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무림

괴물을 공격하면서 스스로 괴물이 된 재명공자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중앙일보

입력 2021.10.08 05:00

업데이트 2021.10.08 09:26

대권무림

대권무림’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대권무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권무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4화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하늘의 그물에 걸리면 빠져나가지 못한다

 심마(心魔)는 마음에 마귀가 드는 병이다. 꼭 큰일을 앞두고 생긴다. 마치 지금의 반푼공자 이재명처럼. '반걸음만 더 디디면 되는데...'  그가 입술을 질끈 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대장동 특혜 의혹에 대해) 엄중하게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다...라니. 도대체 청와궐의 속셈이 뭘까?"
 "이미 청와궐의 뜻대로 합동수사는 받겠다고 했습니다. 특검은 가지 않는 것으로 정리됐고…. 지난 주 밀지를 들고 찾아온 정무사신에게도 말했지만 더는 청와궐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하산길 재인군의 면피용 발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금용(金用)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재명군 전략담당 총부부장 금용. 그는 재명공자가 인정하는 자타공인 '측근'이다. 측근이 어디 보통 자리인가. 당금 강호에서 재명공자에게 측근 소리를 들으려면 조상 3대와 구족이 충복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판이다.
"그렇겠지. 이제 고작 이틀이야, 이틀. 이틀만 지나면 여권무림의 경선 비무가 끝난다. 내가 차기 지존 후보가 된다. 두 밤만 더 지나면 더 이상 어떤 변수도 없을 것이야."
 "아무럼요. 재인군은 물론 여권무림 전체가 지존 앞에 엎드릴 것입니다. 지존의 뜻이 곧 법이요, 길이 될 것입니다. 미리 경하드립니다."
 재명공자의 입가에 미소가 하나 걸린다. 혹자는 비릿한 미소, 혹자는 승리의 미소로 부르는 그 미소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이럴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네. 절대 방심하지 말 것. 철저히 입단속을 할 것. 전략은 그대로, 역공과 물귀신 작전. 이제부터는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할 것이야."
 "존명!"

'측근'이 물러간 밤. 혼자 남은 재명공자에게도 시간은 버거운 상대다. 다시 심마가 꿈틀댄다. 이제는 나와의 싸움이다. 어차피 차기 지존좌는 내 것이다. 야권무림의 누가 나와도 내 상대는 아니다. 나찰수 윤석열은 계(計)가 없고, 심술(心述)도사 홍준표는 군세(群勢=지지율)가 없다. 반면 10년을 갉고 닦은 내 흡입마공은 이미 절정에 달했다. 지지자를 모으고 내 편을 만드는 데는 흡입마공을 당할 무공이 없다. 싸움은 해보나 마나다. 그런데 이 불길한 마음은 뭔가.
물끄러미 거울을 본다. 자신만만한 미소 뒤,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흐릿하지만 분명하다. 10년 전 내 모습이다. 그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10년 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 10년 전 나는 성남시장 저격수였다 

무림력 2002년 5월 '오나의신문'엔 당시 성남시민모임의 이재명 변호사 면담기가 실렸다. 당시 그는 3년째 'SK공원전망(파크뷰) 특혜분양 의혹'을 파헤치고 있었다. SK특혜분양 사건은 당시 지존이던 대중검자의 '측근' 김옥두 무림의원까지 연루된 초대형 비리 사건이었다.
 재명공자는 '분당 백궁역 일대 부당용도변경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이던 2001년 11월,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과 성남시 간부들을 '업무상 배임', '공무상비밀누설', '직권남용', '업무상 배임증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무림 초출이던 그는 그때까지 몇 차례 작은 비무대회에 나섰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SK 의혹을 파헤치면서 강호의 주목을 받게 되고 성남시장 비무에서 승리, 이후 대권 도전의 길을 열게 된다. 재명공자는 '오나의신문'에 그날 이렇게 말했다.

 "현재 검찰 수사에 큰 기대를 안 한다. SK파크뷰 특혜 분양은 전체 사건의 지엽말단일 뿐이다. 고래 잡는다면서 강물에 그물을 친 격이다. 나한테 수사를 하라면 이렇게 안 한다. H1 개발에 특혜가 주어진 배경을 밝히겠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토지공사는 용도변경이 끝난 땅을 왜 수의계약했나. 이걸 밝히면 비리의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당시 재명공자가 밝힌 SK공원전망(파크뷰) 특혜 의혹 전말〉

1. 포스코가 갖고 있던 분당 정자동 땅을 당시 H1이란 회사가 산다. H1은 이 땅을 사기 위해 급조된 회사였다. 당시 군인공제회도 입찰에 참여했지만 땅은 듣보잡 H1에게 팔린다. 이 땅은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상업용지지만 용도 변경이 추진 중이었다.

2. H1이 땅을 산 뒤 H 산업, N사, P사 등도 주변 땅을 샀는데, 모두 한 건물로 주소지가 같았다. 이들이 땅을 산 뒤 토지공사와 성남시가 용도변경을 해줘서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됐다.

3. 여당 실세와 고위층 친인척, 퇴직한 지역주재기자, 청와대 파견 검사, 성남시장 측근이 용도 변경에 개입했다.

4. 토지공사는 용도변경 뒤에도 토지의 상당 부분을 H1에 수의계약으로 매각했다.

5. 땅값이 몇 배로 뛰면서 H1과 일당들은 용도변경으로 2000억냥, 아파트 분양으로 8000억냥의 차익을 남겼다.

6. 여권 실세들이 아파트를 몇 채씩 받았다.

7. 유난히 검찰관련 인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당시 수원지검 부장검사였던 청와궐저격수 곽상도가 등장한 것도 이때다. (당시 곽상도가 살살 다뤄주는 통에 재명공자는 무공폐지라는 엄벌은 면할 수 있었다.)

 H1 대신 화천대유를 넣어보라.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10년 전 일을 떠올리자 재명공자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천라지망(天羅地網)-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모든 것을 가둔다더니, 과연 그런가.

#.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면 달려야 한다

 대장동 특혜 의혹을 놓고 누군가는 특검을 받으라 하고, 누군가는 진솔한 사과를 하라고 한다. 허튼소리. 호랑이 등에 탔는데 내리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내리면 어찌 될까.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나라고 왜 잘못된 걸 모르겠나. 내가 대장동을 설계했다. 10년 전 검사로 신분을 위장해가면서 낱낱이 SK 특혜 분양 의혹을 파헤쳤다. 대장동은 SK와 이란성 쌍둥이다. 나보다 전문가는 없다. 시장을 공격해 쫓아내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 일이 어찌 진행될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오죽하면 내가 "부하 직원 잘못은 유감이다. 도의적 책임은 진다"고 말을 바꿨겠나. 이만큼 물러선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더는 물러설 수 없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강호를 위해서다. 특히 나와 생태계를 같이하는 좌파 무림 동도를 위해서다. 좌파 무림은 지금 위기다. 기댈 곳이 없다. 야권무림엔 포학한 절대 고수, 나찰수 윤석열이 있다. 그를 상대할 자가 여권 무림엔 없다. 그가 차기 지존좌에 오르면 좌파 무림의 기득권 생태계는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다. 내가 유일하다. 그런 사태를 막을 좌파의 절대 고수는 나뿐이다. 내가 반성하고 사과하면 좌파 무림은 나를 지지할 명분을 잃게 된다. 결과는 명약관화. 좌파 무림의 몰락이다. 내 손으로 좌파 무림의 숨통을 끊을 수는 없잖은가.
 좌파 동도들도 잘 안다. 나 재명공자가 낙마하면 자신들의 생태계도 무너진다는 것을. 나찰수 윤석열을 이기려면 영남을 갈라치고 충청을 품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호남의 절대자 낙연거사로는 필패. 그를 앞세워 윤석열을 상대했다간 부산도 잃고 충청도 잃을 것이란 사실을. 그러니 강호 동도들이 어쩔 수 없이 "내가 이재명이다"라고 지금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눈물 어린 충정을 어찌 외면하겠나. 누가 감히 그들 앞에 "다 내 잘못이니, 사퇴하겠소"라고 할 수 있겠나.

# 방귀 뀐 놈이 성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찰수 윤석열이 석 달 전 출사표를 던진 후 이렇게 말했다지. "나는 지존 비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안 나서도 죽고, 져도 죽는다. 필사즉생, 꼭 이길 것이다."
나도 그렇다. 물러서도 죽고 져도 죽는다. 살길은 버티고 버텨 이기는 것뿐이다. 방법은 단순 무식 과격이다. 복잡한 초식, 정직한 투로(鬪路)로는 필패다.
역공과 물귀신 작전이 최선이다. 무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초식 중 적반하장이란 게 있다. 말도 안 되는 사기꾼 초식이지만 강호 오천년 무공 역사에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적반하장 초식이 왜 나왔겠나. 방귀 뀌었다고 가만있으면 놀림감이 될 뿐이다. 상대가 방귀를 뀌었다고 뒤집어씌워야 화를 면할 수 있다. "국민의짐 게이트다" " 나찰수가 판 집은 화천대유 김만배 누나 돈이다" "나찰수 장모도 화천대유처럼 특혜받고 먹튀했다" 이 정도로 화끈하게 화를 내야 내가 뀐 방귀 냄새를 지울 수 있다.
내가 누군가. 나 재명공자, 그간 수없이 위기를 겪어봤다. 모두 적반하장 초식으로 극복했다. 강호인들은 다 안다. 적반하장이야말로 내가 가장 즐겨 쓰는 초식이자, 강호에서 나보다 이 초식을 잘 쓰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물론 적반하장 초식에도 상극이 있다. '경제적 이익 공동체' 초식이다. 화천대유의 돈이 내게 흘러들어 온 사실이 밝혀지면 끝이다. 적반하장 초식으론 상대할 수 없다. 화천대유의 사라진 돈 83억냥이 내 변호 비용으로 쓰였다며 야권무림이 추적 중인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어디 해보라. 이미 천하는 내 손에 있다. 순사든 즙포사신(검찰)이든 공수처든, 누가 감히 내게 맞서려 들겠나. 호호탕탕, 크게 웃어제끼는 데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움찔한다. 어이쿠~. 심마(心魔)는 꼭 좋은 일, 큰일을 앞두고 생기는 법이라지.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6회부터는 중앙일보 사이트 로그인을 하셔야 보실 수 있습니다. 로그인 하러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