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무림

청와궐 혼술거사, 흡입마공 재명공자…무림경선 비무의 칼끝 [이정재의 대권무림①]

중앙일보

입력 2021.09.10 05:00

업데이트 2021.09.1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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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제1화 지존하좌 구절양장(至尊下座 九折羊腸);무림 지존의 하산길이 험난하기만 하다  

#청와궐의 혼술에 시름은 깊어가고

청와궐의 밤은 길다. 한잔 술로는 감당할 수 없다. 술시(戌時:저녁 7시~9시)도 전인데 벌써 한 병이 비워졌다.
"휴~"

재인군의 한숨이 깊어졌다. 일주일 전 궐내 정무사신의 보고를 받고도 차일피일 결단을 미뤄왔다. 더는 미룰 수 없다. 혹자는 문산군, 또는 재앙신군으로 비아냥거린다지만, 그는 엄연한 현 무림의 지존.

"결국 이렇게 됐나."
다시 한 잔, 요즘 부쩍 혼술이 잦아졌다. 본래 대작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마셔도 혼술이 편하다. 혼술 거사, 혼밥 신군 소리가 괜히 나왔겠나. 청와궐의 밤이 길어질수록 주량도 따라 늘었다. 소주 두 병은 금방이다. 보고 내용은 예상대로였다.

〈여권 무림 차기 지존후보 결정을 위한 경선비무 첫 번째 충청결전 현황〉
반푼공자 이재명의 압승이 확실시 됨. 세균공의 조직과 전술은 이미 붕괴됨. 그를 따르던 열 한 명의 무림의원 중 일곱이 변절. 부관들을 재명공자 진영에 보내 돕게 함. 재명공자와 겨룰 유일한 후보 낙연노야도 일패도지. 그의 충청 반전계는 사실상 무력화됐음. 대전·충남은 이미 넘어갔고, 세종·충북도 함락. 세종의 맹주 해골도사가 재명공자의 뒷배를 단단히 지원 중. 사실상 남은 경선 비무가 무의미해질 수 있음. 재명공자에게 힘이 쏠리는 순간이 훨씬 빨라질 수 있음. 결단을 내려야 함.'

선택지는 세 가지다. 하나. 그간 벼리고 벼린 즙포사신(검찰) 충복을 써서 재명공자를 무릎 꿇리는 것, 둘. 진작 재명공자의 승리를 선언하고 적극 지원하는 것, 사실상 항복이다. 셋.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는 것.

다 마땅찮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역대 지존들의 하산길은 처참했다. 나는 다를 줄 알았다.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인가. 지존좌를 비워줄 시간이 채 6개월이 남지 않았다. 명년 모란이 피는 모습을 나는 청와궐의 뜰에서 볼 수 없을 것이다. 첫째 수는 위험부담이 크다. 자칫 꾀돌이 재명공자에게 발각돼 역공을 맞을 수 있다. 이미 청와궐에도 재명공자에게 줄을 선 자들이 수두룩하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입을 떼는 순간, 당장 칼끝이 거꾸로 나를 겨눌지도 모른다. 둘째 수는 현실적이지만 내키지 않는다. 내 자존심은 어쩌란 말이냐. 셋째는 수도 아니다. 거미줄에 친친 감긴 벌레가 조용히 먹잇감이 되길 기다리는 것과 뭐가 다르랴.

다시 한 잔. 갑자기 재인군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래 왜 꼭 여권 무림이어야 하나. 야권이면 어떠랴. 누군들 나를 가장 안전하게 하산시켜줄 자면 그만이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면서 한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나찰수(羅刹手) 윤석열"

 #"광이나 파십시다"  

세균공은 통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중요한 결전의 날, 그는 역병에 걸린 자와 접촉했다가 강호보건법에 따라 격리됐다.
"한시가 급한 때에 발이 묶였다. 결과는 불문가지."
꼭 잡아야 할 싸움을 놓쳤다. 가장 공들여온 곳이 충청 아닌가. 무림의원 스물 중 내 사람이 반이다. 애초 조짐이 좋지 않았다. 결전의 날이 다가수록 슬금슬금 이탈자가 생겼다. 면전에서 단단히 주리를 틀어놔야 이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역병이라니, 불길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하기야 역병이 아니었더라도 어려웠을 것이었다. 과연 하늘의 뜻이 내게 지존좌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전날 참모 우균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광이나 파십시다"

그래, 그 친구가 그렇게 말했지.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때 팔자고. 낙연노야나 재명공자, 둘 다 지금은 얼마든지 값을 치를 거라고. 이왕이면 내 패와 겹치는 낙연노야보다는 재명공자가 더 비싼 값을 쳐 줄 것이라고. 고얀 친구, 나는 그때 호통을 쳤었다.

"나는 광값으로 받을 게 없네. 무림총리, 무림의회 의장, 산업부 판서 다 해봤네. 남은 게 지존좌 뿐인데, 그걸 포기하고 대신 뭘 받는단 말인가. 무슨 일이 있어도 경선 비무의 끝을 볼 테니, 그리 알게."

우균은 입을 삐쭉이며 중얼거렸다. "그거야 세균공 입장이고…. 수하들 생각도 좀 하셔야지요~." 그래, 그 친구가 그렇게 말했지. 나를 돕는 사람들, 그들의 앞날을 외면할 수는 없다. 시간을 끌수록 광값은 떨어질 터였다. 이미 아무도 광을 사주지 않게 된 것은 아닌가. "끙~" 시름과 고민의 밤이 깊어갔다.

#"반푼이 지존좌에 오르면 사화(士禍)가 일어날 것"  

낙연노야의 밤도 길고 깊었다. 본선은 자신있다지만, 문제는 더불어여당내 경선 비무다. 이기려면 문파로 불리는 재인수호대의 힘만으론 안 된다. 물론 문파의 힘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두 달 전 갑작스레 내 세력이 급증한 데는 문파의 힘이 컸다. 70만 당원 중 20여만이 문파다. 삼할이나 된다. 이들을 적으로 돌려선 승산이 없다. 얼마 전 "지존의 하산길을 책임지겠다"며 지존의 충신 경수지사와의 밀어를 공개한 것도 그래서다. 구차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한고비는 넘겼다. 문파는 이제 나의 것, 다른 선택지가 없다. 문파와 재명공자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나도 알고, 문파도 알고 재인군도 안다. 재명공자가 20대 지존좌를 거머쥐면 어떤 일이 생기겠나. 문파가 장악 중인 더불어여당을 이재명 당으로 바꿀 것이다. 여당을 2년 넘게 문파당으로 놔두고선 무림을 통치할 수 없다. 쪼개고 나누고 학살할 것이다. 이미 전례가 있다. 16대 지존 바보공자 노무현은 대중검자의 여당을 송두리째 바꿨다. 대중검자의 충복 독안(獨眼)검자 박지원을 감옥에 가두고 동교계를 학살했다. 지존 탄핵을 유도해 일거에 판을 뒤집었다. 대중검자의 당은 바보공자의 당으로 바뀌었다. 재명공자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다. 그 역시 노무현의 수순을 밟을 것이다. 낙연노야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반푼이에게 가장 쉽고 좋은 게 뭘까. 물어볼 것도 없다. 정적을 치는데는 뭐니뭐니해도 사화(士禍)다. 사화의 불쏘시개로는 문파의 주인인 재인군이 쓰일 것이다, 재인군을 우스개거리로 만들어 화려한 처형식을 치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낙연노야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존 재인군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재인군의 안전 하산을 보장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런데도 왜 저토록 침묵하나. 현 지존의 권능으로 얼마든지 재명공자를 처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충청 반전의 꿈은 사라졌다. 이틀 뒤 치러질 1차 종합 경선 비무 역시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이제는 건곤일척 수를 던져야 한다. 낙연노야의 긴 탄식이 이어졌다.

"소심한 재인군 같으니, 그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문파는 끝났다. 꿇는 자 살 것이요, 거스르는 자 망할 것이다

"첫서리가 내리는 날, 천하는 누구의 발자국이 가장 먼저 찍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재명공자의 눈은 이미 충청 결전 저 너머에 가 있었다. 여권 무림 경선 비무가 끝나는 10월, 그는 당연히 비무대의 맨 앞자리에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딱 반보. 반보만 더 내디디면 천하가 그의 발아래 있을 것이었다.

"그 날이 문파를 정리하는 날이 될 것이다. 재인군에 대한 공격은 그때부터다. 어차피 문파는 이기는 쪽에 설 수밖에 없다. 문파를 딛고 중도 무림을 끌어들여야 한다. 멀쩡부동산파멸초식과 소득주도망신공은 당장 폐기할 것이다. 재인군의 수족을 자르고 칼끝을 그의 명치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대신 기본공을 강호의 필수무공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무림이 기본으로 하나가 되게 할 것이다."

재명공자에겐 사실 강호인들은 잘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그의 거친 욕설과 터무니없는 포퓰리즘 약속에 가려 안 보이는 그의 진짜 무공이다. 그는 강호 고수 중 유일하게 흡입마공을 익혔다. 흡입마공은 상대의 모든 무공을 빨아들인다. 누구든 그와 한 번 겨룬 자, 그의 무공에 힘을 보태는 도구가 되고 만다. 왜 그의 별호가 반푼공자겠나.

나머지 반푼은 상대의 것으로 채운다는 의미다. 흡입마공의 효용은 또 있다. 익히면 익힐수록 귀를 엷게 한다. 재명공자는 누구의 말이든 쉽게 받아들인다. 그의 세력이 갈수록 불어가는 이유다. 흡입마공이 십이성에 이르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가 극에 달하면 반대의 물성(物性)도 극에 달하는 게 세상의 이치. 당금 무림에도 흡입마공과 극성인 무공이 등장했다. 야권 무림인 중 흡입마공과 대적할 무공을 익힌 자는 딱 하나. "나찰수 윤석열" 재명공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제2화 '법가쟁명(法家爭鳴)'편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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