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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제갈 김종인 "안철수로는 필패, 재명공자가 원하는 바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⑨]

중앙일보

입력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9화〉 목란사(木蘭辭) 중국엔 목란, 한국엔 건희와 혜경, 여걸천하다  

남산골 다루(茶樓)에 올라서는 귀제갈 김종인의 발걸음엔 힘이 넘쳤다.
얼굴엔 광채가 번쩍였다.
내공이 깊어지면 나이를 먹을수록 젊어진다더니,
반로환동(返老還童) 설마 그 경지에 이른 것일까.
나찰수 윤석열과 결별한 지 이주야(二晝夜).
귀제갈에 대한 무림의 관심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금세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귀제갈 어르신, 도대체 당금 무림이 어찌 돌아가는 겁니까."
"차기 지존좌는 누가 차지할까요."
"철수의사와 나찰수는 연합할까요?"
"나찰수의 아내 김건희는 진짜 여걸입니까?"

민초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귀제갈은 싫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천천히, 한 사람씩 차근차근히 합시다.
내 이제 야인으로 돌아온 몸,
정보도 없고 아는 것도 없지만
성심껏 답해보리다.
다만 이는 모두 내 개인 생각일 뿐이니,
그리 알고 들어주면 좋겠소"

귀제갈은 한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일주야 전, 이 자리에서 내가 한 말이 있소.
설날 전까지 전세가 시시각각 변할 것인바,
세불리를 크게 느낀 후보가 판을 바꿀 비장의 절초(絶招)를 들고 나올 것이다.
바로 무림 지존의 임기 단축, 무림 헌법의 개정이 될 것이라 했소,
그게 반푼 재명공자든, 나찰수 윤석열이 됐든.
당시 여러분들은 둘 중 누가 '무림지존임기단축'공을 쓴다면 그는 바로 나찰수일 것이라 했소만,
나는 재명공자일 것이라 했소.
일주야가 지나 오늘 보니, 과연 어떻소?"

그랬다. 재명공자는 이날 '무림지존임기1년단축' 초식을 공개했다.
전세가 웬만큼 불리하지 않았다면 절대 꺼내지 않을 초식이었다.
당금 강호 무림의 문제는 지존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집중된다는 것,
그러니 무림 헌법을 바꿔 권력을 나눠야 한다는 게 이 초식의 뜻.
비록 '무림지존임기3년단축' 초식이나 '내각무공'에 비하면 그 위력이 미미하다 하나
무림 헌법을 바꾸겠다는 말을 여권무림의 차기 지존 후보가 꺼냈다는 것만으로도 강호에 일대 풍파를 몰고 올 것이었다.

"과연 귀제갈의 신산(神算)이 대단하오.
하면 재명공자가 무림지존제를 포기하고 내각무림까지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소이까?"

내각무림이야말로 귀제갈 김종인 필생의 숙원.
재명공자가 내각무림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곧 귀제갈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비록 재명공자가 지금은 무림지존제를 고수하겠다고 하나,
세가 더 몰리면 내각무림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소.
나는 나찰수보다는 재명공자가 내각무림에 뜻이 있다고 보고 있소."

귀제갈이 이리 단언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진작 나찰수 윤석열에게 내각무림을 권했었다.
그러나 나찰수는 한칼로 잘랐다.
"그런 건 제가 무림지존좌에 오른 뒤에나 생각해 보리다."
귀제갈은 그 후로 내각무림 무공을 나찰수에게 전수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그 후 한때 나찰수의 군세(群勢=지지율)가 급락하자
잠시 나찰수가 임기단축 초식과 내각무림공 수련을 검토하기는 했다지만,
그뿐이었다.

재명공자든 나찰수든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크게 저울추가 기울면
그땐 판을 흔들 대마공이 필요하다.
내각무림공은 그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하면 단일화는 어찌 되겠소이까?"

잠시 상념에 빠졌던 귀제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철수의사 안철수와 나찰수 윤석열의 합력(合力)은 결코 없을 것이요.
혹여 이루어진들 안철수 쪽으로 합쳐서는 결코 재명공자를 당해낼 수 없소.
제18대 대선을 생각해보시오.
그네공주는 겨우 3푼 차이로 재인군에게 이겼소.
영남 무림이 9할의 지지를 그네공주에게 보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소.
안철수가 야권무림의 단일 후보가 되면 영남무림은 그에게 몰표를 주지 않을 것이요.

국힘방의 세력이 철수의사를 위해 뛰지 않을 것이니,
영남무림 출신인 재명공자와 표를 반반 나눠 갖게 될 것이요.
반면 호남무림에선 재명공자에게 9할 이상 몰표를 줄 것이요.
영남무림에서 1백만표 넘게 차이를 벌릴 수 없다면 싸움은 하나 마나요.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나 세대포위공만으로 무림지존좌를 차지할 수는 없소.
지긋지긋한 지역주의공은 이번에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요.
지금은 비록 호남무림에서 선전하는 것 같지만 나찰수 윤석열이든 안철수든
막상 진짜 지존비무 날에는 호남무림에서 1할의 지지도 얻기 힘들 것이요."

듣고 있던 장삼이 무릎을 쳤다. "옳거니. 과연 그렇소이다."
옆에 있던 이사가 급히 물었다. "요즘 세간의 관심은 단연 나찰수의 아내 옥수날심 김건희. 어떻습니까. 그는 지존부인이 될만합니까?"

귀제갈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딱 한 번 만났소이다. 일각(一刻)이나 됐을까.
그리 짧게 보고 어찌 평을 할까마는,
강호의 온갖 잡술을 다 익힌 듯한 품세에

할 말 못할 말 다할듯한 호상(虎相)이었소."

 #운세는 사람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옥수날심(玉手辣心-백옥같이 흰 손에 독한 마음) 이라.
김건희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강호의 눈과 귀가 그야말로 무서웠다.
누가 붙인 별호인지 모르나, 정곡을 찔렀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나는 강호에서 닳고 닳았다.
내가 주로 어울렸던 건 좌파무림인들이다.
강호에 처음 나와 생업을 꾸릴 때가 20여년 전,
그때 무림은 좌파세상이었다.
비정 강호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연줄,
나는 온갖 모임과 단체에 발을 디밀었다.
덕분에 내로라하는 청와궐 당시 실장과 정기 회합도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랴.
내 사랑하는 가가(哥哥)가 하필 우파무림의 지존 후보가 될 줄이야.
일이 꼬인 건 그때부터였다.
재인군의 심기를 거슬렀고, 여권무림 전체를 적으로 돌렸다.
가만있어도 죽고, 싸우다 져도 죽을 신세가 됐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잖은가. 필사즉생.
배운 재주와 인맥을 총동원했다. 사람을 모으고 돈을 썼다.
나의 가가는 돈이 없다. 주변머리도 없다. 익힌 무공이라곤 나찰수,
악귀와 마졸을 잡아넣는 데는 특급이지만,
사람을 모으고 군세(群勢)를 일으키는 데는 부족하다.

그러니 내가 안간힘을 쓸밖에. 그러다 탈이 났다.
아는 게 좌파 인맥이요, 좌파로 행세하다 보니 좌파 언론만 상대했다.
한양의소리 기자라는 놈이 그리 뒤통수를 칠 줄이야.
나와 나눈 대화를 모두 녹취해 세상에 흘렸다.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나의 가가가 그 한 수에 무너져내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둥근 것.
삼국지의 사마의가 그랬다던가.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 )이라.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로구나!
과연 그랬다. 가담과 항어가 일거에 사라졌다. 음설(淫說)과 괴담도 자취를 감췄다.
되레 나 옥수날심을 추종하는 무리가 급증했다.

사실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 못 한 바는 아니다.
내가 익힌 술법 중 최고는 신복술(神卜術).
나는 하늘의 뜻을 짚을 수 있다.

내 점괘에 따르면
차기 청와궐의 주인은 나다. 나와 가가가 청와궐에 들어가게 돼 있다.
이제 사실상 승패는 가려졌다.
가가의 최대 약점은 나였다.

가가는 "천하를 버리더라도 아내를 지키겠다"는 우직한 사내다.
그런 그에게 "천하를 쥐어야만 나를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아내를 지키려면 먼저 아내를 버려야 한다고도 했다.
가가는 이제야 겨우 말귀를 알아들은 듯하다.

재명공자는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눈치 빠른 자니 이대로 가면 필패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가 쓸 수 있는 수는 세 가지.

하나, 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
지금처럼 그냥 직진하는 것이다.
계속 우기면 하늘도 속는다.
강호를 속이고 사회주의 마공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둘, 금선탈각(金蟬脫殼)-매미가 허물을 벗듯 벗어던지고 위기만 모면한다.
요즘 말로 ‘쇼’를 하는 것이다. 빌고 울고 바꾸고 엎드리는 것이다.

셋, 환골탈태(換骨奪胎)-진짜로 껍질을 벗고 뼈를 바꾸는 것이다.

첫째, 둘째수는 무섭지 않다.
그가 세 번째 수를 택한다면 판세가 크게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세 번째는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달리 그가 반푼(半分)이라 불리겠나. 하도 이랬다저랬다, 남의 것으로 가득 채워 제 모습을 잊은 지 오래거늘.

 #원조 여걸은 나다

혜경궁김씨의 입이 하늘만큼 삐져나왔다.
내가 누군가. 천하의 재명공자를 쥐락펴락하는 게 나다.
그를 이 자리까지 밀어 올리느라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던가.
지혁군(指革軍=손가락혁명군)을 만들고 지휘한 것도 나다.
손가락이 부러져라 자판을 두드렸었다.
재인군을 공격하다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했다.
구사일생, 아홉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와 내 낭군 재명공자는
비로소 이 자리에 섰다.
여권무림의 차기 지존 후보.

승리는 떼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옥수날심 김건희 정도는 한주먹 거리였다.
내 손으로 직접 요리하겠다고 했다.
'닭살부부금슬내조공'으로 김건희를 압박해 강호에 얼굴을 들지 못하게 했다.
덕분에 내 낭군 재명공자의 지지가 크게 회복됐다.

요즘은 일부러 재명공자와 떨어져 다닌다.
우리의 알콩달콩 초식에 닭살 돋는다는 반응이 많다나 뭐라나.
나는 주로 지방을, 재명공자는 한양을 공략 중이다. 둘이 따로 움직이니 두 배 효율적이다.
얼굴을 본 지도 꽤 됐다. 집에는 서로 거의 못 간다. 주로 객잔에서 잔다.
이런 고행 끝에 간신히 전세를 역전시켜놨는데,
이게 웬일인가.

옥수날심을 노린 독수가 되레 나를 향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애초 이런 만신창이 싸움을 피했어야 했다.
나의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건만,
이거야말로 나의 약점으로 적의 강점을 두드린 꼴이 됐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
이럴 때일수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아들은 직장도 휴직하고 집에만 있도록 했다. 수통기(手通器)도 빼앗았다.
어떤 게시판에도 글을 올리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걱정이다.
"제 멋대로 사는 재인군의 아들 준용이 부럽다"는 아들을 어쩌랴.

그러나 실망은 이르다.
내가 누군가.

천하의 여걸 원조 혜경궁김씨가 아닌가.
재명공자와 내가 합심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
내 남편 재명공자는 판을 뒤집을 수만 있다면 어떤 초식이든, 누구의 무공이든 가져다 쓰리라.
그것이 개헌공이든 내각공이든. 그리하여 끝내 이기리라.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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