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소통하는 은경이의 첫 전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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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품 앞에서 상장을 받아 들고 활짝 웃는 김은경양. [사진 JW중외제약]

열일곱 살 김은경양은 태어나서 12년 간 말과 행동이 느린 아이로 자랐다. 부모는 일찍이 친권을 포기했다. 그런 은경이를 깊게 관찰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동두천 아동시설에서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지냈고,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2008년 장애인생활 시설인 홀트일산복지타운으로 옮긴 이후, 아이는 말문을 닫았다. 비슷한 장애를 갖고 있는 또래가 있는 환경이 낯설었다. 방에 웅크리고만 있는 은경이에겐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생겼다.

 얼음 같은 아이였지만, 유독 그림에 관심을 보였다. 홀트로 온 지 1년여가 지났을 때 은경이는 선물로 퍼즐을 받았고, 완성본을 보지도 않은 채 퍼즐을 뚝딱 맞췄다. 이후 작은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선물 받고 남은 포장지, 나뭇잎 등도 은경이에겐 훌륭한 캔버스가 됐다. 지난해 시설을 찾은 고등학생 봉사자들이 벽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고 밤새 방에 있는 벽장 나무문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아이의 재능을 감지한 홀트의 선생님들은 미술 전공을 하는 자원봉사자에게 은경이의 그림 지도를 부탁했다.

 그런 은경이의 첫 그림 전시회가 서울 공평동 공평갤러리에서 22일부터 나흘간 열렸다. 은경이의 사연을 들은 JW중외제약이 지난해부터 신진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열고 있는 ‘영 아트 어워드’ 전시회 한 쪽에 은경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은경이는 전시회에서 자유롭게 뻗어가는 나무 그림 등 모두 네 작품을 전시했다. 은경이가 그린 그림 대다수가 일상의 풍경이 아니다. 나무나 꽃과 같은 자연의 소재를 활용하긴 하지만 상상의 산물이 많다. 일산복지타운의 유현성 사회복지사는 “또래 아이보다 세상 경험이 적은 은경이는 늘 머릿 속으로 상상해 그림을 그리다 보니 구도부터 색깔까지 모든 면에서 굉장히 자유롭다”고 말했다.

 은경이는 이 전시회를 통해 그림 선생님도 만났다. 청각장애인 화가인 변승일 청각장애인예술협회장이 정기적으로 은경이를 찾아 그림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그간 그려놓은 20여 편의 개인전도 열린다. JW중외제약이 지원을 받아, 홀트일산복지타운 기념관 전시실에서 일주일 간 전시될 예정이다. 은경이의 생애 첫 개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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