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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찰수 윤석열의 절규 "나는 버티기의 달인, 어떤 무공도 나를 흔들 수 없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⑦]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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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7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잘되는 집은 이유가 한가지지만 안되는 집은 만가지다

"싸움은 끝났네. 이겼네.
 이제 남은 건 하나, 향후 천하무림을 어찌 다스릴까, 저자들을 어찌 요리할까 궁리하는 일뿐일세."

반푼(半分) 재명공자가 파안대소했다. 경기검 김용은 다소 의외였다.
수족 중 수족인 그가 알기로 재명공자는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위인이었다.
아내와 자식이 눈앞에서 쓰러진 들 득실을 따진 뒤에야 움직일 사람, 그게 알려진 재명공자의 모습이었다.
이주야(二晝夜) 가까이 민주련의 세력이 독보천하 했지만 그는 수하들에게 말조심, 입조심, 몸조심을 말해왔다.

'방심은 이르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천하인 모두가 재명공자의 승리를 말할 때도 재명공자 자신만은 '아직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 그가, 승리를 말했다. 그것도 파안대소와 함께.

"감축드립니다, 주군.

주군의 그 말씀은 이제는 그 어떤 것도 주군의 지존좌 등극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실로 그러하네. 나찰수 윤석열은 두 가지 큰 실수를 했지.
그것이 그를 회생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을 것이고, 내 지존행을 완벽히 도와줄 것일세.

하나는 그가 백성의 마음을 몰랐다는 것일세.

무림지존은 곧 무림의 곳간 지기. 백성들은 곰 같은 집사보다 여우 같은 집사를 원하네.

그런 민심을 못 읽고 호통과 삿대질, 미련한 곰수(熊手)만 남발하다 되레 화를 자초한 거지."

"과연 옳으신 말씀, 두번째는 무엇입니까?"

재명공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의와 공정' 초식으로  스스로의 발에 족쇄를 채웠다는 점일세.

나찰수는 악귀와 마졸을 잡아넣는 독한 초식이라, 결코 제 가족에게는 쓸 수 없는 무공.
그래놓고 '정의와 공정' 초식을 휘두르니 어찌 위력이 있겠나.
성명절기가 안 먹히는데 달리 무슨 수가 있겠나."

경기검 김용이 무릎을 쳤다.

"옳거니. 이제 나찰수는 손발을 묶고 기다릴 수밖에 없겠군요.

목을 길게 늘이고 주군의 칼을 받는 것 외에 다른 수가 없겠군요."

"최후의 발악이야 어찌 없겠나.
그래 봐야 고작 대장동을 물고 늘어지고 내 아들을 문제 삼는 정도가 고작일 것이야.
바둑으로 치면 던질 곳을 찾는다고 할까. "

"혹여 이러다가 나찰수 윤석열이 낙마라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되면 큰일인데…."

"그것도 염려할 것 없네.
나찰수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누구도 그를 강제로 쫓아낼 수는 없네.

하지만 그는 결코 물러날 위인이 아니지.

유일하게 걸리는 게 있다면, 그가 철수의사(醫師) 안철수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네.

그러나 그 권력욕 강한 나찰수가 그런 결단을 내릴 일은 전혀 없네.
어떤 경우라도 우린 승리하게 돼 있네."

재명공자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이제 다 끝났다. 집토끼만 확실히 챙겨도 승부는 명약관화다. '국토보유세' 초식을 이름만 바꿔 '토지배당금' 초식으로 펼치는 것으로 충분하다. "부자 것 뺏어 나눠주겠다"는데 누가 싫어하겠나. 뺏기는 부자는 10명이요, 받는 내 표는 90명인데. 요즘 느낀 건데 맞춤형 퍼주기 초식도 효과가 크다. 나라 곳간을 털어 대머리 백성을 치료해준다고 하니 열광하는 민심을 보라. 한 걸음 더 나가 전신 성형, 주름살 제거에도 나랏돈을 쓴다고 해볼까? 그래, 통치술이 별건가. 뭐를 '마이 멕이면 되는 것' 아닌가. 기본소득공과 '전국민재난지원금' 초식도 다시 마구 쓰리라. 나라 곳간을 축내면 어쩌냐고? 어차피 내 돈도 아닌 것을. 뭐가 문제인가. 미래 세대는 어쩌냐고? 내 자식이 어찌 되든 뭐가 문제인가. 어차피 남인데.

#필사즉생(必死則生)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재명공자가 파안대소를 터뜨리는 그 시각, 나찰수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견디다 못한 그는 서초벌의 뜨락으로 나섰다.
엄동의 밤바람이 가슴의 열기를 조금 식혀주는 듯했다.

그는 장탄식을 내뱉었다.

丈夫六十 去檢入政 (장부 나이 육십에 검찰 떠나 정치 입문)
出師武林 以立天下 (무림에 뛰어들어 천하를 세우려 했네)
步步刀山, 處處劍林 (걸음걸음이 칼산이요, 곳곳이 검숲이라)

民心一去不復返  (한번 떠난 민심은 영 돌아오지 않네)

百謨天慮爲無爲 (백 가지 생각, 천 가지 궁리가 소용없으니)

氣盡力絶無出路 (기운 다 하고 힘 빠져 나갈 길 보이지 않네)

何處求藥治亂世 (어디서 영약을 구해 난세를 치료할까)

교만과 방심이 화를 불렀다.

민주련은 'MB 아바타' 초식을 변형해 나를 공격했다. 무식남, 무뢰한의 굴레를 씌웠다.
애초 별거 아니라고 무시했지만, 오산이었다.
나는 거미줄에 친친 감긴 벌레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이걸 벗어나지 못하면 끝장이다.
그렇다고 "나는 무식남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건 악수 중 악수다.
점점 더 말려 들어갈 뿐이다.
철수의사 안철수 꼴이 날 것이다.

내가 가진 최고의 무공을 펼쳐 강호 무식남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거미줄을 단숨에 끊어낼 초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뾰족한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애초 외통수였다.

삼고초려 끝에 모셔왔지만, 귀제갈 김종인은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총기는 사라지고 무공은 진부했으며 체력마저 달렸다.
전권을 줬지만,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아침 회의가 끝나면 귀가하기 바빴다. 국민동자 이준석을 제어하긴커녕 제 한 몸 추스르기도 힘겨워했다.
오죽하면 내게 초식을 펼치지 말고 '시늉만 내라'고 했겠나.

믿었던 귀제갈마저 떠나보내고 나니 그야말로 사면초가라.

이젠 수가 없다. 필사즉생이라.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져도 죽고 물러서도 죽는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는 그럴 각오가 돼 있다.

뼈와 살을 다 바꾸리라. 말은 단문으로, 초식은 간결하게, 맵시는 세련되게.
삿대질 초식과 쩍벌남 초식은 영원히 거두리라.
대장동 초식으로 논검비무에서 재명공자를 몰아붙이리라. 거칠고 무식하게가 아니라 부드럽고 간결하게.
나찰수는 으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때였다.
수통기(手通器)가 울렸다.
그의 호법 백발자 한길공이었다. 귀제갈 김종인마저 없는 지금, 한길공이야말로 그가 믿고 의지할 몇 안 되는 방수(幇手) 였다. 그에게 판을 바꿀 묘수를 부탁한 터였다.

"고약하게 됐소. 묘수는 없소.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소.
바둑에선 묘수 세 번이면 진다고 했소. 두텁고 넉넉한 정수(正手)가 최선이요.
시급한 건 셋이요. 귀공도 익히 아는 것들이요.
첫째, 탈태환골. 모든 것을 바꿔야 하오.
뼈와 살을 다 바꾸는 건 말이 쉽지, 현실적으로 불가능, 시간도 없소.
설령 성공해서 안을 통째로 바꾼들 백성들이 알아주지도, 알아볼 수도 없어요.
보이는 것, 보여지는 것부터 바꿔야 하오.
말투와 몸짓부터 시작해야 하오.
당장 그 꼰대 머리 모양부터 바꾸면 좋을 것이요."

나찰수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두 번째가 궁금하군요. 필시 더 어려운 주문 일터."

"사대천왕의 결집이오.
심술도사 홍준표, 새침서생 유승민, 제주의 아들 원희룡과 귀공,
이른바 국힘방 사대천왕이 대오 단결하는 장면을 만들어야 하오.
심술(心術) 도사에겐 원하는 걸 다 준다고 하세요.
그는 욕심이 태산같은 사람, 결코 뿌리치지 않으리라.
차기 방주며 지방비무대회 공천권부터 공동 정부까지, 달라는 대로 줘도 되오.

새침서생 유승민에겐 큰절을 하시오.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성품이니 마음을 열 것이요.
제주의 아들 원희룡은 귀공과 이미 마음을 튼 사이,
그럴수록 더 큰 진정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나찰수의 표정이 묘해졌다. 나찰수의 침묵이 길어지자 수통기 너머 한길공이 재촉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은 귀공 본인밖엔 없소.
누가 대신해주지 못하는 일이오.
싫어도 해야 하고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하오."

"그리하리다."

나찰수는 무겁게 고개를 끄떡였다.

"세번째, 묘서동처(猫鼠同處)라. 작금 무림지존 비무는 도둑과 포졸이 함께 겨루는 형국이오.
사기꾼 재명공자의 정체를 낱낱이 밝히고, 귀공은 충직한 돌쇠가 돼야 하오.
무림지존은 곧 곳간지기.
사기꾼 집사가 곳간지기가 되면 이는 곧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

금세 곳간이 거덜 날 것이요.

사기꾼 집사는 주인인 백성을 온갖 감언이설로 속일 것이요.

결국 백성은 돈 잃고 속아서 바보 되고,

사기꾼 집사를 찍은 제 손가락 탓만 할 것이요.

반면 돌쇠 집사는 어떨까.

아예 곳간을 빼먹을 생각조차 안 하지요. 우직하니까.

그러니 곳간이 거덜 날 일도, 백성이 제 손가락 자를 일도 없을 것이요.

무림 백성들에게 이런 이치를 깨우쳐줘야 하오.

내 집곳간 열쇠를 누구한테 맡길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적의 강점을 약점으로, 나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이치요."

나찰수는 무릎을 쳤다. 이런 간단한 이치를 왜 몰랐을까.

"명심, 또 명심하리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귀공의 또 하나 골칫거리.
국민동자에겐 못 이기는 척 돌아올 명분을 주는 게 상책이오.
수통기나 만나서 담판 짓는 방식은 위험하오.
국민동자의 주특기 '수틀리면녹음해터뜨리기' 초식에 당할 수 있소.

그러니 국민동자에게 비단 주머니열 개를 달라고 하시오.
판세를 뒤집을 절초(絶招) 열개.
그중 가장 귀공에게 안 맞는 초식,
국민동자가 보기에 절대 귀공이 안 익힐 것 같은 초식,
그걸 익혀서 펼쳐 보이시요.
시늉만 내도 충분하리다."

과연 한길공의 말 그대로다. 그가 던진 "전철역에서아침인사' 초식을 받아들자 국민동자의 몽니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국민동자는 "내가 윤핵관이 되고 싶어요"라며 제발로 걸어들어왔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나찰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도 한숨은 멈추지 않았다. 원래는 다 이긴 싸움이었다. 오죽하면 강호의 평자들이 '100일 동안 하루 한 개씩 100개를 까먹지 않는 한 질 수 없는 싸움'이라고 했을까.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니. 물론 아직 기회는 있다. 최후의 절초도 준비돼있다. 실낱같은 희망이 살아있는 한 절망은 없다. 어차피 운명의 결과는 신의 손에 달린 것. 끝을 보리라. 불이 아니면 불쏘시개라도 되리라. 그리고 장렬히 산화하리라. 나찰수의 다짐은 아무 기댈 곳 없는 자의 간절한 기도를 닮아갔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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