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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대유 천화동인! 크게 해먹으려면, 온갖 놈들 다 모으라[이정재의 대권무림③]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3화 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마저 속여야 대박을 칠 수 있다

장삼이 불끈했다.
"어떤 놈은 100원 내고 천배, 만 배 벌어간다는데, 나는 뭐야."
이사가 피식 웃는다.

"이름이 별로라서 그래. 만 배로 바꿔."

듣고 있던 이 씨, 오씨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옳거니. 이만 배, 오만 배라. 대박 나겠네~"

 정작 속 쓰린 건 백씨, 천 씨다.
"진작 이름 바꿨으면 백만 배, 천만 배 터질 건데…."

무림력 재인천하 시월 초하루. 강호는 온통 화천대유 얘기뿐이다. 벌써 한 달째. 하기야 돈 얘기, 권세 얘기야말로 인지상정, 누구나 쫑긋 귀를 세울 일이다. 하물며 천배 만 배 돈 번 얘기요, 유력 차기 지존 후보까지 절세의 권세가가 모두 등장했으니 온갖 항설(巷說)이 돌지 않으면 그게 이상할 터였다.

#청와궐의 밤은 그냥 저물지 않는다

재인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역시 범계야. 범상치 않은 귀계. 이름값을 단단히 하는군. 내가 왜 진작 그를 법무판서에 앉히지 않았던가."

손에 들린 밀지(密旨) 한장, 모처럼 재인군의 미소를 끌어낸 물건이다.

구속영장=야권무림의원 곽상도, 전 무림대법관 권순일, 화천대유 주인 김만배(※ 빠를수록 좋음.)

"곽상도, 권순일, 김만배…. 이렇게 셋이라."
 절로 무릎이 쳐진다. 여야 균형을 맞춘데다 핵심 인물의 입을 막는 묘수가 아니던가.
 우선 곽상도. 이 자를 잡아 넘는 건 개인적으로 한풀이도 된다. 곽상도가 누군가. 말로는 야권무림의 저격수라지만, 오로지 나와 내 가족만 저격한 자 아닌가. 내 아들을 그렇게도 괴롭히더니 자업자득이지.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엣가시만 타내는 자, 벌을 받아도 싸지 싸. 죄질도 아주 나쁘지 않나. 뇌물죄. 제 아들을 통해 받은 뇌물이니 어찌 빠져나갈 길도 없다. 가족끼리는 경제공동체 아닌가. 전임 그네공주는 순실이랑도 경제공동체로 엮였다. 가족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
 권순일은 변호사법 위반, 딱 떨어지지. 다만 반푼공자 재명이 기분 나빠할까 걸리기는 한다. 재명공자가 자기 쪽에 칼을 들이대는 것 아니냐며 반발할 수도 있다. 신경은 쓰이지만 그래도 밀어붙여야 해. 재명공자도 대놓고 반발은 못할 테니. 잘하면 큰 보험 하나 들어놓는 일이 될 수 있지. 이번 기회에 아직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줘야 해.
 김만배, 이 자는 꽁꽁 가둬놔야 해. 이런 자는 유·불리에 따라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유형이지. 변수를 줄이려면 입을 완전히 막아야 해. 그러기엔 감옥보다 더 좋은 곳이 없지.
 그러고 보니 한양중앙지검이 갑자기 '화천대유 특별 수사팀'을 만든 이유가 이것이었군. 속전속결, 현장의 모든 것을 장악하겠다, 이거지. 역시 범계 장관이야. 한양중앙지검장이 그의 심복 중 심복이라지. 이번엔 나찰수 윤석열한테처럼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겠지. 그래도 노파심이 든다.
 만에 하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어쩌지? 아니야, 그럴 리 없지. 무림판사들이 어찌 감히 영장을 기각하겠나. 전 강호인이 노려보고 있는데,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못할 일이지. 그나저나 이번 한 수로 차기 권세에만 눈이 팔린 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주겠군. 내가 누구인지, 뭘 할 수 있는지. 지금 자신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말이야. 그래 아무렴, 아직 내가 지존이야.

# 상계(商界)의 밤은 이재명에 있다

"아무렴 내가, 천하의 나 금적산(金積山)이 그런 찌질한 수를 뒀겠나."

화천대유로 불편한 심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이가 여기 또 있다. 강호의 금권력. 상벌(商閥)의 주인 금적산. 그는 꽤 화가 난듯했다. 통통한 주먹을 힘껏 쥐느라 관자놀이 힘줄까지 불거졌다.

'화천대유에 뒷돈을 댄 게 금적산이다. '
강호엔 이런 풍문이 급속히 퍼졌다. 금적산(金積山)-금으로 산을 쌓아 금권력으로 불리는 나를 도대체 뭐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야권의 저격수 곽상도, 무림특별검사 박영수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다보니 그 둘을 나와 엮어 소설을 쓰는 자들이 있다. 소설의 골자는 아주 흉악하다.

금적산은 지난 정권에서 탄압받았다. 다시는 감옥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금적산은 그네공주의 민정사신이었던 곽상도와 특검 박영수에게 뇌물을 뿌렸다. 그게 화천대유다.

‘고얀자들 같으니. 그들의 목표가 뭔지 안다. 나와 재명공자를 엮어 한칼에 보내려 한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소름이 쫙 돋았다. 그가 재명공자와 친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과거 몇 차례 재명공자와 밀담을 나눈 바 있다. 재명공자는 술술 모든 걸 받아줬다. 모든 것을 끌어들인다는 그의 흡입마공은 절정의 경지, 그것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좌파'니 '사회주의마공'을 익혔느니 하는 이들을 금적산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금적산 스스로도 갸우뚱해 지인들에게 이렇게 털어놓을 정도다.

"나는 왜 이렇게 재명공자하고 말이 잘 통하지?"

하기야 그도 그럴 것이 재명공자의 최대 내공은 '무원칙'이다. 내 편 네 편만 있지, 원칙과 공정·정의 따위는 없다. 그와 깐부만 먹으면 된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그걸로 나 금적산은 만사형통이다. 나는 이미 그의 깐부다.

사실 상벌(商閥)의 주인에게 다른 선택은 없다. 나는 재인군의 여권무림이 재집권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과거 보수무림 지존들이 나를 얼마나 혹독하게 대했나. 재인군 치하에서 나는, 나의 상벌(商閥)은 비로소 금권을 쌓을 수 있었다. 이왕 여권무림이 재집권한다면, 최적임자는 재명공자다. 다른 자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언제 강호 민심을 얻겠다며 재벌에 칼을 들이댈지 모른다. 하지만 재명공자는 결코 깐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재명공자는 스스로 '보수' '친기업'이라고 말해오지 않았던가.

어디 나만 그렇겠나. 사실을 말하자면 이미 상계는 상당수가 재명공자에 줄을 선지 오래다. '보수''자유'를 외치지만 야권무림엔 기대할 게 없다. 게다가 야권무림의 유력 후보 나찰수 윤석열은 원칙주의자에 반재벌 내공으로 단련된 자 아닌가.

'어차피 당금 무림에 백도(白道)는 없다. 여권무림은 마도(魔道)요 야권무림은 흑도(黑道), 마귀 아니면 강도뿐이다. 언감생심, 정도(正道)와 협객을 바라겠나. 상계가 살길은 마귀든 강도든 깐부를 맺는 것뿐이다. 자책도 후회도 필요 없다. '

금적산은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 화천대유하세요~
이젠 무림언론사의 기자가 아니라 화천대유의 주인으로 더 유명해졌다. 사람 팔자 시간 문제라더니. 나 김만배는 법조에서만 20년 내공을 쌓은 기자다. '오늘의돈' 언론사로 옮겨올 때도 "법조만 맡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판사든 검사든, 법가(法家)의 인물이라면 줄줄이 꿰고 있다. 관계도 좋다. 물론 거저 된 건 아니다. 나는 결코 남들처럼 섣불리 부정부패 취재를 하거나 비리를 파헤치지 않았다. 대신 법가의 인맥을 쌓는 데 내 직업과 경력을 대부분 사용했다. 내가 순사들의 조사를 받으면서 한 말,

"좋아하던 형님들로 대가성은 없었다"

그거 진짜다. 화천대유란 이름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내가 동양철학을 해서 주역을 좀 안다. 화천대유가 괜히 나온 이름이 아니다.
 대유는 불과 하늘로 구성된 괘다. 불이 하늘에 있으니 태양이요, 그것도 중천의 태양이다. 화천대유는 한 낮의 태양처럼 크게 얻는 것을 상징한다. 강호 최고의 주역고수 대산(大山) 김석진 옹은 "주역 64괘 중 화천대유가 최고의 괘"라고 하셨다.
 화천대유는 주역의 14번째 괘다. 만월은 보름이 되면 기운다. 화무십일홍이라 열흘 붉은 꽂은 없다. 화천대유가 14번째인 것도 그래서다, 그다음 날 기운다는 뜻이다. 그러니 크게 먹고 기울 때 뒤탈이 없으려면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그래서 동인(同人) 괘가 필요하다. 내가 화천대유에 이어 천화동인 회사를 만들고 온갖 지인들을 모신 것도 그래서다. 여권과 야권은 물론 재벌까지 한 자리에 모았다. 공공의 이름으로 민간의 등골을 빼먹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그러니 나만 잡아 주리를 털면 모든 흑백이 가려질 것이라 믿는 강호의 민초들이여, 생각 좀 해보시라. 최고의 권력자가 설계하고 최고의 법가(法家)들이 과실을 나눴다. 나라를 통째로 바꾸지 못하는 한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 아무리 시끄럽게 떠든들 그뿐, 끝내 쥐새끼 한 마리 잡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천화동인의 동인(同人)이 무엇인지 진짜 뜻을 아는가? 모든 사람이 뜻을 하나로 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유일한 음(陰)인 육이(六二)를 중심으로 모든 이들이 뭉친다는 의미다. 그러니 그 힘을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 누가 음(陰)이요 육이(六二)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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