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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명공자 "나는 만독불침, 어떤 독공도 나를 쓰러뜨릴 수 없다"[이정재의 대권무림⑤]

중앙일보

입력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대권무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대권무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제5화 막약이명(莫若以明) "여권무림엔 재명공자 만한 이가 없더라"

在明奸雄世所誇  재명공자가 간웅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曾將大庄取全金  일찍이 대장동에서 몽땅 꿀꺽했기 때문이지
誰知天意無私曲  하늘의 뜻 이리 공정한 줄 그 누가 알았으랴

比武方勝已滅亡  비무에서 이기자마자 망조가 같이 찾아왔네

 (※삼국지 모종강본 제9회와 10회에서 빌어옴)

#사내 셋, 꿈 셋

62대 28. 이해할 수 없는 숫자 두 개가 강호 무림을 뒤흔들고 있다. 한양에서 치러진 여권 무림의 최종 비무 결과다.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고, 이길 것이라던 재명공자가 여권 무림의 본산에서 두 배 넘게 차이로 대패했다. 그 전에 벌어놓은 것이 없었다면, 또 그것이 마지막 비무가 아니었다면 승부는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숫자의 비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첫 번째 사내 낙연거사. 그는 사흘 만에 "승복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숨을 고르고 있다.
 "아직 진짜 승부는 나지 않았다. 마지막 비무의 숫자가 말해준다. 재명공자는 반드시 추락한다. 그의 추락이 시작되면 여권 무림은 내게 기댈 수밖에 없다. 비무가 정당했다면 나는 결코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번의 기회가 내게 꼭 더 주어질 것이다. 음~기다리리라.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리라, 기필코."
낙연거사는 질끈 눈을 감은 채 긴 숨을 들이켰다.

숨을 고르는 두 번째 사내. 호호선생(好好先生) 김동연의 얼굴에도 모처럼 미소가 돌았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어느 인물, 어떤 무공에든 맞춰준다 해서 붙은 별호 호호선생. 재명공자가 낙마한다면 그에게도 틀림없이 기회가 있을 것이었다. 그는 재인군 밑에서 경제부총통을 지냈지만 그의 소득주도성장 초식에 반대하다 쫓겨났다. 차기 지존에 도전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지 오래지만 그의 이름을 부르는 강호인은 거의 없었다.
"실망하지 않는다. 틀림없이 기회가 올 것이다. 재명공자가 크게 내상(內傷)을 입었다. 그가 낙마하면 여권 무림에 대안은 없다. 낙연거사로는 필패다. 나찰수 윤석열을 당할 수 없다. 승리는 인내하는 자의 것이다. 지금껏 내가 여야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버틴 것도 그 때문 아닌가. 내가 달리 저울질의 달인이라 불리겠나."

무림은 그를 잊었지만, 그는 무림을 잊지 않았다.

누구보다 머리가 복잡한 사내, 촉새선생 유시민. 16대 무림지존 바보공자 노무현의 복심으로 불리는 그는 진작 재명공자와 뜻을 같이하기로 한 터다. 그는 재명공자의 낙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막판에 이게 뭔가. 그깟 낙연거사에게 빈틈을 허락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계산을 다시 해봐야겠다. 대장동이 재명공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내가 재명공자에게 목을 맬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나는 이기는 쪽에 설 뿐이다. 여권 무림에 이길 자가 아무도 없다면, 내가 나서지 않을 이유는 또 뭔가."
 사실을 말하자면 그가 재명공자 쪽에 선 것은 해골도사 이해찬 탓이 컸다. 해골도사는 언제나 이기는 쪽에 서는 사람이다. 그의 촉수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그는 재명공자의 승리를 점쳤다. 이번 재명공자의 승리에는 해골도사의 도움이 컸다. 그는 여권 무림 경선 비무에 "친노·친문이 나설 때가 아니다"라며 사실상 재명공자의 손을 들어줬다. 재명공자야말로 비노·비문의 '변방 무사' 출신 아니던가. 해골도사는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여전히 재명공자에 올인하고 있다. 문득 의심이 든다. 해골도사가 과연 오로지 여권 무림을 위해서 재명공자 편에 선 것일까. 두 사람 사이에 다른 깊은 연결고리가 있는 건 아닐까.

# 하산길엔 돌부리를 조심해야 한다
"승부는 났다. 되돌릴 수 없다. 재명공자와 한 배를 탈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는 재명공자를 상수로 놓고 계산해야 한다. "
청와궐의 밤이 재인군에게 불면의 시간이 된 지 오래다. 그는 잠시 전 청와궐 대신들과의 회의를 다시 떠올렸다. 정무사신은 "걱정할 게 없다"고 큰 소리를 쳤다.

 "아무것도 걸릴 게 없습니다. 소득주도성장 초식은 마공이 아닙니다. 그걸로 주군을 감옥에 보낼 수는 없습니다. 북무림 정은황제와의 3차례 회동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기승전탈원전은 시끄럽기는 하겠지만, 역시 주군을 엮어 넣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백번 만번 따져봐도 주군은 권좌에서 내려가신 뒤에도 안전합니다."
재인군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회의를 마쳤지만 뒤끝이 영 개운치 않았다.

퇴임전 지존의 안위를 따져보고 문제 소지를 없애는 일은 청와궐의 오랜 관례다. 대개 내 편 후계자를 둔 지존은 안전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명박대제다. 그는 퇴임 전 온갖 변수를 따져본 뒤 문제가 없을 것으로 확신했다. 측근들과 여러 차례 점검 회의도 했다. 내 편을 후계자로 앉히는 데도 성공했다. 그런데 그에게 "걱정 없다"고 자신했던 바로 그 최측근, 총무사신의 배신 때문에 결국 감옥에 갔다. 물론 후임 그네공주가 순실이란 복병에 걸려 권좌를 잃은 것이 더 큰 이유이기는 했다. 자신의 손으로 명박대제를 감옥에 보낸 재인군으로선 무엇보다 퇴임 후 안전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산길이 안전하려면 재명공자를 차기 지존좌에 앉히는 게 첫째다. 쉬운 일이 아니다. 62대 28. 이 숫자의 비밀부터 풀어야 한다. 야권 무림의 주장대로 대장동이 군세(群勢=지지율)를 바꾼 것이라면 재명공자로는 필패다. 하지만 대장동이 원인이라기엔 설명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그렇다고 대장동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재명공자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무공의 소유자다. 차기 지존좌는 이른바 '정통성' 싸움이다. 정의와 통합, 성장의 내공을 갖춘 자가 이긴다. '정통성' 내공으로는 여권 무림의 누구도 재명공자를 당할 자가 없다. 지존좌의 법칙 "시대의 흐름에 맞는 무공을 익힌 자가 이긴다"는 말은 틀린 적이 없다.
 재명공자가 차기 지존이 된다한들 십분 안심할 수는 없다. 재명공자는 믿을만한 자가 아니다. 그는 수가 틀리면 언제든 칼끝을 내게 돌릴 위인이다. 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그는 '반(反)문'을 외칠 것이다. 나 재인군을 아예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 손 놓고 당할 수는 없다.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대장동이 열쇠다. 대장동이 또 다른 순실이가 될 수도 있다. 그리되면 내 측근 중에서도 배신자가 나올 것이다."
 며칠 전 즙포사신 김오수를 불러들인 것도 그래서다. 그는 "자리를 걸고 대장동을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다. 종이로 불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대장동을 모조리 덮을 수는 없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로 재명공자의 약점을 쥐되, 그가 낙마하지 않게 해야 한다. 재명공자에게 청와궐이 한 편이라고 굳게 믿게 해야 한다. 성남시나 경기도청은 건드리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고도의 내공이 필요한 일이다. 아무리 충성심을 타고났다지만 오수가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 내 사전에 '우회'는 없다

"정면 돌파한다. 경기도백 사퇴는 없다."

재명공자는 단호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측근들마저 놀랄 정도였다. 이미 더불어당의 총사(總師) 넙적얼굴(四角面) 송영길과도 협의를 끝낸 사안이었다. 재명공자가 여권 무림의 차기 지존 후보가 되면 경기도백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약조를 한 게 불과 며칠 전 아닌가. 송영길 총사가 "경기도백 자리는 사퇴하는 게 좋겠다"고 운을 뗀 것도 약조에 따른 것 아니었나. 일단 장고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줬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단번에 부인하다니.
 "재인군이 허투루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를 말했을 리 없다. 자네들도 알겠지만 재인군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안위뿐이야. 더불어당과도 다 조율했을 것이야. 우물쭈물 하다간 누구 칼에 맞을지 모를 일. 여기서 물러서선 절대 안 돼. 걱정들 말게. 무림의회의 국정감사 쯤은 식은 죽 먹기지. 암 그렇고말고. 내가 누군가, 진격의 이재명 아닌가. 나는 이미 만독불침을 이룬 지 오래, 어떤 독공도 나를 해칠 수 없네."
 학습효과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고비 때마다 재명공자는 늘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거짓말쟁이, 사기꾼, 욕쟁이, 파렴치한 소리는 들었지만 그의 군세(群勢=지지율)는 꺾이지 않았다. 공격을 받을수록, 강하게 받아쳤고 그럴수록 군세는 커졌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물론 더 큰 이유도 있다. 숫자다. 62대 28. 이해할 수 없는 숫자요, 예상하지 못했던 숫자다. 큰 내상(內傷)을 입었다. 아무리 만독불침의 몸이라도 이런 큰 공세는 견딜 수 없다. 심상치 않다. 뭔지 모를 혼돈의 힘이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고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다. 차기 지존좌는 내 것이다. 절대 양보할 수 없다. 누구도, 그 어떤 힘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정면 돌파밖에 없다. 이번 무림의회 국감이 마지막 고비다. 목숨 걸고 막아야 할 서류와 자료, 대장동 마공의 비밀이 거기에 있다. 흑을 백으로, 백을 흑으로 바꿔야 한다. 나 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으드득…. 관자놀이에 굵은 힘줄이 불끈 솟았다.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6회부터는 중앙일보 사이트 로그인을 하셔야 보실 수 있습니다. 로그인 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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