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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별후 어려운 생활 … 절망의 끝서 희망 찾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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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손미라 현대종합상조 천안중앙지사 소장은 절망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벼랑 끝에 서보니 자살하는 사람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군요.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작은 희망의 불씨를 보게 됐습니다. 이제는 죽을 용기가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일도 다 내 맘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0여 년 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던 30대 중반의 여인이 지금은 10여 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는 상조회사 소장으로 거듭나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현대종합상조 천안중앙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손미라(44) 소장의 인생은 지난 2001년 남편과 사별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32살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잃게 된 손 소장은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야 했다. 당시 손 소장에게 남은 것이라곤 조그만 가게를 얻기에도 부족한 몇 푼의 보상금뿐이어서 쉽게 돈벌이에 나서기도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손 소장은 자신과 함께 남겨진 어린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가만히 넋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천안시 신부동 먹자골목 내에 작은 노점 꽃가게를 차리게 됐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새벽까지 자리를 지키며 꽃을 팔았다. 한동안은 고생한 만큼 돈이 벌리는 것 같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하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만 했다. 하지만 손 소장의 마음처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새벽까지 해야 하는 일이라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 대견스럽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노점상 단속이 심해지고 노점상 철거 이야기가 나오면서 매일매일 불안감 속에 장사를 해야 했어요. 장사가 안 되는 것보다 가족들의 생계가 달린 꽃가게를 정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더 심각한 스트레스였어요.”

  노점 철거에 대한 불안감에 병까지 얻게 된 손 소장은 결국 꽃가게를 처분했고 꽃가게를 통해 모은 돈과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기반으로 식당을 차렸다. 하지만 식당 경험이 전혀 없었던 손 소장은 매월 갚아야 하는 이자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할 정도로 어려움은 더해갔다.

  “전 재산을 털어 차린 식당이라고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어요. 경험도 미천한 상태에서 남의 말만 듣고 가게를 차려 놓았으니 잘 될 턱이 없었죠. 정말 내 인생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죽은 남편도 한없이 원망스러웠어요.”

  결국 식당까지 처분하고 만 손 소장은 이곳 저곳 일자리를 찾아 다니다 상조회사에 취직을 하게 됐다. 정해진 월급도 없이 장례식장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겨우 몇 만원을 받을 정도로 고단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손 소장은 장례식장에서 희망을 불씨를 보게 됐다.

  “자신의 실적에 따라 월급을 받는 일이다 보니 장례식장 현장 도우미로 일해서 받는 몇 만원 외에는 특별한 수입이 없었어요.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동안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 꼭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어요. 망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고 유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절망은 나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또 상조회사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홀로 남편을 보내야 했던 힘든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현장 도우미 일을 대충대충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발인하는 날까지 유가족들의 옆에서 최선을 다했죠.”

  손 소장의 진심이 통해서 였을까. 장례식장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자신의 일처럼 상조 일을 봐주는 손 소장의 진심 어린 수고에 감사의 뜻을 전했고 이후 손 소장을 통해 상조에 가입하겠다는 사람들이 차츰 늘기 시작했다. 그래서 손 소장은 지인들이 소개해준 상조 가입자보다 장례식장에서 인연을 맺어 상조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특히 손 소장의 이 같은 노력이 회사에도 알려지면서 현대종합상조 천안중앙지사 소장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손 소장은 소장을 맡게 된 후 굳이 현장 도우미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신과 관련된 상조 가입자의 장례식장은 꼬박꼬박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며 유가족들과 밤을 지새우고 있다.

  손 소장은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했을 때는 세상 모든 것이 두렵고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단 한 순간도 소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소장이 됐다고 해서 매월 수천만원씩의 큰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 일당 2만원으로 살아야 했던 힘든 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은 모든 것에 감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입사원들 중 일부가 며칠 동안 장례식장에서 일하고 난 후 힘들다고 투정부리며 다른 일자리를 찾겠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는 손 소장은 그런 그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벼랑 끝에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여러분! 신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합니다. 극단적이고 즉흥적인 생각보다는 밝고 찬란하게 빛날 앞으로의 날들을 생각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세요.”

글·사진=최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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