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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 쥔 안철수 "재명공자도 나찰수도 물렀거라, 내 손으로 천하를 쥐리라" [대권무림 2부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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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8화〉 새옹지마(塞翁之馬) 천하의 판세는 새옹의 말과 같다

"됐어, 이거야. 정말 잘된 일이야. 이제 승부가 끝났군."

일주야전 나찰수 윤석열과 국민동자 이준석의 포용 장면을 보며 민주련주 송영길은 쾌재를 불렀었다.
당시 의아해하는 방도(幇徒)들을 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첫째, 귀제갈 김종인이 이로써 국힘방에 돌아갈 수 없게 됐네. 우리에겐 큰 위협이 하나 사라진 셈이야.
둘째, 나찰수는 국민동자 이준석에게 질질 끌려다니게 됐네. 우리에겐 '국민동자의 꼭두각시 나찰수'라고 공격할 구실이 하나 더 생긴 거지.
사실 첫째, 둘째는 사소한 것이지. 진짜는 바로 이걸세."

잔뜩 궁금증을 키워놓은 송영길은 수하들이 "뭔데요?"라고 묻기도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셋째, 국힘방의 선수 교체는 없다. 즉 나찰수가 끝까지 후보로 뛸 것이란 얘기지. 혹여 둘의 내분이 계속돼 선수가 교체됐다고 쳐보세. 상상하기 싫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야. 우리에겐 이런 다행히 없네.
넷째, 철수의사 안철수와의 단일화는 없다. 국민동자는 안철수와는 상극, 결코 나찰수 윤석열과 힘을 합치도록 놔두지 않을 걸세.
우리에겐 이보다 더 다행인 일이 없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하기야 동병상련이라, 같은 병을 앓는 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법.
당금 무림에 국민동자 이준석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자는 바로 민주련주 송영길일 것이였다.
둘이야말로 차차기 지존좌를 노리는 여야 무림의 차기 쌍두(雙頭)가 아니던가.
안철수의 급상승은 차기 지존비무의 구도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위력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잘 짜인 구도라로 한 번 흔들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단일화'

이것이야말로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민주련주 송영길은 지난해부터 안철수의 수통기(手通器)로 문자를 보내 "재명공자와 힘을 합치자"고 말해왔다.
안철수가 "재인군 정권을 같이 심판하자는 말이냐"고 비아냥댔지만, 참았다.
대신 "재명공자도 재인군에게 핍박받았다"며 다시 안철수의 합류를 권유했다.
아무리 친분이 좀 있다 한들 이만한 혀 놀림에 철수의사가 넘어오지 않을 거란 걸 송영길이라고 왜 모르겠나.
그래도 그가 이리 안철수를 채근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만사불여튼튼.
자고로 무림 지존 비무대회는두 달을 남겨놓고 가장 크게 요동쳤다.
역대 지존 비무의 승부가 두 달 새 뒤바뀌기 일쑤였다.
제 20대지존비무의 최대 승부처는 단일화. 철수공자의 발만 묶어놓으면 재명공자의 승리는 따놓은 당상일 터였다.
나 민주련주의 계속되는 구애가 일푼의 마음이라도 안철수의 발을 주춤거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엇인들 무슨 얘기인들 못 하랴. 그것이 민주련의 방식, 나 민주련주 송영길의 방식인 것을.

#철수 없다

바람이 차다.
대지는 꽁꽁 얼어붙었다.
시간마저 추위에 갇힌 시간, 철수의사 안철수는 중랑천을 뛰었다.
아내 소소의사(小素醫師) 김미경과 함께였다. 그의 성명절기 '새정치'는 발로 뛰어야 단련이 가능한 무공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무(無)정치철수전문' 무공이라지만, 천만의 말씀.
처음엔 위력이 없어 보이지만 내공이 쌓일수록 강해지는 게 새정치의 특징이다.
10년 익힌 새정치공은 이제야말로 본 궤도에 접어들고 있었다.

"당신의 무공이 높아지니 강호 언론이 어디를 가나 쫓아다니네요"
그의 뒤를 쫓는 무림언론인들을 보며 소소의사가 말했다.

"고마운 일이지요. 그만큼 차기 지존좌에 내가 한발 다가갔다는 뜻이니."
"아마 저자들은 당신 입에서 '단일화하겠다' '양보하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쫓아다닐 것 같아요."
"어림없는 소리요. 이번엔 갑니다. 끝까지 갑니다. 이번에야말로 철수 전문의란 오명을 씻어낼 것이요, 기필코."

그래, 아내인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그의 다짐엔 이유가 있다.
그는 결코 나찰수 윤석열이나 반푼 재명공자에게 대한무림을 맡길 수 없다.
나찰수는 무공 초보다. 무림의 미래를 이끌어 갈 자질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재명공자가 지존좌에 오르는 것만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 그는 재인군의 촛불공을 극대화, 무림 전체를 태워버릴 것이다.
그를 막지 못하면 무림은 재인군 치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재앙을 맞을 것이다.
어찌 무공을 익힌 사내로서 무림의 파탄을 눈 뜨고 지켜보고만 있으랴.
혹자는 그러니 마음 약한 내 사내 안철수가 막판엔 양보, 나찰수 윤석열과 힘을 합칠 것이라고 믿는다.
한 번 피한 사람은 또 피하게 마련이라며.
내 남편을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소리, 이번엔 다르다.
이유? 하나, 내 남편의 무공이 절정에 올랐다. 둘, 그는 치욕을 잊지 않는다.

#과거를 잊지 마세요

나는 살면서 세 번 양보했다.
2011년 한성시장 양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강호에선 '아름다운 양보'라고 했다. 헛소리였다.
비정(悲情) 강호에서 양보는 곧 패배였다.
돌이켜보면 가장 잘못한 건 2012년 지존비무 때 재인군에게 한 양보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재인군은 오늘 합의하면, 내일 뒤집었다. 그런 그와 천하대사를 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통 크게 양보했다.혹여 패배의 책임을 내가 뒤집어쓰는 게 무서웠다. 내가 무림의 앞날을 막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해 비무에서 재인군은 패했다. 하지만 비난은 내게 쏠렸다.
재인군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내 몸의 터럭 하나라도 뽑아주지 않겠노라 맹세했다.
지난해 한성시장 양보는 또 어땠나. 역시 치욕이었다.
국힘당은 나를 철저히 짓밟고 배신했다.
현 한성시장이 어떻게 비무에서 이겼나.
내가 대권을 위해 소권(小權)을 희생, 양보하고 승복한 결과다.
그런데 국힘방의 국민동자 이준석과 귀제갈 김종인은 그런 나를 능멸했다.
약속했던 합방(合幇)은 국민동자가 중단했다.
귀제갈은 "정신 나간 자"라며 촌철의 살인 기예를 나에게 폭풍처럼 퍼부었다.
나는 한성시장 오세훈보다 더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배신당했다. 세 차례의 양보, 그리고 세 차례의 배신.
내가 흘린 피눈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강호인은 짐작도 못 하리라. 그런 내게,

"단일화라니!!!"
물론 나찰수 윤석열과는 나쁘지 않다.
지난해 7월 나찰수와 처음 만난 날,그때 그는 순진한 시골 청년 같았다.
우리는 그날 함께 합의문을 썼다. 물론 내가 직접 미리 써놨던 합의문이다.

"우리는 함께 정권 교체를 향해 나갈 것이고, 선의의 경쟁자며 협력자다."

그때 그 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주역은 내가 맡는다. 드디어 기회는 왔다. 내 군세(群勢=지지율)는 이제 일할 오푼을 넘어 이할을 넘보고 있다. 이길 수 있다. 내 힘으로, 오로지 내 힘으로.

#심술(心術)도사를 잡아라 

한 시진 넘게 설득했지만, 심술도사 홍준표는 꿈쩍도 안 했다.

"나찰수 윤석열로 단일화를 한들 합체 효과가 거의 없습니다.
저희의 계산으론 안철수의 세력 중 4할만 나찰수에게 옮겨 갑니다.
나머지 3할은 포기, 다른 3할은 재명공자에게 가고요.
그러니 나찰수로의 단일화는 필패입니다.
국힘방이 안철수에게 합쳐야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그걸 할 수 있는 분은 심술도사, 당신뿐입니다. "

흑선자 권은희는 국민당의 3대 실력자였다. 하지만 역시 심술도사의 한 갑자 내공을 당해내기엔 무리였다.

"가서 철수의사에게 전하세요. 내가 귀공을 돕는 일은 없을 테니, 단념하시라고."
안철수와 심술도사의 합력은 판을 흔들 절호의 수였다.
'나찰수의 방심을 노려 심술도사를 끌어안는다' 안철수의 이런 복안은 그러나 심술도사의 노회한 수에 막혀 좀체 진척이 없었다.
흑선자가 물러간 뒤에도 심술도사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고작 무림의원 3명으로 100명이 넘는 국힘방을 노려.
내게 무림총리를 준다한들 가능할 리도 없지만, 어디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게다가 단일화가 된들 안철수로는 결코 재명공자를 이길 수 없지.
물론 단일화 비무 규칙부터 국힘방이 안철수에게 유리하게 순순히 합의해 줄 리도 없고.
그나저나 안철수 이 자가 기어코 끝을 볼 심산인가 본데, 어쩐다.
지난 19대 지존 비무 때도 끝까지 싸워 재인군의 승리에 일등공신 노릇을 하지 않았던가.
당시 내가 "힘을 합쳐야 이긴다"고 그렇게 외쳤건만, 들은 체도 하지 않은 게 누군가.
지금 무림정보원장인 독안(獨眼) 박지원의 수작에 놀아나 아예 협상 테이블에도 앉지 않은 게 바로 안철수 아니던가.
그러니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할밖에.

"철수공자는 쓸데없는 몽니로 5년 전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
말은 세게 했지만, 머릿속은 계산으로 바쁘다.
무림에 어디 영원한 적이 있고, 영원한 친구가 있단 말인가.
가만있자. 여기에 내 몫이 있으렷다.

"단일화라~"

#심술도사를 잡아라 2

같은 시각, 나찰수 윤석열도 들끓는 심사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잃었던 세력이 잠깐 회복되고는 있으나 안심하기는 일렀다.
최후의 순간, 누가 더 집중력을 유지하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다.
결국 마지막 승부처는 철수의사 안철수. 그와의 담판으로 천하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결과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나와 그에게는 동지애적 교감이 있다. 우리는 함께 싸운 전우요, 동지다.
그와 나는 재인군의 폭정으로 야권무림이 지리멸렬했던 시절, 그 험난 강호 1년 반을 단기필마로 재인군과 싸웠다.
우리 두 사람이 당시 야권무림의 전부였다.
겉으로는 "단일화 절대 불가"를 외치지만 나도 알고 그도 안다. 때가 되면 서로 손을 맞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답은 과거 종필노사와 대중검자의 대중종필연합에 있다. 공동 무림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나와 안철수는 이미 기호지세, 어느 한 쪽이 양보할 수는 없다. 대신 합심, 협력이 해법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세 가지를 약속할 것이다. 1. 무림 총리를 준다. 2. 무림 내각의 반을 준다. 3. 차기 대권을 준다.

이때 꼭 필요한 게 있다. 사람이다. 무림력(曆) 1997년 10월에 성사된 대중종필연합은 일 년 전부터 비밀 협상을 시작했다. 대중검자의 복심 철두(鐵頭) 한광옥과 종필노사의 머리 와룡(臥龍) 김용환, 불세출의 두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철수의사 안철수와 나찰수 윤석열의 오작교를 이어줄 인물, 누가 있을까.

나찰수 윤석열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이름이 번뜩 떠올랐다.

'심술도사 홍준표'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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