌어낸 물건이다.     ■  「 구속영장=야권무림의원 곽상도, 전 무림대법관 권순일, 화천대유 주인 김만배(※ 빠를수록 좋음.) 」    "곽상도, 권순일, 김만배…. 이렇게 셋이라."  절로 무릎이 쳐진다. 여야 균형을 맞춘데다 핵심 인물의 입을 막는 묘수가 아니던가.    우선 곽상도. 이 자를 잡아 넘는 건 개인적으로 한풀이도 된다. 곽상도가 누군가. 말로는 야권무림의 저격수라지만, 오로지 나와 내 가족만 저격한 자 아닌가. 내 아들을 그렇게도 괴롭히더니 자업자득이지.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엣가시만 타내는 자, 벌을 받아도 싸지 싸. 죄질도 아주 나쁘지 않나. 뇌물죄. 제 아들을 통해 받은 뇌물이니 어찌 빠져나갈 길도 없다. 가족끼리는 경제공동체 아닌가. 전임 그네공주는 순실이랑도 경제공동체로 엮였다. 가족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    권순일은 변호사법 위반, 딱 떨어지지. 다만 반푼공자 재명이 기분 나빠할까 걸리기는 한다. 재명공자가 자기 쪽에 칼을 들이대는 것 아니냐며 반발할 수도 있다. 신경은 쓰이지만 그래도 밀어붙여야 해. 재명공자도 대놓고 반발은 못할 테니. 잘하면 큰 보험 하나 들어놓는 일이 될 수 있지. 이번 기회에 아직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줘야 해.  김만배, 이 자는 꽁꽁 가둬놔야 해. 이런 자는 유·불리에 따라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유형이지. 변수를 줄이려면 입을 완전히 막아야 해. 그러기엔 감옥보다 더 좋은 곳이 없지.    그러고 보니 한양중앙지검이 갑자기 '화천대유 특별 수사팀'을 만든 이유가 이것이었군. 속전속결, 현장의 모든 것을 장악하겠다, 이거지. 역시 범계 장관이야. 한양중앙지검장이 그의 심복 중 심복이라지. 이번엔 나찰수 윤석열한테처럼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겠지. 그래도 노파심이 든다.  만에 하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어쩌지? 아니야, 그럴 리 없지. 무림판사들이 어찌 감히 영장을 기각하겠나. 전 강호인이 노려보고 있는데,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못할 일이지. 그나저나 이번 한 수로 차기 권세에만 눈이 팔린 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주겠군. 내가 누구인지, 뭘 할 수 있는지. 지금 자신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말이야. 그래 아무렴, 아직 내가 지존이야.   # 상계(商界)의 밤은 이재명에 있다   "아무렴 내가, 천하의 나 금적산(金積山)이 그런 찌질한 수를 뒀겠나."   화천대유로 불편한 심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이가 여기 또 있다. 강호의 금권력. 상벌(商閥)의 주인 금적산. 그는 꽤 화가 난듯했다. 통통한 주먹을 힘껏 쥐느라 관자놀이 힘줄까지 불거졌다.    '화천대유에 뒷돈을 댄 게 금적산이다. '   강호엔 이런 풍문이 급속히 퍼졌다. 금적산(金積山)-금으로 산을 쌓아 금권력으로 불리는 나를 도대체 뭐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야권의 저격수 곽상도, 무림특별검사 박영수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다보니 그 둘을 나와 엮어 소설을 쓰는 자들이 있다. 소설의 골자는 아주 흉악하다.        ■  「 금적산은 지난 정권에서 탄압받았다. 다시는 감옥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금적산은 그네공주의 민정사신이었던 곽상도와 특검 박영수에게 뇌물을 뿌렸다. 그게 화천대유다.      」    ‘고얀자들 같으니. 그들의 목표가 뭔지 안다. 나와 재명공자를 엮어 한칼에 보내려 한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소름이 쫙 돋았다. 그가 재명공자와 친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과거 몇 차례 재명공자와 밀담을 나눈 바 있다. 재명공자는 술술 모든 걸 받아줬다. 모든 것을 끌어들인다는 그의 흡입마공은 절정의 경지, 그것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좌파'니 '사회주의마공'을 익혔느니 하는 이들을 금적산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금적산 스스로도 갸우뚱해 지인들에게 이렇게 털어놓을 정도다.      "나는 왜 이렇게 재명공자하고 말이 잘 통하지?"   하기야 그도 그럴 것이 재명공자의 최대 내공은 '무원칙'이다. 내 편 네 편만 있지, 원칙과 공정·정의 따위는 없다. 그와 깐부만 먹으면 된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그걸로 나 금적산은 만사형통이다. 나는 이미 그의 깐부다.     사실 상벌(商閥)의 주인에게 다른 선택은 없다. 나는 재인군의 여권무림이 재집권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과거 보수무림 지존들이 나를 얼마나 혹독하게 대했나. 재인군 치하에서 나는, 나의 상벌(商閥)은 비로소 금권을 쌓을 수 있었다. 이왕 여권무림이 재집권한다면, 최적임자는 재명공자다. 다른 자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언제 강호 민심을 얻겠다며 재벌에 칼을 들이댈지 모른다. 하지만 재명공자는 결코 깐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재명공자는 스스로 '보수' '친기업'이라고 말해오지 않았던가.     어디 나만 그렇겠나. 사실을 말하자면 이미 상계는 상당수가 재명공자에 줄을 선지 오래다. '보수''자유'를 외치지만 야권무림엔 기대할 게 없다. 게다가 야권무림의 유력 후보 나찰수 윤석열은 원칙주의자에 반재벌 내공으로 단련된 자 아닌가.      '어차피 당금 무림에 백도(白道)는 없다. 여권무림은 마도(魔道)요 야권무림은 흑도(黑道), 마귀 아니면 강도뿐이다. 언감생심, 정도(正道)와 협객을 바라겠나. 상계가 살길은 마귀든 강도든 깐부를 맺는 것뿐이다. 자책도 후회도 필요 없다. '   금적산은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 화천대유하세요~ 이젠 무림언론사의 기자가 아니라 화천대유의 주인으로 더 유명해졌다. 사람 팔자 시간 문제라더니. 나 김만배는 법조에서만 20년 내공을 쌓은 기자다. '오늘의돈' 언론사로 옮겨올 때도 "법조만 맡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판사든 검사든, 법가(法家)의 인물이라면 줄줄이 꿰고 있다. 관계도 좋다. 물론 거저 된 건 아니다. 나는 결코 남들처럼 섣불리 부정부패 취재를 하거나 비리를 파헤치지 않았다. 대신 법가의 인맥을 쌓는 데 내 직업과 경력을 대부분 사용했다. 내가 순사들의 조사를 받으면서 한 말,     "좋아하던 형님들로 대가성은 없었다"   그거 진짜다. 화천대유란 이름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내가 동양철학을 해서 주역을 좀 안다. 화천대유가 괜히 나온 이름이 아니다.  대유는 불과 하늘로 구성된 괘다. 불이 하늘에 있으니 태양이요, 그것도 중천의 태양이다. 화천대유는 한 낮의 태양처럼 크게 얻는 것을 상징한다. 강호 최고의 주역고수 대산(大山) 김석진 옹은 "주역 64괘 중 화천대유가 최고의 괘"라고 하셨다.    화천대유는 주역의 14번째 괘다. 만월은 보름이 되면 기운다. 화무십일홍이라 열흘 붉은 꽂은 없다. 화천대유가 14번째인 것도 그래서다, 그다음 날 기운다는 뜻이다. 그러니 크게 먹고 기울 때 뒤탈이 없으려면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그래서 동인(同人) 괘가 필요하다. 내가 화천대유에 이어 천화동인 회사를 만들고 온갖 지인들을 모신 것도 그래서다. 여권과 야권은 물론 재벌까지 한 자리에 모았다. 공공의 이름으로 민간의 등골을 빼먹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그러니 나만 잡아 주리를 털면 모든 흑백이 가려질 것이라 믿는 강호의 민초들이여, 생각 좀 해보시라. 최고의 권력자가 설계하고 최고의 법가(法家)들이 과실을 나눴다. 나라를 통째로 바꾸지 못하는 한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 아무리 시끄럽게 떠든들 그뿐, 끝내 쥐새끼 한 마리 잡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천화동인의 동인(同人)이 무엇인지 진짜 뜻을 아는가? 모든 사람이 뜻을 하나로 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유일한 음(陰)인 육이(六二)를 중심으로 모든 이들이 뭉친다는 의미다. 그러니 그 힘을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 누가 음(陰)이요 육이(六二)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10.01 05:00

  • 음해마공엔 음해마공…나찰수의 걱정은 따로 있었다 [이정재의 대권무림②]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대권무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화 법가쟁명(法家爭鳴):법 익힌 자들이 서로 뽐내다    나찰수(羅刹手) - 악귀를 잡아내는 손. 석열은 힐끗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남들이 솥뚜껑 같다더니, 그렇군. 이 손으로 처단한 악귀, 마졸이 몇 명이던가. 덕분에 강호에 허명을 얻었다. 무림 동도들이 과분하게 불러주는 이름 나찰수, 그런데 지금 이 손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출사표를 던진 지 어언 석 달. 시작은 의기충천했다. 이 한 몸 바쳐 강호를 도탄에서 구하리라. 그런데 이게 뭔가. 설익은 무공, 힘만 잔뜩 들어간 초식, 피아 구별조차 안 되는 투로(鬪路)라니. "악졸이나 잡을 줄 알지, 여느 무림 초출(初出)이나 다를 게 뭔가" 민초들의 수군거림에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과욕이었나. 즙포(緝捕)사신이 고작 내 운명이었던가. 잡념은 사념이 되고 급기야 분노와 자괴감에 몸이 떨린다. 아니야, 초심을 생각하자. 내가 왜 무림출도를 결심했던가. 법가(法家)의 신수(神獸)를 재인군의 손에서 구해내겠다는 일념 아니었던가. 잊지 말자 초심, 기억하자 해치수(解廌獸). 그는 서울무림대학 법술개론편 첫 장 첫줄을 떠올렸다. 그래, 아직 시작일뿐이야. 그는 불끈 다시 손을 움켜쥐었다. 그 손을 일컬어 나찰수라 했던가.       ■ 법술개론 제 일장 제 일절. 법가(法家)의 신수(神獸)편 「 법가의 신수는 이름을 해치라 한다. 해치(解廌)는 도리를 아는 영수다. 고서『설문(說文)』은 해치가 머리에 뿔이 하나 달린 일각수라고 적고 있다. 그 뿔의 형상이 소뿔 같기도 하고 사슴뿔 같기도 하다고 했다. 해치는 뿔로 죄지은 자를 치받아 물에 빠뜨린다. 선악, 진실과 거짓, 죄와 벌을 가른다. 강호인들은 흔히 법(法)이란 글자가 水(물)와 去(가다) 자가 결합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해치(廌)가 죄인에게 달려들어(去) 물(水)에 빠뜨리는 모습을 본뜬 글자다. 법의 옛 글자는 灋(법)이다. 만민 평등, 민주 강호를 이루려면 해치의 독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 강호의 한 현자가 일찍이 예언하기를,  "해치를 길들이려 하지 말라. 해치는 길들이기도 어렵지만 길들여서도 안 된다. 해치가 한 인물의 손에 들어가면 강호의 질서가 깨진다. 신수는 잠시 복종시킬 수 있으나 끝내 고삐를 풀고 주인을 물어뜯는다. 독두(禿頭) 마왕 전두환, 철혈의 대제 박정희 모두 뒤끝이 좋지 않았는데, 어설프게 신수를 길들이려 했기 때문이다. 훗날 또다시 신수를 길들이려는 자가 나타날 터니, 그는 이를 '검찰개혁'이라 부르리라."   」    #재인군이 신수 해치를 손에 넣다   과연 그랬다. 19대 무림의 지존, 재인군 이니(二泥)가 신수 해치를 거의 완벽하게 제압했다. 과거 수많은 독재 군주들의 실패에도 재인군은 굴하지 않았다. "해치를 자유롭게 풀어 법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겠다"며 통치 기간 내내 밀어붙였다. 이니는 이를 '검찰개혁'이라 불렀다. 역대 지존 누구보다 법가의 초식과 내공에 익숙한 이가 재인군이다. 그가 아니면 다른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입으로는 신수를 풀어준다고 했지만 실제론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다. 결과는 예언대로였다.  길들여진 해치는 영성을 잃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물어뜯었다. 급기야 흰 것, 검은 것을 구별하지 못하게 됐다. 신수가 아니라 잡수(雜獸), 괴물이 됐다. 세상은 극히 혼탁해졌다. 무림언론재갈법, 윤미향보호법, 5·18처벌법, 특정무공사용금지법…, 법이라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법의 이름을 쓰고 등장했다. 검(檢)법과 판(判)법은 사사건건 혈전이요, 강호엔 네 법과 내 법이 따로 놀았다. 내 편은 흰 것, 네 편은 검은 것이 됐다. 그래도 신수는 침묵했다.    나찰수는 "끄응'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혼천세-극심한 혼란의 세상이다. 해치를 이니의 손에서 구해내지 못하면 독재 무림, 사회주의 무림의 완성은 시간문제일 터였다. 법의 초식, 법의 내공을 익힌 법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물실호기라. 나찰수 본인을 포함해 심술(心術)도사 홍준표, 직진필(直進筆) 최재형, 전 제주지사 희룡공자 등 야권무림의 법가들이 일제히 차기 지존좌에 도전장을 내민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여당이 호락호락 지존좌를 내줄 리 없다. 이쪽에 나찰수가 있다면 저쪽엔 재명공자가 있다. 역시 법가 출신인 반푼공자 이재명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그의 내공은 이미 법을 갖고 노는 단계에 다다랐다. 오죽하면 무림대법원은 그가 경기지사 비무 때 쓴 암수를 "정당하다"고 판결했을까.    #나찰수의 고발 사주, 전화위복이 되나    "고발 사주에 장모님 문건이라, 참 고약하게 됐군."  "끄으응~" 나찰수 윤석열의 한숨이 더 깊어졌다. 자칫 잘못 응수했다간 천 길 나락이 펼쳐질 터였다. 재인군과 그 일파들 손에서 신수 해치를 구해내기는커녕, 거꾸로 자신이 제물이 될 판이다. 무림이 본래 온갖 암계가 판치는 곳인 줄 진작 알았다만, 이건 너무했다. 고발 사주라니. 내가 그 엄중한 시기에 부하를 시켜 여권무림의 고수들을 고발한다? 신수 해치가 재인군 손에 꽉 잡혀 있는 걸 잘 알면서? 터무니 없는 소리. 어디 한 줄, 한 점이라도 흔적을 찾아봐라. 나올 턱이 있나. 오죽하면 감찰부가 이주야를 쥐 잡듯 뒤지고도 여태 '수사 전환'을 못하고 있겠나.   하기야 고발 사주는 내게 크게 나쁠 것도 없다. 어찌 보면 되레 도움이 됐다. 이쪽은 내가 강한 곳이다. 그러잖아도 적들의 집중포화에 내 군세(群勢=지지율)가 야금야금 떨어져 나가던 중이었다. 이럴 때 큰 싸움을 걸어주니 '그야말로 땡큐'다. 나는 싸움을 통해 성장했다. 조국-청와궐과 싸우면서 내공을 키웠다. 내 나찰수는 맞을수록 강해지는 무공, 큰 싸움일수록 내게 유리하다.  게다가 내겐 나찰수의 제 삼초식, 음해마공파쇄초식이 있다. 음해마공엔 극성이다. 음해마공을 쓰는 자가 많을수록 파쇄초식의 위력이 커진다. 지난 정권 때 이미 충분히 보여준 바 있다. 그네공주의 청와궐과 여권이 일제히 나를 공격했지만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는 불충인(不忠人) 초식 한 방으로 그들의 공격을 물리쳤다.  음해마공은 본래 무림정치법에 의해 엄격하게 금지된 마공이다. 하지만 당금 여권무림엔 이 무공을 익힌 자가 유난히 많다. 특히 법무판서 박범계, 무림정보원장 박지원, 팔방무희 조성은의 음해마공은 이미 여의도 바닥에 정평이 나 있다. 그들이 얼마나 음해마공에 능숙한지, 강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공수처장 김진욱. 그가 하룻강아지처럼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든 것도 음해마공에 동조한 것 아니겠나. 세상에 "죄가 있고 없고를 떠나 국민 관심 사항이라 입건"이라니.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즙포사신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뭐 크게 나쁠 것도 없다. 어차피 주장만 있고 증거는 없는 싸움,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조국 사태 때처럼 네 편의 진실, 내 편의 진실, 두 개의 진실이 남을 것이다. 그러니 이이제이, '고발 사주' 음해마공엔 '조작 사주' 음해마공으로 맞서는 게 상책이다. 강하게 더 강하게, 전진 또 전진. 하기야 이들 덕분에 잃었던 내 군세도 회복되고 있으니, 이들이야말로 여권무림엔 최고 '엑스맨'이요, 내게는 둘도 없는 충신이 아니겠나. 엊그제 치른 야권무림 1차 경선 비무에서 강호인의 마음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심술(心術)의 도사 홍준표를 박빙의 차이로 떨궈낸 것도 그 덕일 것이었다.     #심술도사와의 싸움에 웃는 자 따로 있다    사실 나찰수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다. 장모님 문건이다. 그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누가 또 어떤 문건을 들고나올지 모른다. 청와궐부터 검찰까지, 여권무림의 모든 칼이 그를 노린다. 그는 즙포사신 시절 자기 사람들을 살뜰히 챙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 때문에 출셋길이 막힌 누군가가 음해마공에 올라타면? 그렇게 만들어진 문건이 혹여 심술의 홍준표에게 들어간다면? 야권무림의 경선 비무가 문건 폭로 전투로 바뀌면? 가뜩이나 버거운 심술도사 홍준표와의 싸움은 더 격하고 더 어려워질 것이다. 누가 이기든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그 싸움을 지켜보며 씨~익 웃고 있을 반푼공자 이재명의 얼굴은 왜 또 갑자기 떠오른단 말인가.   상상하기 싫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더는 이런 폭로 문건이 등장하지 않을 것이야. 무림 검찰이 어떤 조직인가. 목숨 걸고 정의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즙포들의 집합체다. 아무리 권세에 기울어졌다 해도 즙포들에겐 초심, 법도가 있다. 장모님 문건 같은 게 두 번 다시 튀어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도리도리, 강하게 고갯짓을 쳤다.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09.17 05:00

  • 청와궐 혼술거사, 흡입마공 재명공자…무림경선 비무의 칼끝 [이정재의 대권무림①]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제1화 지존하좌 구절양장(至尊下座 九折羊腸);무림 지존의 하산길이 험난하기만 하다      ━  #청와궐의 혼술에 시름은 깊어가고     청와궐의 밤은 길다. 한잔 술로는 감당할 수 없다. 술시(戌時:저녁 7시~9시)도 전인데 벌써 한 병이 비워졌다.   "휴~"     재인군의 한숨이 깊어졌다. 일주일 전 궐내 정무사신의 보고를 받고도 차일피일 결단을 미뤄왔다. 더는 미룰 수 없다. 혹자는 문산군, 또는 재앙신군으로 비아냥거린다지만, 그는 엄연한 현 무림의 지존.     "결국 이렇게 됐나." 다시 한 잔, 요즘 부쩍 혼술이 잦아졌다. 본래 대작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마셔도 혼술이 편하다. 혼술 거사, 혼밥 신군 소리가 괜히 나왔겠나. 청와궐의 밤이 길어질수록 주량도 따라 늘었다. 소주 두 병은 금방이다. 보고 내용은 예상대로였다.   〈여권 무림 차기 지존후보 결정을 위한 경선비무 첫 번째 충청결전 현황〉   반푼공자 이재명의 압승이 확실시 됨. 세균공의 조직과 전술은 이미 붕괴됨. 그를 따르던 열 한 명의 무림의원 중 일곱이 변절. 부관들을 재명공자 진영에 보내 돕게 함. 재명공자와 겨룰 유일한 후보 낙연노야도 일패도지. 그의 충청 반전계는 사실상 무력화됐음. 대전·충남은 이미 넘어갔고, 세종·충북도 함락. 세종의 맹주 해골도사가 재명공자의 뒷배를 단단히 지원 중. 사실상 남은 경선 비무가 무의미해질 수 있음. 재명공자에게 힘이 쏠리는 순간이 훨씬 빨라질 수 있음. 결단을 내려야 함.'   선택지는 세 가지다. 하나. 그간 벼리고 벼린 즙포사신(검찰) 충복을 써서 재명공자를 무릎 꿇리는 것, 둘. 진작 재명공자의 승리를 선언하고 적극 지원하는 것, 사실상 항복이다. 셋.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는 것.   다 마땅찮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역대 지존들의 하산길은 처참했다. 나는 다를 줄 알았다.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인가. 지존좌를 비워줄 시간이 채 6개월이 남지 않았다. 명년 모란이 피는 모습을 나는 청와궐의 뜰에서 볼 수 없을 것이다. 첫째 수는 위험부담이 크다. 자칫 꾀돌이 재명공자에게 발각돼 역공을 맞을 수 있다. 이미 청와궐에도 재명공자에게 줄을 선 자들이 수두룩하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입을 떼는 순간, 당장 칼끝이 거꾸로 나를 겨눌지도 모른다. 둘째 수는 현실적이지만 내키지 않는다. 내 자존심은 어쩌란 말이냐. 셋째는 수도 아니다. 거미줄에 친친 감긴 벌레가 조용히 먹잇감이 되길 기다리는 것과 뭐가 다르랴.     다시 한 잔. 갑자기 재인군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래 왜 꼭 여권 무림이어야 하나. 야권이면 어떠랴. 누군들 나를 가장 안전하게 하산시켜줄 자면 그만이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면서 한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나찰수(羅刹手) 윤석열"    ━   #"광이나 파십시다"     세균공은 통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중요한 결전의 날, 그는 역병에 걸린 자와 접촉했다가 강호보건법에 따라 격리됐다.   "한시가 급한 때에 발이 묶였다. 결과는 불문가지." 꼭 잡아야 할 싸움을 놓쳤다. 가장 공들여온 곳이 충청 아닌가. 무림의원 스물 중 내 사람이 반이다. 애초 조짐이 좋지 않았다. 결전의 날이 다가수록 슬금슬금 이탈자가 생겼다. 면전에서 단단히 주리를 틀어놔야 이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역병이라니, 불길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하기야 역병이 아니었더라도 어려웠을 것이었다. 과연 하늘의 뜻이 내게 지존좌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전날 참모 우균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광이나 파십시다"   그래, 그 친구가 그렇게 말했지.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때 팔자고. 낙연노야나 재명공자, 둘 다 지금은 얼마든지 값을 치를 거라고. 이왕이면 내 패와 겹치는 낙연노야보다는 재명공자가 더 비싼 값을 쳐 줄 것이라고. 고얀 친구, 나는 그때 호통을 쳤었다.     "나는 광값으로 받을 게 없네. 무림총리, 무림의회 의장, 산업부 판서 다 해봤네. 남은 게 지존좌 뿐인데, 그걸 포기하고 대신 뭘 받는단 말인가. 무슨 일이 있어도 경선 비무의 끝을 볼 테니, 그리 알게."   우균은 입을 삐쭉이며 중얼거렸다. "그거야 세균공 입장이고…. 수하들 생각도 좀 하셔야지요~." 그래, 그 친구가 그렇게 말했지. 나를 돕는 사람들, 그들의 앞날을 외면할 수는 없다. 시간을 끌수록 광값은 떨어질 터였다. 이미 아무도 광을 사주지 않게 된 것은 아닌가. "끙~" 시름과 고민의 밤이 깊어갔다.    ━  #"반푼이 지존좌에 오르면 사화(士禍)가 일어날 것"     낙연노야의 밤도 길고 깊었다. 본선은 자신있다지만, 문제는 더불어여당내 경선 비무다. 이기려면 문파로 불리는 재인수호대의 힘만으론 안 된다. 물론 문파의 힘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두 달 전 갑작스레 내 세력이 급증한 데는 문파의 힘이 컸다. 70만 당원 중 20여만이 문파다. 삼할이나 된다. 이들을 적으로 돌려선 승산이 없다. 얼마 전 "지존의 하산길을 책임지겠다"며 지존의 충신 경수지사와의 밀어를 공개한 것도 그래서다. 구차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한고비는 넘겼다. 문파는 이제 나의 것, 다른 선택지가 없다. 문파와 재명공자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나도 알고, 문파도 알고 재인군도 안다. 재명공자가 20대 지존좌를 거머쥐면 어떤 일이 생기겠나. 문파가 장악 중인 더불어여당을 이재명 당으로 바꿀 것이다. 여당을 2년 넘게 문파당으로 놔두고선 무림을 통치할 수 없다. 쪼개고 나누고 학살할 것이다. 이미 전례가 있다. 16대 지존 바보공자 노무현은 대중검자의 여당을 송두리째 바꿨다. 대중검자의 충복 독안(獨眼)검자 박지원을 감옥에 가두고 동교계를 학살했다. 지존 탄핵을 유도해 일거에 판을 뒤집었다. 대중검자의 당은 바보공자의 당으로 바뀌었다. 재명공자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다. 그 역시 노무현의 수순을 밟을 것이다. 낙연노야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반푼이에게 가장 쉽고 좋은 게 뭘까. 물어볼 것도 없다. 정적을 치는데는 뭐니뭐니해도 사화(士禍)다. 사화의 불쏘시개로는 문파의 주인인 재인군이 쓰일 것이다, 재인군을 우스개거리로 만들어 화려한 처형식을 치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낙연노야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존 재인군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재인군의 안전 하산을 보장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런데도 왜 저토록 침묵하나. 현 지존의 권능으로 얼마든지 재명공자를 처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충청 반전의 꿈은 사라졌다. 이틀 뒤 치러질 1차 종합 경선 비무 역시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이제는 건곤일척 수를 던져야 한다. 낙연노야의 긴 탄식이 이어졌다.     "소심한 재인군 같으니, 그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  #문파는 끝났다. 꿇는 자 살 것이요, 거스르는 자 망할 것이다   "첫서리가 내리는 날, 천하는 누구의 발자국이 가장 먼저 찍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재명공자의 눈은 이미 충청 결전 저 너머에 가 있었다. 여권 무림 경선 비무가 끝나는 10월, 그는 당연히 비무대의 맨 앞자리에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딱 반보. 반보만 더 내디디면 천하가 그의 발아래 있을 것이었다.     "그 날이 문파를 정리하는 날이 될 것이다. 재인군에 대한 공격은 그때부터다. 어차피 문파는 이기는 쪽에 설 수밖에 없다. 문파를 딛고 중도 무림을 끌어들여야 한다. 멀쩡부동산파멸초식과 소득주도망신공은 당장 폐기할 것이다. 재인군의 수족을 자르고 칼끝을 그의 명치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대신 기본공을 강호의 필수무공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무림이 기본으로 하나가 되게 할 것이다."     재명공자에겐 사실 강호인들은 잘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그의 거친 욕설과 터무니없는 포퓰리즘 약속에 가려 안 보이는 그의 진짜 무공이다. 그는 강호 고수 중 유일하게 흡입마공을 익혔다. 흡입마공은 상대의 모든 무공을 빨아들인다. 누구든 그와 한 번 겨룬 자, 그의 무공에 힘을 보태는 도구가 되고 만다. 왜 그의 별호가 반푼공자겠나.   나머지 반푼은 상대의 것으로 채운다는 의미다. 흡입마공의 효용은 또 있다. 익히면 익힐수록 귀를 엷게 한다. 재명공자는 누구의 말이든 쉽게 받아들인다. 그의 세력이 갈수록 불어가는 이유다. 흡입마공이 십이성에 이르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가 극에 달하면 반대의 물성(物性)도 극에 달하는 게 세상의 이치. 당금 무림에도 흡입마공과 극성인 무공이 등장했다. 야권 무림인 중 흡입마공과 대적할 무공을 익힌 자는 딱 하나. "나찰수 윤석열" 재명공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제2화 '법가쟁명(法家爭鳴)'편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09.10 05:00

  • [이정재의 시시각각] 그레첸을 위한 진혼곡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그레첸은 끝내 아들의 결혼식을 보지 못했다. 아들의 결혼식은 한 달 뒤 한국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젊은 시절 수술한 유방암이 화근이었다. 몇 년 전 재발한 암이 온몸을 삼켰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검사도 받지 않았다. 한 달쯤 전에는 죽음을 예견했던 것 같다. 가진 패물을 모두 팔았다. 딸에게 넘겨주라며 주변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토요일(17일) 새벽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그레첸의 아들 저스틴은 원래 지난해 결혼식을 하려고 했다. 코로나19가 가로막았다. 1년을 연기했다. 나아질 줄 알았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어머니 그레첸은 더 기다리지 못했다. 더 나쁜 일은 그가 필리핀에서 열리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저스틴과 그의 부모는 모두 필리핀 사람이지만 미국 시민권자다. 필리핀은 코로나 방역을 위해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사실상 금지했다.   한국인 아내와의 결혼식 준비를 위해 한국에 와 있던 저스틴은 어머니가 사망한 그날 저녁 비행기를 서둘러 예약했지만, 필리핀 항공사는 그의 탑승을 허가하지 않았다. 필리핀 정부가 요구하는 비자를 받아오라고 했다. 목놓아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항공사 직원도 안타까워했다. “(공식 비자가 아니라도) 무슨 서류든 들고 오면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가족관계나 출생 증명을 떼려면 출생지인 캘리포니아로 가야 했다. 서류 준비에만 한 달 넘게 걸릴 터였다. 주말을 뜬눈으로 지낸 그는 월요일 아침 10시 문을 열자마자 주한 필리핀 대사관 문을 두드렸다. 대사관 측도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는 다시 필리핀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필리핀행 비행기는 목요일과 토요일, 일주일에 딱 두 번 뜬다. 그는 지금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서류를 준비했다. 그도 안다. 이런 것만으로는 비행기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란 걸. 그래도 두드릴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마지막이 거기 있으니.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귀국을 기다리며 아내의 장례를 미루고 있다.   그레첸의 사연은 코로나가 여전히 관혼상제부터 생로병사, 인류의 시간과 공간을 강하게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법적으론 필리핀과 미국인의 얘기지만, 한국인 며느리까지 얽혀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어디 그레첸뿐이랴. 며칠 전엔 베트남에서 코로나로 사망한 한국인이 하루 만에 화장됐다. 가족에게 통보도 없었다. 베트남·필리핀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위안할 수는 없다. 벌써 잊힌 기억이 됐지만, 1년 전 3월의 대구는 생사별의 현장이었다. 시신은 무조건 화장, 장례식도 없었다. 50년을 함께 살아 온 노부부는 손 한 번 못 잡고 사별해야 했다. 대구의 의료진은 그날의 기록들을 한 권의 책(『그곳에 희망을 심었네』)으로 엮었다.   돌이켜보면 이런저런 아픔을 저마다 가슴 한 곳에 묻으며 만들어낸 게 K방역이다. 마스크 착용률 94% 세계 1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견디고 견뎌 이룬 성과였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이 봇물 터지듯 터진 오늘,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참고 견뎠을까. 대통령의 자랑거리나 민노총의 8000명 시위를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참고 견디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광화문 집회 참가자를 “살인자”라 불렀을 때, 그 과격한 표현마저 국민이 참고 넘어가 준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코로나 버티고는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 마스크도 두 겹, 아니 세 겹 네 겹 더 쓸 수 있다. 2인 모임도 안 할 수 있다. 조상의 DNA가 있는데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100일인들 못 버티겠나. 그러나 누군가의 자랑거리를 위해, 누군가의 초법(超法) 시위를 위해 동굴에서 계속 살 수는 없다. 그러다 어느날 필리핀의 그레첸처럼 기약 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다 그냥 잊힐 수는 없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1.07.22 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