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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서 멈춘 18일간 전쟁 … 아름다운 단일화는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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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 민주통합당 당사에서 취재진과 당직자들이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의 사퇴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뉴스1]

그야말로 ‘치킨게임(서로 마주 보며 자동차를 모는 게임)’이었다. 18일간 이어진 전쟁에서 멈춘 쪽은 ‘안철수’였다. 거의 모든 사람이 예상 못한 결과였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23일 밤까지 룰 협상을 타결 짓지 못한 채 ‘평행 대치’를 계속했다.

 문 후보는 이날 오전 9시쯤 서울 영등포 당사에 출근해 직접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두 시간 뒤 우상호 공보단장이 당사 기자실 카메라 앞에 섰다. 오전 10시로 예정된 브리핑을 두 차례 연기한 끝이었다. 전날 안 후보 측의 ‘가상대결+지지도 여론조사’ 방식 수용 요구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한다”고 했었던 만큼 그에 대한 답을 내놓기 위해서였다.

 우 단장의 말은 동문서답으로도 들렸다. 안 후보 측 제안에 대해 ‘수용한다’ ‘안 한다’가 아니라 “즉시 협상팀을 가동해 가장 공정한 단일화 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시민사회가 제안한 안(가상대결+적합도)과 안 후보 측 안을 놓고 협의하자”면서다. 안 후보 측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이 ‘최후통첩’이라는 표현을 쓰며 제안한 방식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었다.

 민주당 회의에선 안 후보 측의 제안이 문 후보에게 불리하다는 의견에 후보가 동의하면서, 시민사회 중재안과 안 후보의 절충안을 놓고 합의점을 찾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안 후보 측 요구에 대해 ‘긍정적 거부’를 하면서도 재협상 카드로 공을 다시 안 후보 측으로 던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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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후보 측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재협상 제안을 걷어찰 순 없었다. 이날 오전 내내 자택에서 칩거하던 안 후보는 캠프로 나와 문 후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협상팀 가동 대신 ‘단일화 특사’ 채널을 가동하자는 제안을 했다. 문 후보도 받아들였다. 그래서 문 후보 측 이인영 선대위원장과 안 후보 측 박선숙 선대본부장이 서울시내 모처에서 만나 협상을 이어 갔다. 이런 가운데 문 후보가 ‘적합도+지지도+가상대결’을 모두 섞은 ‘칵테일’ 방식을 안 후보에게 제안했다는 소식이 한때 알려지기도 했다.

 대리인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안 후보는 오후 3시쯤 참모진 일부를 대동하고 종로경찰서를 찾았다. 범죄경력증명서 발급을 위해서였다. 대선후보 등록을 위한 필수서류 중 하나다. 안 후보는 지난 9월 24일 예비후보 등록 시 이미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안 후보 측 관계자는 “다시 서류를 제출할 필요는 없지만 후보가 완주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사이 정치권 움직임도 빨라졌다. 민주당 쇄신모임 의원 27명은 “단일화 여망은 역사와 국민의 부름”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고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이종걸·안민석 의원 등 민주당 내 ‘친안철수’로 분류되던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지금까지 과정은 지지자들까지 흔들리게 하는 진흙탕 싸움”이라며 “내가 옳다. 나만이 승리한다는 집념을 버리고 통 큰 결단을 보여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익명을 원한 한 의원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집단행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한 참여 의원은 “여론조사도 불가한 지경이 되면 20대 총선 불출마를 걸어서라도 양측에 ‘무언가’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각에선 ‘안 후보의 민주당 입당+문 후보의 후보직 양보’가 될 거란 관측이 돌았다. 범야권의 공멸 가능성과 제1야당의 대선후보 부재를 막기 위해선 거의 유일한 해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안 후보의 폭탄선언이 터졌다. 모든 세력이 당황했다. 후보등록일(26일)까지 사흘 남은 상황이었다. 안 후보의 한 측근은 “후보가 어제 오후부터 자택에서 칩거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결론일 줄은 몰랐다”고 허탈해했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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