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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의 전두환·노태우 "암수(暗手)도 실력, 당하는 자가 바보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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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5화〉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 임금을 잘못 골라 천하를 망치는 건 백성이다

 "그러니까 자네 생각에는 재인군이 틀림없이 수를 부릴 거란 말이지?"

독두광마(禿頭光魔) 전두환이 다짐받듯 물었다.

"아무렴. 재인군의 위인 됨을 보니 편협한 데다 옹골차기 짝이 없네. 지존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자신이 만든 왕국의 주인이고 싶어하지. 재명공자를 적극 돕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 자신의 위엄을 희생하면서 도와주기엔 그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거야. 자네나 나와는 달라. 과거 자네는 내게, 나는 내 후임 공삼거사에게 필요하면 '나를 베고 가라'고까지 했잖은가."

보통인마(普通人魔) 수태우가 길게 말을 받았다.

"우리 땐 전임을 베고 가야 이기는 줄 알았지. 그래서 다 짜고 친 것 아닌가. 그때 나온 유명한 비결이 '전임자의 강을 건너라' 아니던가. 그런데 그 후엔 좀 달라진 듯하네. 대중검자를 밟고 가지 않았지만 바보공자 노무현은 이겼고, 반대로 공삼거사를 내쳤지만 회창객은 패하지 않았나. 재인군이 저리 아집이 강하니 짜고 치는 밟고 가기는 없을 테고…. 재명공자가 답답해할 만 하군."

"그래서 재명공자가 저리 좌충우돌 날뛰는 것 아니겠나. 재인군의 성명절기인 편갈라부동산세금매기기 초식이며 닥치고탈원전 초식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무공이라며, 자신이 기필코 바로잡겠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말이야. 형편이 급박한 줄은 알겠으나, 별로 효과는 없을 듯하네."

수태우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말을 끊었다. 짐짓 호기심을 부채질하려는 듯이. 그러자 독두광마가 못 참고 재촉한다.

"아, 뜸 들이지 말고 얘기 못 해?"

이크, 저 심술통이 또 발동했네. 귀신이 됐으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머뭇거리다간 언제 두환철권이 날아올지 모르지. 수태우는 빠르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재명공자가 뭐라 하든 재인군은 가만히 있어야 하네. 그래야 후계자인 재명공자가 주목을 받지. 그런데 재인군은 일일이 반박을 하고 있네. 게다가 임기 마지막까지 '종전선언'이다 '탄소중립'이다 자기 치적 알리기에 혈안이 돼 있네. 최근엔 재벌총수 청와궐 집합령까지 발동하지 않았나. 그러니 후계자에게 가야할 조명이 거꾸로 현 지존한테 쏠리네. 이래서야 어찌 재명공자가 옴치고 뛸 수 있겠나. 가뜩이나 재인군보다 군세(群勢=지지율)가 낮아 고전하고 있지 않은가."

독두광마의 얼굴이 계속 푸르락붉으락 하더니 마침내 폭발했다.

"아니,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인 줄 알아. 고작 남들 다 아는 얘기를 늘어놓으려고 그렇게 뜸을 들였단 말이야?"

"아니, 아닐세. 본론은 지금부터일세. 겉으론 삐거덕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일세. 장막 뒤에선 되레 재인군이 재명공자의 무공 초식에 일일이 훈수를 두고 있네. 금지된 술법으로 얻은 정보를 이용해서. 왜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집중집단심문(FGI=Focus Group Interview)술법 말일세."

집중집단심문술은 강호 민심을 재는 유력한 술법이다. 4~6명 정도의 백성을 불러 한 사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묻는 여론조사술. 일반 강호의 여론조사보다 훨씬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대신 돈이 많이 든다. 직전 무림지존 그네공주는 무림정보부의 자금을 동원해 이 술법을 펼쳤다가 무림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후임 지존인 재인군은 이 술법을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쓰도록 했고, 청와궐 밖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 그 술법을 재명공자에게 썼단 말인가?"

"아무렴. 재명공자가 자신의 성명절기인 '전국민재난지원금'초식이나 '국토보유세'신공을 갑자기 포기한 이유가 그것일세. 청와궐이 집중집단심문술을 펼쳐 확인한 결과, 이 두 가지 초식에 대한 백성들의 반대가 6할~7할에 달했다고 하네. 그걸 재명공자에게 전해서 포기하게 한 거지."

"허허….이럴 수가. 현 무림지존의 비무 개입은 엄격히 금지돼있거늘…. 게다가 스스로 금지한 금술(禁術)까지 사용하다니…. 참으로 고약한 자로다. 하기야 내 장례에 문상은커녕 나를 무덤조차 없이 떠도는 귀신으로 만들 때부터 내 익히 알아봤거늘…."

수태우가 길길이 화를 내는 독두광마를 다독였다.

"우리는 이미 죽어 귀신이 된 몸, 무얼 그리 화를 내시는가. 이젠 좀 느긋해지시게."

독두광마는 여전히 분을 못 참고 씩씩댔다.

"애초 우리가 왜 이승의 얘기를 나누게 됐는가. 재명공자며 나찰수 윤석열이며 차기 지존 후보란 자들이 제멋대로 내 이름을 부르고 짓밟고 놀리는 통에 시끄러워 깬 것 아닌가. 나찰수란 자는 '정치는 잘했다'더니 내 문상도 오질 않고, 재명공자란 자는 '경제는 잘했다'며 내 이름을 밟고 지나가며 '나찰수 윤석열은 못 할 것' 이러지 않았는가. 고얀 놈들. 죽은 뒤 호랑이 가죽이야말로 하룻강아지의 담요 감밖에 안 된다더니."

"쯧쯧. 그만 노여워하시게. 그게 다 자네 이름이 여전히 위진천하(威振天下) 하고 있다는 말 아닌가."

"위진천하는커녕 나를 놓고 대리전을 펼치는 거지. 나 독두광마야말로 무림 경제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사람 아닌가. 나 아니었으면 대한무림은 다시 후진무림, 철혈의 대제 박정희가 모아 놓은 것 다 까먹고 제2의 비율빈(比律賓)이 돼 있었을 것일세. 저자들이 그런 내 공을 가져가려는 것. 공만 가져가고 과는 남기려다 보니 저리된 것 아닌가."

수태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빛만 있고 그늘이 없는 세상이 어디 있겠나. 무공도 마찬가지. 공만 있고 과는 없는 초식이 어디 있겠나. 어제는 마공이었던 퍼주기마공이 오늘은 퍼주기신공으로 불리지 않는가. 그게 강호의 이치지. 그래서 지존좌가 어려운 것 아니겠나. 어떤 무공이 당금 무림에 맞는 무공인가, 그 선택의 짐을 온전히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게."

독두광마가 눈쌀을 찌푸렸다.

"갑자기 무슨 철학교수라도 된 건가? 귀신 되더니 뒤늦게 철 들기라도 한 거야? 고리타분한 얘기는 접고, 그나저나 차기 지존좌는 누구 것일 것 같나. "

"그걸 누가 알겠나. 귀신이 된 자네도 모르는데. 다만 몇 가지 짐작해볼 일들은 있네. 우선 무공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네. 재명공자는 온갖 무공을 다 익혔네. 그야말로 천변만화, 어떤 무공이든 쓸 수 있지. 윤석열은 나찰수 외에 별로 내세울 무공이 없네. 그러나 승패는 무공의 넓이가 아니라 깊이로 결정되는 법. 하나를 익혀도 누가 제대로 익혔나에 달렸지.  "

"꼭 그런 것만도 아닐세. 과거 회창객의 판관필은 아주 매서웠네. 그러나 대중검자의 바람검을 이기지 못했지. "

"그거야 어디 회창객의 무공이 약해서인가. 강호 초출인 데다 익힌 무공마저 법가의 것이라 융통성이 없어 민주련의 암수에 당한 거지. 아들살빼고뼈깎아면제받기 초식에 그렇게 쉽게 당할 줄 누가 알았겠나."

"암수(暗手)도 실력일세. 암수야말로 무림사를 바꾼 결정적 한 수가 아니던가. 보아하니 차기 지존좌도 암수로 결판이 날 듯하네만."

"나찰수의 아내 옥수날심(玉手辣心) 김건희 말인가?"

독두광마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보기에 나찰수는 화를 자초하고 있네. 옥수날심 문제는 아주 간단하네. 상책은 옥수날심을 소록도에 보내 봉사하게 하는 걸세. 무림언론의 눈도 피할 수 있고 주목을 받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중책은 과거 여느 지존후보처럼 하는 것일세. 김장나눔이나 코로나의료봉사초식 같은 걸 쓰는 것이야. 위험은 있지만 입만 조심하면 큰 화는 없을 것일세. 하책은 자신의 전공인 미술전시초식만 쓰되 다른 곳엔 일체 등장하지 않는 걸세.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입만 열고 있네. 그것도 적아(敵我) 구분도 못 하고, 친민주련 무림언론과만 소통을 하고 있으니 원. 민주련 무림의원에게 고스란히 녹취록이 전달된 건 다 그 때문 아닌가. 그야말로 하지하책, 아니 무책(無策)이라고 해야 할 것이야."

수태우가 그런 독두광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저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저승에 와서도 이승의 권력 싸움에 저리 관심이 많다니. 하기야 그 큰 영광과 좌절을 겪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러나 이제는 다 부질없는 일 아니던가. 건너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는 것, 그게 세월의 강(江)이지.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것, 그게 지존무상이고. 그러니 대한무림의 어느 무림지존 한 사람 오욕의 굴레를 벗지 못한 것 아닌가. 후계자도 전임 지존을 절대 봐주지 않는 비정 강호. 현 지존 재인군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무림의 평자들이 "(재인군은) 재명공자가 지존이 되면 감옥에 갈 것이고 나찰수가 되면 안 갈 것"이라고 하겠나. 살아생전 왜 그리 바둥댔나. 저승에 와 보니 다 일장춘몽. 남는 건 이름 하나, 그마저도 똥칠 된 이름 하나뿐 아니던가. 수태우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이제 그만 하세. 귀신이 돼서도 이러는 줄 남들이 알면 얼마나 놀리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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