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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8호 31면

벌써 네 번째로 이 칼럼을 고쳐 쓰고 있다. 대통령 선거, 그중에서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단일화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게 어리석었다. 지금은 토요일 새벽이고, 방금 이코노미스트에 안철수 후보 사퇴 기사를 송고한 참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거 하나다.
‘와우.’

하지만 구독료 환불 요구를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 신문엔 무슨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분들의 글이 많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안철수 후보가 옳은 결정을 내렸으며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후보의 공평동 캠프의 자원봉사자들은 그들의 꿈이 좌절된 데 대해 비통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일화 협상 과정은 엉망진창이었으며 양측이 합의를 할 수 있었다고 해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가 됐을 거라고 본다.

협상 과정도 냉소를 불러일으켰다. 목요일 저녁 즈음엔 ‘새 정치’라는 말을 여전히 믿고 있던 젊은 사람들마저 절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안 후보는 양보를 함으로써 신뢰를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야권 지지자들은 단일화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느 후보로 되든 단일화 자체가 목표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는 박근혜 후보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던 걸로 보인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는 야권 지지자들에게 잘못된 안도감을 심어줬다. 특히 안 후보와 박 후보의 양자대결에 대한 여론조사는 안 후보에게 매우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박 후보의 지지자들이 안 후보 지지자들의 부모뻘이며 투표일에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투표소로 향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남은 대선에서 안 후보의 역할이 더욱 주목된다. 20대의 투표율을 60대나 70대 투표율처럼 높게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그 격차를 좁힐 수 있다면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것이고, 좁히지 못한다면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30대나 40대에 호소력을 갖고는 있으나 민주당의 선거운동만으로는 20대와 60대 간의 투표율 격차를 좁힐 수는 없다.

젊은 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는 특별한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긍정적이고 신선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런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 이를 안 후보에게서 빌려올 수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되는 것이 반대의 경우보다 더 잠재력이 크다. 안 후보로 단일화가 성사됐다 해도 민주당이 그의 정치적 경험 부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안 후보가 문 후보를 돕는다면 민주당의 ‘낡은 정치’ 이미지는 다소 해소될 수 있으며 문 후보도 유권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민주당은 안 후보의 존재에 대해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안 후보로 인해 내키지 않는 변화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했던 민주당이지만 결국 그 조치들은 민주당에 득이 될 것이다. 민주당을 보면서 난 항상 그들이 낡은 386세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며 스마트하고 더욱 프로페셔널한 새 세대를 포용해 일반 유권자들에게 더 다가가야 한다고 느껴왔다. 민주당 앞엔 지금 그 기회가 있다. 민주당은 그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안 후보는 아마 당장은 선거전에 다시 뛰어들고 싶지 않을 거다. 다시 정치인의 미소를 지으면서 모두와 악수를 해야 하는 것은 진저리 날 정도로 싫을 테다. 하지만 문 후보 입장에서 보면 선거전에서 다시 안 후보의 힘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왔다.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땄다. 2002년 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2년 전부터 서울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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