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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나찰수의 합일신공 "앞으로 다섯 밤, 무림의 역사를 새로 쓰리라" [이정재의 대권무림 3부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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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3부 제4편〉음양합일(陰陽合一) vs 형제야합(兄弟野合): 러브스토리냐 브로맨스냐

마지막 TV토론비무도 이렇게 끝나나 싶던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나찰수 윤석열이 '대장동범인은바로너' 초식을 재명공자에게 펼친 것이다.누가봐도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다." 황금 1000억냥은 재명공자 것, 대장동 도원결의"까지 그간의 모든 변화를 한 초식에 집어넣었다. 거칠고 강한 내공이 그대로 재명공자를 향해 쏟아졌다. 나찰수는 이 한 초식으로 승부를 결정지을 기세였다.
 일순 허를 찔린 재명공자는 '대통령돼도특검' 초식으로 맞섰다. 윤나찰 저자가 이렇게 직격탄을 날릴지는 몰랐다. 어찌나 살기가 강한지 일도양단, 한칼에 몸이 둘로 베이는 듯했다. 그렇다고 겁먹은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더 거칠고 더 강하게 받아쳐야한다. 일명 '적반하장'초식으로 불리는 특검 초식이야말로 재명공자에겐 유일한 방어책이었다. 특검 초식은 윤나찰의 공격을 받아 그대로 돌려주는 반탄(反彈)의 기술이자 잘못되면 본인이 더 큰 치명상을 입는 양날의 칼. 웬만한 고수는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재명공자는 달랐다. 여반장(如反掌), 손바닥 뒤집듯 자연스레 펼쳤다. 나름 믿는 구석도 있었다. 그의 뒤엔 180석 거대 여권 무림의원이 있다. 그들은 재명공자에 대한 어떤 특검이든 막아내 줄 것이었다.
 마침내 토론비무가 끝났다. 철수의사와 나찰수 윤석열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재명공자는 피식 웃으며
비무장을 빠져나갔다. 더 이상 반전은 없다. 철수의사는 내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 무림법 개정과 차차기 지존좌 약속, 다당제를 통한 군웅할거 시대 개막, 절대 안 물 수 없는 미끼였다. 남은 시간도 없다. 철수의사가 윤나찰과 합일신공을 펼치기엔 너무 늦었다. 그런데 뭐지. 이렇게 뒤통수가 걸리는 이유는? 오늘 철수의사의 공격이 좀 무디지 않았던가? 왠지 윤나찰을 봐주는 느낌이랄까. 그래, 기분 탓이리라.기분. 그 찜찜한 기분이 현실로 드러난 것은 불과 몇시진 뒤였다.

"주공, 큰일입니다. 철수의사와 나찰수 윤석열이 합일신공에 합의했습니다."

측근 중 측근으로 불리는 경기검(劍) 김용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통기(手通器)를 통해 들려왔다. 재명공자는 억지로 눈을 떴다. 축시(丑時),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평소대로 진시(辰時), 오전 8시에야 잠에서 깼다. 상황은 벌써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와 있었다. 가뜩이나 불리한 판세, 민주련에서조차 승리를 말하는 자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간신히 추격의 불씨를 살려놓았건만, 그자 철수의사가 기필코 본색을 드러낼 줄이야.

"최악이지만, 예상 범위 안에 있는 일. 너무 호들갑 떨 것 없네"

재명공자의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철수의사의 세력은 걱정할 게 없다. 이미 나찰수에게 갈 세력은 다 갔다. 둘이 합일신공을 펼쳤다 하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철수의사의 일할도 안 되는 세력은 나와 나찰수에게로 반씩 갈릴 것이다. 최악의 경우 6대 4 정도일까. 문제는 관망하던 중도무림이다. 철수의사의 합류로 나찰수에게 급격히 중도무림이 기울 수 있다. 어차피 중도무림의 백성들이란 게 대세를 쫓는 자들이니. 이건 막아야 한다. 기필코.

"이리되면 주공이 말씀하신 나찰수가 이기기 위한 세 가지 조건, 그게 모두 갖춰지는 게 아닙니까. 심려가 큽니다."

그랬다. 일찍이 나는 나찰수가 차기 지존좌를 차지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봤다. 최소한 세 가지 관문을 넘어야 비로소 가능할 일이었다. 첫째 심술(心術)도사 홍준표의 마음. 둘째 안철수와의 합일, 셋째 그네공주의 침묵. 그 중 어느 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 봤다. 그런데 나찰수가 마침내 그 셋을 모두 손에 쥘 줄이야.
조짐이 심상치 않다. 이미 시장에선 재명주가 급락하고 석열주가 급등하고 있다. 하룻밤이 더 지나면 본격 투표가 시작된다. 오늘 하루 모든 것을 돌려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필패다.

"나찰수와 철수의사, 너희 두 사람의 형제야합(兄弟野合=브로맨스)을 나는 절대로 묵과하지 않겠다."

으드득, 재명공자의 눈에선 시퍼런 불이 이글거리는 듯했다. 불굴의 싸움꾼, 왜 내 이름 앞에 이런 수식어가 붙는지 강호는 똑똑히 알게 되리라.

 # 절벽에서 한 발 내딛기 

삼월의 바람엔 여전히 비릿한 냉기가 묻어난다. 춘래불사춘. 오늘 이 땅의 백성들이 봄을 느끼지 못하는 건 꼭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병은 날이 갈수록 기승이고 민초들의 삶은 망가진 지 오래건만, 엉터리 무림지존 재인군과 그의 후안무치한 관리들은 "태평천하, 국태민안"만 되뇌고 있지 않은가. 저자들을 권좌에서 쫓아내지 않고 어찌 태평 무림이 있겠는가.나찰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9부 능선을 넘었다. 고개만 들지 않으면 이긴다."

참으로 쉽지 않은 길이었다. 국힘방 내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철수의사와의 합일신공은 이미 시효가 지났다고 했다. 표 계산만 따진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합일신공의 위력은 다른 곳에서 나타날 것이다.
우선 적의 기를 꺾어놓을 수 있다. 재명공자는 내가 세 가지를 얻어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나는 셋을 다 손에 쥐었다. 이제 그는 뭐라 할 것인가.
둘째, 적의 암수(暗手)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 재명공자와 나의 군세(群勢=지지율) 차이는 불과 2푼(2%포인트)까지 좁혀졌었다. 승부는 60만~70만 차이에서 갈릴 것이었다. 내가 철수의사와 합일하지 않았다면 저들은 조작과 부정, 특유의 암수를 쓸 수 있었다.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철수공자의 세력이 내게 합류하면 차이는 크게 벌어질 것이다. 암수가 끼어들 공간이 없어진다.
셋째, 더 중요한 건 믿음 효과다. 철수의사는 늘 이기는 자의 편에 선다. 멀리는 원순씨, 가깝게는 한성시장 오세훈까지. 그를 가져옴으로 내가 이기는 자임을 증명하는 효과가 있다. 철수의사야말로 잃을 것이 많은 상가(商家) 출신. 늘 안전한 곳을 쫓는 본능이 있다. 그런 그가 나를 선택했다는 것은 그 길이 안전하다고 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나찰수 윤석열의 지존좌 등극'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 머뭇거리던 중도무림 모두 내게 오리라. 철수의사의 성명절기인 백신프로그램처럼 안심(安心)과 함께 오리라.

돌이켜보면 고비가 많았다. 무림에 출사표를 던진 것부터 많은 고수가 무리수라고 했다. 그래도 했다. 귀제갈 김종인은 국힘방 입방(入幇)을 말렸다. 그래도 했다. 윤핵관들은 국민동자를 포용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했다. 국민동자는 귀제갈을 내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했다. 8개월짜리 무림 초출의 결단이 고비 때마다 힘을 발휘했다. 그게 어디 나 나찰수가 잘나서 그랬겠나. 재인군에 대한 백성의 분노가 하늘에 닿았기 때문이 아니겠나. 이제 마지막 고비를 넘었다. 더 이상 변수는 없다. 20대 지존좌는 내 것이다. 남은 6일간 고개만 들지 않으면 된다. 다음 무림은 지금과는 아주 다른 무림이 될 것이다. 나찰수의 눈은 이미 재명공자나 재인군을 넘어 그다음을 보고 있었다.

# 철수의사의 계산법

내 계산법은 분명하다. 이기는 쪽에 서는 것이다. 나는 상가 출신이다. 상인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다. 지켜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무릇 대국에 임한 자는 반집이라도 악착같이 챙겨야 한다. 반상 대국으로 치면 마지막 TV토론비무는 내가 꼭 챙겨야 할 반집이었다. 토론비무야말로 내 무공 실력을 강호 백성에게 자랑할 최고의 기회다. 그것도 아주 싼 값에. 나는 이미 "마지막 토론비무 때까지는 기필코 완주한다"고 말을 흘려놓았다. 나찰수 윤석열은 내 말의 숨은 뜻을 알았다. 그는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나를 일러 철수전문이라 비난하는 자들은 "역시"라고 하겠지만, 이번엔 다르다. 과거의 철수전문 초식은 그냥 사퇴였다.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이번엔 공동 무림을 만들 되, 내 독문(獨門) 무공인 '과학기술강국' 초식을 대표 무공으로 내세우기로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내게 이번 지존비무는 꽃놀이패였다. 재명공자 쪽은 쉽고 편한 길이었다. 완주만 하면 됐다. 얻는 것도 많았다. 다당제와 결선비무제, 차차기 지존좌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재명공자가 지면 민주련을 통째로 접수하고 재명공자가 이기면 호남무림의 맹주 노릇을 하면 될 것이었다. 호남무림을 대표했던 낙연거사와 세균공은 흘러간 물이 됐다. 나는 호남의 사위요, 부산무림 출신이니 민주련엔 나만 한 적임자가 없다. 호남 무림은 어쨌든 내 손에 들어올 것이었다.
그러나 나찰수의 손을 잡는 순간, 꽃놀이패는 사라진다. 국힘방에선 다음 지존좌를 놓고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국민동자 이준석, 제주의 아들 희룡공자, 한성시장 오세훈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어찌 무공을 익힌 자로서 일신의 영달을 위해 강호 대의를 저버릴 것인가. 재인천하를 끝내고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는 길이라면 어찌 가시밭길이라고 마다할 것인가. 미련도 후회도 없다. 철수의사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그런 그를 아내 무림의녀 김미경이 살포시 껴안았다. 국힘방에선 그간 호남무림 출신인 내 아내가 나찰수와의 합일신공을 결사반대한다고 음해해왔다.

"당신은 세력도 조직도 없이 필마단기로 백성의 마음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왔어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두 사람은 손을 꼭 쥐었다. 그렇게 삼월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오늘 밤엔 깊은 잠에 들 수 있을 듯했다.

외전(外傳):청와궐의 밤
청와궐의 재인군은 그 시각 좀체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산길에 왜 이리 걸리는 것이 많은지. 아내의 만의신공까지 문제가 됐다. 만의신공이야말로 만가지 옷을 갈아입듯 변신하는 무공. 청와궐의 안주인이 익혀서는 안 되는 금기의 마공 중 하나였다. 재인군은 "만의신공을 익힌 적 없다. 익힌 적 있다 해도 얼마나 익혔는지 알려줄 수 없다"고 버텼다. 두 달만 버티면 된다. 5월이 되면 무림지존수장고에 모든 기록이 묻힌다. 30년간 누구도 꺼내보지 못한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다. 누군가 아내의 만의신공 비급을 복제해서 우연히 청와궐 금고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그네공주를 무림옥에 가둘 때 그랬듯이. 밤이 길면 꿈도 길다더니, 재인군의 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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