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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을 좇는 재명공자, 회창객 닮아가는 나찰수 윤석열 [이정재의 대권무림 2부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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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6화〉 유부유죄 유자유죄(有婦有罪 有子有罪) 아내든 자식이든 있으면 죄인이다

"드디어 4할이요. 됐습니다. 큰 고비는 넘었소이다. 이대로 죽 밀어붙이면 필승이요."

수통기(手通器) 넘어 민주련주(民主聯主) 송영길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척 들떠있군. 제가 뭐 대단히 크게 도와주기라도 한 듯이 말이야.'

그래도 공치사를 해줘야겠지. 지금이 어디 찬물 더운물 가릴 때인가. 마른 수건이라도 짜야 할 판, 반푼공자 이재명은 목청을 한껏 키웠다. 하지만 연일 강행군에 지친 목에선 신소리가새어 나왔다.

"다 련주의 공입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이리 분신쇄골, 소제(小弟) 일에 뛰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내 처음엔 공자의 전술을 믿지 못했소. 좌충우돌, 본련의 무공을 나쁜 초식이라고 욕하고, 심지어 무림지존 재인군의 '집값두배로올리기' 초식까지 쓰레기 취급이라니.. 그러다 역풍을 맞을까 걱정했더니, 급기야 역전의 기회를 만들어내셨구려. 귀공의 귀계(鬼計)와 신산(神算)은 역시 명불허전이요. 그게 뭐라고 했지요. 이번 전략 이름이? 물을 흐리게 해놓고 물고기를 잡는다?"

손자병법 제20계 혼수막어(混水摸魚). 적을 혼란과 내분에 빠뜨려 적아 구분을 못 하게 해놓고 승기를 잡는다. 한 달 전 이 계략을 설명했을 때 민주련주 송영길은 그 큰 머리를 마구 흔들어대며 갸우뚱했다. 그러나 보라.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국민방주 국민동자와 나찰수 윤석열을 완전히 분리했다. 둘은 이제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모를 지경이다. 태공망이 자신의 병법서 육도(六韜)에 이른 대로다. 저자들은 지는 군대의 특징(兵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전군이 몇 번이나 호된 꼴을 당하고 군대의 마음은 뒤죽박죽이다. 적을 과대평가하여 공포에 떨며 의기가 떨어져 있다. 뜬소문이 난무하고 거짓말을 믿어 버린다. 군령(軍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장수를 존중하지 않는다. 이 모두가 겁약(怯弱)의 징후이다.'

 이럴 때 나는 상대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낙연노야를 삼고초려 끝에 모셔온 것도 그래서다. 물론 큰 대가를 치렀다. 내가 지존좌에 오르면 무림을 나눠 가지기로 밀약했다. 지존의 권좌를 하나 더 마련해주기로 한 것이다. 재여무림의 원로 고수가 중재를 섰다. 지금에야 무슨 약속인들 못 하랴. 낙연노야는 순진하다. 아무리 중재자가 있다 한들 내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나도 내 말을 못 믿을 지경인데. 가만있자, 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그리 보면 나는 참으로 많은 말빚을 졌다. "재명공자는 합니다"는 "백성이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로 바꿨다. 독두광마 전두환을 "학살자"라고 불렀다가 "경제 성과를 올린 것은 맞다"고 했다가 다시 "잘못 말한 것"이라고 되 물렸다. 이른바 '조국의 강'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쉽게 건넜다. 찬성했던 탈원전은 반대로 돌아섰다. '다주택자에 철퇴'는 '세금 깎아 주자'로, 전 백성 지원금은 자영상인 손실 보상으로 뒤집었다. 어제 약속과 오늘 말이 다르니, 내일은 어떻게 변할지 나도 모른다.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은 "믿을 수 없다" "표변한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 이 모든 말 바꾸기와 표변이야말로 혼수막어, 물을 흐려 물고기를 잡는 고도의 전략일 뿐이다. 일찍이 유비(劉備)가 형주(荊州)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계략 덕분이다.

끊임없이 초식을 바꾸고 떠들어댄 결과, 전투의 흐름은 완연히 달라졌다. 무공은 역시 재명공자가 뛰어나구나. 범죄자면 어때, 무림에선 역시 무공 실력이 최고야란 말이 힘을 갖게 됐다. 명박대제가 이길 때 강호 백성은 그의 도덕을 따지지 않았다. 재명공자야말로 명박대제의 '일잘하면죄도묻지않는다'초식을 그대로 써먹어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남은 시간은 딱 한 달. 이대로 한 달만 밀어붙이면, 신년 설날까지 이 기세를 끌고 가면, 강호인 모두가 절로 믿게 될 것이다. 범죄자 명박대제가 천하 범생 동영군을 물리치고 17대 지존좌를 거머쥐었듯이, 범죄자 재명공자가 검찰포두 윤석열을 물리치고 19대 지존좌를 거머쥐게 될 것임을.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바람은 싸늘히 불고 역수는 차갑다. (風蕭蕭兮易水寒)

한 자루 어장검(魚腸劍)을 벗 삼아 역수(易水)를 건너던 자객 형가(荊軻)의 심경이 바로 이랬을까. 그 비장한 심사가 2천여년 시공을 넘어 나찰수 자신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휴~"

형가의 유일한 무기가 어장검이었다면나찰수 윤석열에겐 '반문(反文)'이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재명공자는 안돼'와 '재인군 정권 교체'가 그의 군세(群勢=지지율)를 받쳐왔다. 그 힘이 너무나 강렬해서 단숨에 강호를 삼킬 듯했다. 그런데 한 달여만에 이 꼴이 뭔가.

급전직하(急轉直下). 한 달 새 곤두박질한 그의 신세를 나타내는데 이보다 적합한 말은 없을 터였다. 천하무림의 4할을 아우르던 세력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반문'으로 버티는 것이지, 나찰수가 좋아서, 나찰수의 무공에 반해서 그를 따르겠다는 무리는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 됐다.

방은 분란에 빠졌고 명령은 수행되지 않았으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단 한 사람, 천하와 바꿔서라도 지켜주겠노라 맹세했던 아내마저 고통을 겪게 했다. 혹자는 그런 나찰수를 민주련에 두 번 패한 회창객에 빗대기도 했다. 두 자식이 군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거짓 공격한 민주련에 속절없이 패해 지존좌를 내줬던 회창객이라니.
온갖 심마(心魔)가 그를 괴롭혔다. 왜 무림인이 됐을까. 자괴심이 들기도 했다.

人人有長短,豈敢問蒼天。(사람마다 장·단점이 있기에 하늘에게 왜 아내를 이렇게 낳으셨냐고 감히 따지지 않겠다)

見盡人間婦,無如美且貴。(내가 본 이 세상 모든 부인 중에서 내 아내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사람은 없었다)
譬令愚者安,何不假其賢。(어리석은 이가 편안하게 산다더니, 하늘은 왜 내 아내에게 현명함을 더 허락하지 않았는가)

忍此連城寶,沉藏向九重。 (끝내는 내 아내 같은 귀한 보물을 집안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참고 견뎌야 한다니.)

"그러나-. 이제 천하 대업을 다시 이루리라. 물이 새면 둑을 쌓고 적이 몰려오면 군사로 막는 게 세상의 이치. 방의 대소사를 직접 챙기고 분란을 내 손으로 막으리라. 내가 직접 국민동자를 다독이고 심술도사 홍준표를 끌어올 것이며, 재명공자의 일대일 싸움에 모든 것을 걸리라. "

따지고 보면 너무 안일했다. 본래 강호 민심이란 멀리하면 원망하고 가까이하면 무시하는 법. 내 아내가 문서를 부풀린 것을 두고두고 원망하는 데는 나 나찰수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더 커졌기 때문이다.
재명공자의 아내도 거짓과 욕설을 일삼았거늘 이를 탓하는 백성이 적음은 왜인가?
재명공자의 아들은 도박에 빠져 세상을 희롱했고, 재명공자 본인은 갖은 욕설과 패륜에 4번의 범죄를 저지른 순 악질이거늘 강호 백성 누구도 이를 탓하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
재명공자보다 내가 강했고 재명공자보다 내가 교만했기 때문이다. 내 무공은 공정과 정의를 바탕으로 '악귀와 마졸을 잡아내는 손(羅刹手)'이 아니던가. 나찰수 윤석열은 한껏 내공을 끌어올려 나찰수를 허공에 펼쳤다.

국민대통합공, 전두환경제성과초식, 삼프로tv출연 등 상황이 어렵다고 남들 무공을 닥치는 대로 익히려고 했던 게 또 다른 화근이었다. 맞지 않는 무공을 마구 익히다 보니 자신의 성명절기인 나찰수마저 손상을 입고 만 것이다. 공정과 정의는커녕 내로남불의 주화입마(走火入魔:기가 뒤틀려 화를 입음)에 빠질 판이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의 10자결(十字訣)을 '백성에 충성한다'는 7자결(七字訣)로 압축·발전시켜 정의와 공정의 나찰수로만 싸우리라. 싸우다 패해 장렬히 산화할지라도 남의 무공을 탐하지 않으리라. '

나찰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모처럼 전신에 힘이 차는 느낌이다.
정신없이 당하기만 했던 재명공자의 무공약점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대장동을 몰아치리라, 전과 4범의 후안무치를 내 손으로 직접 단죄하리라. 그를 나찰수 앞에 쥐로 만드리라.
그때였다. 나찰수의 수통기(手通器)가 울렸다. 무림언론인이자 강호의 훈수꾼으로 불리는 그의 비밀방수(幇手) 환(幻)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소. 자칫 회창객꼴이 날 수도 있소.
회창객은 두 아들 때문에 진 게 아니오. 민주련의 암수(暗數)는 도화선일 뿐, 그를 무너뜨린 건 교만과 방심이요.
귀공이 한 발 먼저 움직이고, 한 번 더 포용하고, 한 번 더 직접 챙겨야 하오.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오. 가장 미운 사람일지라도.
싫은 소리도 해야 하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결코 가져보지 못한 것을 가지려면 결코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한다고 했던가. 나찰수는 이를 악물었다. 제2의 회창객이라니. 그럴 리야 결코 없겠지만, 뒷골이 일순 서늘해졌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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