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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90건 ISD 승소율, 국가 > 투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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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ISD)가 최근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에 따라 해외투자가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새로 ISD 대상이 된 나라들은 대부분 국내법 체계가 미비한 국가들이거나 행정력이 낙후된 국가다. 이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대한 ISD 제소가 없었다는 점은 우리나라의 법제도 및 행정제도가 공정·공평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통상교섭본부는 지난해 11월 ISD 관련 언론 보도에 해명하면서 이런 자료를 냈다. 그런데 ‘법체계가 미비하거나 행정력이 낙후된 국가’도 아닌 한국이 처음으로 ISD 대상이 됐다.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는 지난 5월 주벨기에 한국대사관에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ISD)를 예고하는 문서를 보낸 뒤 꼭 6개월이 되는 22일 ISD 개시를 정식으로 선포했다. 한국 정부가 ISD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40여 년 만이다. 한국은 1967년 ISD 절차 규정인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 협약에 가입했고 70년대부터 양자 간 투자보장협정(BIT)에 ISD를 수용해왔다. 현재 한국이 맺은 85개 BIT 중 81개에, 한국이 체결·발효한 7개의 자유무역협정(FTA) 중 6개(양자 간 BIT로 ISD가 반영돼 있는 한·EU FTA 포함)에 ISD 조항이 들어 있다.

 ‘ISD 무풍지대’였던 한국 정부를 ISD로 끌어들인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9년 만인 지난해 말 매각 작업을 끝내기까지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외환은행 인수자격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그 와중에 고액 배당을 챙기면서 ‘먹튀’라는 비난까지 있었다.

 그러나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 지연과 국세청의 자의적 과세로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론스타는 지난 5월 한국 정부에 전달한 서한과 문서에서 한국 정부의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법 집행으로 수십억 유로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문서에는 한국 당국의 ‘괴롭힘(harassment)’과 ‘(적대적) 여론’이라는 단어가 수차례 등장했다.

 물론 한국 정부는 론스타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소송에서) 이긴다고 120% 확신한다”는 언급까지 했다. 론스타를 둘러싸고 시민단체 등에선 정부가 론스타에 ‘특혜’를 줬다고 주장했다. 반면 론스타 자신은 ‘차별’ 받았다며 ISD를 걸었다. ‘특혜와 차별 사이’에서 정부는 고민했다. 결국 ‘특혜’를 비판하는 여론 속에서 정부가 얼마나 중심을 잡고 관련 정책을 투명하게 폈는지가 승패를 가르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통계를 보면 ISD를 건 투자자가 꼭 유리하지는 않다. 2010년 말까지 총 390건의 ISD 가운데 국가가 이긴 경우는 20.2%, 투자자 승소는 15.1%다. 국내 로펌의 한 국제중재 전문가는 “한국 정부가 론스타와의 ISD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와 시민단체도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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